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론회] ‘아시아 언론자유 현주소’

'국경없는기자회'가 25일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발표한 2018 ‘세계언론자유지수’에서 한국은 43위를 기록했다. 우리나라는 작년보다 20계단 뛰어올라 개선되는 쪽으로 방향을 잡고 있지만, 세계의 언론자유는 점차 퇴보하고 있는 등 악화 조짐을 보이고 있다. 특히 우리와 가까운 아시아 국가들의 언론 상황은 우리가 겪고 지나온 열악한 상황으로 퇴보하고 있다. 이날 세계언론자유지수 발표 후 이어진 ‘아시아 언론자유 현주소’ 토론회에서는 아시아 여러 나라의 언론인들이 자국의 언론자유 현황을 소개했다.

‘댓글부대’ 동원해 언론자유 위협하는 필리핀 정부

“지금 세계 곳곳에 정부의 지원을 받는 ‘댓글부대(patriotic trolling)’가 출현하고 있습니다. 가짜뉴스와 거짓말, 잘못된 정보들을 (대량 살포하는 등) 물량공세로 밀어붙여, 이를 읽는 사람들이 진실을 알 수 없게 만드는 전략이죠.“

토론회는 필리핀의 마리아 A. 레사 <래플러>(Rappler) 편집장의 발제로 시작됐다. 그는 “필리핀 정부가 과거보다 더 교묘한 방식으로 언론 자유를 침해하고 의견 표출을 막고 있다”고 말했다. 필리핀의 댓글부대들은 정부에 비판적인 인물들에 대한 혐오를 부추긴다. 마리아 편집장은 “대부분 공격이 여성에게 집중된다는 대목이 가장 심각한 부분”이라고 강조했다.

▲ 두테르테 대통령의 적극적 비판자였던 라일라 드 리마 상원의원. 댓글부대에 의해 뉴욕에 거액의 주택이 있다는 허위사실이나 포르노 합성사진이 유포돼 피해를 봤다. ⓒ 위키피디아 커몬스

이들의 공격방식은 3단계다. 먼저 근거 없는 혐의를 씌운다. 다음은 공격대상을 성적으로 조롱한다. 마지막으로 ‘이 여성을 체포하라’는 해시태그를 활용해 인터넷에 무한대로 유포해 혐오 여론을 확산시킨다.

이런 사실을 보도했던 마리아 편집장도 역시 여성으로서, 댓글 공격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 “마리아 레사를 체포하라”, “윤간되는 걸 보고 싶다”는 등 여성성 공격 댓글이 인터넷을 가득 메웠다. 마리아 편집장은 “<래플러>가 가짜 계정들을 3개월간 모니터링한 결과, 불과 26개 계정이 300만 명에게 영향을 주었다”고 밝혔다.

▲ 마리아 A. 레사 <래플러> 편집장(왼쪽)이 “페이스북은 가짜뉴스 확대에 대응해 어떤 조치를 취하고 있냐”는 세드릭 알비아니 국경없는기자회 아시아지부장(오른쪽)의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 박진홍

마리아 편집장은 “가짜뉴스를 활용한 일련의 언론탄압 정책에 대응하기 위해 여러 대응책을 모색하고 있지만 쉽지 않다”고 말했다. <래플러>는 3주 전부터 페이스북과 팩트 체크 협업을 시작했지만 성과는 미미하다. 페이스북에서 적극적인 조처를 하지 않기 때문이다.

마리아 편집장이 지적하는 문제 중 하나는 페이스북의 알고리즘 시스템이다. 그는 “페이스북이 좀 더 많은 책임을 져야 한다”며 “단순히 ‘좋아요’ 개수가 아니라 ‘팩트’를 담고 있는지 여부를 알고리즘에 반영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가짜뉴스법 그늘에 놓인 말레이시아

“<월스트리트저널>이나 <뉴욕타임스> 같은 권위 있는 언론에서 보도하더라도 말레이시아 정부에서 ‘사실’이라고 공인해주지 않는 이상 ‘가짜뉴스’가 됩니다. 그게 현재 말레이시아의 언론환경입니다.”

아민 이스칸디르 <말레이시아 인사이트> 수석기자가 말레이시아의 언론환경을 설명했다. 2006년 ‘5.18광주재단’ 국제인턴으로 활동한 적이 있는 아민 기자는 “말레이시아는 세계에서 가장 언론통제가 심각한 나라 중 하나”라며 “통신법, 인쇄출판물간행법, 공적기밀법, 선동법 등이 있고, 최근에는 세계 최초로 가짜뉴스방지법까지 제정됐다”고 말했다. 한국에서는 오래전 독재정권 치하에서나 벌어진 일들이 지금 말레이시아에 횡행하고 있다는 것이다. 말레이시아의 2018년 언론자유지수는 작년보다 1계단 하락한 145위다.

