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상사전] ‘코로나19’

▲ 김계범 기자

‘아침저녁으로 샛강에 자욱이 안개가 낀다’로 시작하는 기형도의 시 ‘안개’의 첫 구절처럼 어릴 적 우리 집 앞에는 한강으로 이어지는 하천이 있어서 아침이면 창문 밖에 자욱이 안개가 끼곤 했다. 그때 느낀 심상(心象)은 표현할 길이 없어 답답했는데, 나중에 T. S. 엘리엇의 시를 발견하고 ‘난 역시 시인이 되지 못하겠다’는 좌절감을 느꼈다. ‘유리창에 등을 비비는 안개’라니!

안개 낀 창밖 풍경은 어린 나에게는 두려움 이상의 공포를 느끼게 했다. 그 집에 살 때 나는 밤마다 잠을 이루지 못했다. 우연인지 모르겠지만 그 집에서 이사하고나서 불면증도 어느새 사라졌다. 그때의 안개 낀 창밖 풍경이 주던 날들의 우울과 불안은 아직도 내 마음 한 구석에 ‘안개 공포증’의 흔적으로 남아있다.

마음이 지칠 때면 나는 한강을 걷곤 했다. 주로 밤에 한강을 걸었고 별이 총총 떠있는 맑은 밤하늘을 올려다보는 것을 좋아했다. 내가 자라면서 한강 주변도 많이 변했다. ‘4대강 살리기’라는 미명 아래 자전거 길이 멋지게 들어서고, 멀지 않은 곳에 멋진 카페가 하나둘 생기면서 이곳을 찾는 사람들은 점점 늘어갔다. 생활이 편리해질수록 밤하늘의 별들은 하나둘 사라져갔고, 상수원에서 그리 멀지 않은 우리 동네의 하늘이 이제는 서울의 밤하늘과 크게 다르지 않다.

대학을 마치고 취업 준비 기간이 길어지자 불안함이 늘어갔다. 대학을 졸업하고도 일자리를 얻지 못하자 내 존재만으로 가정의 평화가 깨지기도 했다. 입사시험에서 자꾸 낙방할수록 나는 어딘가 기대고 싶었지만 내가 기댈 곳은 없었다. 집에 있는 시간은 예전보다 늘었지만 집은 어느새 불편한 공간으로 변해 있었다. 매일 반복되는 취업 준비 생활을 하면서 오랜만에 친구들을 만나면 나도 모르게 예전과 다르게 말이 많아졌다. 집으로 돌아오면 다시 우울한 날들은 반복됐다. 창밖의 안개 속을 바라보던 어린 날의 답답함이 재발된 걸까?

코로나 사태로 대중교통을 이용할 때 다른 사람과 멀찌감치 떨어져 서거나, 거리를 두고 앉는 것은 당연한 일이 됐다. 마스크를 착용하고 기침을 해도 따가운 시선을 느끼는 건 어느새 자연스러운 일이 됐다. 정부가 외출 자제를 권고하고 사회적 거리 두기를 이야기함에 따라 가끔 만나던 친구들도 잘 만나지 않게 됐다. 기업 공채 일정도 예년에 견주어 연기되거나 숫자도 줄었다. 코로나19 이후 우리 사회의 두려움 가득한 여론과 암울한 소식으로 가득한 뉴스를 보면 하루하루가 마치 ‘안개’ 속을 걷는 기분이다. 바이러스 자체보다 막연한 두려움과 공포에 휩싸이는 분위기에서 하루에도 감정이 여러 번 요동치곤 한다. 마음을 가다듬으며 마스크를 착용하고 손소독제를 발라도 마음속 깊은 두려움은 끝내 사라지지 않는다. 특히 내 앞날을 생각하면 커져가는 두려움은 한 치 앞도 내다보기 힘든 안개 속에 있는 느낌을 준다.

▲ 코로나19 사태로 우리 사회에 근거 없는 공포와 두려움, 혐오가 안개처럼 다시 피어 오르기 시작했다. ⓒ Pixabay

오늘도 무섭게 흐르는 시간 속에서 모두가 이 자욱한 ‘안개’가 걷히기만 기다린다. 안개를 이야기하면 많은 이들이 김승옥의 단편소설 <무진기행>의 무진(霧津), 곧 안개나루를 떠올리겠지만, 나는 기형도 시인의 ‘안개’라는 시가 먼저 떠오른다. <중앙일보> 기자이기도 했던 기형도는 ‘안개’로 1985년 등단했고, 내가 대학 시절 어느 강의에서 발제한 작품이기도 하다. 기형도는 그 시 마지막 구절에서 ‘아이들은 무럭무럭 자라 모두들 공장으로 간다’고 했다. 30여 년 전, 기형도가 시로 쓰듯 과거에도 우리 사회에는 ‘안개’가 있었다. 2020년 지금 ‘안개’로 가득한 우리의 현재는 이미 예견된 것인지도 모른다. ‘안개’에는 이런 구절도 나온다.

