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비발언대]

▲ 최유진 기자

아버지는 딱 한 번 내 남동생에게 ‘폭력’을 휘둘렀다. 어릴 때, 동생이 내 아랫배를 발로 찬 적 있다. 부모님에게 피해사실을 상세히 일러바치자 아버지가 동생 뺨을 때렸고 나조차 당황했다. 잘못한 건 동생만이 아닌데, 나는 아무 잘못 없는 양 아버지에게 보호받은 게 미안했다. 한동안 동생은 나를 쳐다보지도 않았다. 우리 둘 사이가 회복된 건, 내가 부모님에게 싸움의 전말을 제대로 설명하고 난 뒤였다. 

‘오보’는 취재 대상을 향한 폭력이다. 그러나 제대로 책임지고 정정보도를 하는 한국 언론은 거의 없다. 무지막지한 언론 행태에 시민들이 비판을 쏟아낸다. 언제든 자신이 직간접 피해자가 될 수 있어서다. ‘언론 뭇매’에 검찰과 법무부도 가담했다. 최근 법무부가 오보를 낸 기자를 검찰청에 출입하지 못하도록 하는 훈령을 발표했다가 기자들 반발에 부닥쳤다. ‘형사사건 공개금지 등에 관한 규정’은 오보 기자의 검찰청 출입 제한 조항을 삭제하는 등 일부 수정을 거쳐 12월 1일 시행에 들어갔다.

일반 시민이라면 신문과 방송을 취사선택해서 소비할 수 있다. 그러나 공무원은 중요한 뉴스 소스이기에 일종의 ‘공동 생산자’다. 오보를 낸 언론사라고 해서 공직사회가 이들과 연결고리를 잘라버리는 게 합당한 일일까? 공급자 편의주의에서 나온 ‘갑질’이다. ‘오보’라는 약점을 잡아 언론을 묶어 두려는 건 아닐까? 여론의 도마 위에 오른 언론은 ‘감시견 역할’ 대신 자기방어에도 급급한 처지가 되고 만다. 검찰과 법무부는 자연스레 상위 권력에 머물 수 있다. 행정관청이 비밀주의와 보신주의에서 벗어나 정당한 절차에 따라 공익을 위한 정보를 제때 내놓았더라면 무리한 취재경쟁도 없었을 터이다.

▲ 기자가 혐의를 기정사실화해 무고한 피의자를 범죄자로 만든다면, 스스로 '수갑'을 차는 심정으로 반성해야 한다. 그러나 검찰이 '오보'를 명목으로 기자의 취재를 막아서도 안 된다. ⓒ pixabay

물론 언론의 문제도 심각하다. 보도 가치가 없는 ‘혐의내용’까지 시시콜콜 공개해 혐의자의 인격을 말살하는가 하면 검찰이 흘리는 ‘피의내용’을 확인하지 않고 보도해 재판도 하기 전에 피의자를 범죄자로 몰고 간 사례도 많다. 실은 ‘피의사실 공표죄’라는 죄목도 이름을 잘못 붙였다. 검찰의 수사내용은 재판에서 한쪽 당사자 주장일 뿐인데 ‘사실’(fact)이라는 이름을 붙이는 건 과분하다. MBC <PD수첩>이 검찰과 언론의 유착관계를 파헤치자, 대법원 출입기자들이 성명서를 발표하고 명예훼손으로 고소하겠다고 한다. KBS MBC <한겨레> <경향> 기자는 가담하지 않았다. <PD수첩>이 일부 과장보도를 했다 하더라도 상당수 대법원 출입기자들이 그렇게 대응할 일인지는 납득할 수 없다. 기자는 글과 말로 사실 여부를 따지는 직업이다. 지금까지 보도에 반성할 부분도 많았다는 점에서 자기성찰부터 했더라면 그들의 항변에 일리가 있다고 생각하는 이도 늘었을 텐데 안타깝다.


편집 : 김지연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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