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비인터뷰] 인권운동네트워크 ‘바람’ 상임활동가 명숙

“돌봄 요양노동자 중 상당수가 특수고용 형태로 일하면서 성폭력 피해 위험과 멸시를 안고 살아요. 코로나19 상황에선 마스크도 없이 일하는 등 더 열악한 환경에 놓였고요.”

인권운동네트워크 ‘바람’의 상임활동가 명숙 씨는 요양노동자들의 권리 찾기를 위해 뛰고 있다. 지난 2018년 11월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 산하 공공운수사회서비스노조 등과 함께 ‘돌봄 요양노동자 권리선언’을 발표했다. 당시 서울시청 광장에 나온 돌봄 요양노동자들은 “국가자격증(요양보호사)을 따서 일하지만 전문성과 노고를 인정받지 못한 채 무시당하고 있다”며 “인간으로서 존중받으며 일할 권리가 있다”고 외쳤다. 요양노동자들과 7개월간 교육과 토론을 거쳐 선언문을 만든 그는 “아직 갈 길이 멀다”고 말했다. 지난 6월 29일 서울 신도림역 부근 카페에서 그를 만나고, 지난달 30일 전화로 추가 인터뷰했다. 

여성·5060·계약직이 떠맡는 한계 노동

▲ 서울 신도림역 부근 카페에서 <단비뉴스>와 인터뷰하는 명숙 활동가. ⓒ 윤상은

명숙 활동가는 “5060 여성이 다수인 돌봄 요양노동자들은 요양 대상자나 보호자에게 성희롱, 성추행을 당하고 모욕적인 말을 들어도 적절한 조치를 취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이창동 감독의 2010년 영화 <시>에서 재가요양사로 나오는 주인공 ‘미자’가 남성 노인을 씻기다가 불필요한 신체 접촉을 해달라는 요구를 받는 것과 비슷한 일이 벌어진다는 설명이다.

명숙 활동가는 또 “요양보호사를 돌봄 노동자가 아니라 신분제 사회의 하녀처럼 인식하는 사람들이 많다”고 지적했다. 이용자의 집에 방문해 일할 때 반찬 만들기 등 집안일을 추가로 요구받는 사례가 대표적이다. 돌봄 노동자에 관한 그릇된 인식은 모욕적 언사로 이어지기도 한다. 권리선언에 참여한 돌봄 노동자들은 노동 현장에서 ‘X이나 닦으면서’ ‘기저귀나 갈면서’ 등의 말을 들었다고 증언했다.

보건복지부가 내놓은 ‘2019 장기요양 실태 조사’를 보면 ‘요양보호사’가 91.9%인 장기 요양 요원 중 61.9%가 계약직으로 일한다. 조사 응답자 4000명 중 94.7%가 여성이고, 60대가 40.4%, 50대가 39.5%로 50~60대가 대다수다. 이들은 부당한 일을 당해도 해고될까 걱정해 권리를 주장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보건복지부 조사에서 응답자 중 25.2%는 ‘수급자나 가족으로부터 언어폭력을 당한 적이 있다’고 답했다. ‘신체적 폭력이나 위협’을 경험한 사례도 16.0%, ‘성희롱·성폭력’을 당했다는 응답도 9.1%가 있었다. 

교육 받고 국가자격증 땄지만 저임금·홀대

▲ 지난 2018년 11월 13일 서울시청 앞 광장에서 ‘돌봄요양노동자 권리선언’을 발표한 노동자와 활동가들. ⓒ 인권운동네트워크 바람

돌봄 요양노동자는 노인복지법에 따라 시·도지사가 인정한 교육기관에서 이론, 실기, 실습 각 80시간씩 총 240시간 교육을 받은 뒤 한국보건의료국가시험원이 주관하는 국가자격증을 취득해 일한다. 대부분 특수고용 형태로 노인돌봄센터에 소속돼 민간 요양원에서 일하거나 이용자 집으로 방문한다. 2018년 ‘서울시 요양보호사 실태조사’를 보면 서울 기준으로 요양보호사들이 받는 평균 시급은 주휴수당을 포함 7400원 가량으로 최저임금(2018년 7530원)에도 못 미쳤다.

