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으스스한 카페엔 귓속말이 산다
[맛있는 집 재밌는 곳] 카멜레존 ③ 부산 구 백제병원 카페 브라운핸즈
2019년 07월 15일 (월) 12:24:47 박서정 기자 outsidebox94@gmail.com

어머니는 팔구십년대에 메리놀 병원에서 5년을 일했는데도 근처에 있는 ‘그곳’을 최근에야 알게 됐다고 한다. 그럴 만도 했다. 그곳은 시끌벅적한 부산역 앞 대로 건너편 골목안에 있다. 외관으로만 보면 특징 없는 오래된 건물로만 보여 사연 있는 곳이라 생각하기 힘들다.

   
▲ 부산 중구 초량동 467번지 구 백제병원 건물. 30년대 중국집 봉림각 개조 당시 모양을 낸 대문 쪽 벽돌 아치와 3-4층 창문 사이에 있는 이중 다이아몬드 문양이 눈에 띈다. ©️ 박서정

부산 최초의 근대식 개인병원

그곳은 처음에 부산 최초의 근대식 개인병원이었다. 일본 오카야마현에 있는 오카야마 의학전문대학을 졸업하고 돌아온 30대 젊은 의사 최용해가 5층 건물을 세우고 백제병원을 개업했다. 일본인∙독일인 의사에 간호사까지 30명이 넘는 의료진이 근무했고, 40여개 병상을 갖춘, 당시로서는 큰 규모 개인병원이었다. 그러나 1932년 최용해와 일본인 아내는 돌연 병원 문을 닫고 일본으로 건너가 종적을 감추고 건물은 동양척식회사에 넘어간다.

   
▲ 구 백제병원 카페 벽에 붙어 있는 백제병원 광고지면. ©️ 박서정

화려하게 개업한 병원이 갑자기 문을 닫아서 그런지, 백제병원에 얽힌 뒷이야기가 많다. 따로 지은 건물 두 채를 붙인 구조라서 완공∙개업 시기가 모호해서일까? 최용해가 백제병원을 개업한 게 1922년이라는가 하면 1927년이라고도 한다.

건물이 어떻게 동양척식회사에 넘어가게 됐는지도 설이 분분하다. 유력한 가설은 최용해가 인체 표본을 보관하고 있던 게 '돈 없는 환자를 죽여 옥상에 놔둔다’는 기괴한 소문으로 부풀려져 병원이 망했다는 이야기다. 다른 이야기로는 일본인 장인이 최용해를 위해 백제병원을 지어줬는데 최용해가 일본으로 돌아가면서 도로 장인 소유로 돌렸다는 말도 있고, 동양척식회사 토지조사에 걸려서 빼앗겼다는 주장도 있다. 이런 백제병원의 수수께끼같은 역사가 사람들 사이에 귓속말로 퍼지면서 낡은 건물과 함께 상상력을 자극한다.

중국집→일본군장교숙소→영사관→예식장→카페로

어떤 경로로 사들였건, 동양척식회사는 1933년 이 건물을 중국인 양모민에게 판다. 양모민은 내부를 개조해 중국 요릿집 봉림각을 연다. 지금도 그때 더한 장식과 바꾼 구조의 흔적을 건물 안팎에서 찾을 수 있다. 이전 주인처럼, 양모민 역시 태평양 전쟁이 심상치 않은 양상을 보이자 1942년 갑자기 요릿집 문을 닫고 모국으로 돌아간다. 건물은 일본 적월부대 장교들이 숙소로 쓰다가 해방 뒤에는 부산치안대사령부 사무실과 대만 임시영사∙대사관을 거쳐 신세계예식장이 되었다. 1972년 화재로 내부가 일부 소실되는 바람에 5층을 허물어 지금처럼 4층 건물이 됐다. 2014년 말 등록문화재로 지정됐으며, 그 다음 해 여름 수제디자인샵 브라운핸즈에서 1층을 개조해 카페로 운영하고 있다.

