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 한끼, 맘 한끼] ⑦ 세 번째, ‘나의 밥이 곧 나다’ 작품 인터뷰

열심히 살아야 한다니까 열심히 살긴 사는데요.

자꾸만 가슴 속이 더워집니다.

새벽같이 일어나 서둘러 씻고 출근해 밤늦게까지 일에 집중하는 삶. 나도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 바삐 살고 있어요. 늘 나 자신에게 “열망을 품고, 열정을 가지고, 열심히 달려라!” 외치죠. 그렇게 살지 않으면 어쩐지 잘못 살고 있다는 느낌이 드니까요. 꿈을 이루기 위해, 혹은 가족에 대한 책임감으로 그렇게 삽니다.

열심히 달리고 있는 나의 몸과 마음은 어떤가요?

혹시 지쳐있지는 않나요?

열정과 열심의 더위에 혹사당하고 있지는 않나요?

▲ 세 번째 시간 ‘나의 밥이 곧 나다’ 수업을 진행했습니다. © 이현지
▲ 내 몸의 실루엣을 그리고 몸-마음의 감정과 감각을 자유롭게 표현했습니다. © 이현지

[몸 한끼, 맘 한끼] 세 번째 시간은 ‘나의 밥이 곧 나다’라는 주제로 수업을 진행했습니다. 음식이 몸뿐 아니라 마음에도 영향을 준다는 리플렛 자료 <음식이 마음에 보내는 신호>를 함께 읽었어요. 그리고 내 몸의 실루엣을 그린 뒤, 지난 한 주간 먹은 음식을 떠올리며 내 몸-마음의 상태를 실루엣 안에 표현했지요. 파스텔로 부드럽게 문지른 작품, 뾰족한 선으로 쭉쭉 그은 작품, 작은 동그라미로 몸을 가득 채운 작품도 있었어요.

그중 많은 빗금이 쳐있는 김정엽 님의 작품에 눈이 갔습니다. 혼란스러운 마음과 지쳐있는 몸의 상태가 느껴졌거든요. 머리는 윗부분이 노란색으로 칠해져 있고 가운데는 소용돌이가 그려져 있습니다. 가슴 부위는 붉은색으로 배는 파란색으로 표현됐지요. 손과 발, 어깨는 까만색으로 그어져 있었어요. 정엽 님께 작품 인터뷰를 요청했고 흔쾌히 응해주었습니다.

▲ 김정엽 님이 빗금으로 몸-마음의 상태를 표현했습니다. © 이현지

나 참 바쁘게 살았구나...

그림을 보니 어떤 생각이나 느낌이 드냐는 강사 생강의 질문에 정엽 님은 씁쓸한 표정을 지으며 이렇게 답했습니다. “참... 바쁘게 살았구나, 싶어요.” 사업을 운영하는, 두 아이 아빠 정엽 님은 하루 12시간이 넘게 회사 일에 매달립니다. 아침 7시를 조금 넘긴 시간에 출근해 집에 돌아오면 밤 9시가 넘죠. 일이 바쁘다 보니 끼니를 잘 챙기지 못하는 경우가 많고, 제대로 된 식사는 늦은 저녁일 때가 대부분입니다. 식사가 정엽 님에게 유일한 ‘나를 위한 시간’인데도요.

정엽 님에게 식사는 그냥 음식을 먹는 행위가 아닙니다. 풍요로운 즐거움이고 온전한 쉼입니다. 그러니 끼니를 제때 챙기지 못하는 생활패턴은 정엽 님에게 큰 스트레스가 되죠. 정엽 님은 그림에 나타난 자신의 모습을 이렇게 평했습니다.

"몸은 되게 피곤한데 머리만 즐겁다, 머리만 좋다, 그런 느낌이에요."

노란색 머리는 긍정적이고 유쾌한 정엽 님의 모습이 투영되었습니다. 빨간색과 파란색 빗금으로 죽죽 그어진 몸통은 과로에 지쳐있는 몸 상태를 보여주지요. 그 괴리 때문인지 정엽 님은 자신의 심리상태가 ‘애매모호하다’ ‘두루뭉술하다’고 말했습니다. 머릿속 소용돌이가 그 혼란을 나타내었어요.

▲ 김정엽 님은 몸에서 “뜨거운 것도 따듯한 것도 아닌 열감”을 느낀다고 말했습니다. © 이현지

스트레스를 꾹꾹 눌러 담은 몸과 마음

빨갛게 그려진 가슴과 파랗게 칠해진 배 부위를 살펴보았습니다. 정엽 님은 몸에 열이 많아 시원한 음식을 좋아합니다. 가슴 부위는 열이 나는 상태를, 배 부위는 시원한 음식을 먹어 차가워진 상태를 표현한 것이죠. 정엽 님은 몸의 열이 “뜨거운 것도 따뜻한 것도 아닌 열감”이라고 말하는데요. 가슴 부위에 넓게 뭉쳐 표현된 이 열감은 열심히 살면서 누적된 피로, 스트레스와 연결되어 있습니다.

