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비평] '비호감 딘딘'과 '호감 박서준'을 만든 것

딘딘 "그날에도 넌, 빛날 수 있어"

광고 속에서 래퍼 딘딘은 감미로운 목소리로 노래를 부르며 여성과 데이트를 즐기고 있다. 부드럽고 따듯한 색감의 화면과 초록의 이미지는 보는 것만으로도 산뜻한 느낌을 자아낸다. 돗자리 위에 누워 낮잠을 취하는 두 남녀의 모습이 비춰지며 딘딘의 내레이션이 들린다. “그날에도 넌, 빛날 수 있어.”

▲ 딘딘이 출연한 생리대 광고 문구를 비웃는 누리꾼 댓글. ⓒ 엘지유니참, 유튜브

지난해 5월 공개된 바디피트 SOFY의 생리대 광고다. 브랜드 메인 모델은 배우 박보영이지만 딘딘이 서브 남성 모델로 등장했다. 15초짜리 광고의 유튜브 영상에는 불쾌함을 표현하는 댓글들이 달렸다. 여성 모델을 향해 ‘저렇게 누워있으면 다 샌다’ ‘누가 생리 날 흰 바지를 입나’ 등 내용에 공감하지 못하겠다는 댓글이 대다수였다. 광고 카피에서 여성의 월경을 ‘그날’로 표현하는 것을 지적하는 의견도 있었다. 아이디 ‘푸른하늘’은 “왜 그날이라고 해”라며 “월경(생리)이라고 하는 게 부끄러운가”라고 되물었다. 그간의 생리대 광고 카피는 월경과 생리 같은 직설적 단어들은 피하고 ‘그날’ ‘마법’ 등을 사용해 부드럽고 사랑스러운 느낌을 강조했다.

특히 딘딘이 남성 모델인 것에 심한 불쾌함을 표현하는 사람도 있었다. 아이디 ‘豆子’는 “딘딘은 생리도 안 해봤으면서 ‘그날에도 넌 빛날 수 있다’고 말해도 되나”라고 지적했다. 이 의견에 ‘좋아요’는 여섯 개가 눌러져 있었다. <경향신문> 박경은 기자는 SOFY의 광고를 보고 ‘여자를 알고는 싶어?’라는 칼럼에서 “‘그날에도 넌 빛날 수 있어’라고 속삭이는 데선 울화가 치밀었다”며 한마디 덧붙였다. “그날에도 빛이 나면 뭘 어쩌려고?”

박서준 "기분 좀 풀렸냐"

여성이 주 소비자인 상품 광고에 남성 모델이 등장하는 사례가 잦아졌다. 남성 모델은 광고 속에서 ‘자상한 연인’ ‘유혹의 대상’ ‘첫 애인’ ‘백마기사’ 등등의 역할을 맡는다. 여성 모델만 등장했을 때보다 입체적이고 역동적인 스토리텔링을 구성해 여성들의 욕망을 자극한다. 남성 모델은 냉장고, 화장품에 이어 생리대 광고에까지 등장한다.

딘딘뿐 아니라 생리대 광고에 등장하는 남성 모델은 ‘섬세하고 다정하면서도 멋지기까지 한 남자친구’ 이미지를 풍겨 여성의 무의식적 연애 판타지를 충족시킨다. ‘시크릿데이’의 광고 모델은 아예 ‘남자친구’로 불린다. 모델 계약을 맺은 순서대로 첫 번째 남자친구는 배우 서강준, 두 번째는 가수 에릭남, 세 번째는 아이돌 아스트로다. 모두 부드럽고 다정하면서도 유쾌한 이미지의 연예인이다.

2015년 5월 공개된 ‘좋은 느낌’ CF에서 배우 박서준은 1인칭 시점으로 애인과 데이트를 즐긴다. 그는 카메라 정면을 바라보며 주 광고 타깃인 여성에게 데이트에서 할 법한 말들을 건넨다. 이 광고는 생리대 CF지만 박서준은 여성의 생리에 대해 직접적으로 언급하지 않는다. 그는 따듯한 봄을 배경으로 드라이브를 하고, 애인의 머리에 붙은 꽃잎을 떼어주며 “기분 좀 풀렸냐”고 말할 뿐이다.

