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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렌트는 왜 난민을 ‘지구 쓰레기’로 봤나
[인문교양특강] 이택광 경희대 교수
주제 ② 글로벌 자본주의와 현대미술
2020년 01월 04일 (토) 14:38:54 강찬구 박두호 홍석희 기자 danbi@danbinews.com

이택광 교수는 ‘현대미술과 글로벌 자본주의’를 두 번째 주제로 강연했다. 이 교수는 세계화 시대를 사는 우리 주체를 ‘투어리스트’로 규정했다. 투어리스트와 많은 부분 유사하나 ‘내셔널리티’가 박탈된 난민의 존재 상태가 누구든 처할 수 있는 상황임을 환기하며 저널리즘과 예술의 역할을 설명했다.

   
▲ '글로벌 자본주의와 현대미술’을 주제로 강연하는 이택광 교수. ©️ 박두호

“근대는 민족주의와 충돌하지만, 근본적으로 충돌하지는 않았습니다.”

이택광 교수는 민족주의에 관한 설명으로 강의를 열었다. 그에 따르면 민족주의는 산업혁명으로 대표되는 근대화와 세계화에 대항하기 위해 등장한 사상이다. 산업혁명기 근대화에 앞서던 나라는 영국과 프랑스였고 그를 뒤쫓던 후발주자들이 세계대전기 ‘추축국’으로 불리던 독일과 이탈리아 등이었다. 이들이 영국과 프랑스라는 제국에 대항하기 위해 만들어낸 것이 민족주의라는 것이다. 이 교수는 제국은 보편주의를 말하는 것이라며, 민족주의의 주장은 ‘글로벌화에 대해 고유함의 존재를 주장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교수는 이 대립이 같은 조건에서 나온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3.1운동을 촉발한 파리강화회의의 ‘민족자결주의’가 ‘국제주의자’ 우드로 윌슨 미국 대통령한테서 나온 모순을 예로 들며, 국제주의(Internationalism)도 네이션(Nation)이 있어야 가능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 칸트의 개념인 ‘코스모폴리탄(Cosmopolitan)’도 네이션이 있어야 가능한 것이라고 덧붙였다.

투어리스트, 세계화 시대를 사는 우리들

“우리 나라 젊은 세대 80% 정도가 해외 경험이 있다고 합니다.”

이 교수는 미국 조각가 듀앤 핸슨이 미국 여행자들을 형상화한 작품을 예로 들며, 현재 국제 사회에 살고 있는 우리의 존재론적 규정은 ‘투어리스트’라고 말했다. 이 교수는 일본의 철학자 아즈마 히로키가 투어리스트를 철학적 주체로 해석한 내용을 소개했다. 볼테르도 여행소설의 형식을 빌려 철학적 논쟁을 했고, 철학자 칸트도 투어리스트를 세계시민주의자로 정의했다는 것이다.

   
▲ 미국 투어리스트의 전형적인 모습을 형상화한 작품 ©️ Duane Hanson

“18세기 유럽의 학식 가진 사람들이 만든 교양 클럽 이름이 ‘리퍼블릭 오브 레터스’였습니다.”

이 교수는 이를 설명하기 위해 여행과 여행기를 담은 편지(Letter)가 어떻게 근대를 형성하는 중요한 요소가 됐는지를 설명했다. 저널리즘의 태동에 관한 이야기다. 대항해시대 탐험가와 해적들이 기록한 ‘저널’이 출판되고, 이후 무역로를 통해 정보를 송달하게 된 것이 편지의 시작이다. 또 이 편지를 모아서 출판하게 된 것이 ‘신문(Newspaper)’이 되었다는 것이다. 누군가 어디로 여행을 가서 글을 써 보내면 출판해 주는 시스템이 우편이고, 그것이 근대인의 조건이라는 게 이 교수의 설명이다. 1800년대에 만들어진 만국우편 시스템이 아직도 작동하는데 그것이 ‘세계’라는 이야기다.

그는 투어리스트에 관한 칸트의 관점도 소개했다. 칸트는 코스모폴리탄을 투어리스트로 봤다. 잘 알려진 것처럼 칸트는 규칙적인 생활을 하며 신문 읽기를 빠트리지 않았고, 해외 곳곳을 여행하고 돌아온 방문객들을 늘 자기 집에서 맞아 대화를 나눴다. 칸트의 저작 대부분도 이런 과정에서 기록한 내용을 토대로 했다고 이 교수는 설명한다. 칸트에게 투어리스트는 어디든 방문할 권리를 가진 세계시민이었다.

앞서 말한 아즈마 히로키 또한 칸트처럼 투어리스트를 성숙한 시민, 곧 코스모폴리탄으로 여겼다. 히로키에 따르면 우편은 반드시 잘못 배달되는데 우편을 받은 사람은 처음에 쓴 사람의 의중을 그대로 이해할 수 없기 때문이다. 히로키는 투어리스트의 전략은, 잘못 배달된 우편을 다시 되돌리는 우편적 다중이라고 봤다는 게 이 교수의 설명이다. 이 교수는 바로 시민에게 잘못 배달된 편지를 다시 되돌리는 게 민주주의이며, 여기서 간극을 줄이고 오해를 줄이는 게 저널리즘의 역할이라고 덧붙였다.

