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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미카제가 된 조선 청년의 떠도는 영혼
[강연] 세명대 ‘인문주간’ 권학준 교수 ‘조선인 특공대원’
2018년 11월 03일 (토) 18:54:33 안형기 기자 indiepublic@naver.com

‘우리의 육군항공 오장 마쓰이 히데오여 
너로 하여 향기로운 삼천리의 산천이여
한결 더 짙푸르른 우리의 하늘이여’

조선총독부 기관지 <매일신보> 1944년 12월 9일자에 실린 시 ‘마쓰이 오장 송가’의 일부분이다. 이 시는 ‘가미카제’라 불리는 일본군 자살 특공대원의 죽음을 미화한 서정주의 대표적인 친일 시로 알려졌다. 시의 주인공 ‘마쓰이 히데오’는 갓 스물 나이로 가미카제가 첫 출격한 레이테만 해전에서 죽은 일본군 특공부대 오장(하사관)이다. 마쓰이 히데오는 경기도 개성 출신 조선 사람 ‘인재웅(印在雄)’이다.

세명대 ‘인문주간’을 맞아 지난 달 31일 민송도서관에서 ‘조선인 특공대원의 실태와 한∙일 양국의 인식변화’를 주제로 강연한 일본 리츠메이칸대학교 권학준 교수는 “인재웅을 비롯한 조선인 가미카제 특공대원들의 존재와 그들에 대한 한국과 일본 사회의 인식에 관해 생각해보고자 한다”며 말문을 열었다.

   
▲ 권학준 리츠메이칸대 교수가 인문주간을 맞아 세명대 민송도서관에서 '조선인 가미카제'에 관해 강연하고 있다. ⓒ 안형기

우수한 조선 청년들이 가미카제에 지원한 이유

가미카제는 2차세계대전 당시 폭탄이 장착된 비행기를 몰고 자살 공격을 감행한 일본군 특공대다. 지금까지 밝혀진 가미카제 특공대 소속으로 전사한 조선인은 모두 18명이다. 이것도 일본 육군 소속만 집계된 것이고, 밝혀지지 않은 해군 소속까지 합치면 더 많은  조선인 특공대원이 존재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신원이 확인된 18명의 조선인 특공대원들은 20대 전후 청년들이다. 대부분 교토제국대학이나 동경제국대학 등에 유학중이던 조선인 엘리트들이었다. 이런 청년들이 일본 천황에 충성하는 가미카제 특공대에 자원한 이유에 관해 권 교수는 “조선인 전쟁동원정책의 일환이었으며 반강제적 자원과 조선 청년들의 심리를 적극 이용한 일본의 노림수였을 것”이라고 말했다. 조선의 특공대원 동원은 토지, 미곡, 노동력에 이어 조선 청년들의 목숨까지도 거둬가는 식민지배의 모순이 가장 여실하게 표출된 제도였다는 것이다.

   
▲ 출격하는 가미카제 조종사에게 벚꽃 가지를 흔들며 작별 인사를 하는 여학생들. ⓒ Wikipedia

1937년 중일전쟁이 발발하고, 1941년 태평양전쟁으로 이어지며 일본은 조선인 징병을 결정한다. 그전까지 반발이나 저항을 예상해 조선인들에게 총을 건네는 것 자체를 굉장히 꺼려했지만, 전황이 급박해지자 방침을 바꾼 것이다. 가미카제 특공대원을 양성하기 위한 일본의 꼼수도 본격화했다. 당시 최첨단 과학기술의 집합체였던 항공기술에 관한 조선 청년들의 동경을 일본정부와 조선총독부가 적극 이용하기 시작한 것이다. 

신문, 잡지 등에 조선인 최초 비행사 ‘안창남’ 이야기나 비행과 관련한 이야기들이 많이 등장하기 시작했고, 학교 수업에서 모형 비행기를 만들거나 항공이벤트 등을 열어 조선 청년들에게 하늘에 관한 동경을 주입했다. 또 조선총독부는 ‘육군소년비행병’ ‘항공기승무원양성소’ ‘육군특별조종수습사관’ ‘특별간부후보생’ 등을 설치해 조선인들이 특공대에 지원할 수 있는 장치를 마련했다. 권 교수는 “조선 청년들이 특공대로 지원했던 것은 항공기술에 관한 동경과 함께 일본인에게 지고 싶지 않은 심리적 요인, 고급 교육을 무료로 받을 수 있는 하나의 경로라는 인식 등이 작용한 경우가 많았다”고 설명했다.

