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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오란 치킨 한 조각 이야기
[몸 한끼, 맘 한끼] ③ 첫 시간, ‘나에게 오롯한 한끼’ 작품 인터뷰
2019년 06월 16일 (일) 22:53:44 이현지 thinkout32@gmail.com

웅크린 어깨를 꿈틀댑니다. 그리고 한 가닥, 한 가닥 몸과 마음을 열어봅니다. 우리는 매 순간 자신을 꽃피우고 싶은 소망을 안고 살지요. 그러나 나이를 먹을수록 있는 그대로 나를 드러낼 기회가 줄어듭니다.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혹은 원하는지 고민하는 시간도 갖지 못한 채 청소년기를 보낸 후, 어른 아닌 어른이 된 지금. 우리는 어쩌면 웅크린 열망을 안고 아파하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몸 한끼, 맘 한끼] 첫날 ‘나에게, 오롯한 한끼’ 수업을 진행했습니다. 먼저 나의 현재 상황과 관심사, 그에 따른 감정을 글과 그림으로 표현했습니다. 나에 관한 탐색을 바탕으로 지점토로 나를 상징하는 그릇을 만들었지요. 그리고 그 그릇에 나에게 주고 싶은, 나에게 필요한, 딱 알맞은 한끼를 만들어보았습니다.

   
▲ 첫날 ‘나에게, 오롯한 한끼’ 수업을 진행했습니다. © 이현지
   
▲ 나의 현재 상황과 관심사, 그에 따른 감정을 글과 그림으로 표현했습니다. © 이현지

많은 작품 중 겹겹이 표현된 그릇과 노오란 치킨을 만든 밤율 님의 작품을 눈여겨보았습니다. 작품이 무언가를 이야기하는 것 같았거든요. 조심스레 인터뷰를 요청했습니다.

스물세 살의 밤율 님은 [몸 한끼, 맘 한끼] 신청서에 자존감을 회복하고 사회성을 높이고 싶다고 적어 내셨습니다. 왜 이 프로그램을 신청하게 되었냐는 물음에는

“(내가) 어떤 사람인지 알고 싶고, 정말 내가 원하는 게 뭔지 알고 싶어서...”

라고 답했지요. 밤율 님은 강사 생강의 질문에 어깨를 동그랗게 한 채 아주 천천히, 그러나 멈추지 않고 한마디 한마디 이어갔습니다.

   
▲ 밤율 님의 작품은 참 오묘했습니다. © 이현지

밤율 님의 작품은 참 오묘했습니다. 지점토를 얇게 펴 층층이 쌓아 올리고 가운데를 작게 움푹 판 그릇이었어요. 짙게 칠해진 팥죽색 접시 위에는 아무것도 칠하지 않은 하얀 사람이 벌러덩 누워 있습니다. 그리고 샛노란 치킨 한 조각은 아직 마르지 않아 옆에 따로 두었습니다.

위에서 작품을 내려다 보았습니다. 그릇을 보니 어떤 느낌이 드냐고 묻자 밤율 님은 모양이 꽃 같다며, 의도한 것은 아닌데 화려하게 표현됐다고 답했습니다. 보라색으로 칠하려 했는데 잘되지 않아 진한 빨간색이 나왔다고 덧붙였고요.

   
▲ 위에서 작품을 내려다 보았습니다. 밤율 님은 모양이 꽃 같다며, 의도한 것은 아닌데 화려하게 표현됐다고 답했습니다. © 이현지

생강: 그릇이 나라고 생각해보자고 했거든요. 이 나라는 그릇은 어떤 그릇일까요?

긴 침묵이 이어졌습니다. 입술이 조금 열리려다 이내 꾹 닫혔습니다.
다시 긴 침묵이 지나갔습니다.

“음.. 그냥... 겉은 화려한데 어... 음...”

짙은 생각을 머금은 눈에 왈칵 눈물이 찼습니다.   
나라는 화려한 꽃.
화려하지만 마음처럼 잘 표현되진 않은 꽃.
겉은 화려한데, 제대로 피어나지 못한 나라는 꽃 그릇.