수용자들은 그 뜻을 단번에 알아챌 수 있다. 생리통으로 인해 롤러코스터 탄 듯 오르락내리락하는 기분이 괜찮아졌는지 묻는 것이다. 광고 막바지에 박서준이 환하게 미소 짓는 사이 여성 성우는 “순면남과 순면로맨스에 빠져보세요”라는 내레이션을 따듯하게 읊조린다. 여기서 ‘순면남’은 당연히 박서준이다. 이 광고는 유튜브 조회 수 14만여 회를 기록하고 여성 수용자들의 반응도 뜨거웠다.

▲ 남성이 여성용품 광고 모델로 등장한 건 2000년대 초반부터지만, 최근 더욱 증가하는 추세다. ⓒ 유한킴벌리

연애 판타지를 충족시키는 같은 남성 모델임에도 딘딘과 박서준의 반응 차이는 어디서 비롯되는 것일까? 바로 ‘모델의 내레이션’이라는 기호에 있다. 딘딘의 내레이션은 “그날에도 넌 빛날 수 있어”로, 생리하는 여성이 육체적·정신적 고통을 극복해 밝고 건강한 이미지를 가질 수 있다는 느낌을 준다. 이런 남성 중심의 이데올로기에서 비롯된 카피가 여성 시청자들을 화나게 만든다. 반면 박서준의 내레이션은 “기분 좀 풀렸어”라고 묻는다. 광고 속 그는 좋은 음악을 들려주고 벤치에 큰 수건을 깔아주는 등 여성의 고통을 조금이라도 덜어주려는 행동을 보인다. 물론 그런다고 고통이 해소되지는 않지만, 노력이라도 해주는 모습에서 여성 시청자들의 호감을 산 것이다.

여성의 고통을 미화하는 '판타지 상황극'

가임기 생물학적 여성들은 10대 초반부터 50대 중반까지, 약 28일 주기로, 생리 기간 매일 평균 35mL의 생리혈을 쏟아낸다. 개인차가 있지만 생리통에는 아랫배를 쥐어짜는 듯한 복통이 있거나, 편두통, 복부 팽만감, 메스꺼움 등의 증상이 나타난다. 생리를 할 때는 광고에서 그려지는 여성처럼 밝은 햇살 아래서 자유롭게 활동하고, 즐겁고 쾌적하지만은 않다. ‘생리하는 여성’의 광고 이미지와 현실 사이에는 상당한 괴리가 있다.

▲ 영국 생리대 제조사 ‘바디폼’은 지난해 피를 흘리면서도 익스트림 스포츠를 즐기는 여성을 광고에 담았다. 이 광고는 우리나라에서도 큰 반향을 일으켰다. ⓒ 바디폼

이런 생리대 광고는 남성 시청자로 하여금 여성의 생리에 관한 정확한 이해 없이 추상적으로 ‘부드러운’ 이미지만 갖도록 종용한다는 점에서 유해하다. 남성들의 생리 몰이해는 여성의 일생에 걸친 생리가 터부시되게 만드는 요인 중 하나다. 이는 생리가 여성만의 세계라는 이유로 남성들이 지속적으로 타자화하면서 발생한다.

생리대 광고부터 그 이미지를 바꿔보는 것은 어떨까? 영국 생리대 회사 ‘바디폼’의 광고 카피는 ‘No blood should hold us back’, 곧 ‘어떤 피도 우리를 붙들 수 없다’는 뜻이다. 이 광고는 생리로 고통을 겪으면서도 자기 일을 하는 여성의 현실을 ‘날 것’ 그대로 보여준다. 주체적 시각으로 여성을 바라보는 방식이다. 여성에게 생리는 ‘어쩔 수 없이 해야 하는 것’이다. 우리 광고처럼 파스텔 톤과 따듯한 색감의 화면 구성으로 미화하지 않아도 된다는 말이다.


편집 : 나혜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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