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케치북] ‘대면 사회’, 종말인가 환원인가?

▲ 유연지 PD

# "김미희 님의 디지털 장례식, 입장하시겠습니까?"

'32살에 고독사한 비운의 여인, 입장 인원 1300명. 부조 금액을 입력해주세요.'

A는 익숙한 듯 금액란에 3,000원을 입력한 뒤 입장한다. 2050년 정식 서비스를 시작한 '디지털 장례식'. 장례식이 실시간으로 중계되고, 지인이 아닌 사람들도 방제를 보고 장례식에 입장한다. 부조 금액은 자유, 입장 인원도 무제한이지만, 제한하는 경우도 있다. 생전에 지인 한 명 없던 사람의 디지털 장례식에 1,000명 넘는 사람들이 몰리기도 한다. A는 누구도 마주치지 않고 무엇이든 해결할 수 있는 이 사회가 마음에 든다. 밖에 나가기를 극도로 싫어하는 그는 집에서 많은 사람을 만난다. 온라인 독서토론회에서 책에 관한 깊은 대화를 나누기도 하고, 온라인 요가동호회 사람들과 실시간 요가를 즐기기도 한다. 물론 A의 캠은 꺼져있다. 그들과 얼굴을 마주 보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 "다시 사람과 사람이 마주보는 사회로!"

"장례식까지 디지털, 웬 말이냐!" "다들 나오셔서 얼굴을 마주봅시다!"

사람들을 직접 대면하지 않고도 일상생활에 불편이 없는 디지털 사회가 A는 편했다. A처럼 비대면 사회에 큰 만족을 느끼는 사람도 있지만, 반대파도 있다. 시위하는 '얼굴 있는 사회' 단체를 창밖으로 내다보던 A는 시위자 중 한 명이 위쪽을 바라보자 황급히 창문을 닫았다. A는 컴퓨터 검색창에 '얼굴 있는 사회'를 쳤다. 홈페이지에 들어가자 바로 상담원 얼굴이 떴다. 자기 얼굴도 나올까 봐 서둘러 캠을 껐다.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행복한 공동체를 지향하는 ‘얼굴 있는 사회’입니다!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안녕하세요~ 얼굴이 안 보여요!"

모든 상담원이 AI로 대체되었기 때문에 상담원이 바로 뜨는 홈페이지는 이 곳이 유일하다.

"매주 수요일 광화문에서 대면 모임이 있어요! 누구나 참여 가능하니 꼭 나와서 얼굴 보여주세요!"

A는 사이트 소개와 활동일지를 보며 ‘나도 나갈 수 있을까’ 망설였다.

# 2052년 2월, 전국의 통신이 마비됐다.

누군가는 통신업체 간부이며 ‘얼굴 있는 사회’ 회원인 50대 남성의 소행이라고 했지만, 정확히 밝혀진 바는 없다. 금방 복구될 줄 알았던 시스템은 거의 한 달 동안 마비 상태였다. '얼굴 있는 사회'의 소행이든 아니든 사람들은 이 한 달 동안 생활에 많은 변화를 맞아야 했다. 몇 십 년 전처럼 인터넷 쇼핑 대신 직접 슈퍼마켓에 가서 장을 봤고, 교수들은 학생들 눈을 맞추며 이름을 불렀다. 통신이 복구된 뒤에도 이들 중 상당수는 '오프라인’으로 생활했다. 그들은 얼굴을 마주보고 '정'이나 '공동체'가 되살아났다며 다른 이들에게도 대면 생활을 독려했다. '집순이, 집돌이 구출하기' 라든지, '나와서 밥 먹읍시다' 등의 사회운동도 늘어났다.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을 화면 밖으로 끌어내기 시작했다.

A가 활동하던 온라인 요가동호회와 독서토론회도 이 바람에 오프라인 모임으로 바뀌었다. A는 두려웠다. 사람들을 직접 만나지 않고도 활발히 소통했는데, 이제는 자신만 고립되는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다. 오프라인 모임에 나가서 사람들을 마주보기에는 아직 용기가 부족했다. 평소 친하게 지내던 요가 동호회 회원 B는 A를 끊임없이 설득했다. 오프라인으로 만나 같이 운동하고 밥 먹으며 친해진 사람들 사진을 보내주고, 화기애애하게 수다 떠는 영상도 보여주며 한 번만 나오라고 꼬드겼다.

# 한 달 고민 끝에 A는 드디어 오프라인 모임에 참석했다.

"안녕하세요... 안아름입니다... 반가워요."

순간 사람들 사이에는 정적이 흘렀다. 사람들은 아름의 얼굴을 쳐다보지 못했다. 아름의 얼굴은 남들과 달랐다. 어릴 적 사고로 얼굴 반은 형체를 알아볼 수 없게 뭉개져 있었고, 울룩불룩 튀어나온 상처 자국과 상처 때문에 자라지 않는 머리카락은 듬성듬성 나있었다. 어떤 이들은 입을 막으며 비명을 참았고, 도저히 볼 수 없었는지 고개를 돌리는 사람도 있었다. 온라인으로 친했던 B도 말을 걸지 않았다. 며칠 뒤 아름은 동호회장으로부터 앞으로 모임에 나오지 말아 달라는 통보를 받았다. 회원들이 혐오감을 느낀다는 이유였다.

▲ 가상공간보다, 오히려 현실에서 외로운 경우가 더 많다. ⓒ pixabay

# 좌절한 아름은 집에 갇혔다.

이제껏 사람들과 마주하지 않고도 행복하게 살았지만, 이제 그럴 수 없게 되었다. 극심한 우울감에 시달리던 아름은 다시 '얼굴 있는 사회' 홈페이지를 찾았다.

"얼굴이 못생긴 사람도... 나갈 수 있나요?"

"그럼요! 당신이 어떻게 생겼든, 당신은 소중하답니다."

사람들과 소통하는 걸 포기하고 싶지 않았던 아름은 다시 한번 용기를 내서 이번에는 ‘얼굴 있는 사회’ 수요모임에 참석했다. 요가동호회만큼 눈에 띄는 혐오는 없었다. 하지만 아름은 자기 옆에 앉은 이가 미간을 찌푸리는 모습을 목격했다. 매주 돌아가며 회원 집을 찾아가 함께 밥을 해먹는 이벤트를 진행했지만, 아름의 순서는 오지 않았다. ‘다음 주에’, ‘다음 달에’라는 말만 들었다.

# ' 안아름, 명복을 빕니다.'

장례식장은 텅 비었다. ‘대면 사회’를 바라는 사람들 시위로 디지털 장례식 업체는 문을 닫았고, 예전처럼 사람들은 직접 장례식장에서 추모했다. 하지만 모든 모임에서 외면받은 채 집에서 사망한 아름의 장례식장은 오가는 인파 없이 서늘했다. 장례식장 앞, 광화문에는 오늘도 '얼굴 있는 사회' 모임이 한창이다.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행복한 공동체! 여러분, 얼굴을 마주합시다!"


편집 : 윤상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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