난민은 재활용돼야 하는 ‘쓰레기’

“한나 아렌트는 ‘코스모폴리탄이 되려면 내셔널리티가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이 교수는 우리 세계에서 투어리스트가 되지 못하는 다른 존재를 난민이라 말했다. 난민은 국민국가(Nation state)를 떠났는데도 투어리스트가 될 수 없는 사람들이다. 이 또한 제주의적 근대화와 민족주의의 모순, 국제주의자 윌슨의 민족자결주의와 같은 모순을 보여주는데, 코스모폴리탄인 투어리스트가 되기 위해서는 국적, 곧 내셔널리티가 있어야 한다는 사실을 난민들의 상황이 보여준다는 게 이 교수의 설명이다.

이 교수는 한나 아렌트가 난민을 ‘지구의 쓰레기’(The scum of the earth)라고 지칭한 것을 소개했다. 난민은 ‘쓰레기’인데, 재활용되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게 이 교수의 견해다. 난민이 ‘쓰레기’로 여겨지는 것은 그들이 ‘쓸모없는 노동력’으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내셔널리티를 가졌다는 건 국가 내에서 쓸모있는 노동력으로 인정받았다는 것을 뜻한다. 이 교수는 난민을 막기 위한 방벽에 어떤 예술가가 남긴 ‘스티브 잡스’ 그림을 예로 들었다. 난민은 난민을 벗어나 투어리스트로서 노동력을 팔고, 스티브 잡스처럼 존재 가치를 증명해야 하는 자라는 것이다.

난민과 투어리스트는 종이 한 장 차이

“투어리스트와 난민을 구분하는 건 넌센스입니다.”

   
▲ 난민이 보트에서 내린 뒤 찍는 단체 사진. ⓒ Anadolu

투어리스트와 난민은 대립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만나는 지점이 있다. 순간을 포착한 저널리즘의 사진이 이를 잘 보여준다. 아래 사진은 보트에서 내리는 난민과 투어리스트가 만나는 그리스 어느 휴양지 모습이다. 난민은 섬에 내려 셀카를 찍고 SNS에 게시했다. 난민은 투어리스트의 전유물인 셀카를 찍었다고 비난받았다. 이 교수는 ‘난민은 난민다워야 한다’는 프레임에서 빚어진 현상이라 설명했다. 중국에서는 투어리스트가 난민으로 오해받아 감금당한 사례도 있다. 투어리스트와 난민은 외형적으로 구분하기 힘들다.

   
▲ 보트에서 내리면서 셀카를 찍는 난민. ⓒ Business Insider

“난민의 탈출구 중 하나가 비엔날레입니다.”

현대미술은 현실, 예술, 생활과 삶의 일치를 목적으로 한다. 현실을 반영하니 현대미술에서 난민 문제는 빠질 수 없다. 이 교수는 난민 예술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난민 예술은 투어리스트와 난민이 차이가 없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비엔날레는 난민 작가에게 기회의 장이다. 난민 작가는 난민의 현실을 예술로 승화해 난민의 가치를 입증한다. 저널리즘은 사진 등으로 난민 현실을 전달하지만 예술은 저널리즘보다 더 상징적으로 현실을 보여준다. 저널리즘에서 생기는 오해를 난민 예술이 바로잡아준다. 난민 작가는 난민의 처지를 비유하는 버려진 재료를 재활용해 난민 예술을 만든다. 비엔날레는 투어리스트가 들르는 곳이다. 투어리스트는 난민이 자신과 차이가 없다는 사실을 예술작품으로 접한다.

   
▲ 재활용으로 만든 난민 보트. ⓒ Mami Kataoka

노르웨이에 가도 ‘노르웨이’는 없다

“지젝은 전쟁으로 찢겨 나간 고향을 떠나는 순간, 난민은 꿈에 사로잡힌다고 말해요. 난민은 노르웨이에 가고 싶은 꿈을 꿉니다.”

이 교수는 철학자 지젝의 말을 인용하며 난민의 꿈을 설명했다. 시리아에서 난민이 발생하면 근처인 사우디아라비아를 많이 가는 게 정상이다. 만약 우리나라에 전쟁이 나면 일본이나 대만을 갈 확률이 높다. 하지만 난민은 노르웨이와 같은 복지국가에 가고 싶어 한다. 난민이 복지국가를 가는 게 본질적인 문제 해결은 아니다. 시리아를 정상으로 복구해 난민이 시리아로 돌아가게 하는 방법이 본질적인 해결책이라고 이 교수는 말한다.

난민 문제 해결은 국가를 정상화해 난민을 투어리스트로 만들어야 한다. 노르웨이에서 난민을 받더라도 노르웨이 내부 정치 문제, 국제법, 외교 질서 등이 복잡하게 얽혀 있다. 노르웨이에서도 난민 혐오 문제가 대두하고 있다. 노르웨이에 가도 난민이 원하는 복지국가 노르웨이가 없다는 사실을 저널리즘이 알려야 한다고 이 교수는 강조했다.


세명대 저널리즘스쿨 특강은 [인문교양특강I] [저널리즘특강] [인문교양특강II] [사회교양특강]으로 구성되고 매 학기 번갈아 가며 개설됩니다. 저널리즘스쿨이 인문사회학적 소양교육에 힘쓰는 이유는 그것이 언론인이 갖춰야 할 비판의식, 역사의식, 윤리의식의 토대가 되고, 인문사회학적 상상력의 원천이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2019년 2학기 [인문교양특강]은 원종원, 안치용, 이택광, 김용락, 권순긍, 조문환, 정희진, 조효제 선생님이 맡았습니다. 학생들이 제출한 강연기사 쓰기 과제는 강연을 함께 듣는 지도교수의 데스크를 거쳐 <단비뉴스>에 연재됩니다. (편집자)

편집 : 박동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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