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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재앙 피할 ‘마지막 비상구’를 찾다
[마음을 흔든 책] 제정임 엮음 ‘기후위기 시대의 에너지 대전환’
2019년 12월 27일 (금) 23:37:09 장은미 박지영 기자 josinrunmi@naver.com

영국 옥스퍼드 사전은 2019년 올해의 단어로 ‘기후 비상(climate emergency)’을, 영국 콜린스 사전은 ‘기후 파업(climate strike)’을 선정했다. 이 단어들의 사용빈도가 1년간 100배 이상 늘었다고 한다. 영국, 캐나다, 프랑스 등 여러 국가와 세계 수백 개 도시가 지난 한 해 ‘기후 비상’을 선언했다. 스웨덴 환경운동가 그레타 툰베리(16)가 시작한 ‘기후파업(기후를 위한 등교 거부)’은 유럽, 미주, 호주 등 전 세계 10대들의 시위로 번지고 있다. 미국의 원로배우 제인 폰다(82)는 금요일마다 워싱턴 DC 국회의사당 앞에서 ‘파이어 드릴 프라이데이(금요소방훈련)’라는 이름의 기후위기 대응 시위를 벌인 후 경찰에 체포되는 일을 반복하고 있다.

도대체 왜 이 난리들인가. 그것이 알고 싶다면 꼭 읽어야 할 책이 있다. 세명대 저널리즘스쿨대학원 제정임 원장이 대학원생들과 함께 펴낸 <마지막 비상구: 기후위기 시대의 에너지 대전환>이 바로 그 책이다. 세명대 저널리즘스쿨이 운영하는 비영리 대안언론 <단비뉴스>가 2017년 9월부터 1년 4개월간 연재한 탐사보도 ‘에너지 대전환, 내일을 위한 선택’을 묶은 이 책은 바로 지금 우리를 위협하는 기후위기, 미세먼지, 원전재난의 실상을 생생하게 드러내고 대안을 제시한다.

제인 폰다가 금요일마다 체포되는 이유는

   
▲ 지난 23일 출판된 <마지막 비상구>는 우리를 위협하는 기후위기, 미세먼지, 원전재난의 실상을 생생하게 드러내고 대안을 제시한다. Ⓒ 오월의 봄

그레타 툰베리와 제인 폰다의 ‘난리’는 유엔(UN)산하 기후변화정부간협의체(IPCC) 등 국제기구와 연구기관들이 내놓은 ‘과학적 사실’에 근거하고 있다. <마지막 비상구>에 따르면 과학자들은 오는 2030년까지 각국이 석유·석탄 등 화석연료 사용을 획기적으로 줄이지 못할 경우 빙하가 급격히 녹고 해수면이 높아져 섬과 해안에 사는 사람들은 난민이 되고, 극단적 홍수·가뭄·산불·폭설·폭염·태풍 등이 전례 없이 자주 닥칠 것이라고 예측한다. 그러면 2050년 무렵에는 전 세계에 10억 명의 난민이 발생하고 물 부족과 식량난, 신종전염병 등으로 곳곳에서 갈등과 전쟁이 일어날 것이라고 경고한다.

우리나라도 이런 지구적 위기에 책임이 크지만, 국내 대응은 아직 환경단체들만 애를 태우는 수준이다. 영국의 기후전문언론 <클라이밋홈>은 기후행동추적(CAT)의 2016년 분석을 근거로 한국을 사우디아라비아, 호주, 뉴질랜드와 함께 ‘4대 기후악당 국가’로 꼽았다. 1인당 온실가스 배출량 증가속도가 빠르고, 국책은행이 석탄 산업을 지원하며, 2020년 탄소감축 목표가 후퇴했다는 등의 이유에서다. 2019년 12월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열린 제25차 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에서는 한국의 기후위기대응지수(CCPI)가 61개국 중 58위로 발표됐다. 부끄러운 기록은 이뿐만이 아니다. 한국은 세계 7번째 온실가스 배출국이고 1인당 플라스틱 사용량은 세계 1위다. 이런 화석연료 남용과 에너지 과소비는 ‘세계 최악 수준의 미세먼지’로 돌아와 국민 건강을 위협하고 있다.

이런 얘기가 나오면 핵발전을 옹호하는 세력은 ‘그러니 탈원전을 할 게 아니라 탄소를 배출하지 않는 원전을 더 가동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 책은 ‘원전은 또 하나의 위험한 에너지일 뿐 대안이 될 수 없다’고 단언한다. 체르노빌과 후쿠시마에서 목격한 것처럼 한번 사고가 났다하면 감당할 수 없는 재앙이 된다는 사실과 함께 ‘10만년이상 보관해야 하는 고준위 핵폐기물(사용후핵연료)’에 대해 아무런 대책이 없다는 진실도 드러낸다. 특히 우리나라는 세계에서 첫손 꼽히는 ‘원전 밀집 지대’여서 대형사고 위험성이 더 크다는 것과 지진 등 자연재해 가능성에 부실공사, 가짜부품, 사고은폐 등 허술한 원전관리까지 겹쳐 결코 안심할 수 없는 상황임을 경고한다.

