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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구의 불빛 아래 깊어 가는 로망스
[맛있는 집 재밌는 곳] 카멜레존 ① – 부산 쌀창고 카페 ‘NOTICE 1950’
2019년 06월 16일 (일) 12:36:54 박서정 기자 outsidebox94@gmail.com
카멜레존(Chameleon+Zone)은 카멜레온처럼 변하는 현대 소비자들의 욕구에 맞춰 공간의 용도를 바꾸는 것을 말한다. 사람들은 이제 밖에 나가서 여가시간을 보내거나 쇼핑을 할 때도 서비스나 물건 구매뿐 아니라 만들기 체험이나 티타임 등을 즐기려 한다. 카멜레존은 협업, 체험, 재생, 개방, 공유 등을 통해 본래의 공간 기능을 확장하고 전환한다. [맛있는 집 재밌는 곳]에 카멜레존을 신설한다. (편집자)

‘대교’(大橋). 지금은 ‘영도대교’라 부르지만 예전에는 그냥 ‘대교’였다. 광안대교나 거가대교 등 부산에 큰 다리가 하나둘 들어서기 이전 이야기다. 영도대교는 중앙동에서 영도로 건너 가는 통로다. ‘대교창고’는 그 다리가 뭍에서 시작하는 지점 근처에 있다. 대교가 대교이던 시절에는 중앙동이 말 그대로 부산의 중앙이었으나 지금은 중요한 거점들 사이에 끼어있는 애매한 동네다.

   
▲ 부산 중앙동 부두 뒷길에 있는 카페 ‘NOTICE'. 1950년대 쌀 창고로 사용하던 건물을 그대로 보존해 카페와 문화공간으로 만들었다. ©️ 박서정

부산 지하철 1호선, 외국인들이 모여 사는 초량역, 기차가 사람들을 쏟아내는 부산역을 지나면 중앙역이다. 그 다음 역은 구도심 남포역이다. 초량에서 중앙동까지 대로를 따라 쭉 걷다 보면 ‘용두산 엘레지’ 같은 옛 노래가 어울릴 나이 든 행인들이 눈에 자주 띈다.

부둣가 뒷골목의 쌀창고 카페

젊은이들 통행이 많지 않은 애매하고 좀 을씨년스러운 이 동네에 젊은 취향을 저격하는 카페가 있다. 중앙역 2번 출구에서 부두 쪽으로 가다 오른쪽으로 꺾어 100m쯤 가면 왼쪽으로 붉은 벽돌 3층 건물이 보인다. 부두 뒷길 자체가 인적이 뜸한 무채색 골목인데다 오랫동안 빛이 바랜 창고 건물이라 무심코 지나칠 수 있는 곳이다. 카페 ‘NOTICE’. 붉은 벽돌 위에 하얀 페인트로 음각한 카페 이름 아래 하얀 페인트로 ‘SINCE 1950’이란 문구가 있다.

   
▲ 건물 외벽에 화재예방을 위해 써 놓은 '禁煙’(금연) 표지. 언제 써놓은 건지 알 수 없으나 왼쪽 아래 파란색 창에 여러 나라 말로 표기된 인사말이 대조적이다. ©️ 박서정

카페가 1950년부터 있었던 것은 아니다. 이곳은 일제강점기에 일본인들이 살던 동네였다. 여기에 ‘대교창고’로 불리던 쌀 창고가 지어진 게 40년대인지 50년대인지는 의견이 분분하지만 어쨌든 카페 이름은 ‘노티스 1950’이다. 이 건물은 보세 창고로 쓰이다 2013년에서 2018년까지 벼룩시장과 공연회 또는 강연회를 열었던 문화복합공간 ‘비욘드 가라지’를 거쳐 지금의 카페 ‘노티스’가 됐다.

쌀 창고로 지어졌던 건물인지라 안으로 들어서면 80~90평은 돼 보이는 툭 터진 넓은 공간이 시원하게 펼쳐진다. 1층은 문화 행사나 작은 공연 등을 할 수 있는 공연전시장으로 꾸며놓았다.

   
▲ 카페 NOTICE의 2층 공간. 부두 쪽으로 난 창문들을 따라 나란히 놓인 테이블에 마주 앉은 이들이 정겨워 보인다. 아래 사진은 카페 2층 창문을 통해 바라보이는 부산항 연안부두. ©️ NOTICE 1950

부다페스트 루인 펍 연상시키는 폐건물 재생

“이곳은 쌀창고, 보세창고, 비욘드 가라지를 거쳐 많은 사람들에게 즐거움을 주는 공간으로 발전했습니다. 노티스에서 다양한 음식, 문화, 사람을 체험하세요!”

