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토크] 빛의 영상미학, ‘퍼스트맨’

사람 목숨을 희생하면서까지 이뤄야 할 일이 있을까? 두 번 세계대전을 치르면서 사람들은 질문했다. 이어 냉전 시기 미국과 소련이 우주개발 경쟁을 시작하면서 사람들은 더욱 맹렬하게 이 질문을 했다. 과학은 이 질문에 답을 찾아야 했다. 지난 1세기 과학은 가장 눈부시게 발전했지만, 동시에 많은 목숨이 과학의 발전을 위해 희생됐기 때문이다. 영화 ‘퍼스트맨’은 그 고민을 담았다.

▲ 닐 암스트롱이 달에 가는 과정을 담은 영화 ‘퍼스트맨’ 포스터. ⓒ ‘퍼스트맨’

“우주개발로 뭘 발견하게 될지는 모르지만, 탐험을 위한 탐험이 되진 않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아마 우리가 오래전에 봤어야 할, 그러나 미처 보지 못한 뭔가를 볼 기회가 되겠죠.”

‘퍼스트맨’은 인간 최초로 달에 발을 디딘 닐 암스트롱의 1961년부터 1969년까지 이야기다. 이 영화는 수많은 희생과 실패 끝에 그가 달 착륙에 성공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영화는 사회적 배경보다 닐 개인의 삶을 통해 인간이 왜 우주로 나가야 하는지 답을 찾는다. 닐의 인생에 등장한 여러 죽음이 그를 달로 이끈다. 딸 캐런은 뇌종양으로 두 살에 생을 마감하고, 그의 동료도 비행훈련중 사고로 죽는다. 음악영화 ‘위플래쉬’와 ‘라라랜드’로 이름을 알린 데이미언 셔젤 감독은 영화 속 삶과 죽음을 여러 가지 영상 장치를 통해 표현했다.

삶과 죽음, 감성과 이성의 세계를 가르는 톤

영화에서는 네 가지 톤이 주로 사용된다. 붉은색, 푸른색, 초록색, 그리고 보라색이다. 그중 대비를 이루는 것은 붉은색과 푸른색이다. 두 가지 톤은 삶과 죽음, 감성과 이성의 세계를 나타낸다. 닐은 뇌종양에 걸린 딸을 살리려고 온갖 방법을 찾아보다가 방사선 치료를 선택한다. 딸 캐런은 차가운 푸른빛 방에서 홀로 방사선 치료를 받는다. 닐과 그의 아내 재닛은 붉은 조명이 비추는 방에서 그 모습을 불안하게 바라본다. 두 공간을 가르는 조명은 삶과 죽음을 암시한다. 결국 캐런은 세상을 떠난다.

▲ 방사선 치료를 받는 딸 캐런과 그걸 지켜보는 닐 부부(왼쪽). 푸른빛은 죽은 자의 세계를, 붉은빛은 산 자의 세계를 암시한다. 감성과 이성을 대비하기도 한다(오른쪽). 닐은 그 사이에서 고뇌한다. ⓒ ‘퍼스트맨’

캐런이 죽은 뒤 실의에 빠진 닐은 미국항공우주국(NASA) 우주비행사 모집에 지원해 삶의 재도약을 꾀한다. 재닛은 그런 닐을 응원한다. 하지만 우주비행사가 되는 길은 만만치 않다. 그는 새로운 도전을 위해 과학 이론을 배우고 고된 훈련을 받는다. 가정에서 한 결심과 직장에서 받는 고난은 감성과 이성의 대비로 나타난다. 닐은 직장에서 겪는 어려움을 재닛에게 털어놓는다. 둘은 주황빛 실내조명과 창밖의 푸른 달빛이 공존하는 공간에서 춤을 춘다.

이 영화에서 위험을 상징하는 색은 녹색이다. 우리는 대개 녹색을 편안한 색으로 인지한다. 휴식공간, 병원, 친환경 제품 등에서 사용하는 사례에서 볼 수 있듯 녹색은 자연, 평화, 안전, 중립을 상징한다. 하지만 때로는 독성을 의미하기도 한다. 옛날 화가들이 녹색을 만들기 위해 독성물질을 사용한 데서 유래했다. 헐크나 슈렉의 괴물이 녹색인 이유다.

▲ 닐이 위험에 처할 때마다 녹색이 등장한다. 계획을 벗어난 일정, 이유를 알 수 없는 고장, 정체불명의 경고 등의 상황이 녹색으로 표현된다. ⓒ ‘퍼스트맨’

‘퍼스트맨’에서 녹색은 미지의 무언가를 상징한다. 원인을 알 수 없는 오류, 정체를 알 수 없는 경고 등이 그것이다. 닐은 달로 가는 아폴로호 이전에 제미니호로 우주비행을 훈련한다. 제미니8호를 타고 우주로 간 닐은 다른 우주선 에이지나와 무사히 도킹을 마쳐야 했다. 하지만 어떤 이유에서인지 에이지나는 보이지 않는다. 이때 우주선내 색이 녹색으로 표현된다. 주황빛 조명이 비추고 있지만 눈에 보이는 색감은 녹색이다. 에이지나를 무사히 찾고 나서는 주황빛으로 돌아온다.