자녀 몸에서 방사성물질, ‘원전 옆에서 산 죄’

   
▲ 책 <마지막 비상구>는 ‘원전은 또 하나의 위험한 에너지일 뿐, 결코 기후위기의 해결책이 될 수 없다’고 단언한다. 사진은 지난 2017년 취재한 울산시 울주군의 신고리5·6호기 공사현장. 왼쪽으로 보이는 건물은 신고리 3·4호기다. Ⓒ 강민혜

책 1부 ‘비상경보, 위험한 에너지의 역습’은 원전과 석탄발전소로 일상이 무너진 현장을 보여준다. 원전 인근 동네에서 2016년 5.8규모 경주 지진을 겪은 후 매일 ‘생존배낭’을 챙기며 불안에 떠는 초등학생을 만난다. 핵발전소 부근에서 수십 년 ‘물질’로 먹고살다가 줄줄이 암에 걸린 해녀 할머니들의 이야기를 듣는다. 원전에 쌓아놓은 핵폐기물 때문에 불안해하던 차에 고등학생 딸 몸에서 방사성물질인 삼중수소가 검출되자 가슴을 치는 어머니의 탄식을 듣는다. “원전 가까이 산 죄”라는 한 주민의 한탄은 “원전 옆에 살고 싶은 사람이 어데 있노?” 라는 다른 주민의 항변과 구슬픈 화음을 이룬다. 석탄발전소 마을에서는 물 좋고 공기 맑았던 동네의 생계수단이었던 조개와 게가 탄가루 범벅이 되고 주민들은 줄줄이 폐질환으로 숨지는 이야기를 듣는다.

2부 ‘찬핵 세력의 거짓말’에서는 우리나라가 원전·석탄 등 ‘위험한 에너지’에 치우치게 된 원인과 과정을 드러낸다. 서울 등 수도권에 ‘값싼 전기’를 보내기 위해 해안가 마을에 발전소를 짓고 산골 마을에 송전탑을 세우면서 힘없는 이들의 삶을 무너뜨린 ‘에너지 비민주주의’를 고발한다. 체르노빌과 후쿠시마 사고를 낳았던 ‘핵마피아의 거짓말’이 우리나라 원전의 안전도 위협하고 있음을 드러낸다. 사고위험과 핵폐기물 문제 등을 감춘 채 ‘싸고 안전하고 깨끗한 에너지’로 원전을 포장하기 위해 전기요금으로 조성한 재원을 물 쓰듯 한 ‘원전 프로파간다(선전)’의 실태도 파헤친다. ‘그 기사는 돈 받고 쓴 것이었다’ 편을 보면 우리나라 언론사들이 한국수력원자력 등의 돈을 받고 원전 홍보기사를 써준 사례가 취재팀의 정보공개청구를 통해 조목조목 고발된다. 뉴스 뿐 아니라 드라마나 예능에서도 ‘원전 홍보비’의 흔적이 드러난다. 초중고생 견학과 지역주민 관광 등 밥 사주고 구경 시켜주는데 얼마나 많은 돈을 들였는지 읽다 보면 국내 여론조사에서 ‘원전 찬성’이 왜 그렇게 높게 나오는지 이해가 간다.

   
▲ 한국수력원자력은 원전이 ‘싸고 안전하고 깨끗한 에너지’라고 홍보하기 위해 거액의 예산을 집행해왔다. 한수원 견학에 참여한 고등학생들이 ‘어머니와 함께 에너지투어’라는 프로그램명이 적힌 현수막을 펼치고 단체 사진을 찍는 모습. ⓒ 나혜인

‘재생에너지 강국, 일관된 정책 있으면 우리도 가능’

3부 ‘에너지 대전환은 가능하다’에서는 기후위기가 어디까지 왔는지 살펴보고, 화석연료와 원전 등 ‘위험한 에너지’를 벗어나 지속가능한 에너지구조로 전환하기 위한 방안을 모색한다. 특히 후쿠시마 참사 후 과감한 탈원전을 추진하면서 태양광 등 재생에너지로 만든 전기를 원전대국 프랑스에 수출까지 하고 있는 독일 등 해외 성공사례를 살펴본다. 이를 통해 ‘우리도 일관된 정책 의지만 있으면 충분히 할 수 있다’는 사실을 확인한다. 동시에 오락가락하는 정책 때문에 실패를 경험한 스페인을 통해 ‘반면교사’도 찾아본다.

