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과 방송] 단비뉴스 ‘에너지 대전환, 내일을 위한 선택’ 취재기

한국언론진흥재단이 발행하는 월간지 <신문과 방송>이 <단비뉴스>의 환경시리즈 ‘에너지 대전환, 내일을 위한 선택’의 취재후기를 2019년 4월호에 실었다. <단비뉴스> 박진홍 전 환경부 기자(현 부산CBS 수습기자)가 쓴 이 글을 <신문과 방송>은 다음과 같이 소개했다. 
단비뉴스는 세명대 저널리즘스쿨대학원이 만드는 비영리 대안매체다. 대학원생이 기자, PD로 참여하고 언론인 출신 교수진이 데스크 역할을 맡는다. 단비뉴스에서 기성 언론에게도 귀감이 될 좋은 보도를 냈다. 바로 ‘에너지 대전환, 내일을 위한 선택’ 시리즈다. 예비 언론인들이 열악한 취재환경 속에서 학업과 병행하면서 만든 연작 시리즈로, 그 의미가 매우 크다. 이들의 이야기를 들어 보자.(편집자)

내 고향은 부산이다. 초등학생 때 나는 가방에 한국수력원자력 로고가 박힌 연습장과 자를 넣고 다녔다. 부산 기장군에 있는 고리원전에 소풍 갔다가 얻어 온 것들이었다. 원자력은 깨끗한 에너지, 원전은 초등학생이 소풍을 가도 될 정도로 안전한 곳. 나와 내 친구들은 그렇게 교육받았다. 2011년 3월 11일, 후쿠시마 원전이 마지막으로 평온했던 그 아침까지 나는 원전이 안전하다는 말을 의심치 않았다.

원전 소풍 갔던 기자 ‘안전신화’ 벗기다 

<단비뉴스> 환경부 동료들은 2017년 3월, 저마다 다른 문제의식을 갖고 모였다. 나처럼 원전 안전성에 대한 의구심을 제대로 파헤쳐보고 싶은 사람도 있었고, 미세먼지나 기후변화를 더 알아보고 싶다는 동료도 있었다. 한 달 논의 끝에 우리는 하나의 물음과 마주했다. 

“이런 위험을 피해 안전하고 지속 가능한 에너지 구조를 만들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탈원전‧탈석탄과 재생에너지 전환을 둘러싼 논란을 규명하고 에너지 정책의 대안을 모색한 ‘에너지 대전환, 내일을 위한 선택’ 시리즈는 이 질문에서 시작됐다. 

<단비뉴스>는 세명대 저널리즘스쿨대학원이 운영하는 비영리 대안매체다. 즉 우리 취재팀 전원은 기자‧PD 지망생이었다. 아마추어들이 겁 없이 어렵고 방대한 주제의 탐사보도에 뛰어든 만큼, 실수하지 않으려면 더 치열하게 노력해야 했다. 낮에는 기사 작성법‧취재 윤리 등 수업을 듣고, 밤에는 지금까지 나온 기사들과 논문‧보고서를 읽으며 취재를 준비했다.

우리는 수업에서 배운 저널리즘원칙에 따라 몇 가지 기준을 세웠다. 현장으로 가자. 외국을 빼곤 직접 달려가 발로 뛰며 확인하자. 실명 보도를 원칙으로 하자. 익명 처리가 불가피한 경우를 빼고 모든 취재원의 이름‧나이‧경력 등을 최대한 드러내 독자의 이해를 돕고 기사의 신뢰성을 확보하자. 데이터로 뒷받침하자. 통계나 기록 등 근거로 쓸 수 있는 자료는 시간이 걸리더라도 모두 긁어모아 분석하자. 멀티미디어로 가자. 전문적 내용이 많아 어렵고 지루할  수 있으니 글은 최대한 친절하게 쓰고 사진, 영상, 인포그래픽과 인터랙티브 기법을 활용하자. 사전취재기간을 포함한 1년 11개월의 대장정 동안 취재팀은 이 기준을 철저히 지키려 노력했다. 

가려진, 그러나 무시할 수 없는 외침

시리즈는 총 3부로 구성했다. 1부(1~14편)에서는 국민 건강과 안전을 위협하는 화석연료와 원전의 실상을 현장 중심으로 짚었다. 우리는 취재팀을 나눠 원전이 있는 경주‧부산‧울산으로, 석탄화력발전소가 밀집한 당진‧보령으로 달려갔다. 나는 당시 신고리 5‧6호기 건설 재개 여부로 공방 중이던 부산과 울산을 맡았다.

▲ 원전 인근 주민 취재를 위해 찾아갔던 울산광역시 울주군 서생면 신리마을. Ⓒ 박진홍

원전 인근 마을에서 들은 주민들 목소리는 사전취재 때 수집한 기사에는 없는 내용이었다. 원전 때문에 3번이나 이주한 마을 이장, 고기잡이나 과수원 등 생계 수단을 모두 잃고 자식들이 주는 용돈으로 생활하는 할머니, 신고리 1~4호기를 지을 때는 원전 반대운동을 했지만 5‧6호기 때는 ‘그냥 짓고 우리 이주시켜 달라’고 입장을 바꾼 주민협의회장. 이들이 원하는 건 단지 ‘예전처럼 평범하게 삶을 꾸려가는 것’이었다. 건설 찬반 주민 모두 입을 모았다. 

