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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라, 한국사회 2 - ‘불안’ ‘보수’
[청년기자들의 시선] ⑩
2019년 12월 24일 (화) 11:12:38 권영지 기자 김지연 PD kjih0130@hanmail.net
국가가 건강하려면 사회적 이슈가 논의의 장에 의제로 올려지고, 민의의 광장에서 토론되고 합리적 결론을 도출해낼 수 있어야 한다. 오늘 우리 사회는 편이 갈려 정쟁만 난무한 채, 그 어떤 건강한 제안도, 토론도, 합의도 불가능한 시스템 작동 마비 상태에 빠져있다. 시간이 지나면서 국가나 사회, 집단이 발전하지 못하고 오히려 퇴보를 거듭한다면 그 사회는 정상이 아니다. [청년기자들의 시선] 이번 주제는 한국사회의 일그러진 단면들이다. ‘가짜뉴스, 출산, 불안, 보수’ 네 키워드로 한국사회는 어디 있는가 묻는다. (편집자)

<키워드 셋, 불안>

한국사회가 ‘불안’이라는 괴물에게 먹혔다. 고래한테 먹힌 피노키오가 고래 배 속에서 불을 피워 탈출하듯, 국민은 거리로 나와 촛불을 밝힌다. 내가 사는 이 나라를 불안이라는 괴물의 뱃속에서 빼내길 바라면서. 촛불은 계속 켜지는데, 한국인들의 불안은 깊어 가고 괴물의 덩치는 커져 간다. 도대체 이 괴물의 정체가 뭘까? 불안의 실체를 알아야 제대로 대처할 수 있다.

   
▲ 촛불은 불안사회증후군에 빠진 우리 사회를 상징한다. 우리 사회를 집어삼킨 ‘불안’이라는 괴물의 실체는 무엇인가? ⓒ KBS

베이비붐 세대와 밀레니얼 세대

전쟁 직후 ‘무’의 상태에서 한강의 기적을 이룬 베이비붐 세대(1946~1965)는, 자기들 아들과 손주 세대가 자기보다 더 좋은 세상에서 살 것이라 기대했다. 외환위기가 이 기대를 무너뜨렸다. 기업들이 부도로 무너지고, 가장 안정적인 직업으로 여겨졌던 은행원들조차 정리해고되는 현실은 베이비붐 세대의 ‘하면 된다’ 신화를 잔인하게 짓밟았다. 중산층은 하루아침에 빈곤층으로 추락했고, ‘지옥’을 경험하는 이들이 넘쳐났다. 외환위기 이전 ‘희망의 문화’는 ‘불안사회증후군’으로 바뀌어 사회 전반을 지배했다.

밀레니얼 세대(1980~2000)는 불안이 일상화한 사회에서 성장했다. 이들이 과도한 위험회피 경향을 보이는 이유다. 전 세대보다 더 높은 교육을 받고 각종 자격증과 어학연수, 뛰어난 외국어 실력을 갖추었지만, 밀레니얼 세대는 대기업이나 공무원 또는 공기업 채용시험에 몰리는 등 안정적인 일자리를 선호한다. 일자리 획득을 둘러싼 경쟁에서 패자가 안 되려고 대학에 다니면서도 학원 수강, 자격증 시험을 병행하며 스펙 쌓기에 몰입한다. 무한 경쟁에 지친 이들에게 불평등과 공정성은 특히 민감한 주제다. 인맥을 이용해 사회적으로 선망받는 자리에 오르는 일은 있어서는 안 된다. 하지만 불공정하고 정의롭지 못한 일은 현실에서 버젓이 일어난다. 베이비붐 세대는 현실에 불만을 느끼는 청년들을 ‘나약하다’ 평가하지만, 무한경쟁에 몰린 밀레니얼 세대 청년들의 시선은 ‘과정의 공정과 결과의 정의’에 머물러 있다. ‘하면 된다’ 신화와 불평등 시대가 충돌해 두 세대 간에 인지부조화를 드러낸다.

이재열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는 <다시 태어난다면, 한국에서 살겠습니까>에서 한국사회가 ‘불신, 불만, 불안’의 3불 사회가 되었다고 진단한다. 3불은 내가 속한 사회의 근간을 이루는 시스템을 믿지 못해 일어난다. 시스템이란 내가 노력하면 지금보다 더 나은 사회경제적 지위를 가질 수 있는 공정한 사회 구조를 뜻한다. 노력한 만큼 보상받지 못할 거란 생각은 세상을 향한 불만, 미래에 관한 불안으로 이어진다.

   
▲ 밀레니얼 세대가 ‘과정의 공정, 결과의 정의’에 유난히 집착하는 모습을 보이는 건, 불안이 일상화한 오늘 우리 사회의 결과물이다. ⓒ <한겨레>

불신, 불만, 불안’ 3불 사회

한국사회가 불안이란 괴물에서 탈출하고, 밀레니얼 세대에게 희망을 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패자부활이 가능한 안전한 사회를 만들면 된다. 우리 사회는 한번의 실패에 지나친 대가를 치르게 한다. 스카이 대학 입시에 청소년 때부터 목을 매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한국의 불공정한 입시와 학력에 따른 차별채용 등 복합적인 문제를 단번에 해결할 극약처방은 없지만 하나씩 시작하자. 기회균형과 지역균형 선발을 늘리고 학력간 임금 격차를 완화하며 출신학교에 따른 차별을 금지하자. 사회 불평등을 해소하는 사회정책을 적극적으로 도입해 보다 많은 사람에게 기회가 돌아가게 하고 계층간 격차를 줄여야 한다. 신뢰를 잃은 정부와 국회가 ‘하면 된다’ 신화를 적극적으로 써먹어야 할 때다.

