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명대 인문주간] ‘다문화 공생사회를 위한 지역의 과제’ 포럼

‘다문화 공생사회 구현을 위한 지역의 과제’라는 주제의 시민인문포럼이 30일 충북 제천시립도서관에서 열렸다. 세명대 인문도시사업단이 주관하고 교육부와 한국연구재단이 주최하는 ‘인문 주간’의 5번째 행사다.

‘상호문화도시 선정 계획’ 주제 발표를 맡은 이화여대 다문화연구소장 장한업 교수는 세계적 현상으로서 ‘다문화’를 이야기하며 말문을 열었다. 장 교수는 “인간이 활발하게 국제이주를 하면서 문화적 차이가 중요해졌다”면서 “2017년 기준 국제이주자가 2억5,800만 정도로 아시아에서 가장 활발하게 일어난다”고 말했다.

▲ 충북 제천시립도서관에서 열린 시민인문포럼에서 장한업 이화여대 교수가 ‘상호문화도시 선정 계획’이라는 주제로 발표하고 있다. ⓒ 임지윤

외국인의 ‘기여’는 모르고, 홀대하는 우리

장 교수는 한국도 이제는 다문화사회라고 강조했다. 2018년 기준 국내 체류 외국인은 약 237만 명으로 외국인 비율은 4.57%이다. 경기, 서울, 경남, 인천 순으로 많다. 그는 “국내 체류 외국인 가운데 의료보험비를 납부하는 수가 120만 정도”라며 “이들이 내는 소득세도 1조2천억원에, 경제 창출 효과는 86조7000억원에 달한다”고 말했다. 그는 외국인 노동자들이 국내의 궂은일들을 도맡는다며, 이들에게서 ’기여’라는 단어를 떠올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 2010년부터 2014년까지 4년간 세계 가치관 조사에 따르면 한국은 '이민자·외국인 노동자를 이웃으로 삼고 싶지 않다'는 응답이 44.20%로, 조사대상 58개국 중 53위이다. ⓒ World Values Survey(2010-2014)

그러나 한국의 다문화 인식은 초라하기만 하다. 장 교수는 한국인들은 문화와 언어가 다른 사람들과 상호작용할 수 있는 능력을 말하는 ‘상호문화역량’이 매우 낮다고 평가했다. 2010년 스위스 국제경영개발원에서 평가한 한국의 문화적 개방성은 58개국 중 52위로 최하위 수준이었다. 2014년 세계 가치관 조사에서 '이민자∙외국인 노동자를 이웃으로 삼고 싶지 않다'는 응답이 44.20%로, 조사 대상 58개국 중 53위였다. 그는 한국이 “경제적으로는 선진국이면서, OECD 국가 중 내국인-외국인 임금 격차가 1.55배로 가장 크다”며 “한국인의 배타적인 태도와 차별이 계속된다면 여러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사회적 갈등에는 사회적 비용이 따른다. 장 교수는 호주의 인종차별을 상징하는 ‘백호주의’를 예로 들며, 에마뉘엘 엘리아스(Amanuel Elias) 박사의 연구를 인용했다. 호주는 인종차별로 2001년부터 2011년 사이에 51조원의 비용을 치렀다. 그는 외국인을 대하는 태도를 바꿔 사회적 비용을 줄여야 한다며 인식 전환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법무부∙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2028년이 되면 외국인 비율은 10.1%까지 올라갈 것으로 추산됐다.

‘공존의 다문화사회’에서 ‘상생의 상호문화사회’로

“다문화도시는 아무 도시나 되는 겁니다. 그러나 상호문화도시는 의지가 있어야 됩니다. 다문화 사회는 다양한 문화, 국적, 민족, 종교 집단들이 동일한 영토에서 함께 살지만 교류를 갖지 않습니다. 그래서 차이가 종종 부정적으로 여겨지고, 차별을 정당화하는 구실이 됩니다. 반면 의지가 필요한 상호문화 사회는 서로 인정하며 자기의 고유한 가치와 생활방식을 존중합니다. 또 교류하고 상호작용해야 하며, 공평한 관계 속에서 우열이 존재하지 않는 사회입니다.”

장 교수는 대안으로 ‘상호문화주의와 상호문화도시’를 제시했다. 그는 유럽연합과 유럽평의회에서 기치로 내건 ‘통합’은 ‘이민자들이 사회 속으로 받아들여지는 과정’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최근 유럽에서 다문화주의와 정책의 대안으로 부각되는 ‘상호문화주의’는 “다문화주의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공동운명체’라는 생각을 가지는 것”이라며 “상호문화주의에 바탕을 둔 게 상호문화도시”라고 말했다. 상호문화도시는 2008년 유럽평의회와 유럽연합이 도시 내 문화 다양성을 관리∙증진하기 위해 내놓은 도시설계∙운영 프로그램이다.