명숙 활동가는 2018년 초 서울시청 앞 청계광장에서 릴레이로 열린 미투(#Metoo, 나도 고발한다) 증언대회에 나온 돌봄 요양노동자 2명의 발언을 듣고 권리선언을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다. 2개월 뒤 그는 인권운동네트워크 바람의 동료, 공공운수노조 활동가 등과 함께 돌봄 노동자들을 만나기 시작했다.

“소위 전문가라는 사람의 머릿속에서 나온 권리선언 말고 당사자의 요구를 담고 싶었어요. 7개월 동안 돌봄 노동자 누구나 와서 노동과 인권에 관한 교육을 받고 토론할 수 있게 했어요. 각자 경험을 공유하면서 당당한 노동자로 일할 권리를 스스로 알아가는 거죠. 권리 선언도 당사자들이 직접 쓸 수 있었고요.”

권리선언을 위한 교육과 토론장에 나온 노동자들은 부당한 일 앞에서 답답함과 혼란스러움을 느낀 경험을 나누었다. 명숙 활동가는 “5060 여성노동자들은 성평등 교육을 받을 기회가 적어 성희롱을 당해도 그냥 넘어갈 때가 많았다”며 “토론하면서 기분 나쁜 상황에 항의해도 된다는 것을 알아가는 모습을 보였다”고 말했다. 돌봄 노동자들은 무시당하지 않을 권리, 폭력을 벗어나 안전할 권리, 성차별 받지 않을 권리, 건강하게 일할 권리, 저임금에 시달리지 않을 권리, 돌봄서비스에 공공성을 강화시킬 권리 등을 요구했다. 

▲ 돌봄 요양노동자들이 지난 2018년 권리선언을 준비하며 인권과 노동에 관한 교육을 받고 토론하는 모습. ⓒ 인권운동네트워크 바람

코로나19 이후 돌봄 서비스의 공공성 더욱 절실

코로나19 바이러스가 유행하자 돌봄 노동자의 처우는 더 열악해졌다. 마스크를 구하지 못한 채 노인 장기요양을 하는 노동자들도 많았다. 서울시어르신돌봄종사자종합지원센터가 지난 6월 발표한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 관련 요양보호사 실태조사’를 보면 조사 대상자 3456명 중 67%가 마스크와 손 소독제 등 방역물품을 지원받았지만 그중 81.9%는 지원이 1~2회에 그쳤다고 답했다. 3~5회 방역물품을 지원받은 사람은 12.2%이고, 10회 이상은 3.4%에 그쳤다. 돌봄 노동자는 고령의 기저질환자와 보내는 시간이 많아 한 명이라도 감염되면 모두가 위험한데도 공적 마스크를 제대로 보급 받지 못한 것이다.

실제로 요양원에서 코로나19에 집단 감염되는 사례가 있었다. 지난 3월 경북 봉화군 푸른요양원에서 입소자와 직원 177명 중 68명이 집단 감염됐고, 그중 7명이 숨졌다.

명숙 활동가는 “돌봄 서비스의 공공성이 높았다면 돌봄 노동자도 노인 이용자도 더 안전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돌봄 노동자가 특수고용 형태로 저임금을 받으며 일하는 게 아니라, 공공서비스 노동자로서 안전과 건강을 위한 물품을 충분히 지급 받으며 일했다면 상황이 달랐을 것이란 얘기다. 그는 궁극적으로 돌봄을 민간이 아니라 공공 영역에서 책임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누구나 어린아이 시절을 지나 나이가 들잖아요. 노화가 찾아오면 아플 수 있고요. 돌봄은 모두에게 필요하니 당연히 공공적이어야 하죠. 돌봄을 공공 서비스로 하고, 중앙 정부와 지방 정부가 함께 정책으로 실현해야 합니다.”

현재 우리나라는 공공 노인요양시설이 매우 부족하다. 통계청의 장기요양기관 현황 자료를 보면 2018년 기준 지방자치단체가 설립한 장기요양기관은 전체 2만1290곳 중 1.15%에 그쳤다. 개인이 설립한 곳이 81.04%로 가장 많고, 법인 17.41%, 기타 0.38% 등이었다. 