그릇이 밤율 님의 마음을 툭 건드렸습니다. 눈물을 닦고, 잠시 쉬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인터뷰를 하지 않아도 괜찮다고 거절해도 된다고 했지만, 밤율 님은 끝까지 한번 가보고 싶다고 했습니다. 좀 더 자신을 마주해보고 싶다는 용기를 내보였습니다.

   
▲ 치킨을 들어 그릇에 올려놓아 보았습니다. 팥죽색 그릇 위에 노오란 치킨을 올리자, 그릇의 오목한 부분에 불룩한 치킨이 딱 들어맞았습니다. © 이현지

다시 인터뷰를 이어갔습니다. 오롯이 자신을 위해 만든 이 치킨이 어떤 의미인지 물었습니다. 밤율 님은 치킨을 좋아한다며, 가족들과 크리스마스나 연휴, 연초에 치킨을 먹는다고 답했습니다. 치킨이 즐겁고 행복한 감정과 연결되어 있다고도 했죠.

치킨을 들어 그릇에 올려놓아 보았습니다. 팥죽색 그릇 위에 노오란 치킨을 올리자, 그릇의 오목한 부분에 불룩한 치킨이 딱 들어맞았습니다. 치킨의 얇은 부분도 둥근 꽃잎에 알맞게 얹어졌습니다.

생강: 이게 올라가니까 전혀 다른 느낌이에요. 그죠?
밤율: 네. 생각을 못했...(어요)
생강: 어떤 느낌이에요?
밤율: 좀 어두웠는데 밝아진 느낌

   
▲ <잡았다!> 색을 칠하지 않은, 그릇에 누워 있는 사람의 손이 노오란 치킨 가까이에 닿으려고 하고 있었습니다. © 이현지

‘손 가는 대로 흐름대로’였던 원래 제목이 아닌 새로운 제목을 붙여달라고 했습니다.
밤율 님이 정한 제목은 <잡았다!>

자세히 보니 색을 칠하지 않은, 그릇에 누워 있는 사람의 손이 노오란 치킨 가까이에 닿으려고 하고 있었습니다. 밤율 님은 원래 자는 것 같았던 하얀 사람이 치킨을 잡은 것 같다고 했습니다.

생강: 지금 기분은 어때요?
밤율: 기분 괜찮아요.
생강: 잘했어요. 뭔가 발견했는데 어때요?
밤율: 신기해...요.

화려하게 피고 싶지만 마음처럼 되지 못한, 어두워 보이는 꽃그릇. 그 그릇에 나를 위해 준비한 치킨을 올리자 밝게 피어났습니다. 밤율 님이 알고 싶었던 ‘정말 내가 원하는 것’은 자신이란 꽃을 피우는 것, 그 도전에 용기를 줄 즐거움, 행복, 밝음이었던 것이었는지도 모릅니다.

밤율 님이, 좋아하는 치킨을 먹을 때마다 즐거움과 용기도 함께 먹으면 좋겠습니다. “잡았다”하면서요.

나에게, 오롯한 한끼
밤율님의 오묘한 한끼, 층층히 올린 꽃그릇과 노오란 치킨 닭다리
한끼 음식, 나왔습니다!

사람들은 어른이 된다는 것이 나를 다 드러내지 않고 적당히 웅크리고 사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모두가 매 순간 자신을 꽃피우고 싶은 열망을 가지고도 말이죠.

기계적으로 일하고 관행적으로 생활해야 하는 일상에서 잠시 떨어져 보면 어떨까요? 어깨를 꿈틀대며 한 잎, 한 잎 나를 피워내면서요.


미술치유 프로그램인 [몸 한끼, 맘 한끼]를 진행하는 이현지 <미로우미디어> 대표는 이화여대 미대를 졸업하고 세명대 저널리즘스쿨에 재학하면서 사단법인 <단비뉴스> 영상부장으로 일했으며 졸업 후 취업 대신 창업을 선택했습니다. 미술과 영상, 글쓰기를 결합하는 컨셉트의 <미로우미디어>는 서울시의 도농연결망 '상생상회' 출범에 기여했고 <단비뉴스>에는 [여기에 압축풀기]를 진행한 바 있습니다. 이 기사는 <브런치>에도 실립니다. (편집자)

편집 : 임세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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