   
▲ 카페 안에서 바라본 구 백제병원 현관. 어둡고 스산한 느낌을 준다. ©️ 박서정

병원 현관으로 쓰던 문을 열고 들어 가면 좀 어둑어둑한 분위기에 병원에서 느낄 수 있는 서늘함 같은 것이 온몸을 감싸는 듯하다. 몇 발짝 들어서서 허리 높이 정도 되는 철제 계단을 딛고 올라서면 벽체를 뚫어 만든 카페 홀 입구가 나타난다. 마치 동굴 안으로 들어서는 듯한 기분이다.

   
▲ 카페 내부는 옛날 있던 그대로 철골과 벽돌면, 내리닫이창문 등이 남아 있다. ©️ 박서정

옛날 벽체를 그대로 노출하고 쇠창살로 만든 창문도 그대로 둬 나름대로 운치가 있어 보인다. 실내 조명은 어둡지만 창문으로 들어오는 자연광이 실내를 화사하게 만들어 준다. 내부구조는 목조건물인데 중간에 복도를 두고 좌우에 방을 만든 형식이다. 차 한잔을 마시면서 실내를 찬찬히 살펴보는 것만으로도 개화기 병원의 진료 모습이 떠오르는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 쇠창살문으로 바깥을 바라보면 병실에서 창밖을 내다보는 듯한 착각이 생길 것만 같다.

   
▲ 카페 실내에는 옛 모습 그대로 철골구조물이 남아 있다(왼쪽). 현관을 들어서면 허리춤 높이 철제계단을 올라가 동굴 입구처럼 돼있는 문을 지나면 홀이 나온다. ©️ 박서정
   
▲ 카페는 건물이 근대식 병원이던 역사를 반영한 듯 병원 식판처럼 보이는 소품을 활용해 서비스를 한다. ©️ 박서정

부산 개항기 역사를 품고 있는 건물이 젊은이들이 좋아할 독특한 분위기의 카페로 변모한 것이 ‘옛것을 본받아 새로운 것을 창조한다’는 법고창신(法古創新)의 뜻도 있는 듯하다.

   
▲ 번호가 붙어있는 낡은 문과 약간은 음산한 분위기의 복도가 근대 병원 건물이던 과거를 실감하게 한다. ©️ 박서정

2층 옛 병동 ‘펀몽 갤러리’에선 기념품 전시판매

카페 홀 밖으로 나가 현관문 쪽으로 보면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이 나온다. 올라가면 ‘즐거운 꿈’을 뜻하는 ‘펀몽’이란 갤러리가 있다. 원형은 유지하되 리모델링을 한 1층 카페와는 달리 2층 갤러리는 원래 벽면에서 벽지만 떼어 냈다는데 빈티지한 느낌이 1층 보다 훨씬 진하다. 오상열 작가가 글씨를 아름답게 쓴 캘리그라피 작품들을 전시·판매하고 있다. 작가의 캘리그라피 작품 중 이런 글귀가 눈에 들어온다.

‘마음이 칠흑일 때 차라리 마음의 눈을 감고
조금의 시간이 흐르길 차분하게 기다린다면
곧 사물을 읽을 수 있고 마음도 읽을 수 있다.’

뭔가 답답하고 막막할 때 구 백제병원 카페에 와서 마음을 치유하는 기분으로 마음의 눈을 감고 시간이 흐르길 차분하게 기다려 보자.

   

▲ 구 백제병원 2층에 있는 ‘펀몽’ 갤러리 출입문(위)과 갤러리 내부 모습(아래). ©️ 박서정


카멜레존(Chameleon+Zone)은 카멜레온처럼 변하는 현대 소비자들의 욕구에 맞춰 공간의 용도를 바꾸는 것을 말한다. 사람들은 이제 밖에 나가서 여가시간을 보내거나 쇼핑을 할 때도 서비스나 물건 구매뿐 아니라 만들기 체험이나 티타임 등을 즐기려 한다. 카멜레존은 협업, 체험, 재생, 개방, 공유 등을 통해 본래의 공간 기능을 확장하고 전환한다. [맛있는 집 재밌는 곳]에 카멜레존을 신설한다. (편집자)

편집 : 박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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