말레이시아의 가짜뉴스방지법은 조금이라도 잘못된 정보를 담고 있으면 뉴스 전부를 가짜뉴스라고 규정한다. ‘잘못된 정보’는 대부분 사실이 틀린 것이 아니라, 정부를 비판한 내용을 의미한다. 가짜뉴스를 만들거나 배포·제작·유통한 사람들은 범법자로 규정되는데, 영향력이 있고 권위 있는 매체라도 정부 비판을 하면 이 법으로 처벌할 수 있게 돼 있다. 아민 기자는 “가짜뉴스법을 위반하면 6년형까지 구형되며, 벌금은 13만 달러까지 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 아민 이스칸디르 <말레이시아 인사이트> 수석기자(왼쪽)와 경찰에 체포되던 중 언론인터뷰에 응하는 <말레이시아 인사이더> 편집자들(오른쪽). ⓒ 박진홍, 더스타온라인

아민 기자는 “나집 총리의 1MDB 자금 유용 의혹을 보도했던 많은 언론사가 큰 피해를 봤다”며 “<말레이시아 인사이더>도 그중 하나”라고 말했다. 그에 따르면 2015년 3월 30일 <말레이시아 인사이더>의 편집자들이 선동법·멀티미디어통신법 위반혐의로 구속됐다. 바로 다음 날에는 <말레이시아 인사이더>를 소유하는 앱치 미디어그룹 경영자까지 체포됐다. 앱치 그룹의 출판사업 허가가 3개월간 취소되는 등 정부와 권력의 언론탄압은 계속됐다. 앱치 미디어그룹은 결국 2016년 3월 15일 <말레이시아 인사이더> 사이트를 폐쇄했다.

정부 탄압에도 말레이시아의 언론자유를 위한 투쟁은 계속되고 있다. 아민 기자가 몸담고 있는 <말레이시아 인사이트>는 <말레이시아 인사이더>를 만들던 언론인들이 새로 창간한 인터넷 매체다. 아민 기자는 “이미 기존 <말레이시아 인사이더> 구독자의 80%를 확보했다”며 “말레이시아 국민들을 위해 계속 기사를 써 나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중국 정부 탄압에 맞선 홍콩 독립언론의 돌파구

“말레이시아와 필리핀의 사례를 듣다 보니 홍콩 언론은 불평하기도 힘들다는 생각이 듭니다. 저는 2014년 우산혁명 이후 중국이라는 거대한 언론탄압 국가를 바로 옆에 두고 있는 홍콩이 어떻게 언론자유를 지켜나가고 있는지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마지막 발제자로 톰 그룬디 <홍콩프리프레스(HKFP)> 편집장이 나섰다. 그룬디 편집장은 “지난 몇 년간 홍콩의 언론자유가 퇴색하고 있다”고 말했다. 언론인들을 겨냥한 물리적 위협이 증가하고 있고, 몇몇 출판인들이 실종되는 사건도 있었다고 한다. 그는 “기업에서 광고를 보이콧 한다든지, 중국 기업에서 홍콩 언론사를 공격적으로 인수하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홍콩독립’을 보도하면 중국 정부에서 압력을 가하기 때문에 뉴스룸 내부의 자기검열도 점점 심해지고 있다고 한다. 홍콩 언론매체들이 그 수는 많은데도 정치적 성향이 다양하지 못한 이유다.

▲ 비영리 독립언론 <홍콩프리프레스> 공동창업자이자 편집장인 톰 그룬디 씨. ⓒ 박진홍

그룬디 편집장은 “우산혁명 이후 크라우드 펀딩 등 시민 참여를 발판으로 독립언론이 많이 생겨났다”며 “그중에서도 가장 규모가 크고 성공적으로 운영되는 모델이 <홍콩프리프레스>”라고 소개했다. 그는 “<홍콩프리프레스>는 어떤 대기업과도 연관이 없으며 광고도 받지 않는다”며 “유일한 지원자는 독자”라고 강조했다. 그렇게 모금한 돈이 올해 2월과 3월에만 한국 돈으로 1억 6000만원에 이른다. 모금한 돈으로 뛰어난 역량을 갖춘 기자들에게 업계 평균 수준은 되는 임금을 주면서 저널리즘의 가치와 언론 자유를 지켜나가고 있다는 것이다.

<홍콩프리프레스>는 매년 경영보고서와 연례보고서를 발간해 독자들에게 공개한다. 매체를 후원하는 모든 사람에게 책임을 지고, 어느 누구로부터도 재정적 의존을 하지 않기 위해서다. 그룬디 편집장은 “그래야만 책임 있고 공정한 보도가 가능하며, 결국 그것이 더 많은 지원으로 돌아온다”고 말했다.

그는 “정부가 디지털 미디어를 인정하지 않아 각종 기자회견장 출입증도 못 받던 때가 있었다”며 “오랜 시간 ‘국경없는기자회’와 법률전문가들이 정부에 맞서 같이 싸워 준 덕분에 최근 출입증을 받게 됐다”고 말했다. 그래도 갈 길은 멀고 장애는 많다. <홍콩프리프레스>도 사이버 공격이나 정부의 검열, 언론인에 대한 물리적 공격 등 권력의 탄압을 피할 수는 없었다.

“홍콩이 아시아 언론자유의 허브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런 기대에 제대로 부합하지 못하는 건 슬픈 일입니다. 한국과 대만의 고무적인 사례를 주의 깊게 지켜보고 있습니다. 언론 탄압의 태풍을 견딜 수 있는 우리 모델들과 시도가 다른 나라에도 전파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편집 : 나혜인 기자

저작권자 © 단비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