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방대 위기와 혁신] ⑤ 부족한 취업 인프라 <상>

지난 4월 24일 점심 무렵, 고시학원들이 몰려 있는 서울 노량진 거리에 오전 수업을 마쳤거나 독서실 ‘아침 열공’을 끝낸 수험생들이 쏟아져 나왔다. 노량진역 3번 출구에서 300미터(m) 가량 떨어진 ‘컵밥’ 거리. 간단히 한 끼를 해결하려는 공시족(공무원·공기업 취업준비생)들이 약 100m 길이로 늘어선 1~2평짜리 가게 매대 앞으로 속속 다가섰다.

김치불고기, 참치마요 등 3000원 내외의 덮밥 종류와 분식, 토스트 등을 파는 컵밥집에서 공시족 상당수는 이어폰을 낀 채 서서 밥을 먹고는 금방 자리를 떴다. 문재인 대통령이 노량진을 방문해 컵밥 먹는 사진을 크게 붙여놓은 가게에서 막 식사를 마친 윤성훈(32‧가명)씨도 갈 길이 바쁜 모습이었다. 강원도의 한 국립대를 졸업하고 노량진에서 2년 6개월째 공부하고 있다는 그는 “지방에서 (온라인 수강을 위해) 컴퓨터 모니터만 보고 있자니 미칠 것 같아서, 직접 자극도 받고 공부효율도 높이기 위해 왔다”고 말했다.

‘컵밥집’ 단골은 지방에서 온 ‘공시족’

노량진에서 8년째 컵밥집을 하고 있다는 한정희(50·여)씨는 “여기 오는 사람들은 대부분 지방에서 올라온 학생들”이라며 “수도권 학생들은 통학을 하니까 도시락 싸서 다니는 경우가 많다”고 설명했다. 그는 “서너 번 오면 자연스럽게 ‘어디서 왔냐’고 물어보는데, 대구나 부산에서 올라온 학생들이 많은 것 같다”고 덧붙였다.

▲ 서울 노량진 ‘컵밥’ 거리에서 점심 끼니를 해결하고 있는 취업준비생들. 대부분 컵밥집 앞에 서서 서둘러 밥을 먹고 자리를 떴다. ⓒ 임형준

박예현(28‧여·가명)씨는 지난 2월 대구에서 서울로 왔다. 3년째 중등교사 임용시험을 준비하고 있는 그는 대구나 충북 지역을 지원할 계획이지만 합격을 위해서는 서울에서 공부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그는 대구의 한 학원에서 서울 학원 강의를 실시간 온라인 영상으로 중계해 주는 ‘실강’을 듣다가 갑갑해서 일주일에 한두 번 서울을 오가며 ‘직강(직접 강의)’에 참여했다. 그러나 몸은 몸대로 힘들고 교통비도 만만치 않아 아예 서울로 주거지를 옮겼다. 노량진 부근에서 보증금 1천만원, 월세 53만원짜리 방을 구했고 3월부터 11월까지 학원비로 총 200만원을 냈으며, 매달 독서실비로 18만원을 쓰고 있다. 식비를 포함한 생활비는 월 30~40만원선에서 빠듯하게 지출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 번에 수백만원씩 되는 학원비를 결제하고 매달 수십만원씩 드는 생활비를 부모님이 지원해주시니까 그저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만 합니다. 조금이라도 돈을 아끼려다보니 끼니는 자꾸 부실해지고요.”

전북 전주에서 온 김지훈(27·가명)씨는 법원직 공무원 시험을 준비 중이다. 그는 “(이곳 학원들의 주장에 따르면 공무원 공기업시험 합격자는) 노량진 학원에서 80~90%가 나온다”며 “고향에서 공부하면 시험기간이 더 늘어나 결과적으로 시간과 돈을 더 쓸 것 같아 올라왔다”고 밝혔다. 주말에 동전노래방에서 시간제 청소 일을 하고 월 20~30만원을 받아 생활비에 보탠다는 그는 “타지 생활에서 가장 힘든 것은 부모님께 경제적 부담을 드리는 것”이라고 말했다.

지역은 학원도 취업 정보도 태부족 

경남의 한 사립대 영문학과를 지난 2월 졸업한 김가희(25)씨는 2016년 필리핀 어학연수를 갔을 때 서울에서 온 학생들과 얘기하다 깜짝 놀란 일이 있다. 자신은 들어본 적도 없는 공공기관 인턴 기회나 희망 직군별 스터디 그룹 등의 정보를 그들은 무척 많이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중 한 사람은 김씨에게 대놓고 “지방에서는 정보를 구하기 힘들지 않느냐”며 “취업 잘하고 싶으면 서울에 와야 한다”고 말했다. 현재 공기업 입사를 준비하는 김씨는 경제적 부담 때문에 서울에 가지 못하고 창원에서 부산의 학원을 오가며 공부하고 있는데, “학원에서 집이 멀다보니 스터디그룹에 끼워주지 않더라”며 씁쓸해 했다.

취업준비생들이 모이는 온라인 카페 ‘스펙업’ 자유게시판에 지난 3월 26일 ‘지방대생이 서울에서 취업 준비하는 것이 어떨까요?’라는 제목의 글이 올라왔다. 한 지방대 출신 취준생이 서울로 가는 게 좋은지를 묻는 내용이었다. 이 질문에 달린 20여개의 댓글은 약속이나 한 듯 ‘서울로 가라’고 추천했다. ‘서울 가면 힘들기는 하겠지만 그만큼 선택의 폭이 넓어진다’ ‘서울엔 기회가 더 많으니 아르바이트해서 금전적 부분을 준비해 가라’ 등의 내용이었다.

