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토크] 제천국제음악영화제 류장하 감독 추모

11일 제천시 문화회관에서 제천국제음악영화제(JIMFF) 라이브 뮤직 토크 ‘사람의 체온을 담은 필름’ 고 류장하 감독 이야기가 열렸다. 제15회 JIMFF의 특별 프로그램으로, 팝 칼럼니스트 김태훈이 사회를 맡았다. 허진호 감독(제천국제음악영화제 집행위원장)과 조성우 음악감독, 배우 최수영이 패널로 출연해 류 감독에 관한 기억을 관객들과 나눴다.

▲ 제천시 문화회관에서 JIMFF 라이브 뮤직 토크 ‘사람의 체온을 담은 필름’은 고 류장하 감독 이야기를 다뤘다. ⓒ 최유진

류장하 감독은 지난 2월 53세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류 감독은 1996년 한국영화아카데미를 졸업하고 <산부인과>(1997) 연출부, <8월의 크리스마스>(1998) 조감독을 거쳤다. 2001년 <봄날은 간다>에서는 조감독으로 시작해 각본까지 맡았다. 2004년 최민식 주연 <꽃피는 봄이 오면>을 연출하며 감독으로 데뷔했다. 이후 <순정만화>(2008) <더 펜션>(2017) 등을 연출했다.

이날 행사에서는 한국영화아카데미 동문회가 제작한 류장하 감독의 추모 영상과 디렉팅 모습이 담긴 비하인드 영상이 상영됐다. 조성우 음악감독은 류 감독이 참여한 영화의 음악을 오케스트라와 협연으로 들려주기도 했다.

“허구 없는 사람” 류장하 감독

허진호 감독은 <봄날은 간다>에서 상우(유지태 역)가 은수(이영애 역)의 자동차를 긁는 장면이 탄생한 일화를 소개했다. 허 감독은 “(류 감독이) 자기가 실연당하면 어떻게 했을지 생각하면서 나온 아이디어”라며 “(작품 속) 많은 부분에 류장하 감독의 정서가 들어가있다”고 말했다. 허 감독은 군대 선임이자 한국영화아카데미 선배로 1987년부터 류 감독과 인연을 이어왔다. 그는 “자기가 경험했던 순간을 영화로 표현할 수 있는 것”이 류 감독의 뛰어난 면모라고 강조했다.

▲ 이날 류장하 감독 이야기에서는 한국영화아카데미 동문회가 제작한 추모 영상이 상영됐다. ⓒ 최유진

“(류 감독이) 영화에서 어떤 장면과 대사를 만들었다면 똑같진 않을지라도 어딘가에서 봤거나 경험했기 때문에 그 장면을 만들었을 겁니다.”

<꽃피는 봄이 오면>의 최은화 프로듀서는 류 감독을 “허구가 없는 사람”이라고 표현한다. 최 프로듀서는 추모 영상에서 “(류 감독은) 돌아가시기 직전까지도 처음 뵀을 때도 항상 영화랑 같이 사신 분”이라며 “느리게 가더라도 황소 걸음으로 가자고 감독님이 마지막 문자메시지를 보내줬다”고 밝혔다.

영화와 감독이 보여준 ‘좋은 어른’

“사람을 미워하는 감정이 없는 거예요. 이 사람이 어떻게 돌변할까에 대한 불안감이 인간관계에서 존재하잖아요. 그런데 류장하 감독은 없어요. 함께 일하는 게, 일하러 가는 것 같지 않아요.”

조성우 음악감독은 류 감독과 <꽃피는 봄이 오면>을 함께 작업했다. 조 감독은 “음악가에게 음악영화라는 것은 굉장히 기다리는 작품”이라고 말했다. 그는 “조감독이 감독이 되면 변하기도 하는데 그런 게 없었다”며 류 감독의 데뷔작에 참여한 이유를 들려줬다. 덧붙여 “워낙 선한 사람이라 잘됐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드니까 이 영화의 음악은 정말 잘해야겠다고 생각했다”고 회고했다.

조성우 음악감독은 제작자로서 류 감독에게 <순정만화>에 이어, 다큐멘터리 영화 <뷰티플 마인드>의 연출을 제안했다. 장애인과 비장애인 아이들로 구성된 오케스트라 ‘앙상블’을 다룬 이야기다. 조 감독은 “류장하 감독이 만들겠다고 하면 (영화화에) 들어가고 아니면 못 들어 간다는 게 전제조건이었다”며 제작 일화를 소개했다.

▲ 조성우 음악감독은 고인이 참여했던 영화들의 음악을 오케스트라와 협연했다. ⓒ 최유진

류장하 감독 작품에 관해 배우 최수영은 “어른에 대한 고민이 항상 있는 것 같다”며 “어른이 되고 싶지 않은데 되어있는 상태에 대한 고민 같다”고 말했다. 그는 10여년 전 <순정만화>에서 재기 발랄한 여고생 ‘다정’ 역을 맡아 영화계에 데뷔했다. “다정이라는 캐릭터가 자기 표현에 능숙한 요즘 여고생 같았다”며 “류장하 감독은 감성적으로 앞서간 분”이라고 덧붙였다.

추모 행사를 찾은 관객 유명연(29) 씨는 ”(류 감독은) 피터팬 같은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며 “어린아이 같은 순수함이 있었기 때문에 그런 작품들을 만드신 것 같다”고 말했다. 한여울 영화감독은 “함께 작업했던 분들 이야기를 들어보니 류장하 감독님이 더 진정성 있게 느껴졌다”며 “사람에 대한 따뜻한 시선을 지녔던 분 같다”고 말했다. 한 감독은 “메시지를 상징적으로 전할 수 있는 음악영화가 한국에서 많이 만들어지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번 제천국제음악영화제는 류장하 감독의 3개 작품을 추모 상영했다. 그의 대표작 <꽃피는 봄이 오면>에는 산골 아이들과 음악으로 하나되는 트럼펫 연주자 현우(최민식 역)가 등장한다. 현우는 비 내리는 탄광촌에서 열정적으로 연주하는 아이들을 보며 기쁘게 지휘한다. 교향악단에 들어가지 못해 좌절했던 그는 “나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고 싶어”라고 말한다.

류장하 감독은 영화에서 지극히 ‘선한 어른’을 그려냈다. 어쩌면 그것이 곧 자신의 모습이 아니었을까? 촬영 현장에서 스탭들을 인간적으로 존중했다. 그와 함께 작업한 시간이 가장 행복했다는 촬영감독, 음악감독이 있다. 허진호 감독은 “류 감독을 한마디로 표현하면 참 좋은 사람”이라고 말했다. 거짓말 같은 잔혹한 일들이 벌어지는 요즘이다. 믿기 힘들만큼 착하고 순수한 사람들이 많아지길 바라게 된다. 류장하 감독을, 그의 영화를 언제든 다시 떠올리고 싶은 이유다.

“헤어지기도 하고 다시 만나기도 하고 물론 그런 거지만, 그 헤어지는 게 너무 싫었어요. 그래서 든 생각이, 나는 영화를 만들면 다시 만나는 사람들 이야기를 만들고 싶다. 누군가에게 전화 한 통화를 하고 싶은 마음이 생기는 영화, 그런 영화를 찍고 싶었습니다.”

▲ 류장하 감독 추모 영상의 한 장면. 류 감독이 트럼펫을 연주하며 즐거워하고 있다. ⓒ 제천국제음악영화제, VLIVE

편집 : 황진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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