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론광장] ‘대학의 미래’ 포럼

17일 오후 서울 제기동 역사문제연구소 5층 관지헌에서 ‘‘대학이란 무엇인가’ 질문 넘어서기’라는 주제로 집담회가 열렸다. 이날 포럼에서는 정준영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교수, 유정 서경대 인성교양대학 교수, 김태호 전북대 한국과학문명학연구소 교수, 이묘우 지식순환협동조합 대안대학 주임교수, 이우창 서울대 영어영문학과 박사과정생이 참여해 ‘대학의 미래’를 화두로 발제와 지정토론을 맡았고, 줌(zoom) 화상회의를 통한 온라인 비대면 16명, 오프라인 16명의 각계 지식인들이 참여해 자유토론을 했다. 천정환 성균관대, 강명숙 배재대 교수가 사회를 맡았다.

▲ 당위적이고 전통적인 대학론이 아닌 변화하고 있는 실제 삶의 모습에 입각한 담론을 연구하는 ‘대학의 미래’ 2차 포럼이 17일 서울 역사문제연구소 관지헌에서 열렸다. ⓒ 윤종훈

허울뿐인 자율·자치, 시장 논리만 팽창

“대학의 ‘자치, 자율성’이 대학인들 사이에 금과옥조로 여기는 것은 과거 정치권력과의 양가적 관계 속에서 나름 역동성과 창조성을 발휘했던 역사적 궤적을 보면 일리가 있습니다. 하지만 대학에 내장된 ‘자치, 자율’의 제도와 관행들은 치명적인 한계가 있습니다. 시장의 힘, 즉 경제적 이윤논리의 침투에 대해서는 속수무책이라는 사실입니다.”

정준영 교수는 ‘대학, 우리가 아는 것과 모르는 것’ 기조발제에서 대학 위기를 말하는 사람들이 금과옥조처럼 여기는 ‘학문의 전당’ ‘학문의 자율성’이란 말이 가지는 가치를 부정할 수 없지만 시장 논리에 부딪힌 실제 대학의 현실을 외면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정 교수는 “뻔뻔하고 추악한 사학의 비리, 돈과 권력의 논리에 휘둘리는 학교 당국의 작태, 일부 교수들의 부화뇌동, 대학에 타율과 획일을 강제하는 행정당국의 안일함 등이 먼저 도마 위에 오른다”며 “하지만 예외 없이 비판은 자율성의 회복, 특성화의 보장, 정부의 조건 없는 지원이라는 원칙을 확인하는 지점에 이른다”고 밝혔다.

▲ 정준영 교수는 “대학을 하나의 단일하고 고정된 실체로 보려는 태도를 버리고, 대학을 때로는 현미경으로, 때로는 망원경으로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 윤종훈

그는 “대학의 기업화 혹은 신자유주의화 경향에 관한 사회적 관심이 높아졌지만 좀처럼 나아질 기미는 보이지 않는다”며 “도리어 자치와 자율의 제도적 상징인 대학 법인마저 다른 사적 법인들과 마찬가지로 이윤을 추구하는 관료적 조직체로 변환하는 시발점으로 작용한다”고 말했다. 정 교수는 “’대학이란 무엇인가’ 부류의 질문이 교육, 학문, 자율, 자치 등 이미 정해진 대답을 중심으로 공전하는 양상을 넘어 교육과 연구라는 기능, 자치와 자율이라는 특징부터 다시 풀어헤치는 시도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앞으로 다가올 대학의 모습을 상상할 수 있을까요?”

“저는 학생이었다가 연구자이고 교수가 된 이 시점에서 어떤 사람과 공부해야 좋을까, 누구와 같이 이야기하면 신나게 공부할까 하는 게 저에게 큰 화두입니다. 무엇이 대학인지 궁금한 적은 없었습니다. 그런 면에서 저는 떠돌이입니다. 제 대학의 위치도 있지만 어떤 사람과 연구해야 할지 찾고 ‘그 사람과 연구하는 게 재미있겠다’, 재미있게 연구하면 정착했다가 다시 다른 장소로 옮겨가는 게 저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도 있지 않을까 싶었습니다.”

