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상사전] ‘52시간 노동’과 ‘최저임금’

▲ 조은비 기자

여름은 인류에게 허락된 공식적인 일탈의 시간이다. ‘여름휴가’ 개념은 프랑스어 ‘vacance’에서 유래했다. 프랑스인에게는 대개 1년에 1개월 유급휴가가 주어지는데, 여름철이면 파리가 텅 빌 정도로 휴가를 떠난다고 한다. 독일인은 경기가 아무리 안 좋아도 휴가에는 돈을 아끼지 않는 걸로 유명하다. 우리나라에도 ‘피서’ 개념이 있기는 하지만 전통적 의미의 피서는 더위를 피해 몸을 보신하는 성격이 강하다. 주어진 시간을 즐기는 여가선용으로써 여름휴가가 한국에 정착된 것은 1970년대 산업화 이후부터다. 노동이 가속할수록 유희도 고도화했다.

일탈은 일상에서 벗어남을 의미한다. 우리의 일상은 보통 팍팍하다. 평범한 직장인은 다람쥐 쳇바퀴를 열심히 굴려야 겨우 입에 풀칠할 수 있다. 내가 속한 초등학교 동창 카톡방 구성원 여섯 중 다섯이 직장인이다. 일요일 저녁마다 출근의 괴로움을 표현하는 재치있는 트위터 멘션과 짤방(사진)으로 카톡 창이 도배된다. 그만큼 일상의 지배를 받는 한국인의 삶은 쉽지 않다. 일상을 견딘다는 표현이 더 적절할 정도다. 일상이 고될수록 일탈의 열망은 강력해진다. '놀 수 있을 때 제대로 놀자'는 보상심리가 작용한다. 허나 과유불급이라 했던가? 일상에 심각한 해를 끼치는 일탈을 범할 때가 있다.

▲ 영원히 개인의 기억 상자 속에 봉인된 채,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은폐되어 잘려나간 시간을 누구나 하나쯤은 간직하고 있을 것이다. ⓒ pixabay

우리는 크고 작은 일탈을 여행지에 남기고 온다. 국내 최대 유럽 여행 정보 카페 ‘유랑’에는 여행 도중 다른 이성에게 끌려 바람을 피우고 말았다는 사연이 익명 게시판에 종종 올라온다. 사람들 반응은 제각각이다. ‘어떻게 그런 짓을 할 수 있느냐’에서 ‘그럴 수도 있으나 절대 연인에게 들키지 말라’는 조언까지 다양한 댓글이 달린다. 일상에서는 용납되지 않는 마음과 행위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영원히 개인의 기억 상자 속에 봉인된 채,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은폐되어 잘려나간 시간을 누구나 하나쯤은 간직하고 있을 것이다.

여름이 가져다주는 묘한 흥분과 낯선 장소에서 무장해제되는 연약한 인간의 본성이 더해져, 각양각색의 일탈들이 이번 여름에도 무수히 일어날 것이다. 문제는 그다음이다. 모든 축제는 끝이 난다. 파티가 끝나면 쓰레기로 더럽혀진 장소와 피폐해진 심신이 남을 뿐이다. 일탈이라는 비일상의 축제는 영원하지 않다. 우리는 언젠가 반드시 무료한 일상으로 돌아와야 한다. 일탈이 과해지면 일상에도 영향을 끼친다. 개인의 일탈에 대한 사회적 통제가 규범으로 엄격히 정해진 것은 아니지만 최소한의 ‘선’은 암묵적으로 존재한다.

▲ 대수롭지 않게 여긴 일상에는 사실 모든 것이 있다. 일탈 자체를 가능케 하는 ‘일’이라는 경제활동이 있고, 취업준비생에게는 ‘공부’라는 미래에 대한 투자가 있고, 이러한 활동을 함께 해나가는 동료가 있다. ⓒ pixabay

그것은 일상의 시간이 무료하거나 힘겹다는 이유로 일상 자체를 일탈로 파괴해버리는 행동이다. 얼마나 무모하고 미련하며 이기적인가? 일상에 일탈을 개입시켜서는 곤란하다. 대수롭지 않게 여긴 일상에는 사실 모든 것이 있다. 일탈 자체를 가능케 하는 ‘일’이라는 경제활동이 있고, 취업준비생에게는 ‘공부’라는 미래에 대한 투자가 있고, 이러한 활동을 함께 해나가는 동료가 있다. 인생의 거의 모든 시간을 차지한다고 봐도 무방한 일상은 우리 삶의 터전 그 자체다. 때로 감정이라는 거짓말이 일탈을 부추길지라도, 이를 참아내야 하는 이유는 일상은 지켜낼 만한 가치가 충분하기 때문이다.

일탈에 대한 근원적인 물음은 이 지점에서 시작한다. 한 개인이 일상을 일탈로 물들였다고 해서, 집단이 단단히 주홍글씨를 새길 수 있을 만큼 우리는 '보장된 일상'을 살고 있는 것일까? 한국은 '적정한 일탈'을 즐길 수 없을 정도로 압박적인 일상이 계속되는 피로 사회다. 남성 중심적 조직문화, 상명하복의 위계질서, 집단주의에 속박된 개인은 개별성이 거세된 채 하루하루를 버틴다. 공식적인 일탈이 허용되지 않는 사람들은 일상에서 걷잡을 수 없는 일탈을 하기도 한다. 개인의 일탈을 집단의 엄격한 윤리 잣대로 판단하기에 앞서, 우리 사회가 너무나 왜곡된 일상을 강요해왔다는 사실을 잊으면 안될 것이다.

▲ 노동시간 단축으로 ‘삶의 질’을 향상하려면 ‘쉼의 질’ 향상으로 이어져야 한다. ⓒ pixabay

앞에서 열거한 유럽 국가들은 한 달 이상 휴가를 즐길 수 있는 경제력을 갖고 있다. 우리네 경제 형편을 고려하면 한 달의 유급 휴가는 바라지도 않는다. 다만 퇴근 후 ‘저녁이 있는 삶’을 바라본다. 이제 막 도입된 주 52시간 노동과 최저임금 8,350원 책정을 둘러싸고 우리 사회에 보혁 갈등이 빚어지고 있다. 그렇게 바뀌더라도 선진국보다 훨씬 오래 일하면서 적게 받는 게 우리 노동자들인데 한 발자국을 더 내딛기가 이렇게 어려운가?

문재인 정부는 ‘가정과 일의 양립’과 ‘저녁이 있는 삶’을 위해 일하는 시간을 대폭 줄여나간다는 목표를 세웠다. 문 대통령은 노동시간 단축이 ‘인간다운 삶’을 위해 반드시 필요하다고 했다. 노동시간 단축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그렇게 얻은 휴식 시간을 어떻게 보낼 수 있느냐의 문제이다. 노동시간 단축으로 ‘삶의 질’을 향상시키려면 ‘쉼의 질’ 향상으로 이어져야 한다. 쉬는 시간은 소비하는 시간이기도 한데 돈이 없다면 어디 가서 제대로 쉴 수 있을까.


보들레르가 ‘모든 능력들의 여왕'이라고 말한 상상력이 학문 수련 과정에서 감퇴하는 건 안타까운 일입니다. 저널리즘은 아카데미즘과 예술 사이에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생각을 옥죄는 논리의 틀이나 주장의 강박감도 벗어 던지고 마음대로 글을 쓸 수 있는 상상 공간이 바로 이곳입니다. 튜토리얼(Tutorial) 과정에서 제시어를 하나씩 정리하다 보면 여러분만의 ‘상상 사전’이 점점 두터워질 겁니다. (이봉수)

편집 : 나혜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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