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비발언대]

▲ 이자영 기자

2년 전 폴란드 크라쿠프시에서 열린 세계 가톨릭청년 행사에 참여했다. 일정을 마친 후 한국인 일행과 길을 가는데 뒤에서 20대로 보이는 현지인 서너 명이 말을 걸었다. 그들은 ‘곤니찌와’, ‘니하오’라고 일어와 중국어 인사를 던지더니 두 손으로 찢어진 눈 모양을 만들었다. 당황스러웠다.

다음날 스타벅스 주문대 앞에 줄을 섰을 때도 비슷한 일을 겪었다. 한 흑인 남성이 우리 앞으로 새치기를 하더니 역시 눈을 찢는 시늉을 했다. 스타벅스의 여직원이 그에게 ‘그만하고 당장 뒤로 가라’고 꾸지람을 해 상황이 정리됐다. 말로만 듣던 인종차별을 이틀 내리 당하고 보니 그 도시에 대한 호감과 정이 뚝 떨어졌다. 좋은 취지의 행사에 갔던 길이라 실망과 충격이 더 컸다.

당하는 사람 입장에 서보기

요즘 우리 사회에서 여성차별, 이주민차별, 성소수자혐오, 난민혐오 등이 첨예한 논란거리가 되는 걸 보면서 ‘역지사지(易地思之)’, 즉 입장 바꿔 생각하는 게 중요하다는 걸 느낀다. 나는 차별 받았던 경험이 있고 혐오와 차별을 싫어하지만, 나도 모르게 ‘가해자’가 된 경우도 있음을 깨달아서다.

공기업 채용에서 여성지원자가 부당하게 탈락한 것 등 성차별에 분노하면서도, 도로에서 답답한 운전을 하는 사람이 여성일 때 ‘역시 여자였어’ 하는 옆 사람의 편견에 동조한 일이 있다. 지하철을 타고 경기도 안산시를 지날 때, 덥수룩한 곱슬머리에 허름한 옷을 입은 갈색 피부 외국인들이 우르르 타는 것을 보고 고개를 돌린 일이 있다. 어쩐지 그들의 말소리가 무섭게 들렸고 뉴스에서 봤던 ‘외국인 범죄’가 생각났다. 그들이 내 표정을 봤다면 차별의 시선을 느꼈을 것이다.

▲ 지난 11일 영국 런던에서 일어난 한국인 유학생 폭행 사건. 우리가 해외에서 당하는 인종차별이 억울하고 화나는 것처럼, 국내에서 이주민 등이 겪는 차별과 혐오도 억울한 것이다. ⓒ JTBC NEWS

TV예능프로그램 ‘라디오스타’의 한 진행자가 ‘소수자’에 대한 얘기를 하다가 “차별받기는 싫어하면서, 차별하기는 좋아하는 현실이 안타깝다”고 말한 일이 있다. 폴란드 스타벅스에서 만났던 흑인 남성도 인종차별의 아픔을 느껴봤을 텐데 나 같은 동양인을 차별했다. 그에게 모욕감을 느꼈던 나도 안산에서 동남아 사람을 경계하는 눈으로 봤다. 동네에서 알고지내는 한 여자 친구는 우리 사회의 여성혐오에 한숨을 내쉬면서도 한국남자를 비하하는 ‘한남’이란 단어로 남성혐오를 드러내는 데 주저함이 없다.

‘암탉이 울면 집안이 망한다’ 등 속담에서도 알 수 있듯이 성차별적 인식은 오랜 관습과 학습을 통해 대물림되고 각자의 경험 속에서 단단해지는 경향이 있다. 인종차별이나 성소수자, 이주민, 난민혐오도 마찬가지다. 그래서 차별과 혐오의 확산을 막으려면 사람들의 ‘의식’을 겨냥한 입체적 접근이 필요하다.

가해자도, 피해자도 되지 않으려면

우선 인권단체 등에서 요구하는 ‘포괄적 차별금지법’을 제정할 필요가 있다. 성별, 연령, 종교, 성적지향, 장애, 인종 등 어떤 차원에서도 약자를 차별하고 혐오를 선동하는 발언과 행위는 규제해야 한다. 법을 통해 ‘무엇이 사회적으로 용인되지 않는 혐오와 차별인가’를 명확히 하는 것은 다수의 횡포에 제동을 걸고 약자를 보호할 수 있는 기본장치가 될 것이다. 법 제정 이전이라도 사법당국은 수사와 재판을 통해 약자에 대한 혐오 공격과 차별 선동을 단호하게 제재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법은 ‘최소한’의 요건이다. 더 중요한 것은 교육과 미디어가 제 역할을 하는 것이다. 초등학교부터 대학입시를 위한 지식 경쟁만 시킬 것이 아니라 인권 교육을 제대로 해야 한다. 인권 존중과 연대 의식이 부족한 나라일수록 약자들이 억울한 차별과 혐오의 대상이 될 가능성이 높다.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차별과 혐오는 부끄러운 짓이며 ‘부메랑’이 되어 자신에게 돌아올 수 있다는 것을 가르쳐야 한다. 역할극 등을 통해 역지사지할 기회를 주는 것도 좋을 것이다.

언론의 역할, 대중매체의 관점도 바뀌어야 한다. 일부 사건사고를 지나치게 부각하면서 이주민, 난민 등을 ‘침입자’ ‘잠재적 범죄자’ 등으로 몰고 가는 보도는 지양해야 한다. 예능프로그램 등 오락물도 알게 모르게 편견을 강화하고 있지 않은지 성찰할 필요가 있다. 한 여성 희극인은 자신의 외모를 희화화하는 대사를 처음엔 웃기는 걸로 생각했지만 갈수록 고통스럽더라고 고백했다.

다행히 여성가족부와 문화계가 ‘성평등문화 확산 태스크포스’ 등을 만들어 교육과 미디어를 통한 인식개선을 추진하고 있고, 국가인권위원회도 ‘차별 대응 기획단’을 만들겠다고 발표했다. 이런 노력이 사회적, 개인적 각성으로 이어져 국민 모두가 차별·혐오의 가해자도, 피해자도 되지 않는 나라를 만들어 갔으면 좋겠다.


편집 : 박선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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