인지과학을 연구하고 있는 유정 서경대 교수는 ‘내가 하고 있는 것, 대학인가’ 발제에서 모든 사람이 유목민처럼 떠돌아다니며 앎을 충족한다는 관점에서 대학 바깥에서 배움의 장을 만드는 사례를 제시했다. 유 교수는 현재 페이스북 그룹 1600여명 회원이 자유롭게 발제하고 매월 셋째 주 토요일마다 세미나를 여는 ‘토요인지과학모임’, 직업에 맞춰 사람을 교육하는 것이 아닌 사람을 교육해 직업을 갖도록 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파이(PIE) 청년학교’, 경쟁사회와 경쟁교육을 지양하고 2년제/8학기제 커리큘럼을 운영하는 ‘지식순환협동조합 대안대학’, 항(抗)대학을 표방하는 ‘이상한 대학교’, ‘지대넓얕(지적 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 팟캐스트’, ‘길담서원’ 등을 소개했다.

▲ 유정 교수는 대학 바깥에서 공부하고 있는 여러 사례들을 보여줬다. ⓒ 윤종훈

지식순환협동조합과 토요인지과학모임에서 활동중인 유 교수는 “’대학이 익숙한 저에게 ‘나는 뭘 가르칠까’ ‘대학이란 구조는 무엇인가’ ‘대학 구성원들은 뭘 원할까’가 앞의 사례들을 비교하며 고민했던 주제였다”며 “대학이란 것이 ‘어떤 커리큘럼으로 무엇을 가르치는지’ ‘만나서 가르치는지, 안 만나서 가르치는지’ ‘같이 협력하는지’ 등 지식을 어떻게 공유하는가의 기준이 지금까지 알고 있던 대학과 조금 달라지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코로나 사태가 한국 대학의 민낯 보여줬다

“생명체가 당위를 위해 살진 않지 않습니까? 대학도 당위의 차원에서 이념이나 정신으로서 존재하는 게 있지만 기구로서는 하나의 산업입니다. 수십만명 사람을 고용하는 산업이고, 수십만명의 수요와 공급으로 굴러갑니다. 그러면 내적 논리에 따라 굴러가는 게 커집니다. 한 영역의 잣대로 다른 영역을 비판하는 게 실제 효용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김태호 전북대 교수는 ‘대학 담론 한 번 더 뒤집어보기’ 지정 토론에서 하나의 유기체로서 굴러가는 대학이라는 기구를 이해하려면 대학을 둘러싼 화두가 나올 때 ‘누가 가장 큰 이득을 보는가’라는 관점에서 봐야 대학이 당면한 현실을 분명하게 드러낼 수 있다고 밝혔다. 김 교수는 “대학은 어떤 곳이라는 당위적 언명은 자기 이해관계를 반영하는 것”이라며 “천 년이 넘은 교육제도이기 때문에 사실 ‘대학이 어떤 곳’이라고 주장을 뒷받침할 만한 역사적인 사례들은 다 갖고 있다”고 말했다.

▲ 김태호 조교수는 학교 구성원들 사이에서도 이해관계가 달라 통일된 이야기를 하는 게 가능한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 윤종훈

그는 “인문학은 기초학문의 중요성과 ‘경제적 효과를 따질 수 없다’는 담론을 제시하고, 사회과학은 과학적 방법론을 통한 사회 문제 해결을 얘기하고, 자연과학은 연구중심대학이 왜 중요한가 강조하고, 공과대학은 사업화를 주장하면서 대학의 본질과 미션에 관해 다 다른 얘기를 한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또 학부 중심이냐, 대학원 중심이냐, 재원을 연구에 투자하느냐 아니면 교육에 투자하느냐로 갈리고 학교 존폐 자체를 걱정하는 대학이 있는 등 대학마다 처한 사정이 다 다르기 때문에 이런 점들을 염두에 두고 대학의 미래를 이야기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김 교수는 최근 코로나 사태를 겪으면서 일부 대학이 온라인 강의에 차질을 빚고 등록금 반환 소송이 벌어지는 등 평소 말하기 힘들었던 대학의 민낯이 드러났다고 지적했다. 그는 “학부모든 학생이든 ‘과연 이 돈을 내고 학교에 다니는 게 맞냐’는 고민이 생기기 시작했다”며 “대학 안에 있는 모든 사람이 시스템을 만들어가는 일부로 인정하고, 책임을 나눠질 준비를 하면서 어느 목소리에 힘을 실어주는 게 바람직할지 전략적인 선택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 사람의 민주시민이 모든 혁명의 출발점

“대학의 본질과 기능은 자신과 사회를 책임지는 민주시민을 길러내는 것이라는 데 이견을 가진 사람은 많지 않을 것입니다. 다만 끝없는 인내와 노력이 필요할 뿐, 그것은 우리의 용기와 사랑을 필요로 합니다.”

