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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라, 한국사회 1 - ‘가짜뉴스’ ‘출산’
[청년기자들의 시선] ⑨
2019년 12월 15일 (일) 12:23:04 양안선 PD 장은미 기자 yasun2002@gmail.com
국가가 건강하려면 사회적 이슈가 논의의 장에 의제로 올려지고, 민의의 광장에서 토론되고 합리적 결론을 도출해낼 수 있어야 한다. 오늘 우리 사회는 편이 갈려 정쟁만 난무한 채, 그 어떤 건강한 제안도, 토론도, 합의도 불가능한 시스템 작동 마비 상태에 빠져있다. 시간이 지나면서 국가나 사회, 집단이 발전하지 못하고 오히려 퇴보를 거듭한다면 그 사회는 정상이 아니다. [청년기자들의 시선] 이번 주제는 한국사회의 일그러진 단면들이다. ‘가짜뉴스, 출산, 불안, 보수’ 네 키워드로 한국사회는 어디 있는가 묻는다. (편집자)

<키워드 하나, 가짜뉴스>

남자가 피자가게에 들어섰다. 그는 노스캐롤라이나 주에서 워싱턴까지 장장 560km를 차로 달려왔다. 그는 피자를 주문하지 않았다. 대신 반자동 소총을 난사했다. 2016년 미국 대통령 선거 후보인 힐러리 클린턴이 피자가게에서 성매매 조직을 운영한다는 가짜뉴스를 듣고 벌인 피자게이트 사건이다. 가짜뉴스는 진실로 여겨졌고, 증오범죄로 이어졌다.

   
▲ 한 남성이 피자가게에 총기를 난사했다. 그는 힐러리 클린턴이 피자가게에서 아동 성매매 조직을 운영한다는 가짜뉴스를 믿었다. Ⓒ CBS

가짜뉴스는 ‘분노’와 맥을 같이 한다. 가짜뉴스는 명확한 ‘적’을 두고 만들어지고, 나와 다른 ‘적’을 향한 분노가 가짜뉴스의 주 내용을 이룬다. 가짜뉴스는 이겨야 할 상대방이 있는 선거기간에 활발히 생성된다. 지난 2016년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는 트럼프를 비난하기 위해 만들어진 가짜 기사와 힐러리 클린턴을 비난하는 가짜뉴스가 난무했다. 우리나라에서는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 과정에서 가짜뉴스가 성행했다. 탄핵을 주도한 야권 인사와 박근혜 게이트를 보도한 언론을 비난하는 가짜뉴스가 등장하자 반대편에서는 박근혜와 관련 혐의자를 고발하는 가짜뉴스가 쏟아져 나왔다.

가짜뉴스는 분노와 맥을 같이 한다

분노를 유도하기 위해 만들어진 가짜뉴스가 사실인가 아닌가는 수용자에게 중요하지 않다. 피자게이트 기사는 조회 수 100만을 넘었지만, 성매매 조직 운영이 거짓임을 밝힌 스놉스닷컴 기사는 조회 수가 겨우 3만5,000건에 그쳤다. 거짓이 진실을 압도하는 탈진실(post-truth) 시대다. 가짜뉴스가 딥페이크 기술로 정교해진 영향도 있지만 분노한 사람들은 믿고 싶은 것만 보기 때문이다. 언론사의 수많은 팩트체크 기사에도 가짜뉴스가 넘쳐나고 있는 것이 이를 방증한다. 한두 편의 객관적 사실 확인만으로는 넘쳐나는 가짜뉴스를 막을 수 없다.

이분법적 담론에서 분노는 자체 상승되고 극대화한다. 세계적으로 극우세력이 정치적 힘을 얻는 것도 이분법으로 이슈를 만들기 때문이다. ‘우리(영국)를 그들(유럽연합)에게서 떼어 내겠다’는 가치 하나만 내건 브렉시트당이 유럽의회에서 약진했다. 지난 10일 스페인 총선에서는 ‘반난민, 반무슬림’을 주창하는 극우정당 복스가 제3당으로 올라섰다. 특정 집단을 적으로 선명하게 내세운 결과다.

문제는 이분법적 담론을 기성 언론이 부추기고 있다는 점이다. 지난 4월 제주 예멘 난민 보도는 난민들을 ‘우리’인지 ‘적’인지 구분해 판단하는 기사가 주를 이루었다. 언론 대부분이 예멘 내전 발생 배경과 본국으로 돌아가게 될 경우의 위험성에 관해 명확히 설명하지 않고, ‘재앙’ ‘가짜난민’ 등 자극적 언어로 찬반 논쟁을 야기하고 불안감을 조성했다. 언론이 조작한 나와 적, 이분법적 담론이 사회의 중심 자리를 차지하면서, 사람들의 분노가 커졌다.