하지만 선내는 다시 녹색으로 물든다. 기체가 갑자기 빠른 속도로 회전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조금만 더 지체하면 정신을 잃을 위기에 놓인다. 동료는 이미 기절한 상태에서 닐은 가까스로 위기를 극복한다. 하지만 예정보다 일찍 지구로 돌아오자 사고와 관련한 기자들 질문에 시달린다. 마지막으로 녹색이 한 번 더 등장한다. 달에 착륙할 때다. 닐은 달에 착륙하는 과정에서 ‘1202 경고’를 맞닥뜨린다. 무엇을 뜻하는지 모르는 닐은 경고에 관해 휴스턴 우주센터에 묻지만, 무시하라는 말만 되돌아온다. 닐은 무엇인지 모를 불안을 안고 달 착륙을 시도한다.

▲ 알 수 없는 미래, 복잡한 마음을 나타내는 보라색. 삶과 죽음이 뒤섞인 아폴로 11호를 타러 가는 길이다. ⓒ ‘퍼스트맨’

셔젤 감독의 전작인 ‘라라랜드’에서 사람들은 보랏빛으로 물든 하늘을 배경으로 두 사람이 춤추는 장면을 가장 먼저 떠올릴 것이다. 이 영화에서도 보랏빛 하늘이 나온다. 닐이 달에 가는 날 새벽 아폴로11호를 타러 가는 길에서다. 빨간색과 파란색을 합치면 보라색이 된다. 달을 향해 떠나는 날 아침 닐의 마음이 그렇지 않았을까? 죽을 수도 있다. 하지만 죽음의 공포를 능가하는 삶의 가치가 달에 있다. 그 심란한 마음이 복합적으로 표현된 게 보라색이다. 아폴로11호는 어마어마한 화력을 내뿜으며 발사된다. 이때 감독은 의도적으로 붉은 불이 분사되고 난 뒤 보라색으로 변해가는 연기 색을 보여준다. 삶과 죽음의 갈림길에 놓인 닐의 운명을 상징한다.

불길함을 상징하는 물과 불의 비극

▲ 불시착으로 죽은 동료의 소식을 들었을 때(왼쪽), 화재에 따른 폭발로 죽게 될 동료와 길을 걸을 때(오른쪽) 이 장면 앞에는 모두 수영장에서 행복해하는 아이들 모습이 등장한다. ⓒ ‘퍼스트맨’

영화에는 수영장 신이 두 번 등장한다. 두 장면에서 다 천진하게 물장난을 하는 아이들이 나온다. 보는 사람을 미소 짓게 하는 평화로운 모습이다. 하지만 그 이후에는 비극적 사건이 일어난다. 활기차던 수영장이 비가 내려 아무도 없는 쓸쓸한 장면으로 이어지는 몽타주는 앞으로 일어날 불길함을 암시한다. 닐은 그날 안개로 불시착한 동료가 목숨을 잃었다는 소식을 듣는다. 두 번째 수영장 장면 뒤에는 어두운 공원이 나온다. 달 우주선을 탈 수 있게 됐다며 기뻐하는 동료 이야기와 달리 주변 분위기는 차분하고 어둡다. 그 동료 역시 기내 폭발로 죽는다. 두 번의 수영장 장면에 이어진 어두운 배경과 두 사람의 그림자는 같은 비극을 암시한다.

▲ 영화에서 불은 직접 생명을 앗아간다. 계속되는 동료의 죽음으로 닐의 고뇌가 극에 달한다. ⓒ ‘퍼스트맨’

물이 불길함을 예고하는 소재였다면 불은 직접 죽음의 원인이 된다. 밀폐된 기내에서 붙은 불은 폭발 사고로 이어져 친구 목숨을 앗아갔다. 뒤에 닐은 달에 착륙하는 연습을 하는 도중 기체 이상으로 비상탈출을 해야 했다. 구사일생으로 살아난 닐은 불타는 기체를 바라보며 친구의 죽음을 떠올린다. 달에 가는 게 무엇을 위한 것인지 고민이 정점에 이르는 부분이다.

