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 서울 전태일기념관

30일 서울 종로구 청계천로에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기념관’이 정식 개관한다. 전태일 열사의 분신 장소인 평화시장 근처 청계천 수표교와 가깝다. 지상 6층, 연면적 1,920㎡(580평) 규모다. 기념관 정면에는 전태일 열사가 1969년 근로감독관에게 열악한 여공들의 근로조건을 개선해달라고 쓴 자필 편지를 텍스트 패널로 디자인해 부착했다. 지나는 시민 누구나 전태일 열사의 정신을 느낄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서울시는 앞서 한 달 전 시민들에 기념관을 공개하고, 각종 전시와 공연프로그램을 운영하기도 했다. 한국 노동운동 역사를 보여주고 노동자를 지원하는 시설을 갖춘 곳은 국내에서 처음이다.

▲ 서울 종로구 청계천로 전태일기념관에 1969년 전태일 열사가 근로감독관에게 쓴 자필 편지가 새겨졌다. ⓒ 최유진

그가 꿈꾼 봉제공장 ‘태일피복’ 기획전시

기념관 내부는 1~3층 전태일기념공간과 4~6층 노동자권익지원시설로 꾸며졌다. 전태일 열사의 유품과 당시 노동계 시대상을 엿볼 수 있는 ‘전시실’, 60년대 평화시장의 봉제작업장을 재현한 다락방 ‘시민체험장’이 3층에 마련됐다. ‘전태일의 꿈, 그리고’를 주제로 한 상설전시는 전태일 열사의 이야기와 연계해 우리나라 노동운동의 역사를 보여준다.

▲ 전태일 열사가 작성했던 사업계획서를 바탕으로 기획된 ‘모범업체: 태일피복’전이 기념관에서 열리고 있다. ⓒ 최유진

기획전시는 연 3~4회 노동 관련 또는 시대적 이슈를 다룬다. 첫 기획전시는 ‘모범업체: 태일피복’으로 6월 30일까지 열린다. 전태일 열사가 1969년 작성한 사업계획서를 토대로 그가 꿈꾼 모범적인 봉제작업장을 구현한 전시다. ‘종업원을 기업주와 하등의 차이도 없이 대우하고 사업을 해나갈 수 있다는 기본을 보이기 위한 기업체입니다’라는 내용에 담긴 전태일의 노동 정신은 오늘날에도 귀중한 가치를 전달해준다.

2층에는 노동 관련 문화공연이 이뤄질 60석 규모 공연장이 있다. 지난달 20일부터 31일까지 ‘음악극 태일’이 첫 공연을 했다. 관계자에 따르면 사전 예매가 매진돼 당일 취소 표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생길 정도로 성황을 이뤘다고 한다. 지금까지 두 공연이 진행됐고, 상반기에 다섯 프로그램이 남아있다.

4~6층은 노동자를 위한 지원공간이다. 4층은 소규모 신생노동단체 또는 노동조합 미가입 노동자들의 공유 공간 ‘노동허브’로 서울시를 기반으로 활동하는 노동단체 중 심사를 거쳐 입주 가능하다. 5층은 취약계층 노동자 복지증진과 권익보호를 위한 ‘서울노동권익센터’다.

예비 근로감독관이 되새긴 ‘전태일 정신’

▲ 지난달 31일 전태일기념관에서 자원봉사자 이예준 씨가 자신이 전태일 열사에 쓴 편지를 소개했다. ⓒ 최유진

전태일기념관 대각선 맞은편에는 서울지방고용노동청이 있다. 지난달 31일 기념관에서 만난 자원봉사자 이예준(37) 씨가 그곳을 가리키며 웃음 지어 보였다. 그는 국가공무원 고용노동근로감독관 7급에 합격해 발령을 기다리고 있었다. 봉사활동을 시작한 지는 열흘이 됐을 때다.

“근로감독관을 하게 되면 사실은 을보다는 갑으로 살 가능성이 있잖아요. 그런데 지금 여기서 어찌 보면 (전태일 열사는) 한평생 을로만 살았던 분이잖아요. 그분에 관해 좀더 자세히 알고, 역사적으로 기념관이 생겼는데 여기서 제가 봉사를 하면서 마음가짐을 가다듬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았어요.”

그는 근무하기 전 의미 있는 일을 하고자 봉사활동에 자원했다며 “초심을 붙들기 위한 것도 있었다”고 말했다. 전태일기념관에서는 그뿐 아니라 많은 대학생이 일손을 거들고 있었다. 사무국은 자원봉사자를 수시모집한다.

