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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마 탄 여장군’ 여성독립투사 김명시
[TV 독립열전] '백마 탄 여장군'
2019년 05월 14일 (화) 10:49:43 권영지 기자 kjih0130@hanmail.net

‘백마 탄 여장군’ 김명시를 아시나요?

<앵커>

시청자 여러분! 일제시대 여성 독립운동가 하면 맨 먼저 누가 떠오르시나요? 아마 대부분 3.1운동의 상징적인 인물로 존경받는 유관순 열사를 꼽으실 겁니다. 최근에는 영화 <암살>에서 전지현의 실제 모델로 추정되는 남자현 열사도 알려졌고요. 1920년 8월 34살 임신부 몸으로 평남도청에 폭탄을 던진 안경신 의사도 있는데요. 여성 독립투사는 사실, 우리가 생각하는 것 보다 훨씬 많습니다. 지금까지 정부가 여성독립운동가로 공식 인정한 유공자만 248명이나 됩니다. 유공자로 인정받지 못한 분들까지 합하면 1900여 명 정도 된다는 연구 결과도 있습니다. 그중 한분이 ‘백마 탄 여장군’이라 불리던 여성 무장 독립투사 김명시 장군입니다. 백마탄 여장군은 어떤 활동을 펼쳤으며 왜 유공자로 인정받지 못하는지 권영지 기자가 경남 창원에서 취재했습니다.

<리포트>

이곳은 경남 창원시 마산 합포구에 있는 성호초등학교입니다. 일제강점기, 조선 의용군 활동을 했던 김명시 장군의 모교입니다. 김명시는 1924년, 지금은 성호초등학교인 이곳 마산 공립보통학교를 졸업했습니다.

학교를 마친 김명시는 이후 중국으로 망명해 무장 독립투쟁에 헌신합니다. 1930년 5월 30일 300여명의 독립군을 이끌고 일제가 장악한 하얼빈을 습격해 이름을 알립니다. 당시 하얼빈 기차역과 경찰서는 일본 영사관을 공격해 큰 타격을 준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김명시는 1939년 만주에서 내륙 깊숙이 조선의용대로 가 부녀복무대 지휘관으로 활동합니다. 조선 의용대가 조선의용군으로 개편한 뒤에도 ‘백마 탄 여장군’으로 불리며 맹활약합니다.

인터뷰) 김영만 열린사회희망연대 상임고문

“여성독립운동가를 잘 모르고 있었는데, 여성독립운동가도 우리 생각보다 많이 있었던 모양입니다. 그분이 해방이후에 귀국하셨을 때 무정장군하고 두 분이 말을 타고 종로 거리에 나타났을 때 시민들이 다 알아보고 김명시 장군 만세를 불렀다 하니까… 그 당시에는 상당히 독립운동가로서 알려졌던 분이었습니다.”

# 마산 동성동 생가터, 흔적 찾을 수 없어

이곳은 창원시 마산합포구 동성동 189번지 일대입니다. 오동동 문화광장 공영주차장 출입구 앞인데요. 뒤쪽 골목 근처가 여성 무장독립투사 김명시의 생가터로 추정됩니다. 하지만, 생가를 알리는 그 어떤 표지나 흔적도 찾을 수 없습니다. 왜 창원시는 독립운동가를 기리는 그 흔한 표지하나 설치하지 않은 것일까요?

# 해방 후, 좌익 계열이란 이유로 옥고

해방 뒤 귀국한 김명시 장군은 대한민국정부가 수립 뒤, 좌익으로 몰려 체포됩니다. 목숨 걸고 평생 무장투쟁하던 독립투사가 해방조국에서 옥고를 치르는 일이 벌어집니다. 사회주의 계열이었다는 이유로 제대로 된 역사적 평가조차 받지 못했습니다.

인터뷰) 윤상현 경남대 역사학과 교수

“공산주의자나 사회주의자로서 독립활동을 했던 사람들에 대해서는 좀 일종의 터부시하고 있죠. 이게 어떻게 보면 냉전적 사고가 여전히 있는 거고… 여기에 대해서는 다양한 시각으로 접근 해야 하는 건데…”

김명시 장군의 고향인 창원에서 시민단체가 나섰습니다. 관련 자료를 어렵게 찾아 국가보훈처에 김 장군의 훈장추서를 신청했습니다.

인터뷰) 열린사회희망연대 김숙연 사무처장

“(보훈처에 문의하니까 답변이) 1995년도 명단에 기록되어 있기는 하나 기준 부적합으로 계속 보훈 대상에서 아예 제외가 되어있는 상태였데요. 사회주의 계열이었다는 거죠. 보훈처에서는 김명시 장군이 사망한 연도도 모르고 있더라고요. 근데 서훈 기준이 지금은 많이 완화가 됐데요, 옛날보다.”

김명시 장군 외에도 좌익으로 몰려 제대로 된 평가를 받지 못하는 독립투사들이 많습니다. 정부는 최근 사회주의 계열 독립운동가는 물론 여성 독립운동가에 대한 재평가 확대작업을 추진중입니다. 이념을 떠나 민족을 위해 목숨 바친 독립운동을 공정하게 평가할 때 분단과 전쟁이라는 아픈 역사를 치유하고 평화와 공존의 새로운 민족사를 써나갈 수 있습니다. 단비뉴스 권영지입니다.

(영상취재 : 권영지 / 편집 : 권영지 / 앵커 : 최유진)


편집 : 김현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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