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토크] 환경재단 고양이영화제 정책토크 현장

‘나는 고양이다. 아직 이름이 없다.’

길고양이의 삶을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 <나는 고양이로소이다>에 처음 등장하는 자막이다. 조은성 감독이 2017년 제작한 이 영화는 ‘길고양이 사진작가’인 김하연(48)씨가 길에서 혀를 길게 빼어 물고 죽은 고양이의 사체를 땅에 묻어주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신문배달을 하는 김 작가는 2003년부터 서울 관악구 봉천동과 신림동에서 길고양이를 돌보며 사진을 찍고, <고양이는 고양이다> 등 수필집을 출간해왔다. 그는 영화에서 “길고양이들이 우리와 함께 살고 있음을 사람들이 조금이라도 인식했으면 하는 바람에서 사진을 찍고 책을 낸다”고 말했다.

우리 곁의 길고양이, ‘천덕꾸러기’ 안 되기를  

환경재단(이사장 최열)은 지난 9일부터 사흘간 서울 종로구 돈화문로 서울극장에서 ‘고양이영화제’를 열었다. ‘인간과 동물의 행복한 공존’을 모색하자는 취지였다. 김하연 작가는 이 영화제에서 길고양이들을 ‘엄마’처럼 보살펴온 공로를 인정받아 ‘올해의 캣맘’ 상을 받았다. 영화제 이틀째인 10일 <나는 고양이로소이다>가 상영된 후 김 작가와 조은성 감독, 박선미 한국고양이보호협회 대표, 김영준 국립생태원 동물병원부장이 관객들과 ‘정책토크’를 나눴다.

▲ 지난 10일 서울 종로구 돈화문로 서울극장에서 열린 ‘고양이영화제’ 정책토크에서 박선미 한국고양이보호협회 대표(왼쪽부터), 조은성 감독, 김하연 작가, 김영준 국립생태원 동물병원부장이 사람과 고양이의 공존방법을 토론하고 있다. ⓒ 환경재단

“(서울) 도봉구 창동에서 길고양이가 싫다는 이유로 처형하듯 주차장 펜스에 목을 매달아 놓은 일이 있었어요. 그 고양이가 살려고 발버둥쳐서 발톱이 빠지고 피가 낭자했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해요.”

박선미 대표가 영화 <나는 고양이로소이다>에서 고양이 학대를 증언한 부분이다. 박 대표에 따르면 길고양이 학대는 우리 주위에서 일상적으로 일어난다. 부산에서는 눈이 훼손된 채, 경기도 김포에서는 불에 탄 채, 경기도 성남시 분당에서는 토막이 난 채, 경북 경산에서는 얼굴만 남은 채 고양이 사체가 발견된 일이 있다. 불과 몇 달 사이에 일어난 일들이다.

박 대표는 정책토크에서 “아파트에서 키우던 뱅갈고양이가 우연히 집 밖으로 나갔다가 경비원에게 무참히 죽임을 당한 사건이 있었는데 처벌은 몇십만원 벌금에 그쳤다”며 “동물 학대 이슈가 매년 터지는데, 고소고발을 하고 대응하지만 처벌이 미흡하다”고 말했다. 그는 “작은 생명체를 보듬어 주고 함께 하는 것이 인간이 할 수 있는 최고의 선의가 아닐까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 우리 사회에서 길고양이는 잔혹한 폭력에 희생되기도 한다. 박선미 한국고양이보호협회 대표는 “작은 생명체를 보듬어 주고 함께 하는 것이 인간이 할 수 있는 최고의 선의”라고 말했다. ⓒ 장은미

잔혹한 살해...고양이와 공존하지 못하는 한국

지난 2013년에는 서울 강남구 압구정동 현대아파트 지하실에서 누군가가 수 십 마리 길고양이를 가둬 죽인 사건이 있었다. 집에서 사는 고양이의 수명은 개와 비슷한 15~20년이지만, 이런저런 시련을 겪는 길고양이는 2~3년 사는 게 고작이다. ‘한국인은 왜 고양이와 공존하지 못할까’ 하는 의문이 영화 <나는 고양이로소이다>를 만드는 작업으로 이어졌다고 한다.

원래 야구전문 피디(PD)를 꿈꾸었다는 조은성 감독은 길고양이를 만난 후 삶이 바뀌었다고 밝혔다. 조 감독은 “영화를 찍으면서 다양한 사건을 접했는데, 길고양이들이 소외되고 보호받지 못하는 존재라고 느꼈다”며 “고양이가 죽어나가고 학대당하는 곳에서 아이들, 사람들은 안전하고 평화로울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고 말했다.

▲ 다큐 영화 <나는 고양이로소이다>를 만든 조은성 감독. “고양이가 죽어나가고 학대당하는 곳에서 아이들, 사람들은 안전하고 평화로울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고 말했다. ⓒ 환경재단

김영준 부장은 길고양이 대책과 관련, “집주변에서 만나는 암컷 길고양이가 올해만 벌써 세 번째 임신한 것을 봤다”며 고양이를 잡아 중성화 수술을 한 뒤 놓아주는 조치(TNR, Trap-Neuter-Return)가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반면 김하연 작가는 “TNR이 민원해소 차원에서 무분별하게 이루어지고 있다”면서 “2킬로그램(kg)도 되지 않는 고양이들이 무분별하게 수술대에 오르거나 영역에서 밀려나는 등 부작용 때문에 TNR 신중론자가 되었다”고 말했다.

잘 키우고 싶은 ‘집사들’의 관심과 열기

개막작 <고양이 케디>를 비롯, 사흘간 6편이 상영된 이번 영화제에는 고양이 관련 도서 전시, 고양이용품 마켓 등 다양한 부대행사도 마련돼 반려묘 ‘집사들’의 관심을 모았다. 백산동물병원 김명철 수의사는 10일 <고양이를 빌려드립니다> 상영 후 이어진 ‘고양이 보건실’ 강연과 질의응답을 통해 고양이를 잘 키우고픈 애묘인들의 궁금증을 풀어주었다. 고양이 산책, 먹는 물, 화장실 이용, 체중 관리 등 다양한 질문이 쏟아졌다.

▲ 백산동물병원 김명철 수의사의 ‘고양이 보건실’ 강연에 귀 기울이는 관람객들. 김 수의사는 질의응답을 통해 애묘인의 다양한 궁금증을 풀어주었다. ⓒ 환경재단

김 수의사는 길고양이를 부르는 이름에 대해 특별히 언급하기도 했다. 그는 “아직도 네이버 국어사전에 ‘도둑고양이’라는 말이 있다”며 “환경재단과 한국고양이보호협회가 ‘길고양이’ 표준국어대사전 등재요청 서명을 진행 중인데 이름이 달라지면 그들의 삶도 어제보다 나아질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경기도 하남시에서 혼자 영화를 보러 왔다는 김지영(28) 씨는 “영화에서 그려낸 길고양이의 삶에 공감의 눈물을 흘렸다”고 말했다. 김씨는 강아지를 키우고 있지만 집 근처 길고양이들의 밥을 챙기는 ‘캣맘’이기도 하다고 자신을 소개했다. 그는 “사실 밥그릇을 더 놔두고 싶어도 ‘옆집 사람들이 싫어하면 어쩌나’ 싶어서 망설이게 된다”며 “그래도 요즘에는 길고양이를 돌보는 동아리도 있다고 하니 공존의 희망이 보인다”고 했다.


편집 : 최준혁 기자

저작권자 © 단비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