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 KPF 저널리즘 컨퍼런스 ① 토크콘서트

“<듣똑라> 시즌1은 2017년부터 시작했고 그때는 가욋일이었어요. 각자 출입처가 있고 하는 일이 있는데 기자들이 주말에 나와서 한 거예요. 본인이 좋아서 한 건데… 기사에 기자 이름 열이 다 들어가는 게 아니잖아요. 그게 아쉽기도 하고, 취재 현장 가서 봤을 때 분위기나 느낌이 있는데 기사에 다 담지 못하니까 그런 맥락을 팟캐스트로 녹음해보자 한 건데, 그게 이름이 알려지면서 올해 1월부터 정식 서비스됐습니다. 뉴스랩 콘텐트팀 기자가 돼서 이걸 제작하는 게 업무가 된 거예요. 저 포함 3명인데 다 10년 차 전후 기자이고, 정치부, 사회부, 문화부에 있었습니다.” 

‘중앙일보 언니’로 통하는 이지상 기자가 팟캐스트 <듣똑라> 탄생 비화를 들려줬다. ‘듣다 보면 똑똑해지는 라디오’, 일명 <듣똑라>는 전통 신문 기자들이 자발적으로 벌인 ‘가욋일’이었다. 지난 2015년 사회부 기자들이 <청춘 라디오>라는 이름으로 팟캐스트를 시작했다. 이어 2017년 <듣똑라> 시즌 1을 방송했고, 지금은 밀레니얼 여성 기자 셋이 시즌 2를 제작한다. 레거시 미디어의 새로운 도전이 4년 넘게 이어져 오는 셈이다. 전담 ‘뉴스랩 콘텐트팀’까지 새로 생겼다.

출입처를 드나들며 신문 지면에 글만 쓰던 기자들이, 녹음실과 카페를 오가며 방송 기획부터 섭외, 진행, 편집, 오프라인 모임까지 해낸다. 이들은 ‘밀레니얼 세대’를 위한 뉴스를 만든다. 디지털 시대에 등장한 새로운 뉴스 소비층이다. 이에 기자들은 어떤 생존전략을 세우고 있을까?

25일 서울 한국프레스센터 20층 국제회의장에서 토크 콘서트 ‘내일의 뉴스를 말씀드리겠습니다’가 열렸다. 이 행사는 한국언론진흥재단(이사장 민병욱)이 지난 24일부터 이틀간 개최한 ‘2019 KPF 저널리즘 컨퍼런스’ 프로그램 중 하나다. 국내외 저명 언론인과 전문가를 초청한 자리다. 저널리즘 최신 이슈를 살펴보고, 미디어 환경 변화에 따른 대응 방안을 논의하기 위해 2017년부터 매년 여는 국제 행사다. 토크 콘서트에는 임홍택 <90년생이 온다> 저자와 이삼십대를 위한 뉴스 콘텐츠를 실험하고 있는 기자들이 참여했다.

▲ 2019 KPF 저널리즘 컨퍼런스 토크 콘서트 ‘내일의 뉴스를 말씀드리겠습니다’에서 밀레니얼 세대와 소통하는 기자들이 이야기를 나눴다. ⓒ 정재원

변화에 빨리 적응하고 요구 확실한 ‘밀레니얼 세대’

‘밀레니얼 세대’의 정체는 무엇일까? 지난해 미국조사기관 퓨리서치센터는 “1981~96년에 사이에 태어난 인구”라고 정의했다. 이들은 모바일 기기가 발달하면서 인터넷과 소셜미디어가 폭발적으로 성장하는 시기를 겪었다. 임홍택 작가는 “이런 기준이 대한민국에는 맞지 않는다”며 “특정 세대를 지칭하기보다 ‘나랑은 다르겠구나’ 하는 생각으로 접근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기업에서 신입사원 입문교육을 해왔다. 저서 <90년생이 온다>는 지난 8월 문재인 대통령이 청와대 직원들에게 선물해 화제가 됐다.