인터뷰 초반, 음식으로 자기소개를 해달라는 생강의 요청에 정엽 님은 자신을 ‘고구마’라고 소개했어요.

“저는 따뜻할 때나 식을 때나 항상 그 속이 유지되는 고구마 같습니다. 그 속이 무엇이냐면... 제가 항상 스트레스를 받는데 그걸 풀지를 못해요. 계속 스트레스를 몸에 담고 있어요.”

정엽 님에게 가슴의 ‘열감’은 뜨거움도 따뜻함도 아닌, 힘겨운 ‘더위’일지 모릅니다. 식사는 ‘열심’과 ‘열정’이 덥혀놓은 몸-마음의 온도를 적절하게 조절해주는 시원한 해소제이고요.

자신을 가장 기분 좋게 해준 음식이 무엇이었냐는 생강의 물음에 정엽 님은 전주 여행에서 먹은 콩나물국밥이라고 답했는데요. 여행을 하고 밤늦게까지 숙소를 잡는 힘든 여정을 거쳐, 국밥을 먹는데 무척 느낌이 좋았답니다. 음식이 보상처럼 보인다는 생강의 코멘트에 정엽 님은 “그 힘든 상태를 국밥으로 시원하게 해소했다”고 덧붙였습니다.

그러니까 정엽 님에게 밥은 즐거운 휴식이자, 열심히 살아온 내게 주는 보상이며, 몸과 마음의 균형을 잡아주는 축이 되는 것이죠.

▲ 강사 생강과 김정엽 님이 그림을 앞에 두고 이야기를 나누고 있습니다. © 이현지

책임감은 ‘열심’을 내려놓는 걸 주저하게 해요

밤늦게까지 일하고 격주 토요일에도 출근하는 정엽 님은 일요일에 맛있는 음식을 몰아서 거하게 먹습니다. 그런 일상을 ‘리듬이 망가졌다’고 표현했는데요. 이는 정엽 님의 지친 몸-마음이 균형 있는 생활리듬을 바라고 있는 것을 말해줍니다. 그러나 그게 쉽지 않아요. 가족에 대한 책임감 때문입니다. 이렇게 열심히 사는 이유가 무엇이냐는 질문에 정엽 님은 “돈을 많이 벌어서 가족을 행복하게 해주고 싶다”고 대답했습니다. 덧붙여 가정을 이루고 살다 보니 어깨에 책임감이 쌓여 자신에 대한 생각은 안 하게 되고, 그저 일에 몰두하게 된다고 하였죠.

변화는 이미 시작되었습니다.

정엽 님은 생활 패턴을 바꾸는 데에 자신 없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바꾸고 싶지만 그게 쉽지 않다고 여러 번 말했거든요. 그러나 이미 변화는 시작되었어요. 토요일 오전 [몸 한끼, 맘 한끼]에 참여하며 몸과 마음을 돌아보는 시간을 가지기로 한 결정이 바로, 새로운 패턴의 시작인 것이죠.

열심히 달려온 정엽 님. 그 모습은 우리와 닮아있어요. 많은 사람들이 열정적으로 열심히 달려가는 삶이 정답인 줄 알고 살아가니까요.

머리는 ‘괜찮아, 좋아, 즐거워!’ 외치지만 몸은 열심이라는 더위와 사투를 벌이고 있는 상태. 만약 그렇다면 잠시 멈춰 한 끼 쉬어 가세요.

혹시 ‘열심’으로 가슴 속이 푹푹 찌지는 않나요?

오늘 나의 몸-마음을 돌아보고 나를 식혀주세요.

내게 필요한 건 노력이 아니라, ‘열심’을 식혀줄 한 끼인지 모르니까요.


미술치유 프로그램인 [몸 한끼, 맘 한끼]를 진행하는 이현지 <미로우미디어> 대표는 이화여대 미대를 졸업하고 세명대 저널리즘스쿨에 재학하면서 사단법인 <단비뉴스> 영상부장으로 일했으며 졸업 후 취업 대신 창업을 선택했습니다. 미술과 영상, 글쓰기를 결합하는 컨셉트의 <미로우미디어>는 서울시의 도농연결망 '상생상회' 출범에 기여했고 <단비뉴스>에는 [여기에 압축풀기]를 진행한 바 있습니다. 이 기사는 <브런치>에도 실립니다. (편집자)

편집 : 박동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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