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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기업·은행도 은밀히 ‘학교 줄 세우기’
[지방대 위기와 혁신] ⑦ 채용과정 차별
2019년 07월 12일 (금) 00:25:58 장은미 임형준 박선영 곽영신 기자 josinrunmi@naver.com

부산지역 사립대에서 국제무역경제학을 전공한 진혜정(25‧가명)씨는 한국은행, 산업은행 등 금융권 공기업에 취업하길 희망한다. 입사경쟁이 심하지만 민간 대기업에 비해 지방대 차별이 조금은 덜하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있어서다. 진씨의 동기들도 마찬가지라고 한다.

“교수님들도 ‘기분 나빠할 일이 아니라 이게 현실’이라며 ‘민간 대기업은 너희 같은 애들 염두에 두지 않는다’고 이야기를 하셨어요. 대기업은 서류에서 면접단계까지 학교별로 레벨을 나눠서 점수를 준다는 말도 주변에서 들었어요. 공기업은 블라인드 채용을 많이 한다고 하니 사기업보다는 제 능력을 공정하게 평가해줄 것이라는 기대를 하게 됩니다.”

공공부문 입사에서도 ‘대학 서열’ 점수화

하지만 공기업 채용의 실상을 보면 진씨는 좌절감을 느낄지도 모른다. 지난 2017년 ‘범정부 공공기관 채용비리 특별대책 본부’가 275개 공공기관의 과거 5년 채용 전반을 살핀 결과, 공직 유관단체를 포함해 총 1190개 조직에서 4788건의 비리가 적발됐다. 이 중 중소기업진흥공단, 국립중앙의료원, 서울대병원, 한국수출입은행 등은 지방대생을 명백히 차별한 것으로 나타났다.

   
▲ 2017년 서울교통공사 등의 채용비리 사건을 계기로 구성된 ‘범정부 공공기관 채용비리 특별대책 본부’가 지난해 1월 공공기관 채용비리 특별점검 후속 조치 및 제도개선 방안을 발표하고 있다. ⓒ 기획재정부

중소기업진흥공단은 2012~2013년 채용 당시 전국 4년제 대학 187개교를 본교와 분교, 주·야간으로 세분화해 최고 15점부터 최저 5점까지 차등적으로 점수를 부여했다. 예를 들어 중앙대, 경희대 등 서울권 대학이 14점이라면 부산대나 경북대 등 지역 국립대에는 12점을 주었다.

국립중앙의료원도 2016년 6급 신입 간호직 채용 때 서울 시내 4년제와 국립대, 경기도 및 광역시 소재 4년제 대학, 지방 4년제 대학으로 분류해 대학 성적을 차등 적용했다. 서울대병원도 2013~2017년 11차례 채용시험에서 출신학교별 등급을 연도에 따라 4~6등급으로 나눠 성적 가중치를 다르게 적용했다. 지방대생은 하위등급을 받아 손해를 볼 수밖에 없었다.

한국수출입은행은 2011년~2013년 채용 때 출신 대학교의 ‘등급’에 따라 1에서 0.8의 가중치를, 전문대와 고등학교는 각각 0.75와 0.7의 가중치를 주는 방식으로 학력과 학교를 차별했다. 2013년 하반기 채용을 기준으로 분석했을 때 학교별 가중치를 적용하지 않으면 상위 6개 대학 출신 서류전형 합격자 수가 450명에서 278명으로 38%가량 줄어드는 것으로 나타났다.

출신학교 13등급 차등, 면접순위 조작도

취업준비생들이 ‘공기업보다 훨씬 심하다’고 인식하고 있는 민간 대기업의 채용 관행은 어떨까. 최근 5년간 보도를 확인한 결과 케이이비(KEB)하나은행 등 은행권 3곳, 대우조선해양 등 대기업 2곳, 중견기업 홈앤쇼핑 등의 채용비리가 수면 위로 드러났다.

