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토크] SNS 추적해 실종 딸 찾는 스릴러 ‘서치(Searching)’

한 남자가 봉투를 건네 받는다. 남자는 택시를 타고 공항으로 가 비행기에 탑승한다. 그리고 기차를 타고 시골 마을로 향한다. 그럼에도 그의 얼굴은 한 순간도 볼 수 없다. 대신 우리는 그의 시선에 동참한다. 그의 시선에 따라 여행의 설렘과 노곤함 등이 스크린 너머로 고스란히 느껴진다. ‘씨드(Seed)’라는 제목의 이 영상은 구글 글라스로 촬영됐는데 공개되자마자 100만 뷰를 달성했다. 그 덕분에 촬영자인 91년생 아니쉬 차간티는 구글에 스카우트됐고, 크리에이티브 랩에서 2년간 영상을 만들었다. 그가 구글에서 나와 영화감독으로 ‘IT 스릴러’ 영화 <서치>(Searching)를 세상에 내놓았다.

▲ 영화 <서치>는 미디어 스크린만을 활용해 서사를 전달한다. 한 가족의 삶을 비롯해 딸과 아버지의 관계 등 여러 상황을 미디어의 특성을 활용해 압축적이고 영리하게 보여준다. ⓒ 소니 픽처스

사람보다 스크린과 교감하는 시대

영화는 아버지의 시선과 시점을 충실하게 따른다. 다행히 아버지 얼굴은 시시때때로 볼 수 있다. 다만 촬영용 카메라가 아닌 컴퓨터 스크린을 통해서다. 사실 우리는 매일 수많은 스크린을 마주하고 세상과 교감한다. 시시때때로 스마트폰 스크린을, 노트북 화면을 바라본다. 아버지 얼굴을 컴퓨터 스크린을 통해 관객에게 드러내는 방식은 현대인의 모습과 맞닿아 있다.

디지털 스크린을 활용해 영화 서사를 이끌어내는 신선한 시도는 생각보다 어색하지 않다. 물론 디지털 인터페이스 화면이 낯설고 어색했다는 평도 있지만 상대적으로 미디어 스크린을 덜 접하고 사는 부류일 듯싶다. 프로듀서 세브 오해니언은 <맥스무비> 인터뷰에서 이 영화의 구상 배경을 털어놨다.

“스크린 상에서 사건들이 펼쳐진 여느 영화들보다 훨씬 더 많은 것을 담을 수 있는 무언가를 떠올리게 됐습니다. 감동적이고 쉽게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를 쓰기로 한 거죠. 그것이 바로 ‘서치’의 오프닝 신입니다. 데이빗의 가족사를 보여주는 장면이 ‘서치’의 관건이라 생각해요.”

▲ 우리는 아침에 눈을 뜨는 순간부터 잠드는 순간까지 항상 미디어 스크린과 함께 한다. 이미 우리 삶은 미디어 그 자체다. 그래서 영화 ‘서치’는 아예 미디어 그 자체를 보여주는 방식으로 서사를 전개하는 실험을 했다. ⓒ 먼데이노트

깜빡이는 마우스 커서도 연기를 한다

그의 말처럼 영화에서 주인공의 가족사를 보여주는 것은 컴퓨터 화면에 저장된 몇 장의 사진과 텍스트면 충분했다. 영화는 이러한 상황과 조건들을 영리하게 활용한다. 예를 들면 6천 일간 하지 않은 바이러스 검사를 통해 시간적 흐름을 보여주고, 대화창에 내용을 썼다 지우는 것만으로 딸에 대한 아버지의 애정과 걱정이 느껴지게 한다. 디지털 미디어로 표현한 아날로그적 감정의 흔적이다. 과학기술로 점철된 기계들과 더불어 살아가지만 그를 이용하는 것은 심장이 뛰는 인간이니 말이다. 포털사이트에 남겨진 영화 감상평 중에는 ‘마우스 포인트로 감정을 표현할 수 있을 줄이야’라는 말도 있다. 한동원 영화평론가는 이 영화를 ‘컴퓨터와 핸드폰 인터페이스로 만들어진 애니메이션’이라 평가했다.

“지금껏 많은 영화에서 무척 소극적으로 다루거나 아예 없는 듯 다루지 않아왔던, 하지만 현실 속 우리가 매일매일 경험하는 감정 표현이 그려져요.”

아버지보다 나를 더 잘 아는 ‘랜선 친구’

이 영화 줄거리를 한 문장으로 요약하면, 부재중 전화 3통을 뒤로 하고 사라진 딸 ‘마고’를 찾기 위한 아버지 ‘데이빗’의 여정이다. 수사를 위해 찾아온 경찰이 딸에 관해 묻자 아버지는 딸의 고민도, 학교생활도, 교우관계도, 어느 것 하나 자신 있게 답하지 못한다. 그래서 아버지는 딸을 찾기 위해 딸이 남긴 디지털 발자국을 따라간다. 그렇지만 구글,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텀블러, 유캐스트 등 SNS에 남겨진 딸의 흔적을 알면 알수록 아버지는 더 혼란에 빠진다. 자신이 알던 딸이 낯설게 느껴지는 상황에 맞닥뜨린다. 아버지의 당혹스런 표정처럼 주인공이 조우하는 여러 개의 PC 화면 창도 꼬인 실타래처럼 어지럽다. 자신이 몰랐던 딸의 고민과 사생활이 적나라하게 드러났기 때문이다. 딸의 실종을 수사하던 형사는 “부모들도 자식들 다 몰라요”라며 애써 위로한다.

