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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내 책이 서점에 꽂힐 것 믿었다”
[단비인터뷰] 늦깎이 소설가 전민식
2020년 10월 29일 (목) 22:58:32 김계범 기자 aiolos1001@naver.com

매년 신춘문예 등을 통해 새로운 작가들이 등단하지만 지속적으로 활동을 이어가는 이는 소수에 그친다. 원고료나 인세 등으로 생계를 유지하기 어려운 현실과 무관하지 않다. 하지만 마흔 일곱 나이에 장편소설 <개를 산책시키는 남자>로 제8회 세계문학상을 받으며 등단한 전민식(55) 작가는 뒤늦게 출발한 작가의 길을 누구보다 열심히 걸으며 새로운 도전에도 나서고 있다. 지난 5월 22일 경기도 파주시에 있는 복합문화공간 지혜의숲에서 그를 만나고 지난 12일 이메일로 추가 인터뷰했다. 그는 첫 만남에서 고통을 겪는 인간의 ‘자기복원력’을 이야기했다.

피할 수 없는 고통, ‘자기복원력’이 중요한 시대 

   
▲ 지난 2012년 마흔 일곱 나이에 장편소설로 등단한 전민식 작가는 “새로운 시대에 어떤 것이든 도전할 준비가 돼 있다”고 말했다. Ⓒ 김계범

“살아가는 일은 힘든 일이라고 봐요.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고통을 받으면 받을수록 인간은 더 단단해져야 한다고 봐요. 그러지 않으면 견디기 힘들 거예요. 그래서 자기복원력이 중요한 시대가 와 있어요. 자기복원력은 우선 자신을 사랑하는 마음이 있어야 가능해져요. 그래야 비로소 자신을 복원할 수 있어요. 자기복원력은 절망과 고통 속에서도, 무의미 속에서도 살아야 하는, 살아내야 하는 강력한 의지 같은 거라 봐도 무방해요.”

지혜의숲 안에 있는 카페에 먼저 도착해 <2020 제11회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을 읽고 있던 그는 자신이 오랜 실패에도 좌절하지 않고 글을 쓸 수 있었던 이유를 설명하며 이렇게 말했다. 그는 20대 초반에 작가의 꿈을 마음에 품었고, 28~29세쯤 본격적으로 글을 쓰기 시작했으며, (신춘문예 등의) 최종심에서 여러 번 떨어졌다고 밝혔다. 추계예대 문예창작학과를 나온 그는 등단 전까지 대필 작가, 이삿짐센터 직원, 식당 불판 닦기, 주방장, 웨이터, 미군 하우스보이 등 생계를 위해 온갖 일을 했다. 상처를 입고 억울할 때도 많았지만 자기복원력이 강했기에 버틸 수 있었다고 한다. 

“인생이 생각보다 짧잖아요. 포기하지 않는다는 게 사실 쉬운 일은 아니죠. 나는 나이도 아주 많이 먹어서 등단한 거라. 한 가지 이유만은 아니고 복합적인 이유가 있는데 첫 번째로는 나 자신을 믿었고, 언젠가 반드시 내가 쓴 글로 서점 책꽂이에 꽂힐 것이라는 믿음을 오래전부터 가지고 있었어요.”

등단작과 최근작은 라디오 드라마 제작도 

그는 등단 후 <불의 기억> <13월> <9일의 묘> 등 인간 내면을 진지하게 탐구하는 장편소설을 주로 쓰다가 지난해에는 조선 숙종 때 일본에 맞서 독도를 지킨 안용복의 이야기로 소설 <강치>를 냈다. 등단작 <개를 산책시키는 남자>와 <강치>는 한국방송(KBS) 제 3라디오에서 라디오 드라마로 각색해 한 달간 방송된 적이 있다.

그는 <강치> 홍보를 위해 유튜브 영상도 촬영했다며, 문학을 둘러싼 새로운 시도들을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앞으로 종이책은 ‘덕후(한 분야에 몰두하는 사람)’의 영역으로 남을 것이며 주류는 전자책이 될 것이라고 내다보기도 했다. 