   
   
▲ 언론은 예멘 난민 신청자가 늘어나면 범죄도 증가할 것이라며 불안감을 조성했다. Ⓒ 조선일보, 인사이트, 뉴시스

언론이 이분법적 담론에서 벗어나야

폭발 직전인 분노를 제어하려면 언론이 다양한 담론을 전해야 한다. 사회 이슈는 흑과 백으로 명확히 나뉘지 않는다. 사실을 찾아 전달하고, 해답을 탐색해야 한다. 상식과 합리가 통하는 다양한 시각을 전해야 한다. 수용자들이 판단할 수 있도록 최대한 많은 근거를 제시해야 한다. 진주 아파트 방화 사건을 두고 언론은 조현병 환자의 강력범죄 부분을 강조했다. 조현병 환자에 관한 편견을 심을 수 있는 보도다. 방화 사고를 예방할 수 없었던 시스템, 조현병 환자들이 관리되지 않았던 이유 등 다양한 시각을 전하는 보도는 미미했다.

가짜뉴스는 기만을 목적으로 만들어지고 수용자들은 기꺼이 속아준다. 가짜뉴스가 진실보다 더 믿고 싶은 내용이기 때문이다. SNS 시대에 가짜뉴스 생산자를 찾아내 처벌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원공급자를 찾는 사이 가짜뉴스는 계속 전파된다. 수요자가 가짜뉴스를 찾지 않게 해야 한다. ‘분노’하는 시민들이 근본 원인을 찾을 수 있도록 언론은 공론장을 마련해야 한다. 상상력이 필요하다. 분노한 사람들을 그대로 내버려둔 채, 오히려 분노를 이용하고 키워온 언론이 답을 찾아내야 한다.

(양안선 PD)

 

<키워드 둘, 출산>

“출산만 했으면 100점짜리 후보자인데….” 내가 모욕을 당한 것처럼 수치스러웠다. 조국 국면에 가려져 주목받지 못했지만, 검찰개혁보다 절실하게 다가온 ‘분노버튼’이었다. 지난 9월 2일 자유한국당 정갑윤 의원이 국회 청문회 자리에서 미혼인 조성욱 공정거래위원장 후보에게 한 말이다. 당시 조 후보자는 아무 대꾸도 안 했다. 분노였을까, 익숙함이었을까? 남성 정갑윤과 여성 조성욱의 삶은 달랐을 것이다. 50년생 정갑윤은 울산 태생으로 법제사법위원회 소속 5선 의원이다. 삶의 대부분을 의원님으로 불리며 입법 활동을 하고 국회의원 특권을 행사하며 대접받으며 살아왔다. 선거 때는 시장을 다니며, “경제가 어려우시죠, 힘든 건 없으세요”하고 살갑게 상인들 손도 잡았을 것이다.

   
▲ 자유한국당 정갑윤 의원이 국회 청문회에서 미혼인 조성욱 공정거래위원장 후보에게 결혼 여부를 물으면서, 출세도 좋지만 국가를 위해 출산의 의무를 다하라는 ‘조언’을 했다. ⓒ KBS뉴스

출산이 애국이라는 프레임

64년생 조성욱은 유리천장을 깨는 인생을 살아왔다. 그가 공부에 매진하던 70~80년대는 ‘청계천 여공’이라 불린 저임금 여성 노동자들이 대학 다니는 오빠나 남동생의 학비를 보태던 시절이었다. 조성욱은 한국인 여성 처음으로 하버드대에서 경제학 박사과정을 밟았고, 고려대 경영학과와 서울대 경영대학에서 첫 여성교수가 됐다. 이제 첫 여성 공정거래위원장이라는 타이틀도 추가했다. 기업구조개혁 전문가로 알려진 조 위원장이 2003년에 쓴 ‘기업지배구조 및 수익성’ 논문은 명예의 전당에 오를 정도로 해당 분야에서 탁월한 역량을 인정받았다. 금융위원회 증권선물위원회 비상임위원과 규제개혁위원으로도 활동 했다.

그는 재능과 경력에도 불구하고 공정위원장 후보에 올랐을 때 여성이라는 성별로 주목을 받았다. 한 일간지는 “공정위가 조사 업무를 하다 보니 다소 남성적인 문화가 있다”는 공정위 관계자 말을 인용하며 ‘여성수장이 조직을 어느 정도 장악할지 미지수’라 했다. 전임자였던 김상조 청와대 정책실장은 성별이 논란에 오를 일은 없었다.

남성 중심적 문화나 사회에서 ‘출산해야 애국자’라는 프레임은 위선적이다. 정갑윤 의원 같은 이들은 저출산의 원인이 나라의 미래를 걱정하지 않는 여성들이 아이를 낳지 않아서라 생각한다. 여성의 저출산을 걱정하는 자신은 나라의 미래를 걱정하는 사람이라 믿는다. 저출산이라는 표현부터 문제다. 여성에게 책임을 전가한다. 여성 시민단체는 여성이 아이를 낳는다는 '출산'이란 단어 대신, 사람이 태어난다는 중립적 표현인 ‘출생’으로 바꾸자는 제안도 했다.