▲ 상호문화도시의 6가지 요건. ⓒ 장한업

장 교수는 상호문화도시가 되려면 매우 구체적인 실행이 필요하다면서 유럽평의회와 유럽연합이 제시한 ‘상호문화도시의 6가지 요건’을 설명했다. 그는 “전세계에 139개 상호문화도시가 있다”며 “아시아에는 일본의 하마마쓰시가 있고, 최근에는 고베시가 신청을 했다”고 말했다. 한국에는 아직 상호문화도시가 없다. 최근 경기도 안산시가 상호문화도시 신청을 준비하고 있다. 경기도 안산시에 거주하는 외국인 주민수는 2017년 기준 8만 2242명으로, 안산시 인구의 10% 이상이다.

유럽평의회와 유럽연합은 신청 도시에 상호문화도시 지표인 90개 문항의 설문을 요청한다. 구체적인 항목을 통해 시 전체의 주거, 고용, 사회서비스, 교육 등을 두루 살핀 뒤, 전문가 실사를 보내 현지 상황을 검토해 결정한다. 장 교수는 “상호 문화도시라는 건 도시의 순서를 매기는 게 아니다”라며 “단지 다양한 문화의 공존 상태가 아니라 상생을 하도록 이끌어 가기 위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외국인 주민 비율이 2.2%인 제천은 아직 상호 문화도시의 요건을 가지고 있지 않다”면서 “그러나 앞으로 지향해야 할 바는 상호문화도시”라고 말했다.

역사적 갈등이 집약된 ‘디아스포라 문학’

오랫동안 해외에 사는 한인들과 그들이 향유하는 문화에 관해 연구한 김환기 동국대 교수는 ‘코리안 디아스포라 문학의 경계의식과 트랜스 네이션’이라는 주제로 두 번째 발표를 했다. ‘디아스포라’(Diaspora)는 보통 ‘팔레스타인을 떠나 세계 각지에 흩어져 살며 유대교의 규범과 생활 관습을 유지하는 유대인을 지칭하는 말’로 인식되지만 최근에는 다른 민족의 국제 이주, 망명, 난민, 이주노동자 등을 아우르는 포괄적 개념으로 확장됐다. 김 교수는 “코리안 디아스포라, 쉽게 말해 해외에 사는 한인은 현재 대한민국 인구의 14%로 740만 명이나 된다”고 말했다.

▲ 김환기 동국대 교수가 ‘코리안 디아스포라 문학의 경계의식과 트랜스 네이션’이라는 주제로 발표하고 있다. ⓒ 임지윤

디아스포라 문학에는 조국을 떠나 세계 각지의 이국에서 정착하며 살아남기까지 각고의 힘든 삶과 현실에 타협하고 조화를 이루는 역사적 과정이 담겨 있다. 구한말 빈곤과 기근에서 벗어나려고 러시아 연해주와 중국의 동북지역, 멕시코, 북미지역 등 해외로 이주한 이들이 남긴 문학에는 민족 해방에 관한 내용이 담겨있다. 1970년대 박정희 군사정권 시절, 산업화 정책과 맞물려 추진된 중남미 지역(브라질, 아르헨티나, 파라과이)의 농업이민, 독일에 파견된 약 2만 명의 광부와 간호사들이 남긴 문학에는 반공 포로 이야기부터 한국 근현대사에서 묻혔거나 구체화하지 못한 역사를 보여준다.

‘아세아 한반도 우리나라
옥야 삼천리 화려강산
산 좋고 물 맑은 우리네 집
죽어도 진실로 못 잊겠네. 

외인이 아무리 좋다 한들
혈육의 인종과 같으려고
세기를 외국서 살지 말고 
조국에 나아가서 살아보세. 

실업과 상업을 위로 하면
내 땅과 내지에 가야 하고
가정과 자손을 사랑하면
국어와 국문을 가르치라. 

강국의 세력이 있다 한들
우리의 충성을 넘치랴고
동포의 정치를 보전하면
영원한 자유가 되리로다.’ 

<멕시코한인이민 100년사> 발췌

이민족이 선택할 수 있는 ‘세 가지 운명’

‘이민족 침입자의 철제 밑에 짓밟히는 민족 앞에서는 대개 세 가지 운명이 선택을 기다리고 있는 법이다. 그 하나는 꼬리를 치고 나서서 앞잡이 노릇을 하는 것이고, 또 하나는 나 잡아 잡수시오 하며 가만히 엎드려 있는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 하나는 분연히 떨쳐 일어나 반항을 하는 것이다. (중략) 자랑할 만한 역사를 갖지 못한 민족은 불행한 민족이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 민족은 다행이라 할 것이다. 세상에 떳떳이 내놓을 자기의 역사를 갖고 있으니까.’ <격정시대-1> 발췌

김 교수는 중국 조선족 김학철 작가가 소설 <격정시대>의 한 구절을 전하며 이민족이 선택할 수 있는 세 가지 운명에 관해 언급했다. 그는 “김학철 작가가 중국에서 항일 투쟁을 하며 수용소에 가서 다리 하나를 자를 만큼 지독한 전쟁 흔적을 가지고 살아갔지만 끝까지 민족정신을 잃지 않았다”며 “오늘날 어지러운 국제 정세 속에서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명확히 보여주는 한 부분”이라고 말했다.

