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비현장] 2019 데이터저널리즘코리아 컨퍼런스

“취재하는 동안 (기자들이 흔히 말하는 것과 달리) ‘현장엔 답이 없다’ ‘데이터는 아무 말도 해주지 않는다’를 곱씹었어요. 좋은 기사를 쓰기 위해서는 ‘현장’과 ‘데이터’ 중 하나만 갖고는 안 되죠. 현장은 실마리를 제공하고, 데이터는 이를 증명합니다.”

22일 서울 태평로 한국프레스센터 20층 국제회의장에서 열린 ‘2019 데이터저널리즘코리아 컨퍼런스’에 발표자로 나선 이혜미 한국일보 기획취재부 기자는 ‘지옥고 아래 쪽방’과 ‘대학가 신쪽방촌’ 2부작 시리즈 취재를 회고하며 이렇게 말했다. 그는 지난해 11월 서울 종로구 고시원 화재 사건을 계기로 주거 취약층 실태를 취재하러 나섰다가 20년 간 쪽방촌에서 살아온 주민의 한 마디를 듣고 데이터 기반 탐사보도를 시작했다고 밝혔다. ‘이 동네 쪽방은 다 우리 집주인 소유인데, 월세를 모아 인근에 빌딩을 하나 세웠다’는 얘기였다.

쪽방촌에서 임대료 받아 빌딩 세운 사람들

▲ 이혜미 한국일보 기자가 22일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제2회 데이터저널리즘 컨퍼런스에서 데이터기반 탐사보도 사례로 ‘쪽방촌’ 2부작 취재기를 발표하고 있다. ⓒ 김정민

이 기자는 인턴 기자 1명과 함께 창신동 등 서울 시내 주요 쪽방촌 건물 318채의 등기부등본을 모두 뗐다. 무허가라 조회가 되지 않는 건물을 빼고 실소유주 270명의 증여, 매매, 상속, 경매 경로를 추적했다. 조사 결과 쪽방 건물 소유주는 유명 학원강사 등 고소득자들이었고 서울 도곡동 타워팰리스 등 다른 동네에 살면서 관리인을 두고 임대수입을 올리고 있었다. 건물주 중에는 20대도 있었다. 이 기자는 “도심의 아주 오래된 건물들이라 재개발에 따른 차익을 기대하면서, 쪽방 평당 임대료는 타워팰리스 평당 임대료보다 높게 받고 있었다”고 꼬집었다.

“이 사진들 좀 보세요. 건물주들은 관리인을 통해 월세를 걷어갈 뿐 문짝이 부서져도 수리해 주지 않았어요. 이 집은 추운 겨울에도 비닐로 문을 가리고 살았어요. 이 계단은 지난해 상수도 동파로 물이 꽁꽁 얼어붙은 모습이에요. 이 건물 2층에 사는 노인은 겨울 내내 밖에 나오지도 못했습니다.”

이 기자는 또 서울 사근동 한양대 인근에서 한 가구를 원룸 4개로 쪼개는 등 불법개조를 통해 임대료 폭리를 취하고 있는 실태를 고발하기 위해 각 건물의 우편함과 가스계량기를 일일이 세어보고 건물 대장을 떼 비교했던 과정을 설명했다. 사근동 임대업자들은 한양대 기숙사 신축을 거세게 반대했고, 행정기관은 불법개조를 알면서도 묵인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대학생들은 숨 막힐 듯 좁은 공간에서 비싼 임대료를 내고 살다가 떠나곤 했다.

이 기자는 “아직 회사 차원에서 데이터저널리즘 지원체계가 잡히지 않아 ‘노가다(막일) 저널리즘’이라고 자조하기도 한다”며 “현장에서 건져 올린 하나하나의 단서를 데이터로 구현할 수 있는 기자의 문제의식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만약 쪽방촌에 안 가서 그 아저씨 이야기를 듣지 않았다면 이 기사는 못 나왔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 기자의 쪽방촌 시리즈는 제345회 이달의 기자상(기자협회)과 제2회 데이터저널리즘어워드 데이터기반 탐사보도상을 받았다.

논문 데이터베이스 조회하니 ‘고등학생 저자’ 수두룩

데이터저널리즘코리아와 건국대 디지털커뮤니케이션연구센터 등이 주최하고 구글이 후원한 이날 컨퍼런스에서 장슬기 문화방송(MBC) 데이터전문기자는 ‘고등학생 논문 저자 추적기’를 발표했다. 그는 조국 전 법무부장관 청문회 과정에서 고등학생 논문 저자 문제가 불거지기 전에 기획했던 기사를 조 전 장관 사건을 계기로 급히 취재했는데, 학술정보포털 디비피아(DBpia)를 샅샅이 찾아보는 방식이었다고 설명했다.

“데이터베이스에서 고등학생 논문 저자를 찾아낸 뒤 관련된 교수 부모, 부모 친구 등을 대상으로 확인에 나섰는데 취재를 피해 2주를 휴강한 분, 며칠을 숨어있었던 분도 있어요. 자녀를 논문 공저자로 올린 한 교수가 ‘자녀와 추억을 만들기 위해 한 일’이라고 하는 등 정말 ‘주옥같은’ 말들이 나왔습니다.”

