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을 흔든 책] 장해랑·이상요 '디지털시대, 프로듀서와 프로그램을 묻다'

<디지털시대, 프로듀서와 프로그램을 묻다>는 ‘모바일 온리, TV 제로(TV는 보지 않고 모바일로 모든 콘텐츠를 소비하는 시대)’로 설명되는 디지털 시대에 피디 지망생과 초보 영상 제작자에게 새로운 지침을 줄 저작이다. 시중 방송학이나 제작 관련 책들은 빠르게 변하는 기술진화와 그로 인한 제작 경향 변화의 흐름을 짚어내진 못했다. 많은 저술이 있음에도 입사 시즌마다 언론사 준비생들이 온라인으로 최신 방송 이슈를 모으고, 이를 별도로 스터디했던 이유다.

이 책의 저자인 장해랑, 이상요 교수는 30여 년을 KBS PD로 방송 콘텐츠를 만들어온 베테랑이며 현재는 세명대 저널리즘스쿨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전직 프로듀서, 현직 교수답게 기술과 시장, 소비자의 콘텐츠 소비 경향이 변화하는 시대에 저널리즘의 가치와 미디어이론을 실무에 어떻게 녹일 수 있는지 잘 풀어냈다. 책의 내용은 풍부하고 설명은 쉽다. 언론사 입사에 필요한 방송 지식과 학생들이 갖고 있는 고민의 지점을 세심히 파악해, 변화에 대해 연구해야 할 점을 토론 주제로 장의 말미마다 제시한다.

▲ 방송이란 세상을 읽는 그릇이다. 방송은 오늘 이 땅의 삶의 모습을 기록하는 일이다. 세상과 삶을 제대로 담아내지 못하면 ‘피레기(피디쓰레기)’다. - 위 책 434쪽 ⓒ pixabay

당신이 알아야 할 ‘프로듀서와 프로그램의 미래’

“현대인은 끊임없이 대중매체에 노출되고 콘텐츠를 소비하면서 자기 자신도 모르게 대중매체가 제공하는 가치와 트렌드를 내재화시키고 있다. 그 가치와 트렌드를 제공하는 주체가 바로 프로듀서다. 프로듀서는 자신도 인지하지 못하는 상태에서 현대인의 생각과 감성, 그리고 삶의 방식까지도 지배하고 있다. 이런 이유로 프로듀서는 자신이 생산해 제공하는 프로그램과 콘텐츠가 어떤 사회적 의미를 가진 것인지를 염두에 두어야 한다.” - <디지털시대, 프로듀서와 프로그램을 묻다> 50쪽

책의 1부 주제는 ‘프로듀서와 프로그램의 미래’다. 프로그램의 진화 양상과 기술변화 현상을 짚고, 이에 따라 프로듀서의 역할이 어떻게 달라져야 하는지 강조한다. 1장 '디지털 시대, 프로그램의 진화와 혁신'에서는 현재 디지털 환경의 변화 아래 달라진 콘텐츠의 형식과 업계 판도를 일목요연하게 정리한다. 디지털 혁명으로 방송, 통신, 인터넷의 구분이 사라지고 이에 따라 새로운 형식의 콘텐츠가 등장했다. 특히 모바일 환경에서 초미니드라마, 웹 예능과 같은 진화와 혁신이 이루어지고 있다. 최근 몇 년간 달라진 미디어 시장의 변화는 다양한 도표를 통해 쉽게 확인할 수 있다.

2장에서는 프로듀서가 알아야 할 미디어 이론을 현재 시청습관과 방송 환경에 적용해 설명한다. 가령, 맥 루한의 핫 미디어/쿨 미디어 개념을 린백/린포워드 미디어와 연결해 이해시키는 방식이다. 과거 한 지상파 필기 시험에 대자보 ‘안녕들 하십니까.’를 핫미디어/쿨미디어 중 하나의 개념을 선택해 설명하라는 문제가 나와 어떤 답이 맞는지 갑론을박이 벌어진 적이 있다. 개념은 알지만 미디어 매체의 수용에 적용시키기 어려웠던 것이다. 그런 면에서 이 책은 방송학개론을 ‘실제 적용’하는 수험서이면서 현재 방송계 트렌드와 변화를 이해할 수 있는 교양서이기도 하다.

이른바 ‘언론고시’를 준비하는 지망생에게 자신과 맞는 직종이 무엇인지도 탐색하게 한다. 본인의 적성과 희망을 구체화해 합격 이후에도 직무에 만족하도록 준비하는 것은 중요하다. 기본적으로 이 장에서는 기자와 피디의 차이점을 설명하고, 할리우드 제작 프로세스로 제작 프로듀서와 디렉터의 개념을 구분해 풀이한다.

프로듀서를 꿈꾸는 이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프로듀서 마인드일 것이다. 3장에서는 프로듀서가 되기 위한 자질을 짚는다. 먼저 피디가 고유한 관점을 가지려면 독서와 폭넓은 경험, 통찰을 지녀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와 함께 편성/탐사/드라마 프로듀서의 실무를 자세히 소개하면서 직종 선택에 도움을 준다. 디지털시대 확장되는 피디의 역할을 강조하며 보다 넓은 관점에서 프로듀서 직종을 읽도록 도운다. 영화의 발전과 영화문법에 대한 설명은 영상을 다루는 이가 알아야 할 기초적인 것으로 영화인문학적 지식도 얻어갈 수 있다.