이묘우 지식순환협동조합 주임교수는 ‘학생의 발견’ 지정토론에서 ‘일신의 안위와 가문의 영달을 넘어 공동체와 사회, 국가, 세계를 생각하고 책임지는 사람을 기르는 곳이 대학’이라고 정의했다. 이 교수는 “취업준비소로 전락한 오늘날의 살풍경한 대학현실을 보면 독야청청 음풍농월 같은 소리지만, 적어도 내가 인식하고 동의하는 대학의 정의는 이렇다”면서도 “유정 교수님이 여러 대안 사례를 들었지만 변수가 많고 안정성과는 거리가 먼 20대 초중반의 청년들이 월 1회가 아니라 거의 매일, 최소 2년 이상 집중해서 공부하고 훈련받을 수 있는 곳은 ‘행정당국’이 운영하는 대학”이라고 말했다.

▲ 이묘우 교수는 “지도가 연구보다 훨씬 어려운 것은, 교수에게 공부는 익숙한 것이지만 학생들 한 명 한 명은 절대 익숙해질 수 없는 살아있는 생명체라는 사실”이라며 선생들의 각성을 촉구했다. ⓒ 윤종훈

이 교수는 대안교육 현장에서 만난 20~30대 청년들이 의외로 진정한 배움과 삶의 의미를 갈구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는 “수업을 들으며 자신의 미숙함과 무지를 통감하여 묵묵히 공부하면서 ‘폭풍성장’하는 선순환, 배우려는 마음보다는 자기의 신념을 내세워 영향력을 행사하고 싶은 마음이 더 큰 사람들이 항상 빠지게 되는 무지와 상처의 악순환, 이 두 개의 순환을 끊임없이 확인하는 것이 대안교육의 현장”이라고 토로했다.

그러나 이 교수는 “(교수, 선생들이) 학생들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학생을 대상화하지 않고 있는 모습 그대로 어떻게 받아들일 것인가 하는 실제적인 문제가 훨씬 더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학생과 함께하지 못하는 마음, 학생의 입장에서 조금 더 생각하지 못했던 무신경은 학생들의 나태함에 상응하는 교수의 게으름이 아닐까”라고 지적했다.

서울대 대학원총학생회 이우창 고등교육전문위원은 지정토론에서 정준영 교수 발제에 대체로 동의했다. 이 위원은 “대학의 위기 담론에는 대학에 특정한 ‘본질’ 혹은 그로부터 도출된 규범적 지향을 강하게 전제하고 있으며, 정작 대학이 실제로 직면하는 현실들, 그리고 해당 사회 속에서 대학이 실질적으로 떠맡았던 역할을 분석의 시야에서 사라지게 했다”고 말했다. 그는 “한국 대학과 그것이 속해 있는 조건이 어떻게 변화했고, 우리가 활용할 수 있는 제도, 장치, 비/언어적 자원이 어떤 것들이 있는지 구체적으로 확인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 한국 고등교육의 발전과 대학개혁을 바라는 연구자와 지식인들이 온라인 비대면 줌(zoom) 화상회의를 통해 포럼에 참여했다. ⓒ 윤종훈

입신양명, 출세를 위한 기관이라는 오명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생인 고준우 씨는 자유토론에서 대학 본연의 의미를 분석하는 작업도 중요하지만 대학 운영에 필요한 재원을 제공하는 학부모와 학생들의 요구를 우회할 수 없다고 강조했다. 그는 “’대학이 뭔데’라는 이 질문이 가장 크게 다가올 지점은 당장 다가올 대학 구조조정”이라며 “대중들이 투사하고 있는 욕망에 부응하는 대학은 구조조정에서 살아남게 해달라고 요구할 것이고, 그렇지 못한 대학은 죽게 내버려 두라고 요청할 것”이라고 걱정했다.

그는 현재 대중들이 요구하는 대학의 기능은 ‘입신양명과 출세를 위한 기관’이라고 진단했고, 이는 국가정책을 이끄는 정치 영역에서 피할 수 없는 고민이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고 씨는 “이번 총선에서 여당이 180석을 얻었지만 대학 구조조정에 관한 계획은 거의 없다”며 “대학교 안에 다양한 구성원들이 가진 이해관계가 어떻게 상충하는지 분석해서 다음 포럼에서는 국회의원들이 구조조정과 관련한 플랜을 갖도록 우리 모두가 생각해봤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이번 ‘포럼 대학의 미래’는 ‘민주평등사회를 위한 전국 교수연구자 협의회’(민교협)가 주도하던 ‘학문정책 수립과 대학개혁을 위한 모임’이 젊은 연구자 중심으로 개편되면서 만들어졌고, 지난 1월 29일 서울 종로구 대한출판문화협회 강당에서 ‘고등교육개혁과제 토론회’를 한 데 이어 두 번째로 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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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 : 최유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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