현장의 돌봄 노동자 보호할 감독 지침 필요 

명숙 활동가는 돌봄 노동의 공공성을 강화할 수 있는 방안 중 하나로 노동 현장 가이드라인과 정부의 감독 지침 제정을 제시했다. 그는 “감염병 등 위험 상황에 대비한 돌봄 노동자 건강 지침, 성폭력 위험과 폭언 등에 대처할 수 있는 조치 기준 등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특히 돌봄 노동자가 인간적으로 존중받기 위해선 이용자와 보호자를 대상으로 한 교육도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돌봄 노동자가 ‘낮은 존재’가 아니라 당당하게 일하는 노동자라는 인식을 일깨워야 한다는 것이다.

한국여성정책연구원 구미영 연구위원이 2018년 발표한 ‘돌봄 노동의 사회적 가치에 대한 해외 정책사례 연구’에 따르면 스웨덴은 2017년 기준 장기요양제도 예산의 약 80%를 기초자치정부가 세금으로 충당한다. 나머지는 중앙정부 지원금과 이용자 서비스 이용료로 채워 개인 부담을 최소화하고 있다. 돌봄 노동자 27만5000여 명 중 85%가 공공부문에 고용돼 있고, 노조를 통해 노동 환경과 임금 수준을 개선하고 있다. 일본도 1992년 '개호노동자의 고용관리개선 등에 관한 법률'을 제정하고, 2008년 '개호종사자 등의 인재확보와 처우개선에 관한 법률'을 만들어 노동실태조사를 하고, 성희롱이나 직장 내 괴롭힘 관련 지침 등으로 돌봄 노동자를 보호하고 있다. 

바이러스가 드러낸 불평등, 외면하지 말아야

▲ 인권·노동운동에 참여해 온 명숙 활동가(왼쪽에서 두 번째)가 지난해 11월 경북 김천 한국도로공사 본사에서 농성하는 톨게이트노동자들을 지지 방문해 현수막에 연대의 메시지를 쓰고 있다. ⓒ 인권운동네트워크 바람

명숙 활동가는 코로나19 바이러스가 우리 사회의 불평등을 여실히 드러냈다고 지적했다. 그는 “코로나19 방역 때문에 집회·시위를 할 수 없어 비정규직노동자, 이주노동자, 장애인, 노숙인 등 불평등을 겪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세상에 들리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집회 금지 구역이 아닌 데서 신고하는 시위까지 구청이 자의적 판단으로 막아서는 경우를 많이 봤어요. 강남에선 되는데 강북에선 안 되는 식인 거죠. 다양한 소수자들이 시위를 하고 권리도 외쳐야 불합리한 것을 바꿔나갈 수 있어요. 집회 참가자들이 1~2미터(m) 간격으로 줄을 서고, 마스크와 장갑을 착용하고, 손을 소독하고, 참가자 발열 체크를 하는 등 방역 조치를 제대로 하면서, 묵살되는 소수 목소리가 없게 해야죠.”

20대에 청년운동과 노동운동을 했고 30대 중반에 인권운동을 시작했다는 명숙 활동가는 페미니즘(성평등운동)이 가부장적 자본주의라는 억압의 구조를 변화시킬 수 있다고 생각해 인권운동네트워크 바람을 만들고 여성, 노동, 소수자 의제에 집중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다양한 차별에 반대하는 인권운동가로서 나이와 성씨를 밝히지 않겠다고 말한 그는 “비정규직 노동자 등 사회적 약자, 소수자 집단들이 차별 없는 세상을 만드는 힘을 믿는다”고 말했다.

명숙 활동가가 2018년 창립 회원으로 참여한 인권운동네트워크 바람은 현재 상임활동가 2명, 비상임활동가 4명과 다수의 자원 활동가들로 구성돼 있다. 이 단체는 기아차 여성비정규직노동자 성차별 대응, 고 서지윤 간호사 직장 내 괴롭힘 조사, 페미니즘으로 다시 쓰는 인권 선언, 산재 피해 가족 네트워크 ‘다시는’ 지원 사업 등을 하고 있다.


 편집 : 이동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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