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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정상적 '정상 가족'
[역지사지] '가족'
2019년 11월 24일 (일) 22:05:23 신수용 기자 sinsy77@naver.com
   
▲ 신수용 기자

내가 그 ‘가족’에 속하게 된 건 스무 살 때다. '가족 같은 분위기'를 강조한 경양식 집에서 그들의 가족이 되기 위한 면접을 봤다. 나는 서빙 아르바이트 직에 합격했다. '가족 같은'이란 말은 사장의 가족이라는 뜻이었다. 계약한 근로시간은 매번 초과했다. '사장아빠'는 손님이 모두 떠난 오후 세 시에 점심을 줬다. 팔다 남은 돈까스였다. 식은 돈까스 한 조각을 우물거리다가도 손님이 오면, 메뉴판과 물 컵을 들고 재빨리 일어서야 했다. 그는 점심시간 한 시간을 근로시간에서 뺐다. 식사 시간도 일하지 않는 시간이라는 논리였다. 알바생이 딸 같다고 얘기하던 편의점 사장은 내가 2개월 만에 그만두자 3000원 남짓하던 알바비의 절반만 통장에 넣어주었다. 단기 근무로 회사에 손해를 끼쳤다는 거였다.

정규직이 되어 다닌 회사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회사가 생각하는 '가족'은 계약 관계가 아니라 지배복종 관계였다. 회사 이익을 위해 충성을 강요했다. 군소리 없이 주말, 밤낮 가리지 않고 회사에 나갔다. 가족 같은 분위기라는 핑계로 직원복지는 눙쳤다. 회사가 바쁠 때는 몸이 안 좋아도 휴가를 낼 수 없었다. 우린 가족이니까 어려울 때 항상 함께해야 한다나. 회사는 항상 바빴다. 밀린 휴가를 돈으로도 보상해주지 않았다. 회사가 어려워졌다며 몇몇 가족은 내보내기도 했다.

내가 만난 ‘가족'은 모두 충성과 헌신을 원했다. 이는 법률상 친족관계인 ‘혈맹 가족’ 안에서도 강요됐다. '혈맹 가족' 하면 명절이 떠오른다. 내가 기억하는 명절은 수없이 밥상과 술상을 차리고 치우는 여자가족과 종일 온돌방에서 엉덩이를 떼지 않는 남자가족의 모습이다. 나는 명절마다 취업을 핑계로 도서관에 있었다. 이런 때 ‘취업준비생’은 가족이 없는 거나 마찬가지다.

   
▲ 아이 수는 줄고 있지만 1인 가구, 동성혼 등 가족의 형태는 다양해지고 있다. ⓒ Pixabay

사회나 '혈맹 가족'이 나에게 등을 돌린 것은 내 배가 남산 만해 질 때였다. 청첩장을 돌린 적도, 남편도 없이 배만 부른 것이 ‘배은망덕’하다고 했다. 내가 사회적, 혈연적 기준과 기대에 충족하지 못했기에 배신했다는 논리였다. 나와 아이는 모범시민도 ‘정상 가족’도 될 수 없었다. 배가 부른 이유가 뭐든 나는 아이의 보호자가 되기로 마음먹었다. 아이를 입양 보내거나 해치고 싶지 않았다.

아이 수는 줄고 있지만, 가족은 늘고 있다. 시장이나 거리에서 만난 이에게 이모, 어머님, 아버님이라 부르기도 하고, 'xx가족 여러분, 회사를 내 집처럼' 등 회사에도 가족이 생겼다. 1인 가구도 늘었다. 문제는 가족 선별작업이다. 기준에 맞지 않으면 비정상으로 치부해 가족이라 여기지 않는다. 나와 같은 미혼모를 편부모 가정이라 부르는 이유다. 이력서 가족란에 나와 아이 이름, 그리고 '미혼'이라 적자, 면접을 보러 가는 일이 드물어졌다.

10년 전 프랑스에 망명을 신청했다. 살해 위험에 처한 성소수자들이 망명을 신청해 난민으로 받아들여졌다는 신문기사를 보고나서다. 망명신청서에 한국에서 여성이자 나 홀로 엄마는 경제적 궁핍, 도덕적 비난 등 사회적 살해에 준하는 박해를 받는다고 썼다. 내 조국과 가족 그 누구도 나를 도와주지 않았다. 나뿐 아니라, 아이에게도 그랬다. 무엇보다 개인의 자율적 선택을 존중하는 열린 공동체를 원했다. 프랑스에 온 뒤로 누구도 아이에게 왜 아빠가 없는지 묻지 않았다. 나는 아이들을 가르치는 선생님이 됐다. 한국에서라면 '누가 누굴 가르치냐'는 손가락질을 받았을지도 모른다, 우린 ‘정상 가족’이 아니었으니까.


한국이 극심한 갈등사회가 된 것은 자기만 이롭게 하려는 아전인수(我田引水)식 발상에 너무 빠져있기 때문이 아닐까? 좌우, 여야, 노사, 세대, 계층, 지역, 환경 등 서로 간 갈등 국면에는 대개 인간, 특히 강자나 기득권층의 자기중심주의가 도사리고 있습니다. 지금이야말로 상대방 처지에서 생각해보는 역지사지(易地思之)의 공간이 넓어져야 할 때입니다. 그런 생각과 풍자가 떠오르는 이는 누구나 글을 보내주세요. 첨삭하고 때로는 내 생각을 보태서 독자들과 공유하고자 합니다. (이봉수 교수)

편집 : 정재원 기자

[신수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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