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비발언대]

▲ 안형기 기자

몇 년 전 서울 대림동에 처음 갔을 때의 일이다. 그 동네 사는 친구 집에 함께 가던 길이었는데, 지하철에서 내릴 때가 되자 녀석이 “여기서는 몸조심해야 한다”고 말했다. 무슨 말인가 갸웃하며 대림역을 나서는 순간, 허름한 차림으로 삼삼오오 담배를 피우는 조선족들이 눈에 들어왔다. ‘아, 여기가 국내 최대 조선족 밀집지역이구나’ 하는 깨달음과 함께 왠지 모를 긴장감과 두려움이 엄습했다. 

친구는 대림동을 가로지르는 도림천을 가리키며 “저리로는 넘어갈 생각도 하지 마라”고 단속하듯 말했다. 도림천 너머엔 조선족 생활구역인 대림중앙시장이 있는데, 그곳에서 크고 작은 폭력과 칼부림 등이 종종 일어난다는 것이다. 그때까지 한 번도 조선족과 대면해본 일이 없는 나였는데, 그날 이후 알게 모르게 그들에 대한 편견과 경계심을 갖게 된 걸 부인하기 어렵다.

▲ 국내 중국동포 단체 회원들이 영화 '청년경찰'에서 중국 동포를 범죄자로 등장시키고 중국 동포들이 많은 사는 대림동 일대를 우범지대로 묘사하는 등 혐오를 조장하는 장면이 나온다며 상영중단과 사과를 요구하고 있다. ⓒ MBC 뉴스데스크

수직폭력 심한 사회 수평폭력도 급속 확산

일본 정신의학계 권위자인 오카다 다카시는 저서 <나는 왜 저 인간이 싫을까>에서 혐오가 마지 전염되듯 2차적으로 학습된다고 말했다. 대림동에 갔을 때의 나처럼, 직접 나쁜 경험을 한 적이 없는데도 주변 사람이 강한 혐오감을 드러내면 자신도 모르게 그 대상에게 혐오반응을 하게 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누구나 혐오에 가담, 동조할 수 있고 전혀 관심이 없었던 대상에 대해서도 특정한 일을 계기로 혐오감을 느낄 수 있다는 뜻이다.

혐오 대상자, 혹은 피해자는 대부분 약자거나 소수자다. 그런데 혐오 발화자, 즉 혐오를 적극적으로 표현하는 사람 역시 같은 약자일 확률이 높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알제리 독립운동에 헌신했던 프랑스 사상가 프란츠 파농은 약자끼리의 폭력을 ‘수평폭력’으로 규정하고, 그 배경에 ‘수직폭력’이 있다고 진단했다. 알제리 국민들 사이에서 빈번하게 일어나는 충동적 살인 등 강력범죄는 프랑스가 식민지 알제리에 가한 수탈과 폭력에 원인이 있다는 설명이었다.

파농의 진단은 지금 우리사회에 퍼지고 있는 혐오정서에도 적용될 수 있다. 갈수록 심해지는 여성혐오, 이주노동자혐오, 난민혐오 등은 대개 경제적 어려움을 겪는 실직자, 구직자, 일용직 노동자 집단 등에서 노골적으로 표출되는 경향이 있다. 자본주의적 불평등이라는 ‘수직폭력’의 희생자들이 다른 약자를 공격하는 수평폭력의 가해자가 되는 셈이다.

영국의 사회역학자인 리처드 윌킨슨과 케이트 피킷은 <평등이 답이다> 등의 저서에서 선진국 중에서도 미국, 영국 등 소득불평등이 심한 사회에서 특히 차별과 혐오가 노골적으로 나타나고 사회병리도 심각하다고 지적했다. 상위 1%와 10%의 소득집중도를 기준으로 볼 때 미국 다음으로 불평등이 심한 국가로 지적되는 우리나라에서 혐오와 차별이 갈수록 심해지는 것도 이런 맥락으로 이해할 수 있다.

경제력이 사실상 신분을 결정하는 우리 사회에서 하청 중소기업에 대한 원청 대기업의 갑질, 종업원에 대한 사용자의 횡포, 정규직과 비정규직 노동자 차별 등 수직폭력은 노골적이다. 이는 더 취약한 사회집단에 대한 수평폭력으로 이어진다. 하지만 수직폭력의 가해자인 기득권층은 이 구조를 감추기 위해 ‘동성애는 전염병이다’ ‘외국인 노동자들이 당신의 일자리를 빼앗는다’ 등 분열의 언어로 분노의 표적을 곧잘 바꿔치기한다.

차별금지법으로 방역, 불평등 완화로 근본 처방을

차별과 혐오의 확산을 막기 위한 대안은 촘촘해야 한다. 우선 전염병처럼 차별과 혐오가 퍼지는 것을 막기 위해 신속한 방역조치가 필요하다. 성별, 장애, 인종, 종교, 성적지향 등을 이유로 차별하는 것을 금지하고, 노골적인 ‘혐오선동’은 처벌하는 내용으로 ‘포괄적 차별금지법’을 만드는 게 대안이 될 수 있을 것이다. 합리적 이유 없이 약자를 차별하고 공격하는 것은 범죄라는 인식을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   

대중매체의 역할도 중요하다. 갈등을 조정하고 화합을 이끌어야 할 미디어가 선정적인 보도와 자극적 콘텐츠로 차별과 혐오를 조장한 일이 많았다. 혐오와 차별 확산의 배경을 제대로 짚고 건강한 토론을 통해 대안을 끌어내는 역할을 언론이 해주어야 한다. 유치원부터 대학까지, 인권과 민주주의 교육을 제대로 하는 일도 시급하다. 

그러나 무엇보다 근본적인 과제는 지나친 소득불평등을 완화함으로써 수직폭력이 수평폭력으로 이어지는 구조를 개선하는 일이다. 대기업·중소기업의 불공정한 거래구조를 바로 잡고, 비정규직 등 노동자 처우를 개선하며, 증세를 통해 튼튼한 사회안전망을 갖추는 것 등이 정책 목록의 일부가 될 것이다. ‘차별과 혐오’의 바이러스 대신 ‘연대와 화합’의 정서가 충만한 사회를 향해 좀 더 빠른 걸음으로 나아갈 수 있기를 바란다.


편집 : 박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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