   
▲ '육군소년비행병' 모집 포스터. ⓒ imgur

일본에선 ‘감상적 영화 소재’, 조국에선 ‘민족 반역자’

조선인 특공대원의 존재에 관한 조명은 한국이 아닌 일본에서 먼저 시작됐다. 1980년대부터 일본 사회에 조선인 특공대원을 다룬 간행물이 나오기 시작했고, 2000년대 이후에는 TV 등 여러 매체에서 그들의 삶을 다루었다. 특히 ‘탁경현(卓庚鉉)’이라는 조선인 특공대원 이야기를 모티브로 제작한 영화 <호타루>는 일본에서 굉장한 인기를 끌었다. 탁경현이 출격 전날 조선인 신분을 밝히며 ‘아리랑’을 부르고 ‘일본민족이 아닌 조선민족의 긍지를 지키기 위해 출격한다’는 유언을 남겼는데, 그것을 훗날 일본인 친구가 한국의 유족들에게 전달한다는 내용이다.

   
▲ 영화 <호타루>의 포스터와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탁경현의 실제 모습. ⓒ Wikipedia

그러나 권 교수는 “일본 사회에서 소비되는 조선인 특공대원 관련 콘텐츠들이 하나같이 감상주의에 빠져있다”고 지적했다. 조선인 특공대원들의 숙명이나 전쟁이 낳은 비극은 외면한 채 감상적 이야기만 다룬다는 것이다. 전쟁의 반성이나 책임, 식민지배에 대한 비판적 논조 역시 보이지 않는다.

반면 한국에서는 광복 이후 1946년에 조선인 특공대원에 관한 보도가 몇 차례 나왔지만, 이후로는 전혀 다뤄지지 않았다. 학계에서도 조선인 특공대원에 관한 학술적 접근을 찾아 볼 수 없었다. 권 교수는 “이승만, 박정희 정권에서 반일·반공 이데올로기를 국가의 근본으로 삼으며 조선인 특공대원의 존재가 의도적으로 공적 공간에서 추방당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식민지배 경험을 겪은 국민들의 반일 감정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면서 국가의 정체성을 만드는 작업이 이뤄졌고, 결국 한국사회에서는 이들의 존재가 망각되거나 ‘광신적 천황주의자’라는 의미만 남게 됐다는 것이다.

귀향기원비 세우려 하자 “천황을 위해 죽은 자"라며 반대

조선인 특공대원에 관한 한국사회의 부정적 인식이 드러난 사건 중 하나가 2008년 ‘탁경현 귀향기원비 건립 반대 운동’이다. 지한파 일본 여배우 구로다 후쿠미 씨가 조선인 특공대원 탁경현의 영혼을 위로해주려고 그의 고향인 경남 사천시에 귀향기원비를 세우는 계획을 추진하자 한국 사회가 들끓은 사건이다.

당시 사천시에서도 귀향기원비를 관광자원으로 이용할 생각이었지만, 진보·보수를 막론한 극심한 반대 여론에 철거를 결정했다. 결국 기념비는 경기도 용인에 있는 법륜사에 옮겨졌지만, 그마저도 광복회 회원들이 부수고 쓰러뜨렸다. 그들은 “독립운동 하다 목숨을 바친 조상들의 기념비도 못 만들고 제대로 예우하지 못하는 상황인데, 천황을 위해서 죽은 사람의 기념비를 어떻게 만들 수 있느냐”는 주장을 폈다.

권 교수는 “언론에서 이 사건을 다뤘지만 조선인 특공대원들이 어떻게 죽음을 맞이했는지, 역사적 의미는 무엇인지, 위령비 건립에 대한 찬성과 반대의견 등에 관한 논조는 전혀 보이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구체적인 논의 없이 위령비가 강제로 철거되며 한국사회에서 조선인 특공대원 문제를 진지하게 토의할 기회가 사라졌다는 것이다.

살아남은 자만 영웅이 되는 아이러니

2000년대 들어서며 민주화와 친일청산이 본격화하면서 조선인 특공대원에 관한 문제도 종합적으로 평가하려는 움직임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조선인 특공대원 다큐멘터리가 제작되면서 이들을 객관적으로 바라보려는 시각이 생기기 시작했고, ‘민족문제연구소’와 같은 진보적 역사연구단체에서도 조선인 특공대원들에 관한 사회적 토론의 필요성을 제기했다.

권 교수는 “태평양전쟁 당시 다양한 이유로 죽음을 맞이해야 했던 그 청년들의 실체와, 그들이 특공대의 길로 나아갈 수밖에 없었던 상황을 총체적으로 이해하고 규명하는 것이 현재 한국사회에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 작업이 이뤄지지 않는다면 참된 식민지 시대 이해가 힘들어질 뿐 아니라, 전쟁에서 전사한 사람들은 무조건 친일로 간주되고 살아남은 사람들은 공군참모총장, 작전사령관 등을 역임하며 대한민국 공군의 ‘영웅’으로 기억되는 역사의 아이러니를 영원히 껴안고 살아갈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편집: 안형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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