이와 함께 새 사옥 전체를 재생에너지 발전소로 만든 애플 등 선진국 기업의 혁신 사례와 태양광고속도로, 제로에너지하우스 등 첨단기술 접목 사례를 통해 인간의 창의성이 에너지 대전환의 원동력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국내 재생에너지 현장 얘기도 있다. 전국 곳곳에서 아직 풍력과 태양광 발전소 건설을 둘러싸고 갈등이 빚어지고 있지만, 제주도가 ‘바람은 모두의 것’이라는 ‘공풍화’ 합의를 이룬 것처럼 주민이 이익을 나누는 구조를 만들면 해결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 <마지막 비상구>는 선진국의 다양한 사례를 보여주며 ‘우리의 에너지 대전환도 충분히 가능하다’고 주장한다. 사진은 1만3000명을 수용하는 건물의 전기수요를 태양광 등 재생에너지로 충당하는 미국 애플 파크와 스웨덴 말뫼의 친환경주택단지, 덴마크 코펜하겐의 해상풍력, 독일 베를린의 태양광 의사당 건물. ⓒ 애플, 단비뉴스

결론적으로 이 책은 우리도 ‘위험한 에너지’를 벗어나 ‘깨끗하고 안전한 에너지’ 체제로 전환할 수 있다는 것, 기후붕괴와 원전재앙을 피할 ‘마지막 비상구’가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 땅에 쏟아지는 햇빛·바람 등을 활용하는 재생에너지에 대대적으로 투자할 것, 전기를 소비하는 곳에서 생산도 하는 ‘분산발전’과 ‘에너지 민주주의’를 추진할 것 등이 그 ‘로드맵’의 골자다. 또 산업용 전기료 현실화와 함께 제로에너지건축과 같은 에너지 효율화 사업을 대대적으로 지원할 것, 자원절약과 재활용 확대를 정부 정책과 국민운동 차원에서 가속화할 것 등도 대안으로 제시한다.

‘수저가 날아다니는 곳’에서 했던 인터뷰

우리나라에서 기후위기의 현실과 대안, 원전의 실상에 대해 이렇게 종합적으로 깊이 있게 다룬 보도물이나 책은 <마지막 비상구>가 처음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금까지 이런 취재물이 나오지 못했던 것은 국내 언론의 문제의식 부족 탓도 있지만 석유·석탄과 원전 등 에너지 기업들이 거대 광고주라는 현실과도 무관하지 않다. 그래서 비영리 대안언론 <단비뉴스>의 존재와 활약이 돋보인다. 취재팀이 2018년 민주언론실천시민연합의 ‘올해의 좋은 보도상’과 데이터저널리즘코리아의 ‘데이터저널리즘어워드’ 등 권위 있는 언론상을 받은 것도 기사의 완성도와 함께 이런 가치를 평가 받은 것이라 볼 수 있다.

저널리즘스쿨 대학원생으로서 취재 기본기와 언론윤리를 배워가면서 기성언론인도 못한 탐사보도에 도전한 취재팀은 책 말미에 좌담회와 취재기, 수상소감으로 그간의 고생담을 풀어 놓았다. 각 페이지에서 그들의 격정이 ‘음성지원’ 되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원전 인근 마을에서 추가 원전 건설을 둘러싸고 주민들이 편을 나눠 싸우는 바람에 ‘수저가 날아다니는 식당’에서 인터뷰를 했다는 박진홍 단비뉴스 기자(현 부산CBS 기자)는 취재기에 이런 얘기도 털어 놓았다.

   
▲ 단비뉴스의 탐사보도 ‘에너지 대전환, 내일을 위한 선택’에 참여했던 취재진이 시리즈 결산좌담회에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 임지윤

“원전 관계기관과 기업 취재는 특히 어려웠다. 우리는 업계에 인맥이 있는 것도 아니고, 취재 경험이 많아 노련하게 답변을 끌어낼 수 있는 ‘프로’도 아니었다. ‘모른다’ ‘답변하기 어렵다’는 답을 가장 많이 들었다. ‘곧 연락 주겠다’는 약속은 지켜지지 않는 경우가 더 많았다. 그러나 포기하지 않았다. 자료를 받아내기 위해, ‘비판 기사엔 반드시 반론도 싣는다’는 원칙을 지키기 위해 거듭 연락했다. 궁금하면 물었고, 피하면 매달렸다. 아마추어인 우리가 가진 것은 ‘될 때까지 해 보자’는 끈기와 오기뿐이었다.”

발전소 마을을 취재할 때 기성언론에서 보고 들을 수 없었던 절절한 사연들을 많이 만났다는 나혜인 기자(현 YTN 기자)는 수상소감을 통해 “실컷 취재해 간 뒤 엉뚱한 얘기만 쓰더라며 언론을 불신하는 사람이 많아 접근하는 데 애를 먹었다”고 회고했다. 그러면서 간곡한 부탁을 덧붙였다.

“시장지배력이 큰 언론사들이 자본의 입맛에 맞춰 에너지전환의 진실을 왜곡하는 상황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습니다. 저희 수상을 계기로 더 많은 언론이 이 문제에 바르고 강한 목소리를 내주고, 더 많은 시민들이 함께 지속가능한 미래를 고민해 주신다면 더할 수 없이 기쁘겠습니다.”


편집 : 양동훈 기자

[장은미 기자]
단비뉴스 환경부 장은미입니다.
머리는 차갑게, 가슴은 뜨겁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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