“원전 옆에 살고 싶은 사람이 어데 있노?” 

거대 담론에 가려진, 그러나 무시해선 안 되는 외침이었다. 

마을 사람 인터뷰 중 한 주민이 건설 ‘찬성’을 주장하면, 옆에 있던 다른 주민이 ‘반대’라며 언성을 높이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한 식당에서는 수저가 날아다니기도 했다. 취재하면서 ‘조용하던 마을 공동체가 원전 때문에 갈라져 갈등을 빚는 이 상황 자체가 비극’이라는 생각을 했다. 사람이 쓰는 에너지인데, 왜 그동안 에너지 기사나 정책 수립 과정에는 사람이 없었을까? 우리는 원전 찬반 논리인 ‘전기요금 폭등’이나 ‘다수호기 안전성’ 등을 본격적으로 검증하기에 앞서 각 지역 주민들의 사연을 생생하게 담았다.

▲ 원전 지역 주민 대표들을 만나 입장을 듣고 있는 <단비뉴스> 취재팀. Ⓒ 박진홍

진실을 좇는 자와 숨기려는 자의 ‘밀당’ 

2부(15~21편)에서는 우리나라 에너지구조가 원전·석탄에 과도하게 의존하게 된 배경과 그로 인한 문제점을 분석했다. 특히 정관계‧학계‧언론과 원자력계의 유착을 3편(19~21편)에 걸쳐 다룬 ‘핵 마피아’ 기사는 첫 접근부터 쉽지 않았다. 과거 관련 기사를 쓴 적 있는 <뉴스타파> 남태제 PD, 수년째 이 문제를 추적해 온 이강준 에너지기후정책연구소 연구위원 등 전문가를 찾아가 강의를 듣다시피 하며 윤곽을 그렸다. 

하지만 들은 것만으로 기사를 쓸 수는 없었다. 비판해야 할 대상이 뚜렷한 만큼 근거가 더욱 확실해야 했다. 숫자 하나라도 틀린다면 전체 기사의 신뢰도가 무너질 수 있었다. 원자력백서, 법원 판결, 국회 속기록 등 공신력 있는 전문자료를 샅샅이 찾아 연결하는 작업에만 꼬박 한 달이 걸렸다.

원자력계 언론홍보 실태를 맡은 팀은 정보공개청구의 늪에 빠졌다. 한수원 등 관련 공기업과 공공기관은 홍보비 집행 내역 정보공개청구를 넣으면 온갖 핑계를 대며 답변을 미뤘다. 한참 걸려 받은 자료는 정작 핵심인 언론사 이름이 다 가려져 있기도 했다. 정보공개청구를 담당한 나혜인, 강민혜 기자는 온전한 자료를 받아내기 위해 한수원 등과 몇 달간 속 터지는 ‘밀당’을 해야 했다. 

원전 관계기관과 기업 취재는 특히 어려웠다. 우리는 업계에 인맥이 있는 것도 아니고, 취재 경험이 많아 노련하게 답변을 끌어낼 수 있는 ‘프로’도 아니었다. “모른다” “답변하기 어렵다”는 답을 가장 많이 들었다. “곧 연락 주겠다”는 약속은 지켜지지 않는 경우가 더 많았다. 

그러나 포기하지 않았다. 자료를 받아내기 위해, ‘비판 기사엔 반드시 반론도 싣는다’는 원칙을 지키기 위해 거듭 연락했다. 궁금하면 물었고, 피하면 매달렸다. 아마추어인 우리가 가진 것은 ‘될 때까지 해 보자’는 끈기와 오기뿐이었다.

자료를 분석하면서 한수원이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촘촘하게 언론과 지역 사회를 관리해 왔다는 사실에 놀랐다. 광고협찬비와 원전 옹호 기사로 얽힌 언론사는 물론이고, 대학 학보사에까지 홍보비가 들어갔다. 자료에 표시된 예산 집행 내역이 사실인지 언론사들이 내보낸 다큐멘터리, 칼럼 등과 일일이 대조해 기사에 담았다. 어렵게 받아낸 데이터는 온라인 기사 하단에 링크를 붙여 누구나 원본을 내려 받아 볼 수 있게 했다.

▲ 탈핵울산시민공동행동 용석록 국장(오른쪽)을 인터뷰하는 <단비뉴스> 서지연 기자. Ⓒ 박진홍

해외 취재원을 통한 대안 모색

마지막 3부(24~48편)에서는 기후변화의 실상이 얼마나 심각한지 조명하고, 지속 가능한 에너지구조로 전환하기 위한 대안을 모색했다. 강릉‧수원 등지로 달려가 폭염과 태풍 등 기후변화의 징후를 생생하게 포착했고, 제주‧영덕‧안산 등에서는 재생에너지의 성장 가능성을 확인하는 것과 함께 주민의 불만에도 귀를 기울였다. 