카페 입구에 붙어 있는 안내문을 읽고 2층으로 올라서면 탁 트인 공간에 테이블을 널찍널찍하게 배치해 둔 공간이 펼쳐진다. 조명을 낮춰 놓아 처음에는 어둡다는 생각이  들다가 적응되면 아늑한 분위기에 녹아들 듯 마음이 착 가라 앉는다. 내부는 쌀창고로 사용하던 벽면과 천정을 그대로 사용하고 있어 좀 어둡다는 느낌을 준다. 허름한 빈집이나 낡은 공장 등을 개조해 만든 헝가리 부다페스트의  ‘루인 펍(Ruin Pub)’을 연상시키는 분위기다.

그동안 우리나라 카페들은 대개 새로 지은 큰 건물 1, 2층에 들어 서거나 별도 건물을 지어 만든 것이 대부분이었다. 그랬던 것이 최근 오래된 산업유산인 낡은 건물이나 시설 등을 개조하거나 리모델링해서 카페나 문화공간으로 만든 곳이 늘어 나고 있다. 카페 NOTICE도 오래된 쌀 창고를 개조해 만든 ‘루인(ruin= 파괴된 건물, 유적, 폐허) 카페’라 할 수 있다.

   
▲ 카페 NOTICE에서 바라본 부산항 연안부두. 해가 저물면서 항구의 불빛이 하나 둘 켜지면 마음의 기항지를 찾아들 듯 젊은이들 발걸음이 잦아진다. ©️ 박서정

창고였던 건물이라 창이 없는 것이 특징인데, 부두쪽으로는 벽을 뚫고 환기창 만한 유리창을 나란히 만들어 놓아 창밖으로 연안부두와 부산항을 내다 볼 수 있다. 이곳 분위기는 시험공부나 과제물을 하기도 하는 여느 카페와는 사뭇 다르다. 어둡고 아늑한 분위기라 대부분 연인끼리 와서 커피를 마시고 이야기를 주고 받는 커플이 대부분이다. 낮에도 전망이 나쁘지 않지만 밤이 더 좋은 카페다. 짙어지는 어둠속에 항구의 불빛이 켜지면 창가에 마주 앉은 연인들의 사랑도 깊어 간다.

3층 쌀창고 사무실은 별실과 룹탑 카페로

   
▲ 카페 NOTICE 3층 단체실. 아래는 카페 옥상에서 보이는 북항대교 야경. ©️ 박서정

카페 3층은 2층으로 된 건물 옥상에 옥탑방처럼 만든 쌀창고 사무실을 그대로 보존해서 별실처럼 사용한다. 전체 공간이 하나로 탁 트여진 1, 2층과 달리 3층은 공간 전체가 세 개의 작은 방으로 나뉘어져 있다. 방문을 열고 옥상으로 나가면 시원한 바닷바람이 코를 간지럽힌다. 간이의자와 테이블이 마련돼 있는 룹탑형 야외 카페다. 옥상에서 바라보는 연안부두 앞바다 풍경도 좋다. 밤이 되면 멀리 북항 가운데를 가로질러 광안리 쪽으로 넘어가는 북항대교의 첨탑이 녹색 불빛을 뿜으며 솟아있는 모습이 보인다.

   
▲ 카페 NOTICE 3층 옥상 룹탑 카페. 바로 앞에 부산항 연안부두에 여객선이 정박해있는 모습이 보인다. ©️ 박서정

카페 노티스에서는 차와 다과, 디저트를 팔지만 1층은 문화행사 등에 대관도 하고, 2층과 3층 카페에서도 북토크나 사진 전시회도 연다. 이곳에서 주로 파는 건 식음료 이전에 문화 이미지다. 이 문화는 청장년의 문화다. 중앙동 거리가 주는 나이 든 이미지나 문화가 아니다.

   
▲ 카페 노티스 북토크 공지. ©️ 박서정

과거와 현재 이어주는 쌀 과자

   
▲ 카페 노티스 매대 가장 위에 진열돼 있는 쌀과자. ©️ 쏘엔느

카페에서는 쌀과자를 병에 담아 판다. ‘대교창고’가 원래 쌀창고로 시작한 데서 착안한 것이다. 특별한 맛이 있는지는 모르지만 사람들은 쌀창고에 대한 향수랄까, 그런 마음으로 쌀과자를 사가기도 한다. 부산이란 같은 도시에서 자랐는데도, 아버지는 뻥튀기 조각 하나 손에 들고 개천가에 앉아 노을을 봤고, 나는 쌀과자가 담긴 병을 들고 스카이라인 아래로 사라져가는 해를 본다. 루인 카페 노티스는 젊은이들과 나이 든 세대를 연결하는 과거와 미래의 만남이다.

   
▲ 적당히 낡은 건물 기둥에 적당히 ‘힙’해 보이는 스피커(왼쪽)와 카페 3층 방의 와인병들과 ‘Welcome to Busan’ 낙서가 눈길을 끈다. ©️ 박서정

편집 : 임세웅 기자

[박서정 기자]
단비뉴스 청년부, 전략기획팀 박서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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