   
▲ 출신 대학에 인위적인 등급을 매겨 지방대 출신을 차별한 사실이 드러난 신한은행과 KEB하나은행. Ⓒ SBS CNBC, 연합뉴스TV

KEB하나은행의 경우 지난 2013년 채용에서 출신학교를 13개 등급으로 나눠 차등적인 점수를 적용했다. 이 과정에서 면접순위를 조작하거나 학교에 따라 탈락자가 합격자로 바뀌는 일도 있었다. 보도에 따르면 이 사건으로 기소된 함영주 당시 행장은 지난해 8월 재판에서 “하나은행은 이윤 추구를 목적으로 하는 상법상의 단체로서 사기업의 자율성을 바탕으로 채용의 재량을 지닌다”며 “제삼자가 보기에 합리적이지 않다고 해서 형법의 잣대를 들이대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항변했다.

신한은행도 2013~2016년 신입행원 채용 때 서울 최상위권, 서울권, 지방소재 대학으로 나눠 지원자의 학점 조건을 차등화했다. 서류전형에서 자동 탈락하는 기준점을 서울 최상위권 대학은 3.0으로, 지방소재 대학은 3.5로 설정하는 식이었다.

대우조선해양은 서울 최상위권 대학은 1군, 지방중위권은 4군 등 총 5개군으로 지원자의 대학을 나눠 각 직군별 서류통과 비율을 할당했다. 삼성그룹은 2014년 신입사원 선발 때 ‘대학별 총장‧학장 추천제’를 도입해 서울과 지방대학의 추천할당 인원을 차등화하려다 논란이 일자 포기했다.

   
▲ 최근 5년간 언론에 보도된 채용과정의 지방대 차별 주요 사례. 사건이 일어난 시기와 언론보도 시기엔 차이가 있다. ⓒ 임형준

전자제품 ‘브랜드’처럼 대학 ‘간판’ 고르기

시민단체인 ‘교육을바꾸는새힘’의 김형태 대표(서울학교안전공제회 이사장)는 지난 4월 23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에서 이상민, 도종환 의원(더불어민주당)과 함께 주최한 ‘출신학교 차별금지법’ 토론회에서 이 같은 현실을 강도 높게 비판했다.

“대학 ‘간판’으로 인생이 결정되는 부끄럽고 낯뜨거운, 야만적인 상황이 버젓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학력과 학벌로 사람을 차별하는 것은 인종, 남녀, 종교, 연령과 같은 엄연한 인간차별 행위이고 심각한 인권침해입니다.”

   
▲ 김형태 교육을바꾸는새힘 대표가 ‘출신학교 차별금지법’ 토론회에서 “채용과정의 학력·학벌 차별은 심각한 인권침해”라고 성토하고 있다. Ⓒ 사교육걱정없는세상

경북지역 4년제 대학을 졸업하고 서울에서 공기업과 언론사 시험을 준비하는 김다인(27‧가명) 씨는 얼마 전 채용설명회에서 만난 중견정보기술(IT)기업 인사담당자의 말을 잊을 수 없다고 회고했다. 그가 지방대 출신인 줄 모르고 ‘학교에 따라서 등급을 나누고 가점을 다르게 부여한다’고 아무렇지 않게 말했다는 것이다. 김씨는 “채용시장에서 지방대생의 입지가 그렇다는 걸 알고 인(in)서울 대학으로 편입 도전도 했지만 잘 안됐다”며 “취업과정에서 이렇게 좌절감을 느끼다 보니 스스로 한계를 규정하게 된다”고 털어놓았다.

실력주의에 기반한 불평등 문제를 교육자의 시각에서 풀어낸 <실력의 배신>의 저자인 박남기(59) 광주교대 교수는 지난달 18일 <단비뉴스> 전화인터뷰에서 “기업들이 학교를 보고 채용하는 것은 편의적 발상”이라고 꼬집었다.

“(이런 채용 방식은) 공정성이나 사회정의 차원에서 타당하지 않습니다. 마치 핸드폰을 살 때 애플이나 삼성과 같은 상품명을 보고 고르듯, 대학 이름이 일종의 상품명 노릇을 하는 셈이죠. (지금까지) 학벌을 보고 채용을 했는데 나쁘지 않았다는 경험 또는 채용의 편의성이 작용해왔던 것이죠. 그러나 사람은 대량생산된 전자제품이 아닙니다. 대학생들 간에도 차이가 있어요. 채용을 할 때도 개인의 특성을 볼 수 있도록 기업이 노력해야죠.”