‘방죽 위에서 취객 하나가 얼어 죽었다 
바로 곁을 지난 삼륜차는 그것이
쓰레기 더미인줄 알았다고 했다. 
그러나 그것은
개인적인 불행일 뿐, 안개의 탓은 아니다.’

기형도가 운명을 달리하고, 그후로 강산이 몇 번을 바뀌고도 세상은 크게 변하지 않았다. ‘안개’는 다양한 형태로 언제나 존재했고, 2020년 현재에는 코로나19라는 모습으로 우리 앞에 나타났을 뿐이다.

많은 이들이 코로나가 우리의 삶과 일상을 바꿨다고 말하지만 나는 반만 동의한다. 코로나19 이전에도 사람들 사이의 혐오와 두려움, 불신과 같은 보이지 않는 벽은 존재했다. 코로나19가 파편화하고 소외된 이들의 삶을 더 뚜렷하게 사회 표면으로 드러냈을 뿐이다. 우리 사회는 오랫동안 가장 약하고 힘없는 존재들을 외면해왔다. 재난 상황에서 가장 소외받는 이들 역시 발언권 없고 힘없이 우리 사회를 채우고 있는 많은 이름 없는 사람들이다. 지금껏 마주하고 싶지 않았던 현실이 코로나19라는 최악의 전염병으로 나타났다. 코로나19 사태는 언젠가 끝날 것이다. 중요한 문제는 또다시 전염병과 같은 인류를 위협하는 문제는 언제든 생겨날 수 있다는 점이다.

안개는 보통 해가 뜨고 기온이 올라가면 사라진다. 영원한 안개는 없다. 해가 뜨면 안개가 걷히듯 코로나19 사태도 언젠가 끝날 것이다. 그러나 코로나19 사태가 끝나면 전 지구의 공존과 협력, 그리고 기후위기와 같은 보다 근본적인 논의는 또 논의의 장에서 밀려날 가능성이 크다. ‘사후약방문’ 식 뒤늦은 땜질 대처에서 벗어나려면 결국 언론과 시민이 나서서 기후위기와 같은 근본 문제 해결을 주창해야 한다. 국회와 정부를 압박해서 사회적 대전환을 이끌어내야 한다. 공동체 정신에 기초해 연대와 협력이 있는 한 사회 변화의 희망은 존재한다. 혁명이 아니라 개인들의 적극적인 참여가 더 중요하다.

코로나19 사태는 세계적으로 수많은 생명을 앗아갔을 뿐 아니라 막대한 물질적, 정신적 피해를 끼치고 있다. 그러나 이 사태는 인류가 함께 협력하여 이 세계를 보다 더 나은 사회로 만들어 낼 수 있는 변곡점이 될 수 있다. 각국 정상들이 이 재난 상황을 계기로 각자도생과 자국중심주의 시대의 인식체계에서 벗어나 다시 협력한다면 우리 미래는 그리 어둡지 않을 것이다. 이제 코로나19를 전 세계가 협력해 극복해야 한다. 코로나19를 넘어 마스크로는 막을 수 없는 기후 위기와 같은 근본적 미래 과제들을 풀기 위해 용기 있게 변화를 외쳐야 할 때이다. 우리 정부가 주도적으로 나서주길 바란다.


보들레르가 ‘모든 능력들의 여왕'이라고 말한 상상력이 학문 수련 과정에서 감퇴하는 건 안타까운 일입니다. 저널리즘은 아카데미즘과 예술 사이에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생각을 옥죄는 논리의 틀이나 주장의 강박감도 벗어 던지고 마음대로 글을 쓸 수 있는 상상 공간이 바로 이곳입니다. 튜토리얼(Tutorial) 과정에서 제시어를 하나씩 정리하다 보면 여러분만의 ‘상상사전’이 점점 두터워질 겁니다. (이봉수)

편집 : 홍석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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