디아스포라 문학이 작동하는 데는 구심력과 원심력 두 가지가 동시에 필요하다. 구심력은 민족, 전통, 귀국, 모국어 등 고향인 조국과 관련되고, 원심력은 글로벌, 현지화(귀화) 등 이민국과 관련된다. 그는 “이 두 힘의 끊임없는 작용이 일어나고 그것을 ‘경계의식’이라고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주지역에서 살아남기 위해 발버둥치던 현실 타협과 고국을 그리워하던 경계 사이에서 느낀 심리적 갈등이 문학으로 서사화한 것이다.

 
‘코리안 디아스포라 문학’에는 이민의 역사와 정체성에 관한 고뇌가 담겨 있다. ⓒ 김환기

“이민사회가 ‘주연’ 되는 ‘탈 중심화’ 필요”

김 교수는 ‘탈 중심화’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그는 “디아스포라 문학이 중요한 이유가 탈 중심이기 때문”이라며 “우리가 살아온 서울만 중심이라는 생각을 벗어나 한국 바깥인 이민사회 역시 중심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어떤 제도화한 중심 주제에서 풀려나 이민 사회와 같은 주연의 영역이 갖는 심층적 의식을 이해하고 새로운 삶을 재생산하고 창조해 나간다는 의미다. 그는 “이러한 생각이 새로운 문학의 모델을 제시하게 될 것”이라며 “고국과 이주지역 사이에서 뒤섞이고 유동하며 ‘균열적 시선’을 보여주는 디아스포라적 상상력은 한국 사회를 지배해온 순혈주의, 민족주의, 자기중심주의를 벗어나 새로운 사회문화적 패러다임을 제시할 수 있다”고 말했다.

‘탈중심화(脫中心化)란 말이 있다. 가령 우리가 살다 나온 서울을 중심이라 하고, 우리가 지금 살고 있는 한국 바깥의 이민사회를 주연(周緣)이라고 설정해 보자. 여기서 탈중심화라는 것은 이른바 서울의 중심에서 벗어나, 한국 바깥인 주연의 영역으로 이행(移行)해 버린다는 뜻이다. 우리는 ‘인간은 단일한 현상 속에 살아야 한다고 확신하는 자들’, ‘다의적인 것을 배제하고 일의적인 사상(事象)을 쫓는 자들’, ‘하나의 존재양식 속에 인간의 모든 것이 숨어 있다고 믿는 자들’과 대치하면서 중심의 영역에서 주연의 영역으로 끊임없이 월경(越境)해야 한다. 우리는 그곳에서 이성적인 질서를 교란하는 것들, 신화적인 광대의 세계, 모든 모순을 내포하고 예측불가능의 혼돈을 행위하는 비이성(非理性)의 상징(象徵) 등등, 중심의 동질적인 영역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이화(異化)된 갖가지 활성적인 요소를 만나게 된다.’ <편력(遍歷)과 회귀(回歸)> 발췌

‘시월의 어느 멋진 날에’ 취한 ‘가곡의 밤’ 

▲ 1부 행사 ‘시민과 함께하는 가곡의 밤’에서 성악 앙상블 ‘라보체’가 이탈리아 가곡인 ‘푸니푸니 푸니쿨라’를 부르며 청중과 호흡했다. ⓒ 임지윤

이날 1부 행사로는 ‘시민과 함께하는 가곡의 밤’ 행사가 열렸다. 클래식을 바탕으로 뮤지컬과 가요, 팝까지 넘나드는 성악 앙상블 ‘라보체’가 무대에 올라 청중과 함께 즐거운 시간을 연출했다. 휴대폰을 들고 동영상을 찍으며 까르르 웃는 대학생부터 진지하게 공연을 보며 생각에 잠긴 할머니까지, 제천시민들은 ‘시월의 어느 멋진 날에’ 등을 들어 귀를 호강시키면서, 외국인을 대하는 고정관념도 바꿀 수 있었다.

지난 26일부터 국제 학술세미나, 강연, 클래식연주회, 북콘서트, 전시, 역사문화기행 등을 진행해온 ‘세명대 인문주간’은 11월 3일 ‘시민과 함께하는 인문예술기행’을 끝으로 마무리된다. <단비뉴스>는 마지막 행사인 3일의 대전미술관과 청주국립박물관 ‘인문예술기행’에도 참여해 현대미술과 한국 전통문화예술을 감상하는 시민들의 소식을 전할 예정이다.


편집 : 김정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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