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명대 저널리즘스쿨

로그인 회원가입
2018.8.21 화
> 뉴스 > 칼럼 > 단비발언대
     
그 선배, 기억이나 할까
[단비발언대] 미투운동과 나
2018년 03월 19일 (월) 22:46:26 김소영 기자 kim314sy@gmail.com
   
▲ 김소영 기자

평범한 소시민인 나도 가끔은 ‘깨어있는 시민’이 될 때가 있다. 대학 2학년 때 동아리 가을 엠티(MT)를 다녀온 후, 친구는 어둡고 심각한 표정으로 한때 ‘썸 타던’ 선배 얘기를 꺼냈다. 엠티 숙소에서 자고 있는 자신에게 그가 느닷없이 입맞춤을 했다는 거다. 순간 잠에서 깬 친구는 그를 바로 밀쳐냈다고 한다. 좋은 느낌으로 봐 왔던 사람에게서 느낀 공포감을 친구는 그날 이후 떨칠 수가 없다고 했다. 트라우마(외상성 신경증)가 생긴 것이다. 나는 정의감으로, 친구는 분노로 동아리 선배와 동기들에게 그 사건을 말하기 시작했다. 아무 잘못 없이 충격을 받은 친구가 동아리 활동 중에 그 선배를 마주치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썸남’이 성폭력 남이 됐을 때 

하지만 동아리 회원들의 반응은 우리의 예상과 달랐다. 남자들은 ‘서로 좋아해서 그런 거 아냐?’ ‘그런 걸 왜 말하고 다녀?’라고 대꾸했다. 여자들은 어색하게 웃거나 침묵할 뿐이었다. 우리는 상처 받고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헌신했던 동아리와 믿었던 동료 선후배들이 달리 보였다. 성폭력으로 고통스러워하는 사람의 입장을 헤아리는 대신, 기계적 중립을 지키거나 모른 척 외면하는 사람들에게 실망했다. 여성에게 가해지는 성적 폭력이 좀처럼 ‘인정받지’ 못하는 현실을 체험했다.

   
▲ 성폭력 문제는 주변 사람들의 개입을 필요로 한다. ⓒ flickr

대학 졸업 후 잠깐 취직을 했을 때, 약간 다른 경험을 했다. 입사 초 회식 자리에서 술에 취한 남자 상사가 부장의 잔을 채우는 여자 선배를 보더니 ‘화주’라며 웃어댔다. 여자가 따라 주는 것이니 꽃 화(花)자, 화주라는 거였다. 잔을 받던 부장의 얼굴도 굳어졌다. 성차별적 표현에 화가 난 나는 집에 돌아가던 길에 다른 선배에게 불만을 털어놓았다.

다음 날 아침 그 선배는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상관에게 보고했고, 우리의 문제 제기는 받아들여졌다. 말실수한 상사는 불려가 주의를 들었고, ‘화주’라고 놀렸던 여자 선배에게 사과했다. 사소한 해프닝이었지만 내겐 세상이 달리 보이는 순간이었다. 비록 공부를 위해 1년 만에 나왔지만, 다니는 동안 ‘우리 회사’를 자랑스럽게 여겼다. 작은 회사였지만 잘못을 고치려는 자정작용이 일어나는 곳, 구성원들이 공정하게 행동하려 노력하는 곳이란 자부심을 갖고 일했다.

최근 분출하는 ‘미투(MeToo)’ 고발을 보면 내가 다녔던 회사는 성폭력에 관한 한 우리 사회의 프랙털(작은 부분들과 전체 모습이 동일)구조에서 벗어난 곳이었던 것 같다. 우리 사회 많은 조직들이 권력의 위계 속에서 피해자의 침묵을 강요해 온 것으로 드러나고 있다. 미투운동은 우리 사회의 프랙털 구조에 균열을 내고 있다. 성폭력 피해 여성이 침묵을 깨고 말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 주고 있다. 피해자 옆에서 응원하고 지지해 주는 사람도 많아졌다.

반면 일부 남성들은 미투운동에 피해의식을 보이며 ‘폭로자’의 동기를 의심한다. 오해를 받기 싫으니 아내 외의 여자와는 아예 따로 만나지 않는다는 ‘펜스룰’을 내세우며 일터에서 여성을 배제할 움직임마저 보인다. 다행스러운 것은 같은 남성들 사이에서도 ‘펜스룰’을 꾸짖으며 미투운동을 변화의 계기로 삼자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는 것이다.

양심적인 지식인들은 미투운동이 내미는 바통을 정부와 국회가 이어받아야 한다고 지적한다. 예를 들어 성폭력 피해자가 용기를 내 고발했다가 무고죄나 명예훼손죄 등으로 덤터기를 쓰는 일이 없도록 법과 제도를 손질해야 한다는 제안이 나온다. 또 경제적, 심리적으로 취약한 처지에 있는 피해자에게 소송과 심리치료 등을 지원하는 시스템도 거론된다. 초·중·고교에서 성 평등을 주제로 한 교육과 토론을 강화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 미투운동이 폭로만으로 끝나서는 안 된다. ⓒ flickr

촛불정신이 미투를 만난다면 

신문에서 미투운동 기사를 읽을 때면 동아리 사람들이 떠오른다. 그 선배는 미투운동 뉴스를 보고 어떤 생각을 할까? 자신의 잘못을 알고 있기나 할까? 우리 편에 서주지 않았던 선배와 동기들은 그날 우리의 이야기를 기억이나 할까? 그게 뭐 큰 잘못이냐고 여전히 코웃음을 치고 있을까? 한 사람의 정신에 깊은 상흔을 남긴 행위에 대해 잘못을 깨닫고 사죄하는 마음을 갖는 것이 문제해결의 시작임을 부디 알았으면 한다.

우리 세대는 미투운동 덕에 잘못된 과거를 반성할 기회를 얻었다. 이 기회를 허비하지 말아야 한다. 촛불혁명이 정치적 민주주의를 진전시켰다면 권력형 성폭력을 고발하고 대안을 모색하는 미투운동은 생활 속 민주주의와 인권 수준을 한 단계 높이는 귀한 계기가 될 수 있다. 그리고 그 출발점은 ‘피해자 입장에서 생각하기’가 될 것이다.


편집 : 이연주 PD

[김소영 기자]
단비뉴스 편집부, 국제부, 시사현안부 김소영입니다.
지치지 않고, 끈질기게 파고들겠습니다.
     관련기사
· 마린시티, 엘시티…그들만의 현실도피
· 더 많은 색의 눈이 필요한 사회
· 플라톤의 '셋집'과 래퍼들의 '자택'
· 인간은 왜 사는가
· 외면하거나 싸우거나
· 우리가 잃어버린 삶의 지혜들
김소영 기자의 다른기사 보기  
ⓒ 단비뉴스(http://www.danbinews.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 저작권문의  

     
의견나누기(0개)
      자동등록방지용 코드를 입력하세요!   
 
 * [운영원칙] 욕설, 반말, 인신공격, 저주 등 기본적인 예의를 지키지 않은 글과 같은 내용을 반복해서 올린 글은 통보 없이 삭제합니다.
  
Follow danbi_news on Twitter

단비뉴스소개기사제보개인정보취급방침청소년보호정책이메일무단수집거부  
(27136)충청북도 제천시 세명로 65(신월동 579) 세명대학교 저널리즘스쿨대학원 413호|Tel 043)649-1557
개인정보관리책임자 : 김문환 | 청소년보호책임자 : 김문환
Copyright 2009 단비뉴스. All rights reserved. mail to danbi@danbinews.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