“세대를 포착했다기보다 90년생 신입사원이 들어올 때 똑같이 입문 교육을 진행했는데, 그들이 움직이지 않고 반발심이 컸어요. 분명 다르다고 느꼈어요.”

임 작가는 “유튜브에서 레거시 미디어들이 파편화했다”며 “여러 변화에 적응이 빠르고 요구 사항을 전달하고 거기 익숙한 게 젊은 세대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언니들이 들려주는 온디맨드 뉴스, ‘듣똑라’

“제작자인 저희도, 듣고 계신 분들도 비슷한 연배예요. 좀 더 소통하는 구조가 될 수 있죠. 팟캐스트 매체 특성상 친근하게 생각하는 목소리를 듣는 걸로 ‘톤 앤 매너’ 자체를 친언니가 이야기해주듯이, 밀레니얼 세대는 바쁘니까 뉴스 찾아보기 힘드실 테니, 저희가 뉴스 보는 게 직업이라서 요약해서 맥락을 전해드리는 거죠.”

주 5회 방송되는 팟캐스트 <듣똑라>는 월~수에는 시사 이슈를, 목~금에는 인터뷰를 다룬다. 인스타그램에 카드뉴스를, 유튜브에 제작 뒷이야기를 담은 ‘브이로그’를, 매주 금요일에는 한 주 간 주요 기사와 개념 정리, 방송 예고 등을 담은 뉴스레터를 발송한다. 밀레니얼 독자들의 뉴스 이용 패턴에 맞춰 체계를 만들었다.

아이템을 정할 때도 실제 독자들이 알고 싶어 하는 ‘관심사’를 반영하려고 한다. 사회생활, 연애, 여성 등 다양한 이슈가 다뤄지는 이유다. 새로운 뉴스 소비자의 수요에 맞춘 ‘온디맨드 저널리즘’이다. <듣똑라> 기자들은 열심히 사람들을 만난다. <중앙일보>나 JTBC 기자를 초대해 취재 내용을 밀도 있게 전한다. ‘소셜 모임’이란 이름으로 청취자들과 오프라인으로 만나 소통하기도 한다.

▲ <듣똑라>는 소셜클럽 사람들이 모이는 ‘소셜 모임’을 진행한다. 이날은 책 <386 세대유감>으로 듣똑러(듣똑라 청취자)들과 토론했다. ⓒ 듣똑라 인스타그램

“우리끼리 약속한 건 ‘불편하지 않은 콘텐츠’를 만든다는 겁니다. 방송을 만들 때 누군가가 상처받지 않으면 좋겠다는 걸 공유하고 있지요. 가령 젠더 감수성이 불편한 부분은 없는지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밀레니얼 세대는 ‘자기효능감’이 중요한 세대예요. 어릴 때부터 스펙을 쌓아오면서 만족감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세대, 자기계발을 끊임없이 하는 세대죠. 거기에 도움을 드리고 싶다는 생각으로 만듭니다.”

이지상 기자는 “밀레니얼 세대가 신문으로 기사를 따라보는 경험은 적은 것 같다”며 “시간이 오래 걸릴 수 있는 일을 단축해주려고 한다”고 말했다. <듣똑라>는 네이버 오디오클립 1만8000여 명, 팟빵 1만1500여 명이 구독하고 있다. 이삼십대 애플 아이튠즈 인기차트 1위를 차지한 적도 있다.

독자와 댓글로 소통하는 ‘남기자의 체헐리즘’

“온라인 뉴스는 자극적이고 일회성으로 소비되고 있어요.” 

