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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디오처럼 사랑도 끄고 켤 수 있다면
[상상사전] ‘공유’
2019년 07월 11일 (목) 13:17:27 김유경 기자 nanchohyanggi@gmail.com
   
▲ 김유경 기자

공유경제는 편리하고 효율적인 개념이다. 이를테면 내 소유의 집과 차가 있는데, 어차피 24시간 쓰는 것도 아니고 내가 안 쓸 때 누군가에게 빌려주면 수익도 나고 자원도 절약되니 일석이조다. 이 좋은 아이디어는 여러 분야로 영역을 넓혀나갈 것이다. 수요와 공급을 이어주는 플랫폼까지 우후죽순으로 생겨난다. 그렇다면 사람도 공유할 수 있지 않을까? 

결혼을 필수로 여기지 않는 요즘 청년들 역시 일종의 ‘공유경제’로 해석할 수 있을 듯싶다. 열렬하게 연애하고 있는 커플에게 결혼에 관해 물으면, 아직 결혼까진 생각하지 않고 있다는 답변을 듣곤 한다. 결혼하면 계약으로 맺어져 쉽게 파기할 수 없으니 ‘실질적 소유’에만 그치겠다는 건가? 결혼에는 각종 의무와 책임이 따른다. 집과 살림을 마련해야 하고 새로운 가족이 생겨 신경 써야 할 것도 많아진다. 그런 것을 다 감당하기에는 아직 준비가 안 됐다. 미루는 게 합리적 선택이다. 상대를 ‘소유’하지 않고 ‘공유’하는 걸로 관계 양상이 변하고 있는 건가?

차를 소유하면 보험료도 내야 하고 세차도 해야 한다. 주차하기도 번거롭고 새 디자인이 나와도 팔고 다시 사는 것도 귀찮아진다. 필요할 때 잠깐 빌려 이용하는 게 편하다. 연인이 완전한 ‘내 것’이 된다면, 아플 때 병간호 해줘야 하고, 역경으로 힘들어할 때 위로해주고 용기를 줘야 하고, 값비싼 무언가를 사줘서 마음을 표현해야 하고, 잘 모르고 부족한 부분을 내 시간과 정성을 들여 메워줘야 한다. 이런 과정들을 오래 하다 보면 시간, 돈, 에너지 등 갖가지 비용이 많이 든다. 좋은 모습만 감상하고 즐거운 이야기만 주고받고 행복한 시간들을 보내는 것. 여기까진 좋은데 너무 힘든 일이 많다.

   
▲ 우리들은 모두 사랑이 되고 싶다. 끄고 싶을 때 끄고 켜고 싶을 때 켜는 라디오가 되고 싶다. - 장정일의 시 <라디오와 같이 사랑을 끄고 켤 수 있다면> 中. ⓒ pixabay

이기적이라고만 할 수는 없다. 요즘 청년들에겐 정말 비용이 없기 때문이다. 돈도 없고 시간도 없다. 시간을 들여 돈을 벌거나 미래를 위해 공부를 하는 등 자신에게 투자해 돈을 벌 기회를 만들어야 하는 데, 그 자체가 힘들다. 운 좋게 취직해서 평생 돈을 벌어도 집 하나 장만하기 어렵다. 더 나아질 거라는 희망도 없다. 이왕 세상이 이렇게 된 거, 굳이 평생 독점이 필요한가? 적은 비용으로 만족까진 아니어도 적정선에서 감정적 충족을 할 수 있는 형태로 합의점을 찾는 건 어떨까?

물질적인 이유가 다는 아닐 것이다. 인간은 기본적으로 불편과 고통을 피하려 한다. 서면 앉고 싶고 앉으면 눕고 싶은 법이다. 여기에 기술이 발달하고 각종 아이디어들이 전반적인 생활을 더 편리하고 윤택하게 해준다. 위험을 피하고 고통을 줄이고 쾌락은 늘릴 거리들이 널려있다.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라고 하는데 가치관이 정말 변하고 있는 게 아닐까? 사람을 만날 기회는 많아지고 더 좋은 상대를 만날 가능성이 존재한다고 생각하는 이도 있을 것이다. 서로간에 소유를 확정하면 번복하기도 어려워 나중에 후회가 클 거란 부담도 작용하는 듯하다.

이러한 ‘공유경제’는 점점 더 세분화할 것 같다. 예를 들어 한 사람 안에 ‘애인 기능’을 수행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 치자. 요리를 잘하는 능력, 이야기를 잘 듣고 고민 상담을 해주는 능력, 출중한 외모로 눈을 즐겁게 해주는 능력, 시사 현안을 토론하고 지적 통찰을 가져다 주는 능력, 내가 퇴근했을 때 데려와 주는 능력 등등… 자신이 강점을 갖는 능력치들을 공급 가능한 시간대와 함께 거래 사이트나 어플에 올려놓는 건 어떨까? 누군가는 자기 시간대와 필요에 맞게 선택해서 적정한 효용을 누릴 수 있으리라. 다양한 사람을 만나볼 수 있고 취향껏 고를 수 있다. 시간 낭비나 비용 부담도 덜하고 쓰임새를 애초에 명시했으니 실패 확률도 낮다. 내 예상만큼 만족스럽지 못하더라도 최소한 감정의 상처는 덜 받는다. 실로 ‘멋진 신세계’가 아닐까?


보들레르가 ‘모든 능력들의 여왕'이라고 말한 상상력이 학문 수련 과정에서 감퇴하는 건 안타까운 일입니다. 저널리즘은 아카데미즘과 예술 사이에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생각을 옥죄는 논리의 틀이나 주장의 강박감도 벗어 던지고 마음대로 글을 쓸 수 있는 상상 공간이 바로 이곳입니다. 튜토리얼(Tutorial) 과정에서 제시어를 하나씩 정리하다 보면 여러분만의 ‘상상 사전’이 점점 두터워질 겁니다. (이봉수)

편집 : 정소희 PD

[김유경 기자]
단비뉴스 환경부, 기획탐사팀 김유경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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