▲ 전통적인 영상 문법을 기반으로 한 고품격 프로그램을 제작하는 한편으로, 기존의 영상 문법을 파괴하고 시대에 조응하는 새로운 콘텐츠를 제작해야 하는 상황에 프로듀서들은 놓여 있다. ⓒ 청문각

화제 프로그램의 인기 프로듀서가 말하는 생생한 제작 비하인드

2부는 ‘디지털 스토리텔링’에 대한 인터뷰로 채웠다. ‘디지털 시대의 혁신 제작 기법’이 주요한 내용은 아니다. 1인 미디어 크리에이터의 디지털 제작 기법을 듣는 것도 아니다. 레거시미디어로 불리는 방송 JTBC <히든싱어> 조승욱 PD, tvN <시그널> <미생> 김원석 PD, EBS <악기는 무엇으로 사는가> 백경석 PD 등 최근 화제의 프로그램으로 주목받은 피디를 찾아간다. 다양한 매체와 플랫폼이 있지만 특히 주목하는 것은 많은 언론고시생이 희망하는 ‘방송 프로그램 프로듀서’다.

디지털 시대에도 대부분의 피디 지망생은 공중파, 케이블, 종편을 아우르는 기존 방송사에 입사하기를 희망한다. 미디어 스타트업이 많이 생겨났지만, 아직까진 친숙한 레거시미디어의 연출자가 되고 싶어 한다. 그들을 위해 최근 '혁신적'이라 불리는 프로그램을 만든 피디들을 만난다. 제작 가치관을 듣고 피디는 누구인가, 프로그램은 무엇인가 질문한다. 이들의 대화에서 주목되는 것은 '사람'과 '시대정신'이 리얼리티를 기반한 새로운 표현 방식으로 드러난다는 것이다. 피디 지망생이 아니더라도 프로그램 팬들은 프로그램 제작의 뒷얘기까지 즐길 수 있어 새롭다.

프로그램의 본질은 새롭고 재밌고 유익한 이야기 그 자체다. 인터뷰로 실제적 한계 속에서 현업자가 고민하는 디지털 스토리텔링에 대한 생각을 들을 수 있다. 이를테면 KBS MCN 사업팀장 고찬수 PD와의 인터뷰에서, 세계공영방송대회 인풋(INPUT)에 다년간 참석한 저자가 해외의 크로스미디어 전략을 소개하며 웹콘텐츠 시장전망에 대한 질문을 건네는 식이다. 고 PD는 “아직 시장이 형성되지 않았기 때문에 새로운 스타일의 콘텐츠를 시도하는 것이 어렵다”고 답하면서도 ‘드론 레이싱’ 콘텐츠 활성화를 점친다. 독자는 인터뷰에서 현실적인 방송계 판도를 읽을 수 있다.

나영석 피디의 흥행 비결은 트렌드를 읽고 시청자에게 시간이 아깝지 않은 '힐링'을 선사하는 것이다. 카메라 간섭과 스태프를 줄이며 ‘자연스러움'을 부각시켜 승부를 보는 제작 방식을 엿볼 수 있다. 캐릭터를 이끌어내는 방법에 대한 인터뷰는 리얼리티 장르에 대한 좋은 수업이 된다. "시청자가 채널을 보는 것은 소비하는 시간이다. 프로그램을 다 봤을 때 시간이 아깝지 않게 만드는 게 목표”라는 나 PD의 말은 프로듀서가 지향해야 할 바를 명확히 한다.

인터뷰어가 동종업계 선배이다 보니 여타 언론 인터뷰와 달리 ‘질문과 대답’이 아닌 ‘대화’로 이어져 깊은 이야기가 편안하게 읽히는 것도 이 책의 묘미다. 프로그램에 대한 내용만큼 프로그램 뒤의 프로듀서와 작업 환경 전반에 대해 알 수 있는 건 매력적인 요소다. 이 책에서도 자연과 시골을 좋아하는 ‘촌스러운’ 나 PD의 면모를 만날 수 있다. “나영석 PD의 프로그램에서는 사람 냄새가 난다.”며 포문을 여는 대화는 자연스레 ‘리얼리티’를 살리는 제작 기법과 촬영 뒷얘기로 이어진다. 이 외에도 화제의 프로그램을 만들기까지 연출자가 어떤 고민을 했는지 엿봄으로써 방송에 대한 시선과 태도를 다잡을 수 있다.