<머니투데이> 남형도 기자는 <남 기자의 체헐리즘>을 만들게 된 계기를 설명하며 토크콘서트를 시작했다. 자극적인 뉴스가 아닌 양질의 뉴스를 어떻게 하면 재밌게 전달할지 고민하다 체험과 저널리즘을 합친 <체헐리즘>을 기획했다고 한다. 남 기자 자신이 직접 체험하면서 깨달은 점과 공감하는 부분을 이야기하는 기획 기사다. 이틀 동안 몸에 맞는 브래지어를 직접 착용하고 여성이 느끼는 억압과 사회적 시선을 기사로 쓴 것 등이 대표작이다.

남 기자가 처음 <체헐리즘>을 시작할 때는 주변에서 많은 의문을 제기했지만, 지금은 신뢰받는 콘텐츠가 됐다. 회사에서도 <체헐리즘>을 신뢰한다. <체헐리즘>은 기획부터 편집까지 회사의 관여 없이 남 기자 혼자서 한다. 남 기자는 콘텐츠 부서팀장 업무를 보면서 틈을 내 <체헐리즘>을 쓴다. 체험은 짧게는 하루나 이틀, 길게는 1~2주까지 걸리고, 기사를 쓰는 데도 하루에서 이틀은 투자한다. <체헐리즘>은 열과 성을 다한 남 기자의 작품이다.

독자와 소통하는 방식도 새롭다. 기사가 올라오면 남 기자는 본인을 밝히며 댓글을 남긴다. 독자들은 남 기자의 댓글에 응원부터 기사 피드백, 오탈자, 원하는 방향, 아이디어까지 다시 댓글을 남긴다. 남 기자가 쓴 댓글은 독자들의 많은 공감으로 금세 베스트 댓글로 올라간다. 그동안 기자들은 기사 바이라인에 남겨진 이메일로 독자와 소통했다. 이메일 쓰는 것도 여러 과정이 필요하고 기자가 답장하지 않는 경우도 많다. 댓글은 바로 기자와 연결해주며 독자끼리 수다도 가능하다. 남 기자는 독자가 남긴 아이디어 덕분에 아이템 고갈은 없다며 독자와 적극적으로 소통한다. 기성 언론에서는 볼 수 없는 모습이다. 남 기자는 기성 언론이 뉴미디어 상황에 대응만을 고민한다며 비판했다.

“기성 언론은 전면적으로 뉴미디어에 들어가 독자가 원하는 요구를 판단하고 어떻게 자극을 줄지 줄기차게 시도해야 합니다.”

▲ 직접 댓글을 달면서 독자와 소통하는 남형도 기자. Ⓒ 박두호

MBC를 떠난 20대를 되찾는 <14F>

MBC가 모바일 뉴스 <14F>를 시작한 지 1년 2개월이 지났다. <14F>는 ‘14층 사람들’이라는 의미인데 실제로 MBC 14층에서 만든다. <14F>는 1년 2개월간 잘 컸다. 유튜브 채널 구독자는 27만이고 페이스북 페이지 팔로워는 8만8천이다. MBC 디지털제작2부 팀장 손재일 기자는 <14F> 제작을 맡고 있다. 손 기자는 기획 배경을 지상파의 위기로 설명했다.

“시청률은 떨어지고 광고시장도 모바일로 바뀌고 젊은 친구들은 TV를 떠났어요.”

MBC는 잃어버린 20대를 되찾아야 했다. <14F>의 타겟팅은 20대 여성에서 시작했다. 제작하다 보니 남성들도 많이 찾아 자연스럽게 20대 전체로 타겟팅이 바뀌었다. 유튜브 인구 통계는 남녀가 절반 정도 비율이다. 가장 많은 구독자는 20대지만 30, 40대 구독도 늘고 있다.

