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도시공원 일몰제 (하) ‘동네 숲’ 지킬 대안은

지난달 21일 오전 11시쯤 충북 청주시 성화동 구룡공원. 평일 오전인데도 빨강, 노랑 등 원색 등산복을 입고 산보하는 주민들로 활기가 넘쳤다. 이곳은 반경 3킬로미터(km) 내에 85만 청주 인구의 3분의 1 가량인 30여만명이 살아 ‘도심 공원’이라 할 수 있는데, 보기엔 영락없는 동네 뒷산이다. 제법 가파른 등산로를 10분 정도 올랐을 때, 두 나무 사이에 줄로 연결한 노란색 현수막이 길을 딱 가로막았다. 빨간 글씨로 ‘등산로 폐쇄 안내문’이라고 적혀 있다.

“구룡공원 소유자들은 지난 35년간 공원으로 묶여 재산권 행사를 제대로 못 하여 오던 중 대법원판결로 2020년 7월 1일 자연녹지로 해제를 앞두고 있는데, 시가 또다시 재산권을 제약하려 해서 10월 10일부터 등산로 폐쇄를 결정하였습니다.

30만 주민의 등산로 가로막은 ‘폐쇄 안내문’

 
충북 청주시 구룡공원 등산로에 걸려 있는 통행제한 현수막. 찢어지거나 바닥에 떨어진 것 등 여러 개가 곳곳에서 길을 막아 주민들에게 불편을 주고 있다. ⓒ 양안선

반려견 말티즈와 함께 산책하던 한 노년 여성은 현수막을 피해 돌아가다가 “저 위에도 이런 것들이 계속 설치돼 있다”며 기가 차다는 표정을 지었다. 과연 등산로 위쪽에는 비슷한 현수막 일곱 개가 더 나타났다. 그 중 세 개는 찢어져 있었다. 바닥에 떨어진 현수막을 빙 둘러가던 이강진(67·청주시 수곡동)씨는 “익숙하지만 불편한 건 어쩔 수 없다”며 얼굴을 찌푸렸다. 송희성(60·청주시 성화동)씨는 “35년간 재산권을 제한했으면 현수막을 설치할 만도 하다”면서도 “나 같은 시민들은 공원이 안 없어지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현수막을 내건 구룡공원 지주협의회 측은 시의 대응을 비판했다. 정춘수 지주협의회장은 지난 7일 <단비뉴스> 전화 인터뷰에서 “정부가 35년 동안 (땅을 도시공원으로) 묶어놨다”며 “(산책로 폐쇄는) 불편을 느낀 시민들이 시에 대책을 촉구하는 전화를 해 주길 바라는 의도”라고 말했다. 그는 “청주시에서 모든 땅을 매입하는 게 이상적이지만, 불가능하다면 주민들의 산책로부터 매입한 뒤 다른 땅은 원래 용도였던 자연녹지로 풀어달라고 말했다.

그런데 지주들이 등산로를 폐쇄한 이틀 뒤인 지난달 12일 국토교통부 주최 ‘도시의 날’ 행사에서 청주시는 ‘2019 도시의 지속가능성 및 생활 인프라 수준 평가 우수사례’로 특별상을 받았다. 도시공원 일몰제 발효를 앞두고 선제적 대응을 잘했다는 이유였다. 안종하 청주시 공원 조성과 민간공원개발팀장은 “지주협의회와 시민들의 의견을 조율하는 민간 거버넌스(지배구조)를 조성해 상을 받았다”고 설명했다. 이에 대해 정춘수 지주협의회장은 “거버넌스는 빵점짜리”라며 “1%도 인정할 수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해제 대상 공원 부지 사들이려면 막대한 빚 내야

지정해제 위기에 놓인 전국의 공원을 지키려면 원칙적으로 관할 지방자치단체가 지주에게서 땅을 사들여야 한다. 하지만 지자체 대부분이 재정자립도가 낮아 중앙정부에 의존하고 있는 형편에서 막대한 재원을 조달할 길이 막막하다. 예를 들어 인천시가 도시공원 일몰 대상 사유지 모두를 매입하려면 시 전체 연간 예산 10조 7000억원 중 2조 5285억원을 써야 한다. 부산도 토지매입을 다 하려면 전체 예산 11조 6000억원 중 1조 5656억이 나간다. 이 두 도시는 재정자립도 40~50%대로 그나마 건전한 편. 지방자치단체의 2/3 이상이 재정자립도가 30% 미만이라 스스로 토지매입 자금을 마련할 길이 없다.

▲ 전국 지방자치단체의 도시·군 계획시설 중 집행률이 가장 낮은 것은 공원이다. (그래프를 클릭하면 시설별 집행률을 볼 수 있습니다.) ⓒ 양안선

그래서 지자체들은 ‘빚’과 ‘민영화’를 대안으로 보고 있다. 지방채 발행으로 재원을 마련해 공원 부지를 매입하거나, 민간사업자가 장기 미집행 공원 부지를 매입해 70%를 공원으로 기부채납(무상으로 넘김)하고 나머지는 개발해 이익을 얻는 ‘민간공원특례사업’을 추진하려 한다.