어두운 죽음의 세계, 희생된 생명이 쌓인 그림자

▲ 달에 착륙해야 하는데 거대한 암흑 구덩이가 앞에 놓여있다. 남은 연료로 구덩이를 지나 무사히 고요의 바다에 닿을 수 있을까? ⓒ ‘퍼스트맨’

달로 가기 위한 마지막 여정에서 닐은 마지막 위기에 봉착한다. 착륙해야 할 지점에 거대한 암흑 구덩이가 있다. 모든 것을 흡수하는 검은 구멍은 죽음을 연상시킨다. 착륙에 성공한다 하더라도 생사는 장담할 수 없다. 죽음이라는 거대한 어둠을 뛰어넘어야 그 다음으로 갈 수 있다. 화면을 가득 채우는 새까만 화면은 마치 막막한 우주를 표류하는 느낌으로 관객을 압도한다. 어둠으로 향해가는 숨막히는 시간을 지나 닐은 가까스로 위기를 넘기고 달 표면에 착륙한다.

▲ 달에 도착한 아폴로 11호와 닐의 그림자가 길게 드리워져 있다. 긴 그림자는 여러 희생을 딛고 홀로 달에 선 닐의 고뇌를 상징한다. ⓒ ‘퍼스트맨’

드디어 닐은 달에 착륙한다. 그가 달에 첫발을 내딛는 순간, 새까만 우주에서 비치는 한줄기 빛과 그림자가 시선을 사로잡는다. 비정상적으로 보일 만큼 길게 드리워진 그림자는 우주에 오기 위해 희생된 사람들을 상징하는 듯하다. 수많은 죽음으로 쌓아 올린 우주 개발, 닐은 홀로 서있는 자기 그림자를 보며 어떤 생각을 했을까?

▲ 딸 캐런의 팔찌를 구덩이 속으로 던지는 닐. 그는 달에 놓고 올 물건으로 딸의 팔찌를 선택했다. ⓒ ‘퍼스트맨’

닐은 달에 가기 전 ‘무엇을 가져가고 무엇을 남기고 올 거냐’는 기자 질문에 답하지 못했다. 그가 가져간 것은 딸 캐런의 팔찌였다. 영화가 보여주고 싶은 것은 인류의 위대한 업적이 아닌, 한 아버지의 도전이 아니었을까. 그는 구덩이 속에 캐런의 팔찌를 던진다. 실제 닐 암스트롱도 달의 어둠에 딸의 죽음을 묻고 왔을까?

“한 인간에겐 작은 발걸음이지만 우리 인류에겐 거대한 도약입니다”

▲ 사람들이 바라보던 달의 모습(위). 닐이 달에 도착해 바라본 지구의 모습(아래). ⓒ ‘퍼스트맨’

닐 암스트롱이 달에 첫발을 내딛으면서 한 말이다. 그의 업적은 말 그대로 인류의 거대한 도약이 됐다. 하지만 영화는 ‘한 인간의 작은 발걸음’에 초점을 맞췄다. ‘퍼스트맨’에서 보여준 달은 모두 오른쪽이 찬 상현달이었다. 마지막에 등장하는 건 왼쪽이 찬 하현달 형태 지구다. 영화에서 말하고 싶은 내용을 함축하고 있는 장면이다. ‘달’에 인류가 남긴 족적만 칭송하던 사람들에게 달에서 ‘지구’를 바라보던 닐의 개인적인 고뇌를 보여주고자 했던 게 아닐까?

▲ 영화 말미에는 붉은색과 푸른색의 이미지가 섞여있다. 닐에게 삶과 죽음이란 무엇이었을까? ⓒ ‘퍼스트맨’

영화 말미에는 붉은색과 푸른색이 공존한다. 삶과 죽음, 감성과 이성을 상징하는 색이다. 달에서 닐은 어디서 비치는지 모르는 붉은색과 푸른색 빛을 등지고 서있다. 거기서 그는 과거 행복했던 기억을 떠올렸다. 사회가 원하는 과학적 성취와 개인의 삶을 향한 도전, 둘 다를 이루었다는 의미일까? 이후 지구로 돌아온 닐은 재닛과 재회한다. 감염 검사 때문에 둘은 유리벽을 사이에 두고 마주한다. 파란 벽지의 방 빨간 의자에 앉은 닐과 파란색 나사 로고가 그려진 방에 빨간 치마를 입은 재닛이 마주 보고 있다. 영화 초반처럼 양분돼 있지 않고 각자의 색을 유지하면서 서로 섞여 있다. 삶과 죽음은 서로 떼어놓아야 하는 배타적인 것이 아니라, 마주해야 극복할 수 있는 것이라는 걸 보여준다.

셔젤 감독이 말하고자 한 것도 바로 이것일 것이다. 그가 그리고자 한 것은 닐 암스트롱의 영웅서사시가 아니다. 딸의 죽음으로 고뇌하던 평범한 가장이 인류 최초로 달에 발을 내딛으며 도달한 어떤 지점을 말하고자 했다. 그 지점이 어떤 곳인지는 받아들이는 관객의 몫이다. 어쨌든 푸른색과 붉은색은 이제 두려움 없이 서로 마주 보고 있다.


편집 : 나혜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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