취준생들 사이 ‘기름집은 학벌 따진다’ 등 소문 

경북의 한 사립대를 졸업하고 외국계 기업에 다니다 재취업을 준비 중인 김정훈(30‧가명)씨는 지방대 출신을 받아줄 것 같지 않은 회사에는 아예 지원도 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는 “(온라인) 취업커뮤니티에서 에스케이(SK), 구글이나 ‘기름집(정유회사)’은 학벌 좋은 사람만 뽑는다는 등의 얘기들이 오간다”고 전했다.

온라인 구인·구직사이트 잡코리아가 지난해 2월 취업준비생 887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 ‘출신학교 소재지로 인해 취업에서 불리할 것이라고 생각한 적이 있느냐’는 질문에 응답자의 54.7%가 ‘그렇다’고 답했다. 그중 지방 군소도시 출신의 응답이 66.3%로 가장 높았다.

   
▲ 지난 5월 서울 중구 서울시청년일자리센터에서 열린 채용박람회에서 한 구직자가 참여업체와 면접을 보고 있다. 일부 채용박람회에서는 기업 인사담당자가 ‘출신 대학 등급에 따라 가점을 달리 부여한다’며 지방대생 차별을 당연시하는 발언을 하기도 한다. ⓒ 장은미

‘출신학교 차별금지법’ 국민 10명 중 8명 찬성

시민단체 ‘사교육걱정없는세상(대표 송인수)’이 2017년 여론조사기관 리얼미터에 의뢰해 전국 만 19세 이상 시민 1008명에게 ‘출신학교 차별금지법’에 대한 찬반을 물은 결과 81.5%가 '매우 찬성' 또는 '찬성하는 편'이라고 답했다. 반대는 13.5%에 그쳤고, 잘 모르겠다는 응답이 5.0%였다.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이 요구하는 출신학교 차별금지법은 서류와 면접 등 채용과정에서 출신학교 정보를 요구할 수 없도록 하고, 학교에 따른 차등 점수 부여를 금지하는 것이 핵심이다. 이 법안은 오영훈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2016년 대표 발의했으나 아직 법안소위에서조차 논의되지 않고 있다. 이 단체는 지난달 15일 서울 광화문 광장과 청와대 앞 분수광장에서 집회를 여는 등 지지 여론을 확산시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 지난달 15일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사교육걱정없는세상 회원 50여명이 출신학교 차별금지법 제정을 촉구하는 집회를 하고 있다. ⓒ 사교육걱정없는세상

사교육걱정없는세상 김은종(41) 선임연구원은 지난 5월 12일 <단비뉴스> 전화인터뷰에서 “우리 사회가 학벌 프레임의 환상을 깨야 한다”고 강조했다.

“지금 대학의 서열화는 대학 내 경쟁력이나 학과 특성화 등을 중심으로 이뤄진 것이 아니라 입시 성적에서 나왔어요. 그 사람이 대학에 들어가서 어떤 준비를 하고 직무능력을 갖추기 위해 어떤 노력을 했는지 드러나지 않아요. 또 학력이 곧 능력이라는 강력한 프레임이 깨져야 해요. 지금의 학벌은 부모의 경제적 배경까지 포함되는 부분이 있습니다. 공정한 경쟁으로 보기 힘든 부분들이 있어요.”

‘지역인재 할당’과 ‘블라인드 채용’은 답이 될까

지난달 27일 구인사이트 사람인(www.saramin.co.kr)이 구직자 627명을 대상으로 ‘불공정한 채용 경험 여부’를 조사한 결과 절반이 넘는 51.7%가 ‘그렇다’고 답했다. 특히 불공정성을 느낀 부분은 복수응답으로 나이(60.2%)와 학벌(45.4%), 가족직업(45.4%)이 꼽혔다. 구직자들은 공정한 채용을 위해 평가기준 공개(24.9%)와 블라인드 채용 도입(21.7%) 등을 대안으로 지적했다.

더불어민주당 도종환(64) 의원은 지난 4월 22일 ‘지방대학 및 지역균형 인재 육성에 관한 법률’ 일부 개정 법률안을 대표 발의했다. 주요 내용은 공공기관의 신규 채용인원 중 40%를 지역인재로 뽑도록 의무화한다는 것이다.

