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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직 청년에겐 서울 사는 것도 ‘스펙’
[지방대 위기와 혁신] ⑥ 부족한 취업 인프라 <하>
2019년 06월 27일 (목) 00:15:07 장은미 임형준 박선영 곽영신 기자 josinrunmi@naver.com

충북의 한 대학 경찰행정학과에 다니던 이정수(27‧가명)씨는 1학년을 마치고 휴학한 뒤, 대형마트 임시직 등으로 모은 돈으로 9급 경찰 공무원 시험준비를 시작했다. 2016년에는 서울 신림동의 한 고시원에 들어가기도 했다. 당시 학원비까지 월 110만원 이상 나가는 돈이 너무 부담스러웠다.

“경제적 부담을 이렇게 지면서까지 서울에서 공부해야 할까 하는 회의감이 들었어요.”

경제적 부담 커도 신림동·노량진 찾는 공시생 

이씨는 당시 필기시험에 떨어진 후 고향인 충북 제천에서 가까운 경북 안동의 한 기숙학원에 들어갔다. 월비용은 서울 신림동보다 크게 싸지 않았지만 대입 수험생처럼 생활관리까지 해주는 곳이어서 심리적으로 안정이 되고 집중하기가 좋았다. 학원비용을 마련하기 위해 중간에 돈을 벌면서 독학도 했다. 하지만 필기시험에 합격한 후 그는 다시 두 달 정도 서울 노량진 학원가를 찾아야 했다. 체력시험과 면접 등에 대비하기 위한 ‘실전 강의’를 지방에선 찾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그는 “컨설팅과 영상분석, 경력 있는 강사, 실전과 같은 환경 조성, 스터디 그룹 편성 등을 지방에서는 기대하기 어려웠다”고 말했다.

지난 3월 최종합격 통보를 받은 이씨는 시험 준비 과정을 돌아볼 때 스터디 모임을 구하느라 특히 고생한 기억이 난다고 말했다. 그는 “스터디를 함께 할 사람들이 없어서 충북 제천과 청주, 경북 영주 등 인근 지역에서 최대한 끌어 모아서 겨우 했다”며 “스터디 장소도 마땅치 않아서 수소문하다가 지방자치단체에서 대여해주는 공간을 겨우 빌렸다”고 말했다.

   
▲ 최근 경찰공무원 시험에 합격한 이정수(가명)씨가 준비 기간 중 자주 찾았던 충북의 한 공공도서관에서 신문을 보고 있다. ⓒ 장은미

스터디 모임 모집글 올리고 몇 달씩 기다리기도

대구에서 대학을 마치고 한국방송공사(KBS) 지역권 피디(PD)로 2년째 일하고 있는 유성은(32) 씨도 “(서울이 아닌) 지역에선 꿈을 키우기도 어려운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지역 중에서도 광역시와 중소도시의 격차 역시 크다”고 덧붙였다. 언론사 입사를 준비할 때 대구에서 공부하다 고향인 경남 창원으로 갔는데, 스터디 모임을 만들려고 인터넷 카페에 공고를 올린 뒤 몇 달을 그냥 기다려야 했다는 것이다. 그래도 PD직군 지원자들로 스터디 모임을 만들기가 어려워 언론사 지망생이면 그냥 다 모여서 공부했을 정도였다고 한다.

“서울에 몰려 있는 언론사 입사 시험을 보기 위해 첫차를 타고 올라가거나 전날 미리 올라가 숙소를 잡는 등 고충도 많았죠. 제 주변에도 서울로 가서 공부하는 친구들이 적지 않았지만 저는 생활비 문제로 아예 갈 생각을 못했고요.”

전남대를 졸업한 후 금융권 취업을 준비 중인 김경화(25‧전남 순천시)씨는 대학시절 서울에서 열린 증권사 모의투자대회에 참가했는데 모든 일정이 서울에서 진행돼 지방대생들의 어려움이 컸다고 회고했다. 그는 “서울에서 살았다면 이런 활동을 더 많이 할 기회가 있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들었다”고 말했다. 김씨 역시 서울로 시험을 치러 갈 때의 고충을 털어 놓았다.

“주로 주말 오전 서울에서 채용 필기시험이 있는데, 새벽 4시 30분 고속버스를 타야 하죠. 한 두석이 남거나 매진될 정도로 서울로 시험을 치르러 올라가는 사람들이 많아요. 고속철도(KTX)가 편하긴 해도 왕복 10만원으로 비싸서 피곤하더라도 버스를 타고 갑니다.”

인턴 공고 대부분 서울 등 수도권에 쏠려

지방에서 취업 준비를 하는 청년들은 이씨, 유씨, 김씨처럼 ‘부족한 취업 인프라’ 때문에 설움을 겪는다. 서울에 비해 취업박람회도 빈약하고, 시험 대비 학원의 다양성과 수준에도 차이가 있고, 함께 공부할 스터디 모임을 구하는 것도 여의치 않다는 게 경험자들의 공통된 지적이다.

세명대 저널리즘연구소는 취업 준비생들이 모이는 온라인 카페 ‘스펙업’에 지난 3월 25일부터 한 달간 게시된 스터디 모임 모집글을 분석했다. 지역이 명시되지 않았거나 중복된 글을 빼고 지역별로 스터디 모임의 분포를 확인했다. 그 결과 전체 364개 공고 중 서울이 244개(67%)로 가장 많았고, 인천과 경기도가 71개(19.7%)로 수도권 비중이 약 87%였다. 이어 부산·울산·경남 20개(5.4%), 대구·경북 12개(3.2%), 대전·충청 11개(3%), 광주·전라 5개(1.4%), 강원 1개(0.3%)순이었고 제주 지역은 해당 기간 모집글이 없었다.

