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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개월마다 잘리는 남자’와 불안 사회
[단비발언대]
2020년 04월 13일 (월) 13:00:23 이동민 기자 dongmin1535@gmail.com
   
▲ 이동민 기자

지난 1월 설날 연휴 택배가 몰린 2주 동안 나는 용돈을 벌기 위해 한 우체국 물류센터에서 단기노동(아르바이트)을 했다. 그때 내게 상하차 업무를 가르쳤던 20대 후반의 선임자는 계약상 하루 8시간 미만 일하고, 5개월 마다 재계약을 하는 비정규직 노동자였다. 우체국측이 주휴수당 등 각종 비용을 줄이기 위해 계약을 쪼개는 거라고 했다. 그는 200킬로그램(kg)이 넘는 카트를 끌기 때문에 잠깐의 실수로도 발가락이 절단될 위험이 있었지만, 비정규직이라 안전화를 지급받지 못했다. 사비로 안전화를 사야하고, 주휴나 야간수당도 없어 ‘단기 알바’보다 일당을 적게 받고 있었다. ‘다른 일을 찾아야 하는 것 아니냐’고 묻자 그는 “먹고 살아야 하니 어쩔 수 없다”며 쓴웃음을 지었다.

   
▲ 설 대목을 앞두고 우체국 물류센터 내 노동자들이 일하는 모습. ⓒ KBS

비정규직 노동자가 우리나라에 본격적으로 늘어난 것은 1997년 외환위기 직후 대규모 기업구조조정이 진행되면서라고 한다. 경영난에 부닥친 회사들을 살린다는 명분으로 정리해고와 비정규직 고용을 제도적으로 허용하자, 기업들은 해고하기 쉽고 임금을 덜 주어도 되는 ‘티슈(일회용) 노동자’를 급격히 늘렸다. 통계청에 따르면 외환위기 이전 미미했던 비정규직 비율이 2001년 전체노동자의 27.3%가 됐고 2010년 33.2%를 거쳐 2019년엔 36.4%까지 늘었다. 전체 노동자 중 3분의 1 이상이 불안정 고용 상태라는 얘기다. 노동계에서는 형식상 사업자로 구분되는 특수고용직 등을 포함할 경우 실제 비정규직은 전체 임금노동자의 50%에 가까울 것이라고 분석한다.

비정규직은 우리 사회에서 노골적으로 ‘2등 노동자’ 취급을 받는다. 보수는 같은 일을 하는 정규직의 50~60%에 불과하고, 여러 해 계속 일하면서도 5개월, 11개월 등 짧은 간격으로 재계약을 하며, 언제 해고될지 모른다는 불안에 시달린다. 여러 설문조사에 따르면 이들은 정규직이 쓰는 사내 정보망인 인트라넷에 접근할 수 없다거나 식당과 통근차량 이용도 제약을 받는 등 차별과 모멸감을 느끼는 환경에 던져진다. 전체 임금노동자의 절반가량이 저임금과 고용불안에 시달리는 상황은 ‘중산층 감소, 저소득층 증가’를 통해 사회 전반의 불평등을 심화하는 결과로 이어진다.

리처드 윌킨슨과 케이트 피켓이 쓴 <불평등 트라우마>에 따르면 소득불평등이 심한 나라에서는 정신질환에 시달리는 사람의 비율이 비교적 평등한 나라에 비해 3배까지 높게 나타난다. 불평등이 심한 사회에서는 일자리 불안, 직장 내 스트레스, 생활고 등으로 우울증, 공황장애 등을 앓는 사람이 상대적으로 많고, 스스로 목숨을 끊는 사람도 속출한다. 우리나라의 관련 통계는 이런 분석을 뒷받침한다. 외환위기의 충격이 본격화한 1998년 우리나라의 인구 10만 명당 자살자 수는 18.4명으로 전년도의 13.1명에서 훌쩍 늘었다. 이것이 2003년엔 22.6명으로 증가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자살률 1위라는 불명예를 기록했다. 이 숫자는 2018년엔 26.6명으로 더 늘었는데, 같은 해 OECD 국가 평균 자살률은 11.5명으로 우리나라의 절반에 불과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취임 직후인 2017년 10월 공공부문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을 시작으로 비정규직 처우개선 대책을 의욕적으로 추진했다. 그러나 일부 공공부문의 성과에도 불구하고 민간부문 등 전체 비정규직 노동자의 처지는 근본적으로 개선되지 못했다. 심지어 우체국 등 공공기관에서도 변칙적인 비정규직 고용 관행은 사라지지 않고 있다. 스웨덴 등 유럽의 복지국가들이 ‘동일가치노동 동일임금’ 등 차별금지 규정을 엄격히 시행하며, 일부 나라에선 고용안정성이 약한 비정규직에게 오히려 시간당 임금을 더 많이 주는 것과 대조적이다.

우리 헌법 10조는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고 말한다. 비정규직 노동자를 부당하게 차별하는 것은 국민 다수의 ‘행복추구권’을 부정하는 것과 다름없다. 나아가 국가 전반의 소득불평등을 심화함으로써 사회불안과 병리현상을 증폭시키는 요인이 된다. 일찍이 노동자 차별과 착취를 제도적으로 막은 유럽 복지국가들처럼 우리도 동일가치노동 동일임금을 법제화하고, 비정규직 사용사유를 엄격히 제한하며, 모든 노동자의 단결권을 실질적으로 보장해야 한다. 그래야 우리 사회에서도 불평등이 줄고, 더 많은 사람들이 삶을 짓누르는 불안에서 벗어나 행복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편집 : 이예슬 기자

[이동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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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 쓰지 않겠습니다. 좀 알고 쓰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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