도종환 의원실 박영진 비서관은 지난 10일 <단비뉴스> 전화인터뷰에서 “지방대육성법 1조에 명시된 ‘지방대학의 경쟁력 강화 및 지역 간의 균형 있는 발전’이 보다 잘 시행되기 위해서는 권고를 넘어 의무 시행의 필요성이 있다”고 법안 발의 배경을 설명했다. 교육격차가 소득격차로, 또 지역격차로 악순환하는 상황에서 이런 제도를 통해 지역 청년들이 지역에서 공부하고 일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주기 위해서라는 것이다.

물론 지역인재 할당제에 대해서는 반대 여론도 있다. 한양대를 졸업하고 로스쿨 진학을 준비하고 있는 정유진(28‧가명)씨는 “국민의 삶의 질과 관련된 공공서비스를 제공하는 공기업에서 (지역출신에게 높은 비중으로) 할당을 해버리면 공공서비스의 질이 낮아질 수 있으니 반대한다”고 말했다. 그는 “공기업이 가치 평등을 실현하기 위한 수단이 되기보다는 공적인 업무 제공을 위한 목적을 잘 충족할 수 있어야 한다”며 “지방을 살리자는 취지는 동의하지만 지방대생들에게 인턴십 기회를 제공하는 등 다른 방식으로 접근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박남기 교수도 지방대생 할당제와 블라인드 채용 등에 대해 심층적 고민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지방대생 할당제가 지방대를 살리는데 보탬이 되겠지만 같은 지방대생이라도 가정환경이 좋은 이들이 어려운 학생들보다 (취업 준비 여건이 잘 갖춰져) 이 제도의 혜택을 볼 확률이 높다”며 “이런 조건을 고려하지 않으면 사회계층을 영속화하는데 기여할 수 있다”고 진단했다. 박 교수는 “블라인드 채용도 초기에는 다양한 인재를 뽑는 데 도움이 되겠지만 시간이 지나면 명문대생들이 그 방식에 대비하기 때문에 장기적으로는 지방대생 채용이 늘어나는데 한계가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한 대학 출신 10%로 제한하는 ‘학벌철폐법’ 제안

박 교수는 대안으로 일명 ‘학벌철폐법’을 제안했다. 공기업, 공무원 등 공공부문에서 사람을 뽑을 때 한 대학 출신자가 10%를 넘지 못하도록 하는 입법화하자는 것이다. 그는 “만약 서울대생이라면 이 법이 불리하니까 지방대로 갈 수도 있을 것이고 소위 명문대생들이 공무원으로 안주하는 대신 창업과 같은 도전적인 일들을 하라고 격려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 박남기 교수는 출신대학으로 사람을 차별하는 현실을 바꾸기 위해 ‘학벌철폐법’을 도입하자고 제안했다. ⓒ 박남기

저서 <한국의 학벌, 또 하나의 카스트인가>에서 대학 서열과 차별 문제를 지적한 김동훈(60) 국민대 법대 교수는 한시적으로라도 비수도권 지역 대학들에 혜택을 부여하는 제도를 강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지난 11일 <단비뉴스>와 주고받은 이메일에서 “국가의 균형발전은 헌법적 가치”라며 “지방대 출신 채용 할당제, 정부지원금 지방대 우선 배분 등을 통해 지방에서 공부해도 불이익을 받지 않을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영국의 옥스퍼드, 케임브리지와 미국의 하버드 등 선진국 명문대학은 대부분 수도가 아닌 지방의 작은 도시에 있다. 반면 한국에서는 지방에 있는 대학을 교육의 품질과 상관없이 ‘지잡대’ 등으로 싸잡아 부르며 멸시하고 차별하는 풍토가 심하다. 지방대생들이 편입 등을 통해 서울로 ‘탈출’하는 행렬도 끊이지 않는다. 저출산 추세로 학생 수가 점점 줄면서 지방대 중 상당수는 문을 닫을 수밖에 없을 것이란 위기감도 커지고 있다. 세명대 저널리즘연구소와 <단비뉴스>는 심층기획 ‘지방대 위기와 혁신’을 통해 서울 중심의 불균형 발전과 왜곡된 학력 경쟁 등이 낳은 지방대 소외의 실상을 조명하고 대안을 모색한다. (편집자)

편집 : 정소희 PD

[장은미 기자]
단비뉴스 환경부 장은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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