어떤 이는 이 영화에서 가장 끔찍한 설정이 ‘아빠가 내 SNS를 본다는 것’이라 말한다. 그래서 ‘소름의 연속, (영화) 보고 집에 와서 컴퓨터 정리함’이라거나 ‘딸의 야후 로그인 패스워드를 알고 있는 아버지라니 소름’ 또는 ‘다들 SNS 잘 관리합시다’ 등 자신에게 감정 이입한 평가도 줄을 잇는다. 극중 실리콘밸리 IT 기술자로 나오는 ‘데이빗’처럼 우리 부모님은 능숙하게 SNS를 다루지 못해서 참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우리 삶에 침투한 ‘문제적’ SNS 세계

SNS의 폐해도 고스란히 보여준다. 딸의 행방을 묻기 위해 스터디를 같이 한 친구에게 연락을 했을 때는 ‘친하지 않다’고 하더니, 실종사건이 미디어를 통해 화제가 되자 ‘소중한 친구’라며 SNS에 눈물 쇼를 펼치는 장면은 매우 현실적이다. 실종 상태에 있건 말건 마고를 향해 노골적으로 성희롱을 펼치는 ‘관종’ 네티즌 역시 마찬가지다. 이 영화에서 그려내는 SNS 관종은 익숙함을 넘어 친숙하다. SNS 세상에서 관심받기 위해 범죄 행위까지 마다하지 않는 SNS 관종 뉴스는 잊을 만하면 나온다.

실종된 딸을 수색하는 과정을 유튜브로 생중계한다거나 아버지가 범인인 것 같다면서 사이트를 만들어 그 이유를 나열해놓은 것 역시 눈살이 찌푸려지는 장면이다. 아버지 ‘데이빗’도 급기야 마고의 삼촌, 곧 자기 동생까지 의심하는 상황에 이른다. 아무한테나 주먹을 휘두르고 몰래카메라를 설치하는 것도 마다하지 않는다. 아버지의 절망감에 보태져 보는 이도 SNS를 둘러싼 폭력 사태에 무방비로 함께 노출된다.

영화에서 보여주는 SNS의 폐해는 그뿐만 아니다. 몇 차례 검색이나 결제를 통해 손쉽게 개인정보가 거래되고 노출되는 과정은 오랫동안 지적되어온 현실의 문제다. 영화는 이러한 SNS를 둘러싼 각종 폐해와 범죄들을 서사에 자연스럽게 녹여낸다.

영화 흥행은 한국이 디지털 강국이라서?

1980년부터 1991년 사이에 태어난 세대를 ‘포스트 디지털 세대’라 한다. 인터넷 대중화 시기에 학창시절을 보내 디지털 미디어기기에 익숙하면서도 아날로그 시대를 경험했기 때문에 ‘디지로그’ 세대라고도 불린다. 이들에게 이 영화의 실험적인 시도와 서사는 친숙하게 다가간다. 특히 인터넷 강국으로 불리는 한국에서 이 영화는 입소문을 타고 흥행 중이다. 영화진흥위원회 통합전산망에 따르면 지난 8월 29일 개봉한 이 영화는 10월 5일 기준 294만 명을 넘어 역대 외화 스릴러 흥행 1위 자리를 차지했다.

영화 관계자는 "다양한 플랫폼으로 SNS, 커뮤니티 등에서 활동하는 국내 관객들은 영화 속 ‘스크린 라이프’가 혁신적이고 자연스럽게 느껴졌을 것“이라고 흥행 이유를 분석했다.

▲ 영화 <서치>가 말하고 싶은 것은 결국 디지털 시대에도 중요한 인간적 감정과 관계라고 생각한다. ⓒ 소니 픽처스

디지털 시대에도 여전히 중요한 가치는…

이 글에서 처음 언급한 아니쉬 차간티가 만든 영상 '씨드(Seed)'는 남자가 한 노파에게 봉투를 전해주며 끝난다. 노파는 시골에 사는 남자의 어머니로, 그 얼굴 표정과 함께 마지막에야 봉투에 든 것을 보여준다. 봉투에 든 것은 태아의 초음파 사진이다. 남자는 아내의 임신 소식을 전화 한 통이 아니라 사진을 직접 들고 가 소식을 전한다. 미디어가 아무리 발전한 시대여도 여전히 인간의 관계와 감정은 중요하다.

새로운 기술의 발전으로 SNS를 통해 인맥이 확장되거나 새로운 경험도 가능하다. 그러나 얼굴을 마주하고 상대의 표정을 보며 상대의 감정을 살피고 느끼는 일은 디지털 시대에도 중요한 가치다. 아니 더 중요하다. 영화 끝에는 관계의 거리를 좁힌 아버지와 딸의 모습이 나온다. 결국 이 영화가 말하고 싶었던 것은 디지털 미디어가 범람하고 발전하는 시대에도 그것을 도구 삼아 찾으려는 것은 지금 옆에 있는 사람들과의 의미 있는 관계가 아닐까?


편집: 오수진 기자

저작권자 © 단비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