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비발언대] 임지윤 기자

▲ 임지윤 기자

재즈, 록, 발라드 등 어떤 밴드 음악에도 빠지면 섭섭한 악기가 베이스 기타다. 화려한 일렉트릭 기타, 화음을 이끄는 건반, 박력 있는 드럼이 어우러지는 무대에서 베이스는 중저음의 중후한 리듬을 맡아준다. 청중의 귀와 눈을 확 잡아끌진 않지만 다른 악기들을 받쳐주며 연주의 중심을 잡는 게 베이스다. 아무리 곡이 좋아도 베이스가 제 구실을 못하는 밴드는 청중을 만족시키기 어렵다.    

소득주도성장 멜로디만 들리는 연주 
   
문재인 정부가 들어선 지 1년 반이 돼 가는 지금, 우리는 ‘제이(J)노믹스’라는 음악에 귀를 기울이지만 뭔가 불안하고 어설프다는 느낌을 떨치기 어렵다. 이유가 뭘까. 바로 베이스가 제 역할을 못하기 때문이다. 문재인 정부는 양극화와 불공정거래구조로 활력을 잃은 경제를 되살리겠다며 ‘소득주도성장’과 ‘혁신성장’, 그리고 ‘공정경제’를 J노믹스의 세 축으로 제시했다. 그런데 건반에 해당하는 소득주도성장만 무대 전면에서 힘겹게 멜로디를 들려줄 뿐, 혁신성장의 드럼 소리는 너무 작고 공정경제의 베이스 리듬은 거의 들리지 않는다.

헬조선, 금수저, 갑질 등은 최근 몇 년간 한국인, 특히 청년세대의 마음을 후벼 파고 있는 말들이다. 이런 자극적 단어들이 계속 생명력을 갖는 이유는 ‘공정하지 못한 경제구조’에 대한 사회 구성원들의 분노가 워낙 깊고 크기 때문이다. 덩치 큰 재벌들이 하청기업을 착취하고 골목상권까지 약탈하는 현상은 우리 경제의 오랜 고질병이지만 문재인 정부에서 크게 나아졌다고 보기 어렵다. 삼성바이오로직스 회계분식 등 이재용 삼성 부회장의 경영권 승계를 위한 탈법행위가 속속 드러나고 있는데도 재판 중인 그가 방북단 등으로 대통령과 동행하는 모습은 ‘재벌 비리에 대한 단죄가 제대로 되겠나’하는 회의를 자극한다. 과도한 프랜차이즈 수수료와 건물주의 임대료 횡포가 자영업자들의 목을 죄지만, 본사 갑질 해소와 부동산 가격안정 대책은 이렇다 할 성과가 없다. 중소기업, 신생기업, 작은 가게들이 쑥쑥 성장해야 좋은 일자리가 생길 텐데, 이들이 기를 못 펴니 청년들은 좁아터진 대기업과 공공부문 취업문에 매달리다 좌절한다.

‘문재인 밴드’의 새로운 연주를 잔뜩 기대했던 사람들은 지금 불안한 기색으로 한숨을 내쉬고 있다. 반면 삐딱하게 보던 사람들은 ‘그럴 줄 알았다’며 거침없이 야유를 보낸다. 최저임금인상과 주52시간노동제 등으로 기업경기가 뒷걸음질 치고 일자리 사정은 더 나빠졌다며 ‘소득주도성장은 실패’라고 단정한다. 하지만 이들의 행동은 성급한 청중이 음악의 도입부만 듣고 연주장을 나가버리는 것만큼 경솔하다. 아직은 미약한 소리에 그치지만, 문재인 밴드에는 혁신성장이란 드럼이 있고 공정경제라는 베이스도 분명 존재한다. 이들이 호흡을 가다듬고 본격적인 협주를 시작한다면 문재인 밴드의 음악은 매우 들을 만한 것이 될 가능성이 있다.

▲ 가장 왼쪽에 폴 매카트니가 연주하고 있는 베이스는 밴드에서 없어서는 안 될 요소다. ⓒ 비틀스 공식홈페이지

갑질 해소 등 공정경제 가속화 필요

문재인 정부의 소득주도성장은 수출 대기업을 대표선수로 한 ‘이윤주도성장’이 더 이상 작동하지 않으니 노동자와 자영업자의 소득을 늘려 구매력을 키움으로써 분배와 성장의 선순환을 일으키자는 정책 기조다. 대기업이 잘 되면 거래 중소기업과 노동자들에게도 저절로 혜택이 돌아간다는 ‘낙수효과’가 실제로는 일어나지 않으니, 서민과 중산층의 지갑을 채워 소비를 통한 ‘분수효과’가 일어나도록 만들어 보자는 것이다. 여기에 기술개발과 창업을 활성화하는 혁신성장과 대기업 중소기업의 불공정거래구조를 바로잡는 공정경제가 합을 맞추면 경제 활성화, 소득불평등 개선, 일자리 창출 등의 성과를 거둘 수 있다는 얘기다. 이는 막연한 기대가 아니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와 국제노동기구(ILO) 등도 각국에 권고하고 있는 정책 방향이다. 

불안하고 어설프게 시작된 연주가 엄청난 감동과 환호로 끝나는 일은 라이브 현장에서 종종 일어난다. 문재인 밴드는 이제 좀 더 자신 있게, 좀 더 과감하게 각자의 악기를 연주해야 한다. 특히 재벌의 황제경영, 원청 대기업의 갑질, 건물주의 횡포 등을 바로잡을 베이스, 공정경제 파트의 분발이 필요하다. 청중의 한숨과 야유를 열광과 기립박수로 바꾸어 놓을 혼신의 연주를 기대한다.


편집 : 김태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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