   
▲ 세명대 저널리즘연구소가 취업준비생이 모이는 온라인 카페 ‘스펙업’에 지난 3월 25일부터 한달간 게시된 스터디 모임 모집글을 지역별로 분석한 결과 서울을 포함한 수도권이 약 87%로 압도적 다수를 차지했다. ⓒ 임형준

저널리즘연구소는 또 ‘스펙업’에 2018년 5월부터 2019년 4월까지 1년간 올라온 인턴십 공고의 지역분포를 살펴봤다. 삼성물산, SK그룹, 한국도로공사, 한국조폐공사, 한국가스안전공사 등 민간 대기업과 공기업 등 626개 회사(지역중복 포함)가 이 기간 중 인턴 모집 공고를 올렸다. 기업 본사 등 일자리가 많은 서울이 이 중 421개로 60.8%를 차지했다. 인천·경기는 109개(15.7%)로, 서울을 포함한 수도권이 전체의 76.5%였다. 이어 대전·충청 35개(5.1%), 부산·울산·경남 25개(3.5%), 광주·전라 16개(2.3%), 대구·경북 11개(1.6%), 강원 7개(1%), 제주 2개(0.3%)순으로 나타났다. 이런 현실 때문에 취업준비생들은 ‘서울에 사는 게 스펙(자격·조건)’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 세명대 저널리즘연구소가 ‘스펙업’에 2018년 5월부터 2019년 4월까지 1년간 올라온 인턴모집 지역별 분포를 분석한 결과 서울이 60.8%, 인천·경기 15.7%로 수도권이 총 76%를 차지했다. ⓒ 임형준

서울에 몰린 ‘일자리 카페’, 지방엔 없는 곳도

지자체가 제공하는 청년지원 시설도 서울과 지방의 격차가 크다. 서울시는 지난 2016년 5월부터 청년들이 무료로 스터디룸을 이용하고 취업상담 및 특강, 멘토링 등의 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 ‘일자리 카페’를 운영하고 있다. 민간‧대학‧공공기관과 협력해 매년 일자리 카페를 확대한 결과 5월 31일 기준으로 87곳까지 늘었다.

서울시 일자리정책과 청년일자리팀 노애경 주무관은 “카페 위치나 규모별로 차이가 있지만 5월 31일 기준으로 스터디룸 이용객은 3만5천여명, 일대일 상담에 1천500여명, 멘토링은 700여명 등 각 프로그램 누적 이용자가 3만9천여명 정도”라고 소개했다. 반면 강원, 제주 등은 일자리카페가 각 1곳밖에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 서울 종로구에 있는 한 일자리카페에 다양한 프로그램 안내 책자들이 놓여있다. ⓒ 장은미

공기업 지역인재 할당 등 적극적 정책 필요

<지방도시 살생부> <도시분권이 지방을 망친다> 등의 저서를 통해 지역 불균형 문제를 꾸준히 제기해 온 중앙대 마강래(48·도시계획부동산학과) 교수는 <단비뉴스> 전화인터뷰에서 지방대생들의 열악한 취업 인프라와 관련, “서울이 독식하는 상황이 참 씁쓸하다”고 말했다.

그는 “모여서 정보도 교류하고, 주변에서 얼마나 열심히 공부하는지 보면서 자극도 받는 곳이 노량진과 같은 공간이다 보니 자연스럽게 우수 강사들이 모이는 등 교육시장이 형성 된다”며 “지역에도 이런 수요가 있다면 부산, 대구, 광주와 같은 광역시권을 중심으로 교육시장 형성의 가능성이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마 교수는 지방이 이런 인프라를 만들기 위해서는 일자리와 긴밀히 연결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공공기관 이전에 따라 지역인재 할당을 활성화해야 한다”며 “역차별 지적도 있지만 지역균형 발전을 위한 과도기로 이해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 같은 조치를 통해 지방대가 서울지역대학과 경쟁할 수 있을 것이며 지역도 함께 발전할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한남대 취업전략개발팀 박철수(53) 팀장은 “취업준비와 시기, 정보력에서 지방과 서울 사이에 경쟁력 격차가 있는 것은 분명한 현실”이라며 “케이티앤지(KT&G)처럼 지역에 본사를 둔 기업이 지역 단위로 대외활동을 추진하는 등 지방대생를 위한 취업인프라 구축에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영국의 옥스퍼드, 케임브리지와 미국의 하버드 등 선진국 명문대학은 대부분 수도가 아닌 지방의 작은 도시에 있다. 반면 한국에서는 지방에 있는 대학을 교육의 품질과 상관없이 ‘지잡대’ 등으로 싸잡아 부르며 멸시하고 차별하는 풍토가 심하다. 지방대생들이 편입 등을 통해 서울로 ‘탈출’하는 행렬도 끊이지 않는다. 저출산 추세로 학생 수가 점점 줄면서 지방대 중 상당수는 문을 닫을 수밖에 없을 것이란 위기감도 커지고 있다. 세명대 저널리즘연구소와 <단비뉴스>는 심층기획 ‘지방대 위기와 혁신’을 통해 서울 중심의 불균형 발전과 왜곡된 학력 경쟁 등이 낳은 지방대 소외의 실상을 조명하고 대안을 모색한다. (편집자)

편집 : 오수진 기자

[장은미 기자]
단비뉴스 환경부 장은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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