▲ 지난달 28일 서울 역삼동 한국과학기술회관에서 열린 정보보호 취업박람회에서 한 관람객이 참여 정보 업체를 살피고 있다. ⓒ 장은미

채용 정보가 모이는 ‘취업박람회’를 살펴봐도 서울과 지방의 불균형을 확인할 수 있다. 취업박람회 플랫폼 사이트(www.job815.com)에 따르면 지난 4일 기준 공지된 박람회는 서울이 9곳, 경기도 9건으로 수도권에 18건이 몰렸다. 반면 세종‧충청‧강원‧제주 지역은 통틀어 단 2개였고 광주‧전남‧전북 통산 1개, 부산이 6개, 대구 2개, 울산 1개였다. 취업박람회에서 제공되는 정보의 내용도 서울은 전문화한 박람회까지 포함해 다양하고 깊이가 있는 반면 지역박람회는 상대적으로 다양성과 전문성 등이 부족한 편이다.

서울선 공연기획 등 전문적 박람회도 풍성

지난달 28일 서울 종로구 장교빌딩에서 공연예술 청년일자리 박람회가 열렸다. 종로여성인력개발센터가 주최한 이 행사에서는 직무특강과 멘토링(자문), 채용 및 컨설팅이 이뤄졌다. 연극공연기획사 11곳의 채용 부스가 마련됐고, 공연기획 지망생 등 300여명이 참여해 진지한 상담 등이 이뤄졌다.

종로여성인력개발센터 김영실(45) 부관장은 “고용노동부와 서울시의 지원을 받아 개최해 오고 있는데, 주로 서울에 사는 취업준비생들이 많이 참여하는 편이다”며 “대학로 등 지역연계 측면에서 공연예술 부문의 일자리와 인프라 제공을 위해 노력한다”고 설명했다. 다만 이 센터에서 운영하는 지역산업맞춤형 일자리 창출사업은 서울시민으로만 한정된다고 덧붙였다.

이 박람회를 찾은 한 지방대 졸업생(30)은 “인터넷 커뮤니티도 있지만 공공기관 등에서 마련해주는 박람회에서 얻을 수 있는 정보와 기회들이 (따로) 있다고 생각한다”며 “지방은 박람회 개최 횟수도 절대적으로 적고 특정 분야에 전문화한 박람회가 없는 것 같다”고 말했다.

▲ 지난달 28일 서울 종로구 장교빌딩에서 열린 공연예술일자리 박람회에서 방지영 국제아동청소년연극협회 이사장이 공연기획 직무특강을 하고 있다. 관련분야 지망생 등 300명이 참석했다. ⓒ 장은미

같은 날 서울 역삼동 한국과학기술회관에서도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주최하고 한국정보보호산업협회가 주관하는 정보보호 취업박람회가 열렸다. 또 서울 삼성동 코엑스에서는 서울시와 KB국민은행이 주최하고 코스닥 상장사 등 250개 회사가 참여한 취업박람회가 열려 서울 지역에서만 동시에 3개 박람회가 진행됐다.

스피치 강사이자 면접 컨설턴트인 김수정(42)씨는 정보보호 취업박람회에서 <단비뉴스>와 만나 “다양한 취업 박람회에서 5년째 강의나 컨설팅을 하고 있는데 지방에서 열리는 박람회는 간 적이 없다”며 “지방에선 수요와 예산 문제로 서울의 전문 강사들과 매칭 되기 어려운 상황 인 것 같다”고 말했다.

▲ 지난달 28일 서울 역삼동 한국과학기술회관에서 열린 정보보호 취업박람회에서 각 기업 관계자들이 입사 지원자들과 면담하고 있다. 주최측은 이날 행사에 500여명이 찾아 온 것으로 추산했다. ⓒ 장은미

경기도 성남시 판교의 한 정보기술(IT)업체 인사팀 관계자도 같은 박람회에서 “취업준비생들이 궁금해 할 만 한 사항들을 직접 설명하기 위해 오늘 박람회에 임원들도 참여했는데, 지방에서 진행된 박람회에는 참여한 적이 없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12년째 이 행사를 개최하고 있는 한국정보보호산업협회의 송제윤 경영기획실 책임연구원은 “포괄적인 취업박람회에서는 접하기 힘든 특화된 IT기업들 정보가 있어서 관심 분야 친구들은 일부러 찾아오는 것으로 안다”고 소개했다. 그는 “(지방대인) 호서대와 중부대의 관련 학과 학생들이 단체로 사전예약을 하고 찾아 왔다”며 “수요가 있긴 하지만 협회 여건상 지방에서 행사를 개최하기는 어려운 부분이 있다”고 말했다.

*부족한 취업 인프라 <하>편에 이어집니다.


영국의 옥스퍼드, 케임브리지와 미국의 하버드 등 선진국 명문대학은 대부분 수도가 아닌 지방의 작은 도시에 있다. 반면 한국에서는 지방에 있는 대학을 교육의 품질과 상관없이 ‘지잡대’ 등으로 싸잡아 부르며 멸시하고 차별하는 풍토가 심하다. 지방대생들이 편입 등을 통해 서울로 ‘탈출’하는 행렬도 끊이지 않는다. 저출산 추세로 학생 수가 점점 줄면서 지방대 중 상당수는 문을 닫을 수밖에 없을 것이란 위기감도 커지고 있다. 세명대 저널리즘연구소와 <단비뉴스>는 심층기획 ‘지방대 위기와 혁신’을 통해 서울 중심의 불균형 발전과 왜곡된 학력 경쟁 등이 낳은 지방대 소외의 실상을 조명하고 대안을 모색한다. (편집자)

편집 : 양안선 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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