<14F>의 인기 콘텐츠는 자산관리사 유수진의 ‘아이 돈 케어’다. 유수진의 센 언니 캐릭터를 활용해 사회 초년생이 돈을 모으는 방법을 알려준다. 손 기자는 ‘아이 돈 케어’ 컨셉은 잔소리라며 참석자들에게 영상을 소개했다. ‘아이 돈 케어’ 시리즈 중에는 조회 수 100만이 넘는 영상이 있을 정도로 관심이 뜨겁다. <14F>는 MBC 뉴스를 20대에 맞게 변형한 뉴스 큐레이팅 콘텐츠도 제작한다. 1차 목표는 지상파 영향력을 온라인에서 잡는 것이다. <14F> 영상에 특징은 ‘짤’이 많다. 손 기자는 구독자를 오랫동안 잡고 있으려면 그래픽을 다양하게 구성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그래픽이 풍부하면 구독자들이 영상을 보는데 부담이 없다고 설명했다.

▲ <14F>의 인기 콘텐츠 ‘아이 돈 케어’ Ⓒ <14F>

손 기자는 70년대 생으로 80, 90년대 생들을 이해하기 위해 댓글을 열심히 읽는다.

“댓글이 800개가 달려도 다 본다고 생각하면 돼요. 기존 뉴스를 제작할 때는 뉴스 만들고 방송 보고 집에 가서 쉬었는데, 지금은 집에 가서도 실시간 댓글을 계속 확인해요.”

손 기자는 댓글로 취재 아이디어도 많이 얻는다고 한다. 제작진 회의에서 아이템을 결정할 때 팀장인 손 기자가 아이템을 결정하지 않는다. 제작진 전원이 1인 1표를 행사해 가장 많이 나오는 아이템을 선정한다.

“아이템 결정하면서 느끼는 건 80년대, 90년대 생들은 꼰대를 싫어해요.” 

뉴미디어는 기성 언론과 형태에서 차이가 난다. 손 기자는 뉴미디어의 장점으로 편성의 자유를 꼽았다. 기성 언론처럼 방영되는 시간이 정해진 것이 아니기 때문에 20분을 하든 1시간을 하든 다른 콘텐츠에 영향을 주지 않는다. 콘텐츠의 양도 자유롭게 바꿀 수 있다. <14F>는 1년이 넘었지만 적절한 콘텐츠 양을 찾기 위해 하루에 2개도 올려보고, 4개도 올려본다. 주제에 따라 포맷도 예능, 쇼양(쇼+교양) 등 취사선택이 가능하다. 손 기자는 뉴미디어가 ‘실험의 장’이라고 표현했다. 하지만 수익에는 민감하다. <14F>는 23명이 콘텐츠 제작에 참여한다. <14F>가 많이 성장했지만 인건비, 임대료 등 유지비용은 고민이다. 수익구조를 어떻게 만들어갈지는 앞으로도 고민할 문제다.

“뉴미디어, 1인미디어가 의미 있는 변화인 건 맞지만, MBC 드라마, 뉴스 등은 여러 사람이 만들어 신뢰도에서 앞섭니다.”

뉴미디어와 기성언론은 뗄 수 없고 이어진 관계다. 손 기자는 MBC가 독점 영상이 많고, 독점 영상을 활용해 뉴미디어 아이템을 만들 수 있다고 덧붙였다. 기성 언론은 거대한 아카이브(기록보관소)를 갖고 있다. 1960년대부터 축적된 다양한 과거 영상을 재해석해 뉴미디어 형식으로 제작할 수 있다. 아카이브를 재해석한 콘텐츠는 세대별로 느끼는 감정이 달라 다양한 생각이 댓글로 공유된다.

‘기자들은 기사 밖으로 나오지 않는다.’ ‘기자는 출입처에 항상 한 발을 담그고 있어야 한다.’ 정말 그럴까? 이제는 옛말이다. 기자들이 하나둘 지면을 벗어나고 있다. 출입처 취재원 대신 모임 공간에서 뉴스 소비자를 만난다. 레거시 미디어 안에서 ‘뉴미디어’ 역량을 키워가는 기자들이다. 밀려오는 ‘밀레니얼 세대’를 외면하는 기자가 있을까? 새로운 디지털 플랫폼에 관한 고민과 시도, 더 이상 기자들의 ‘가욋일’이 아니다.


편집 : 신수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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