여성들에게 숙제처럼 출산을 맡기기만 하면 끝일까? 우리 사회는 여성이 출산하면서 겪는 삶과 희생, 고통에는 정작 무관심하다. 50년생 정갑윤으로 대표되는 이들은 아내 육아를 얼마나 도왔을까? 돕는다는 표현도 틀렸다. 부부가 주체적으로 맡아야 할 육아에서 정갑윤은 최소한 역할도 제대로 하지 않았을 것이다. 공적 자리인 청문회에서 정갑윤이 여성 후보자의 결혼 여부와 한국 사회의 병폐를 저출산으로 언급하며, “본인 출세도 좋지만 국가 발전에도 기여해달라”던 발언이 그것을 증명한다. 그는 출산과 육아를 포함해 여성이 사회생활을 하며 겪을 일상적 상황에 참담할 정도로 무지하다.

정갑윤 의원만 그럴까? 한국에서는 여성의 현실에 무지한 정갑윤 의원과 같은 이들이 기득권세력이다. 여성에게 출산을 요구하며, 출산하지 않는 여성의 공동체 의식 부재를 탓한다. 그러면서 신입사원을 뽑을 때, 임신과 출산, 육아를 할 가능성을 가진 여성을 기피한다. 감사원은 올해 5개 공공기관 감사보고서를 통해, 서울메트로가 여성 지원자들 면접 점수를 조정해 합격권 내 여성을 모두 탈락시켰다고 밝혔다. 한국가스공사와 대한석탄공사도 여성지원자 고의 탈락으로 사장이 징역형을 받거나 기소당했다. 사기업인 하나은행, 신한은행, 킨텍스 등도 비슷한 논란에 휩싸였다. 국내 5대 은행의 임원은 110명이지만 여성임원은 9명이다. 기업 전체로 확대해도 여성임원은 2.3%, 관리자까지 쳐도 12.5%다.

올해 9월 구인구직 사이트 사람인이 493개 기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41.8%가 특정 성별을 선호한다고 했고, 그중 70.9%가 남성을 선호했다. 같은 조사에서 2018년 408개 기업이 실제 채용한 직원은 남성이 여성보다 20.2%p 더 많았다. 여성의 임금은 ‘부양 책임자’가 될 가능성이 높은 남성 임금의 66% 수준에 그친다. OECD 국가 중에서 16년째 부동의 1위다. 여성을 출산기계로 여기며 아이를 낳는 것도, 기르는 것도 여성 몫으로 맡기면서 사회는 전 영역에서 버젓이 차별을 저지른다.

   
▲ OECD 29개국 유리천장지수 통계에서 한국이 7년째 꼴찌다. 통계는 성별 간 임금차이와 경제활동참여율, 여성 국회의원‧임원‧관리자 비율 등 10가지 지표의 평균을 내서 산출한다. ⓒ SBS뉴스

50년생 정갑윤에게 묻는다

국회 의안정보시스템에서 그의 이름을 검색하면 210개 법안이 나온다. 여성 권리에 관한 법안은 ‘남녀고용평등과 일·가정 양립 지원에 관한 법률’ 개정안 단 한 건이다. 여성노동자의 육아휴직 기간을 3년으로 늘리자는 내용이다. 정갑윤 의원에게 묻는다. 국회의원으로서 여성의 고충을 해소하는 입법 활동을 제대로 한 적이 있는가? 여성이 동등하게 교육받고 전문성을 펼칠 기회를, 직장에 들어가 적정한 임금과 대우 받도록 고민한 적 있는가? 출산과 육아로 경력이 단절된 여성들의 일할 권리와 일과 육아를 병행할 수 있는 법안이 심도 있게 논의한 적이 있는가?

현재 20대 국회의원 평균연령은 58.7세고, 재임 국회의원 296명 중 51명(17%)이 여성의원이다. 남성 중장년이 다수를 차지하는 국회의원들은 여성의 삶을 이해할 의지를 보여주지 않았다. 여성에게 출산으로 애국하라는 잘못된 프레임만으로 저출산 문제는 해결되지 않는다. 정부는 결혼과 출산을 장려하기 위해 영구임대주택, 전세자금, 출산축하금, 산후조리 비용 지원 등 현금성 정책을 쏟아낸다. 지난 9월 결혼정보업체 조사에 따르면 3명 중 2명은 정부 지원정책에 영향받지 않았다고 한다. 작년 우리나라 합계출산율이 0.98로 세계 최저다. 지난 7~9월 사이는 0.88로 역대 최저치를 경신하는 중이다. 저출산 문제를 여성 탓으로 돌리며 여성을 출산기계로 여기는 사회에서 해법은 없다.

(장은미 기자)


편집 : 오수진 기자

[양안선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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