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회 '세명 저널리즘비평상' 공모전] 최우수작

<심사평>

저마다 쏟아내는 언론에 대한 평가가 넘치는 시대이긴 하지만, 제대로 된 언론 비평은 오히려 드물다. 언론에 대한 인상 비평에 머물러서는 더 좋은 언론을 갖기 어렵다. 그래서 세명대학교 저널리즘스쿨대학원과 저널리즘연구소는 잘 하는 언론을 격려하고 부족한 언론의 분발을 촉구하기 위해 대학생과 대학원생, 그리고 취업 준비생들을 대상으로 《세명 저널리즘비평상 공모전》을 열었다. 독자와 시청자가 바라는 언론이 무엇인지 그 지향점을 제시해보려는 목적이었다. 

감정과 인상에 치우치지 않고 합리적 논거를 제시한 비평 중에서 공익성과 독창성, 완성도를 종합적으로 고려해 수상작을 뽑았다. 오늘은 먼저 최우수작으로 선정된 정상봉 씨의 글을 소개한다. K-방역이라는 말까지 나온 한국의 코로나19 방역에 대해 서방의 일부 언론이나 학자들은 문화적인 이유 등을 거론하며 평가절하하기도 했는데, <시사IN>은 국내에서도 유명한 프랑스 석학 기 소르망 교수의 평가를 반박하는 기사로 호평을 받았다. 

정상봉 씨의 비평은 이 <시사IN> 기사의 약점을 잘 짚었다. 설문 조사를 앞세우고, 결론적으로 국민들의 자긍심을 높이는 이런 기사를 논리적이고 분석적으로 들여다보기는 쉽지 않다. 국민들이 선진국들에 비해 성공적인 코로나19 방역에 자부심을 갖는 건 좋은 일이지만, 최근의 코로나19 확산세는 외부의 평가에 일일이 대응하지 말고 묵묵히 우리의 길을 걸어야 한다는 필자의 주장에 설득력을 더하고 있다.

원제: [비평] 급하게 먹다 체한다: 시사IN 663호 <코로나19가 드러낸 ‘한국인의 세계’-의외의 응답 편>을 읽고


이기는 습관을 기르라는 자기계발서가 있다. 항상 열정적으로 집요하게 승리를 향해 달리다 보면 그 달콤함을 맛보게 된다는 내용이다. 무한 경쟁 사회에서 이미 지친 사람들을 더 피곤하게 만드는 소리다. 이기면 좋겠지만 그만큼 잃는 것들도 많은 법이다. ‘번아웃 증후군’이 오거나 삶의 소소한 여유와 재미를 놓칠 수도 있다. 경주마는 눈 옆을 가려 오로지 앞만 보고 달리지 않던가. 너무 빨리 달리면 풍경도 제대로 못 보고 여행이 끝나버린다.

경쟁에 익숙한 우리나라가 ‘이겼다’는 소식이 하나 들려온다. 주간지 <시사IN> 663호에서 천관율 기자가 우리나라의 코로나 방역 성공 원인을 분석한 것이다. 기사는 프랑스 석학 기 소르망 교수의 말에 의문을 제기하며 시작한다. “유교 문화가 선별적 격리 조치의 성공에 기여했다. 한국인들에게 개인은 집단 다음이다.” 기사는 이를 ‘정부 말을 잘 듣는 국민성 덕분’이라 얘기한 것으로 해석하고 논지를 이어나간다. 한국인들은 개방·수평적인가, 순응·수직적인가? 기 소르망 교수의 말은 어느 정도로 들어맞는 분석인가?

▲ 주간지 <시사IN> 663호 표지. ⓒ <시사IN>

문항 228개짜리의 대규모 조사 결과를 토대로 기사는 기 소르망 교수의 분석이 틀렸다고 주장한다. 오히려 한국 국민의 민주적 시민성과 수평적 개인주의가 성공적인 방역의 밑바탕이라고 분석한다. 기사는 또 코로나 사태 이후 공적 제도에 대한 신뢰와 공동체 소속감이 늘어났음을 소개한다. 일련의 설문 결과들은 우리나라가 ‘선진국 콤플렉스’를 극복했다는 이야기로까지 이어진다. 읽다 보면 새삼 우리나라가 자랑스러워질 만한 부분이다.

기사의 반응도 폭발적이다. 기사가 올라온 <시사IN> 홈페이지나 페이스북 페이지와 주요 인터넷 포털에 달린 댓글이나 공감 수는 기존 게시물보다 훨씬 많다. 특히 <시사IN> 페이스북 페이지는 기사 링크를 두 번이나 올리는 등 기사의 인기를 실감케 했다. 많은 사람들이 댓글로 “오랜만에 보는 제대로 된 기사”라며 기사에 만족을 표하고 있다. 사실 당연한 모습일지도 모르겠다. ‘우리가 최고야!’ 하고 말하는 기사를 싫어할 사람은 별로 많지 않다. 우리나라를 권위주의적이라 한 주장이 잘못됐다고 말하니 읽는 입장에서는 얼마나 통쾌하겠는가. 여기에 설문 결과 자료와 ‘민주적 시민성’이라는 단어 사용은 이런 만족감을 극대화하는 효과를 부른다.