 
MBC 장슬기, SBS 심영구, 시사인 김동인, 뉴스앤조이 최승현 기자가 각각 데이터를 이용한 취재보도 경험을 설명하고 있다. ⓒ 강찬구 김정민 윤상은

심영구 서울방송(SBS) 데이터저널리즘팀 마부작침 기자는 2019년 국회 예산회의록을 전수 분석한 ‘의원님, 예산심사 왜 그렇게 하셨어요?’의 보도과정을 설명했다. 무려 5천 페이지에 이르는 회의록을 분석한 결과 국회발 신규사업의 74%가 지역구 의원들의 ‘민심 얻기’ 목적이었다는 것이다. 심 기자는 “2018년 예산안 심사기록에는 의원들이 지역성 사업 예산을 따내려 노골적으로 요구한 사례가 많아 취재가 쉬웠는데 2019년 회의록에선 그런 부분이 현저하게 줄어 ‘지난해 보도의 효과가 있었구나’하는 생각을 했다”고 말했다.

시사인 사회팀 김동인 기자는 ‘공공데이터를 활용한 서초동·광화문 집회 인파 분석’ 발표를 통해 최근의 서초동시위(조국지지)와 광화문시위(조국반대)에 모인 사람들의 인구지리학적 특성을 파악한 과정을 설명했다. 기독교 매체인 뉴스앤조이 최승현(30) 기자는 ‘독자와 함께 만든 우리 동네 교회 세습 지도’기사에서 데이터 시각화를 시도해 독자의 높은 호응을 얻었던 사례를 발표했다.

디지털 콘텐츠 유통의 생명은 ‘공유’

이날 행사에는 언론인 외에 정보기술(IT) 개발자와 연구자도 다양하게 등장, 데이터저널리즘을 둘러싼 최신 동향과 경험을 나누었다. 중앙일보 데이터저널리즘팀 데이터브루의 전기환(39) 개발자는 “열심히 디지털 콘텐츠를 만들어도 공유가 되지 않으면 소용없다”며 “공유가 잘 되려면 ‘선택과 집중’을 통해 단순화할 것, ‘모바일 최적화’를 구현할 것, ‘공감 혹은 분노’ 등 정서적 반응을 겨냥할 것 등 세 가지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서수민 미국 템플대 저널리즘학과 교수는 ‘가상해외지국과 국제취재에서의 데이터저널리즘’ 강연에서 미국 언론사들이 비용과 안전 문제로 특파원을 감축하는 추세를 설명한 뒤 인터넷 네트워크를 통한 ‘가상해외지국’을 만들어 국제 취재를 하는 사례를 소개했다. 차미영 카이스트 전산학부 교수는 “이제 인공지능(AI)이 문학이나 음악 같은 정교한 창작예술 활동까지 할 수 있는 수준이 됐다”며 “AI가 가짜뉴스를 창작하게 되면 그로 인한 공론장 오염이 심각해질 수 있어 경계해야 한다”고 말했다.

 
국내외 데이터저널리즘의 최신 동향을 설명하는 전문가들. 중앙일보 전기환 개발자, 서수민 템플대 교수, 차미영 카이스트 교수. ⓒ 강찬구 김정민 윤상은

‘데이터저널리즘의 선구자’로 꼽히는 구글 뉴스랩 데이터에디터 사이먼 로저스(51)는 ‘뉴스룸혁신과 인공지능’을 주제로 한 화상강연에서 “로이터저널리즘연구소에 따르면 뉴스기관의 59%가 이미 AI를 활용하고 있다”고 전했다. 그는 “AI가 수백만 건의 자료를 수집하고 분석하는 지루한 노동을 대신해주기 때문에 이제는 뉴스룸에서 인력을 감축하려는 시도도 점점 많아질 전망”이라고 덧붙였다.

앞서가는 국내 데이터저널리즘, 언론사 투자는 아쉬워

 
언론인, 개발자, 연구자, 학생 등 200여명의 컨퍼런스 청중은 발표 내용에 진지하게 귀를 기울인 뒤 다양한 질문을 던졌다. ⓒ 강찬구 김정민 윤상은

이번 컨퍼런스의 공동위원장인 권혜진 데이터저널리즘코리아 대표는 “협업이 중요한 데이터저널리즘에서 생태계를 만들기 위해 저널리스트들의 네트워킹을 도모하고자 이번 행사를 열었다”고 밝혔다. 그는 이어 “올해 발표 작품들은 작년 출품작들보다 훨씬 수준이 높아졌다”며 “지속적 성장을 위해서는 언론사들의 지원이 늘고 협업을 위한 문화와 환경이 조성돼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공동위원장인 황용석 건국대 교수는 “데이터저널리즘에 관심 있는 저널리스트와 예비저널리스트를 위해 지식공유의 자리를 마련하는 게 행사의 기본적인 취지”라며 “우리나라 데이터저널리즘 수준은 상당히 앞서 있는데 미디어 기업들의 투자가 부족해 아쉽다”고 말했다.

청중으로 참여한 연세대 3학년 이승우 씨는 <단비뉴스> 인터뷰에서 “데이터 보도를 인터넷 페이지에서만 보다가 취재 과정을 생생하게 들을 수 있었다”며 “오늘 소개된 보도 사례들도 관심 있게 봤는데 생각보다 정성이 많이 필요한 어려운 작업이더라”고 말했다. 지난해에도 컨퍼런스에 왔었다는 고등학생 김민석(18)군은 “데이터 분석가를 꿈꾸며 교육, 문화 데이터를 많이 분석하고 있다”며 “여러 사례와 여러 데이터 분석법을 볼 수 있어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편집 : 김정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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