▲ 1970년 11월 13일 평화시장에서 전태일 열사가 삼동회 회원들과 피켓 시위를 벌일 때 외친 구호다. 그는 이 현장에서 분신 항거했다. ⓒ 최유진

1968년 전태일 열사는 젊은 노동자들의 최초 조직 ‘바보회’를 결성했다. 재단사들의 근로조건 개선에 목적을 둔 모임이었다. 당시 전 열사는 바보회가 돌린 노동 현황 설문지를 갖고 근로감독관을 찾아갔다. 근로기준법만 준수하면 된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근로감독관과 노동청은 노동자의 처지에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전 열사는 단순히 기업주가 아닌 전체 사회의 구조와 힘을 두고 싸워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1970년 ‘바보회’를 ‘삼동친목회’로 개편한 이유다.

분신 항거 후 48년, 노동자 어머니의 숙원

▲ 노동운동가 이소선 씨가 아들 전태일 열사의 영정 사진을 붙들고 슬퍼하는 장면이 기념관에 전시돼 있다. ⓒ 최유진

1970년 11월 13일 동대문 평화시장 앞길에서 전태일 열사는 만 스물두 살 젊은 나이에 스스로 목숨을 던졌다. 그가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라고 외치며 분신 항거한 지 48년이 지났다. 그의 어머니 이소선 씨는 아들의 유언을 지키기 위해 노동운동가의 길을 걸었다.

"어머니, 내가 못다 이룬 일 어머니가 꼭 이루어주세요."
"아무 걱정 마라. 내 목숨이 붙어있는 한 기어코 내가 너의 뜻을 이룰게."

이소선 씨는 아들 전태일이 숨을 거두자 장례를 거부하며 투쟁에 들어갔다. 업주들과 정부당국을 상대로 ① 유급휴일 실시 ② 법으로 임금인상 ③ 8시간 근무 실시 ④ 정규 임금 인상 ⑤ 정기적으로 건강검진 실시 ⑥ 여성 생리휴가 ⑦ 이중 다락방 철폐 ⑧ 노조결성 지원 등 8개항을 요구했다.

어머니가 동지들과 전태일기념관건립추진위원회를 발족한 지도 37년이 지났다. 서울시의 협력과 지원으로 탄생한 전태일기념관은 한국 최초의 노동복합시설이다. 기념관에는 2011년 작고한 이소선 씨의 노동운동 활동상도 전시돼있다.

청계천에서 만나는 ‘노동운동 배움터’

▲ 기념관에서는 전태일 열사의 노동운동 행적을 살펴볼 수 있다. ⓒ 최유진

서울시는 2017년부터 약 220억원의 예산을 들여 기존 건물을 사들이고 리모델링하는 방식으로 기념관을 건립했다. 운영은 전태일재단이 맡는다. 운영시간은 오전 10시부터 오후 6시까지며, 겨울철(12월)에는 오후 5시30분까지만 연다. 관람료는 없다. 앞으로 전태일 다리, 전태일 동상, 평화시장, 명보다방으로 이어지는 ‘전태일 노동인권 체험투어’도 진행할 예정이다.

▲ 기념관에서는 전태일 열사의 생전 모습을 영상으로 볼 수 있다. ⓒ 최유진

전시물 중 ‘전태일의 퇴근길’이라는 지도가 있다. 그는 평화시장 봉제 공장에서 굶주린 어린 ‘시다’(미싱보조)들에게 돈을 털어 풀빵을 사주곤 했다. 그러고서 자신은 도봉산까지 두세 시간을 걸어서 귀가했다. 지도에는 전 열사가 걸었던 퇴근 경로가 나타나 있다. 전태일 열사 자신도 열악한 환경의 노동자이면서, 동료와 애환을 나누고 위로하는 데 앞장 섰던 사실을 알 수 있다.

강병호 서울시 노동민생정책관은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기념관은 사회 양극화와 불평등이 만연한 현시대에 꼭 필요한 전태일 정신을 확산하고 노동의 진정한 의미를 되살려 노동존중사회를 조성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할 것”이라며 “노동자의 권익보호는 물론 체감할 수 있는 지원을 펼치는 노동 존중 특별시 서울의 상징으로 운영하겠다”고 말했다.


편집 : 정재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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