   
▲ 지난 2012년 세계일보 주최 세계문학상을 수상한 전민식 작가의 장편 <개를 산책시키는 남자>와 지난해 8월 출간한 장편소설 <강치>. ⓒ 은행나무, 마시멜로

“(종이)책을 한 권 내면 요즘에는 진짜 손가락에 꼽을 정도로 유명한 작가가 아닌 이상 초판 2000부, 많이 찍으면 한 3000부를 내고는 더 이상 책을 못 찍어요. 쉽게 산술적으로만 계산을 하면 우리나라 작가가 받는 건 책 값의 10%라, 예를 들어 책값이 1만5000원이면 권 당 작가가 받는 게 1500원인데 2000부를 찍으면 300만 원밖에 안 돼요. 내가 이거 (강치) 하나 쓰는 데 일 년 반이 걸렸어요, 일 년 반. 하지만 그걸로 주변 환경을 탓할 수는 없어요.”

그는 책이 주는 즐거움보다는 다른 매체가 주는 즐거움에 사람들이 더 익숙해져 있고, 다른 매체들이 훨씬 더 서사성과 자극성이 크기 때문에 당연히 책을 멀리할 수밖에 없는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그는 ‘그래도 책이 계속 살아남긴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코로나 속 문학은 공동체와 연대에 관해 질문할 것 

   
▲ 오랜 낙방과 거절 속에서도 좌절하지 않고 자신의 소설세계를 구축한 전민식 작가가 경기도 파주 지혜의숲에서 서가의 책을 펼쳐보고 있다. Ⓒ 김계범

코로나19 여파 속에서 소설가는 어떤 고민을 할까. 그는 코로나를 ‘더 이상 지구가 인간을 받아들일 능력이 없다는 징조일지 모른다’고 해석했다. 또 알베르 카뮈의 <페스트>와 정유정 작가의 <28>을 언급한 뒤 “재앙은 예고하고 오지 않는 것 같다”며 “소설에서만 가능한 게 아니라 현실적으로도 나타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두 소설이 그린 것처럼 코로나 시대의 우리 속에도 극단적 개인주의로 삶을 바라보는 사람들이 있는가하면 <페스트>의 의사, <28>의 기자처럼 전혀 반대의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두 작품이 ‘어떤 재앙에서도 인간의 존엄을 잃어서는 안 된다’는 이야기를 하고 있다며, “전염병 와중에 문학은 결국 공동체와 연대에 관한 질문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전 작가는 올해 초 김금희, 이기호 작가 등이 ‘이상문학상’ 수상을 거부한 것에 관해 “당연히 잘한 것”이라고 말했다. 최근에는 바뀌었지만 얼마 전까지만 해도 작가가 계약을 할 때 출판사가 5년 동안 작품 저작권을 가져가고, 드라마 영화 등 2차 저작권과 관련해서도 출판사가 부당하게 몫을 챙기는 일이 있었다는 것이다. 그는 “누군가가 언젠가 이야기했어야 이런 잘못을 바로 잡을 수 있는데, 그들(김금희, 이기호 등)이 고맙다”고 말했다.  

‘포기하려던 삶 다시 살아보기로’ 독자 반응에 뭉클 

   
▲ 파주출판단지의 출판사들과 연구소 등이 기증한 책을 시민들이 무료로 읽을 수 있어 인기를 모으고 있는 복합문화공간 지혜의숲. ⓒ 김계범

늦깎이 소설가는 언제 특별한 보람을 느낄까. 전 작가는 지난 2012년 부산 서면의 서점 영광도서에서 강연했던 일을 떠올렸다. 당시 ‘한 10명 정도 있을까’ 생각하고 갔는데 150여 명이 서점을 꽉 채우고 있었다. 강연을 마치자 한 참석자가 “(내가) 굉장히 어렵게 사는데, 작가님이 쓴 책하고 작가의 말을 읽어보고 감명을 받아서, 삶을 포기하려다 다시 뒤집어서 열심히 살아보기로 했다”고 말했다. 전 작가는 그때 말할 수 없는 감동을 느꼈다고 회고했다.            

그는 현재 차기작으로 <해정(解丁)>을 준비 중이라고 소개했다. 이 작품은 어둠을 꿰뚫어보는 한 남자의 이야기로, 열쇠를 귀신같이 따는 특이한 능력이 있는 인물이 국가정보원 직원이 되면서 벌어지는 사건을 다룬다. 박근혜 정권 당시 민간인 사찰이 배경이 되는 소설이라고 한다. 차기작을 공들여 설명하는 전 작가의 얼굴에는 ‘자기복원력’을 상징하는 듯한 미소가 밝게 번졌다.


편집: 이정헌 기자

[김계범 기자]
단비뉴스 청년부장, 지역농촌부 김계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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