국토교통부 등 중앙정부는 지난해 4월과 올해 5월 지자체들의 지방채 발행 부담을 줄여주는 대책을 내놓았다. 지난해 ‘제1차 부처 합동대책’은 당장 매입하지 않으면 주민 편의성이 떨어지는 우선 관리지역을 선별하고, 지방채 발행 시 이자 비용의 절반을 지원하는 것을 주요내용으로 했다. 올해 내놓은 ‘제2차 부처 합동대책’은 지방채 발행 시 이자지원율을 50%에서 70%로 올리고, 전체 일몰 면적의 4분의 1가량에 해당하는 국공유지의 일몰을 10년 미루는 것 등이 핵심이다.

그러나 권태선 ‘2020 도시공원일몰제대응 전국시민행동’ 대표는 지난달 22일 도시공원 일몰제 국회토론회에서 “지방채 이자 일부만 지원해주며 공원을 지켜내라는 것은 어불성설”이라고 말했다. 지방채 발행은 지방 정부가 빚을 내 재원을 마련하는 것인데, 지금도 중앙에 재정을 의존하고 있는 지방정부엔 큰 부담이라는 것이다. 또 신경아 청주도시공원지키기대책위원회 정책팀장은 지난달 28일 <단비뉴스> 인터뷰에서 “민간특례사업은 민간개발사업자 컨소시엄과 시의 합의가 깨지는 경우 대안이 없다”고 부정적으로 평가했다.

중앙정부 결자해지’ 대 ‘30년 동안 뭐했나’ 공방

지자체들은 공원을 지키기 위해 중앙정부가 나서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흥규 서울시 공원조성과 주무관은 “국가가 1970년도에 지정한 도시계획시설을 지방자치단체들이 90년대 중반에 아무 지원도 없이 넘겨받으며 도시공원도 떠맡았다”며 “중앙정부가 결자해지해야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김의연 국토교통부 녹색도시과 사무관은 “도시관리가 지방정부로 이관된 것이 1991년이니 거의 30년 가까운 시간이 지났다”며 “중앙정부의 책임만 있다고 말하기는 어렵다”고 했다. 그는 “현행법상 (도시계획시설은) 지방 사무이므로 국가가 공원을 조성하는 등 직접 지원하는 것은 어렵다”고 덧붙였다.

현재 장기미집행 상태인 도시공원의 일부는 1970년대 중앙정부가 지정한 게 사실이다. 1991년까지 도시공원 결정권자는 건설부(현 국토교통부)였다. 이후 도시공원 사업이 광역지방정부로 이전됐고, 2000년 7월 1일 『국토의 계획 및 이용에 관한 법령』이 개정되면서 다시 기초지방정부 관할 사무로 분류됐다. 이렇게 업무가 이관되는 과정에서 필요한 인력과 재원은 지원되지 않았다.

▲ 도시공원 일몰제 탄생의 역사. ⓒ 양안선

도시공원 일몰제 입법 이후 지방자치단체들은 사유지를 사들이는 등의 방법으로 조금씩이나마 적용대상 공원의 면적을 줄여나갔다. 국토교통부에 따르면 2020년 7월 해제 대상 공원면적은 2013년 기준 476제곱킬로미터(㎢)에서 2018년 363.7㎢로 줄었다.

▲ 전국 지자체는 지난 5년간 도시공원 일몰제 적용대상 토지를 113.3㎢ 줄였다. (그래프를 클릭하면 자세한 수치를 볼 수 있습니다.) ⓒ 양안선

환경단체 ‘표 안 된다고 외면 말라’ 촉구

시민환경단체들은 같은 도시계획시설인 도로처럼 중앙정부가 국비를 지원해 공원 일몰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현행법상 도로의 경우 『대도시권 광역교통 관리에 관한 특별법 시행령』에 따라 국비가 50%에서 70%까지 지원된다. 맹지연 환경운동연합 생태보전국 처장은 “도시공원은 도로, 상하수도와 달리 토지보상비용의 지원을 못박은 법이 없다”며 “도시공원 및 도시자연공원구역의 경우 중앙정부가 토지보상비용의 최대 50% 보조하도록 법에 명시하자”고 말했다.

신경아 팀장은 “청주 같은 경우 정부가 도로에는 7조를, 도시공원에는 300억원을 썼다”며 “정부가 그만큼 도시공원에 무관심했다”고 지적했다. 신 팀장은 “공원은 (선거에서) 표가 안 되기 때문에 중앙과 지방 모두 외면하고 있다”며 “정부가 책무를 다하라”고 촉구했다.

지난달 22일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도시공원 일몰제 대책 평가와 문제해결을 위한 대안 입법 토론회’에서도 지자체와 환경단체, 전문가들은 △도시공원 중 국공유지는 일몰대상에서 제외할 것 △일몰대상 도시공원 토지매입비용의 50%를 국비에서 지원할 것 △지방채 발행 이자 전액을 국비에서 지원할 것 등을 요구했다.

▲ 지난달 22일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도시공원 일몰제 토론회에서 권태선 2020 도시공원일몰제대응 전국시민행동대표가 환영사를 하고 있다. ⓒ 양안선

한편 현재 국회에는 국·공유지를 도시공원 일몰제에서 제외하자는 더불어민주당 임종성 의원 안, 국·공유지를 지방정부에 무상양여하자는 자유한국당 이헌승 의원 안 등 여러 건의 관련 법안이 발의돼 있지만 논의는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


편집 : 신수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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