(권영지 기자)

 

<키워드 넷, 보수>

조국 전 장관이 사퇴한 지 두 달이 지났다. 광화문광장에는 여전히 태극기가 펄럭인다. 집회 참가자들은 현 정부의 정책을 사회주의나 공산주의라고 공격한다. 원래 대한민국, 자유민주주의의 나라로 돌아가야 한다고 부르짖는다. 박근혜 전 대통령을 석방하고 황교안 총리가 대통령이 돼, 대기업·수출·제조업의 성공 신화를 부활시켜 이전처럼 잘사는 대한민국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말한다. 이들은 진정한 보수주의자가 아니다. 보수주의는 단순히 ‘과거 회귀’를 뜻하지 않는다. 변화에 무조건 반대하는 것도 보수주의가 아니다. 진정한 보수주의는 변화 속에서도 현재의 것, 옛 것을 지켜 사회가 더 나아질 수 있다는, 더 진보할 수 있다는 믿음이다.

격동과 혼돈의 시기에 빛나던 보수

보수주의는 변화와 혼돈의 시기에 빛을 발했다. 영국은 기존 권력인 왕과 타협해 명예혁명을 이뤘다. 프랑스는 왕당파의 지지를 얻은 나폴레옹 통치 시기에 프랑스혁명의 혼란을 진정시키고 근대 국민국가로 발돋움했다. 보수주의가 지속과 안정이라는 가치를 제시했기 때문이다. 지속과 안정을 추구했다고 보수주의가 불변의 가치를 지향한다는 뜻은 아니다. 19세기에는 자유주의가 진보였고 왕당파가 보수였으나, 20세기에는 자유주의가 보수가 되고 사회주의가 진보가 되었다. 최초의 보수주의는 귀족당인 토리당에서 시작됐지만, 지금은 보수주의자 중 누구도 신분제를 옹호하지 않는다.

   
▲ 보수주의는 ‘과거 회귀’를 뜻하지 않는다. 변화에 무조건 반대하는 것도 보수주의가 아니다. ⓒ KBS

보수주의는 시대에 뒤처진다고 외면받지 않기 위해, 시대의 변화에 발맞춰 자신이 지켜야 할 가치를 바꿔왔다. 19세기 유럽에서는 자본가의 착취에 대항해 사회주의가 급부상했다. 보수주의 정당은 사회주의의 주장에서 상당 부분을 채용하며 위기를 극복했다. 복지주의라는 자신만의 방식으로 사회 문제를 해결하면서도 자본주의라는 기존 틀을 지켰다. 한국의 보수주의자는 60-70년대에는 북한의 위협에 맞서는 국가주의로, 87년 민주화 혁명 이후로는 자유민주주의로 이념을 전환했다.

“여기서는 같은 곳에 있으려면 쉬지 않고 힘껏 달려야 해. 어딘가 다른 데로 가고 싶으면 적어도 그보다 두 곱은 빨리 달려야 하고.” (거울나라의 앨리스)

소설 <거울나라의 앨리스>에서는 가만히 있으면 뒤처진다. 우리 현실 또한 마찬가지다. 1,2차세계대전, 냉전, 탈냉전, 신자유주의에 이르기까지 세계는 급변했다. 보수주의의 가치도 반공, 국가주의, 자유시장에 이르기까지, 시대에 발맞춰 힘껏 달려왔다. 역설적으로 보수주의가 살아남기 위해 ‘진보’한 것이다. ‘보수의 진보성’ 덕분에 보수주의는 시대가 바뀌어도 존재가치를 발휘했다.

우리는 달랐다. 2012년 이 땅의 보수정당은 ‘게을렀다’. 이명박 정부 때 양극화가 심해지면서 보수정당의 위기가 찾아왔다. 박근혜라는 인물로 성공 신화의 이미지를 가져오고, 새롭게 화두로 떠오르던 요구인 경제민주화를 차용했다. 그러나 여기까지였다. 두 개념의 물리적 조합은 새로운 가치의 제시와 실현을 위해서가 아니라, 위기를 모면하기 위한 임기응변에 불과했고 그 결과가 현재다.

   
▲ 박근혜라는 인물과 경제민주화 개념의 물리적 조합은 새로운 가치의 제시와 실현을 위해서가 아니라, 위기를 모면하기 위한 임기응변에 불과했다. ⓒ KBS

진보성 회복 없이 보수의 미래는 없다

한국의 보수정당은 보수의 진보성을 회복해야 한다. 과거라는 쉬운 길을 고수한다면, 보수는 ‘수구’로 남아 도태될 수밖에 없다. 부지런히 상상력을 발휘해야 한다. 미국 민주당은 안보를 중요시하고 자유경제를 지향하는 자유주의-보수주의 정당이다. 민주당 정치인인 앤드류 양은 최근 불평등 문제의 대안으로 월 1000달러의 기본소득 지급, 개인정보 제공의 대가로 기금을 운영하는 ‘테크 체크(Tech Check)' 등 다양한 아이디어를 제시해 지지를 얻고 있다. 한국의 보수정당도 평등, 인권, 여성 등 변화를 수용하면서도 안정과 지속을 추구할 수 있는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 한국의 보수주의가 제자리를 찾을 때, 한국 정치는 보수주의와 진보주의의 갈등 속에서도 변화와 지속이라는 균형과 조화를 이룰 수 있다.

(김지연 PD)


편집 : 김은초 기자

[권영지 기자]
단비뉴스 TV 뉴스부장, 청년부 권영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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