문제는 해외 취재였다. 독일‧덴마크‧스페인 등 우리보다 재생에너지 전환을 먼저 시도해 좋은 결과를 냈거나 시행착오를 겪은 나라들의 경험은 ‘대안 모색’을 위해 꼭 필요한 부분이었다. 여건상 해외에 직접 가서 취재할 순 없었다. 각종 보고서 등 자료와 데이터로 이해하는 것도 한계가 있었다. 해외 사례를 다룬 국내 자료는 대부분 오래 전 이야기를 담고 있어 갑갑했다. 

우리는 온라인 취재를 시도했다. 내 경우 유럽에서 녹색성장 모범 사례로 꼽히는 스웨덴 벡셰(Växjö)시 홈페이지를 이 잡듯 뒤지다 ‘Pressansvarig’ 메뉴를 발견했다. 번역기를 돌려 보니 ‘언론 담당관’이라는 뜻이었다. 이메일을 보내 취재 요청을 했다. 그렇게 해서 시 환경정책을 총괄하는 간부인 얀 요한손 씨를 알게 됐다. 

어렵게 ‘높으신 분’과 연결됐다는 생각에 모든 질문을 쏟아냈다. 질문을 한글로 쓰고, 영어로 번역한 내용을 미국서 살다 온 동료에게 표현이 어색하지 않은지 검수까지 받고 보냈다. 이틀 후 답장이 왔다. 답변의 디테일과 분량에 한 번, ‘더 궁금하면 언제든 질문하라’는 관대함에 두 번 놀랐다. 첫 이메일 인터뷰가 성공하자, 다른 나라를 담당하는 동료들도 취재원을 찾아 메일을 뿌렸다. 일면식도 없는 한국 기자가 다짜고짜 보낸 질문을 그냥 무시해버릴 수도 있을 텐데, 그들은 하나같이 성의 있는 답변을 보내왔다. 각 나라의 에너지 담당 공무원, 대학교수 등 전문가가 전해주는 최신 동향을 기사에 생생히 담을 수 있었다. 

가깝고 작은 곳으로부터의 변화

취재팀 좌담을 포함한 전체 기사 48편, 연재 기간 1년 4개월. 사전취재 기간을 포함해 거의 2년 가까운 시간을 달려오면서 팀원 16명은 수없이 지치고 좌절했다. 전문용어가 빼곡한 자료와 씨름하다 괴성을 지르기도 하고, PDF 자료를 일일이 복사 붙여넣기 하면서 욕설을 내뱉기도 했다. 대학원생으로서 학업과 취재를 병행하는 생활이 힘겨워 중간에 포기할까 고민한 팀원들도 있었다.

그럼에도 버티고 서로 다독이며 시리즈를 끝낼 수 있었던 건 시작할 때 모두가 공유한 물음을 잊지 않은 덕분이다. ‘우리의 생명과 안전을 위협하는 기후변화, 미세먼지, 방사능 재난 등 위험을 피해 안전하고 지속 가능한 에너지 구조를 만들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하는 그 물음. 에너지 대전환은 여러모로 부족한 언론인 지망생들이 이 질문에 답을 찾기 위해 치열하게 뛴 2년의 결과물이다. 

이 시리즈는 지난해 연말 ‘2018 민언련 올해의 좋은 보도상’ 대안 미디어 부문 수상작에 선정됐고, ‘제1회 한국데이터저널리즘어워드’ 올해의 영 데이터저널리스트상도 받았다. 기사 댓글과 SNS 공유 등으로 응원해준 독자들과 환경단체, 학계, 언론계 종사자들의 지지와 칭찬도 큰 힘이 됐다. 기획과 취재 보도의 전 과정에서 ‘철저한 사실 확인’을 강조하며 거듭 보완지시를 내려 우리를 힘들게 했지만, 적확한 조언과 따뜻한 격려로 이끌어 준 제정임 교수님이 있었기에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 

시리즈 시작 전, 가까운 고향 친구에게 기획의도를 설명한 적이 있다. 학창시절 나와 함께 고리원전에서 받아 온 학용품으로 공부했고, 공대를 졸업한 그는 “기술은 죄가 없다” “기술의 힘을 믿는다”며 원전을 옹호했다.

그런데 우리 시리즈 중 ‘핵폐기물 처리 대책이 없다’는 기사를 보고 생각이 아주 조금 바뀌었다고 한다. “정말 괜찮을까?”하는 물음이 생긴 수준이지만, 내겐 그 어떤 수상보다 기쁜 소식이었다. 이런 작은 물음들이 모여 큰 변화로 이어지리라 믿기 때문이다.

에너지 대전환 시리즈는 책 출간을 준비 중이다. 인간의 삶을 돕기 위한 에너지가 인간의 생존을 위협하는 일을 막으려면 어떤 변화가 필요한지, 우리 사회 구성원들이 토론하고 합의를 모색하는 데 도움이 된다면 정말 기쁘겠다.


편집 : 권영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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