과연 이 기사는 우리에게 만족감을 줄 자격이 있는가? 기사에 나온 ‘민주적 시민성’과 ‘수평적 개인주의’는 일견 타당한 것처럼 보인다. “주위 사람들에 피해를 끼칠까 봐 두렵다”에 86%가 동의한 설문 결과가 우리의 민주적 시민성에서 비롯된 인식이라는 해석도 어느 정도 그럴싸하게 들린다. 그러나 민주적 시민성이 우리나라에서만 유독 높으리라는 보장은 없는 법이다. 기사에는 우리나라의 민주적 시민성이 얼마나 높은지에 대한 설명도 나와 있지 않다. 있어 보이는 말에 사로잡혀 그 실체를 놓치면 안 된다.

▲ 천관율 기자가 쓴 '코로나19가 드러낸 ‘한국인의 세계’- 의외의 응답 편' 기사에 달린 댓글. ⓒ <시사IN>

줄곧 강조되는 ‘민주적 시민성’에 초점을 맞춰보자. 기사는 ‘개인이 자유롭기를 바라지만 좋은 공동체 안에서만 진정으로 자유로운 개인이 가능하다고 믿는’ 것이 민주적 시민성이라고 설명한다. 문제는 이를 측정하기 위해 사용한 문항들이다. ‘선거 때 항상 투표한다’, ‘조금 비싸더라도 정치, 윤리, 환경에 좋은 상품을 선택한다’, ‘나보다 못사는 사람들을 돕는다’ 등의 문항들을 서구의 사람들에게도 물었다면 어땠을까. 기존의 일반적인 상식으로 생각해보면 서구 ‘선진국’들에게서도 긍정적인 답변이 나올 법하다. 민주적 시민성이 우리나라만의 특징은 아닐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서양과 뚜렷이 비교되게 극찬 받는 우리나라의 성공적인 방역을 설명하기 어려워진다. 적어도 서양의 민주적 시민성이 얼마나 높은지 우리나라와 비교 정도는 해야 그 타당성을 입증할 만하다.

후속 기사에서 예시로 나온 북유럽의 개인주의자들 간 ‘연대’ 논리와도 맞지 않는 부분이 있다. ‘위험으로부터의 자유’를 지키기 위해 선택하게 된다는 연대의 논리는 민주적 시민성과 유사한 점이 많아 보인다. 고로 북유럽의 민주적 시민성도 높을 가능성이 크다. 북유럽보다는 낮지만 평균 복지 수준이 우리나라보다 높은 대부분 서양 국가 역시 마찬가지다. 그렇다면 유독 극찬 받는 우리나라식 방역 모델과 민주적 시민성의 연관성은 떨어질 수밖에 없다. 민주적 시민성은 우리나라의 사례를 설명하기에 적합하지 않다.

기 소르망 교수가 언급한 유교 문화와 ‘집단이 개인에 우선한다’는 말에 너무 집착한 것은 아닐까. 이 기사는 우리나라의 방역 모델이 권위주의에 기반을 두지 않는다는 것을 밝히는 데 급급한 나머지 제대로 된 원인 분석에 실패했다. 민주적 시민성뿐만 아니라 수평적 개인주의도 마찬가지다. 모두 서양 국가들과의 제대로 된 비교가 이뤄지지 않았다. 좀 더 다양한 사회적 맥락이나 문화적 배경을 놓고 분석했어야 했다. 2014년 세월호 참사와 2015년 MERS(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 사태로 안전에 대한 민감도가 증가해있는 사회 분위기나, 마스크에 거부감이 심한 서구의 문화는 고려되지 않았다. 단순히 국민성만 놓고 분석을 하니 어딘가 부족한 모양새가 되어버렸다.

▲ 'K-방역' 이란 말이 무섭게 코로나19가 재확산되고 있는 현 상황. Ⓒ <연합뉴스>

분명 이런 시도는 의미가 있다. 기사 서두에서도 나왔듯 코로나 사태 이후 일어나는 변화는 뚜렷하게 설명된 적이 없다. 설명을 위해 원인 분석을 하는 것은 당연지사다. 그러나 기사는 너무 서둘렀다. 기 소르망 교수의 말을 반박할 건수가 보이자마자 결론부터 내버렸다. 급하게 먹다 체한다는 말이 딱 들어맞는다.

우리나라의 코로나19 사태 대응 모습은 전 세계의 귀감이 됐다. 게다가 선진국으로 불리던 나라들의 방역에 줄줄이 구멍이 뚫리며 충격을 안겨줬다. 국민들이 자부심을 가질 만하다. 하지만 절대 자만하면 안 된다. 아직 코로나의 기세는 수그러들지 않고 있다. 끝날 때까진 끝난 게 아니다. 우리를 평가하려는 시도에 일일이 대응할 필요 없이 묵묵히 우리의 길을 걸으면 된다. 이기려 애쓰지 말고 해야 할 일을 하다보면 자연히 우리만의 모습으로 세계에 서있게 될 것이다.


편집 : 김성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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