굵직굵직한 프로그램을 만든 프로듀서들의 인터뷰에서, 1부에서 소개한 매체 환경의 급물살에도 중요한 것은 결국 ‘시대의 진실을 발견해내려는 태도’임을 읽을 수 있다. SBS <K팝스타> 박성훈 PD는 음악 예능의 흐름이 긍정하고 공감해주는 쪽으로 바뀌었다며, 더 이상 냉정한 척하는 기교로는 재미를 주지 못한다고 말한다. KBS <임진왜란 1592>의 김한솔 PD는 이순신 역을 맡은 연기자 최수종에게, "우리의 이순신 장군은 지하철 1호선 막차 타고 가는, 술에 절어 있는 50대 가장의 모습이었으면 좋겠다”라고 역의 롤을 설명했다고 전한다. 현업프로듀서들의 현장인터뷰로 독자는 경쟁사회 속에서 현대인이 원하는 것을 건져내고, 사회와 사람을 투영하는 휴머니즘과 저널리즘이 PD가 가져야 할 기본 가치임을 배울 수 있다.

“프로그램을 만드는 핵심요소는 바로 기획입니다. 기획을 통해 어떤 것을 담아낼 것인가? 어떻게 표현할 것인가? 먼저 시선을 명확히 결정해야 합니다. 그리고 생각들을 글로 구체적으로 옮겨야 합니다. 그래야 명확히 무엇을 어떻게 만들지를 결정할 수 있습니다. 그 다음에는 좋은 영상을 창조해야 합니다. 영상을 있는 그대로 촬영하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습니다. 영상을 창조하는 작업은 다릅니다. 시청자들의 높아진 눈높이에 맞는 철저히 계산된 영상 작업이 동반되어야 하나의 좋은 작품이 나올 수 있습니다.”  - KBS <시대의 작창 판소리> 손성배 PD

사례로 풀어낸 프로그램 제작의 A to Z

3부는 ‘실전, 프로그램 제작론’을 집중 서술한다. 1장 ‘프로그램 제작의 기초’에서는 프로그램 제작에 들어가기 앞서, 프로그램 의미 창출의 7가지 관점을 제시해 영상 제작에 대한 기초 체력을 다진다. 서사이론적 관점, 수용미학적 관점, 장르적 관점, 이데올로기적 관점, 정신분석학적 관점, 페미니즘적 관점으로 구별된 미적 범주에 대한 학습은 제작자로서 가져야 할 필수 교양이다. 각 관점에 대해 저자가 레퍼런스로 곁들이는 영화와 영상을 찾아보는 것도 책을 두 배로 즐기는 방법이 될 수 있다.

의미와 재미 사이에서 어디에 주안점을 둬야 하느냐에 대한 고민이 담긴 ‘스토리텔링’ 파트도 유의 깊게 봐야 할 부분이다. 미적 구조 이론과 스토리텔링의 기본 구조를 익혀 프로그램 기획 및 구성에 적절히 활용할 수 있다. 저자의 말에 따르면 “방송 프로듀서는 매번 새롭고, 재미 있고, 의미 있는 프로그램을 만들어 내야 하는 이야기꾼”이기 때문에 이러한 공부는 필수다.

3부의 백미는 무엇보다 책을 끝까지 읽은 자만이 온전히 이해하고 적용할 수 있는 ‘프로그램 제작의 실제 사례’이다. 기획구성안을 만들기 위해 프로그램을 모니터링하는 방법에서부터 프로그램 분석 리포트의 사례까지, 피디 지망생에게는 더없이 좋은 교과서가 된다. 더욱이 학생들이 작성한 기획안에 대한 저자의 꼼꼼한 첨삭과 눈을 끄는 탄탄한 기획안 작성법에 대한 친절한 안내는 여타 책에서 찾아볼 수 없는 귀중한 자료다. 이 외에도 스토리보드 작성, 현장 실무 사례 등이 나와 있어 프로듀서를 준비하는 학생에게 큰 도움이 된다.

방송계에서 실제 쓰인 큐시트와 콘티, 기획안 자료는 이 책을 보는 자에게 주어지는 특혜다. 부록으로 나와 있는 <히든싱어4> 신해철 편, <K팝스타> 생방송 1라운드의 방송 큐시트를 통해서는 실제로 방송이 어떻게 구성되고 촬영, 편집되는지 배울 수 있다. <임진왜란 1592>의 콘티와 <생로병사의 비밀>의 실제 기획안 또한 방송 제작에 대한 실제에 대한 감을 잡을 수 있도록 돕는다. 뿐만 아니라 촬영과 편집에 대한 제작 노하우를 공개해 프로프로덕션-프로덕션-포스트프로덕션이라는 제작의 3단계를 총망라해 이해할 수 있다.

▲ 편집은 영상이 가진 이미지를 넘어 의미를 강조하는 작업이다. 영상은 이미지를 통해 표현한다. 영상으로 느끼고 영상으로 말하는 역량이 절대적으로 필요한 이유다. ⓒ pixabay

디지털 시대, 프로듀서를 꿈꾸는 이들의 지침서

총 3부를 통해 이 책은 한국 미디어 시장을 진단하고, 프로듀서의 역할과 자질을 설명하고, 제작 후일담을 전하며, 실전 제작을 위한 사례를 보여줌으로써 프로듀서와 프로그램의 의미를 생생히 펼쳐 보인다. 방송 프로듀서를 준비하는 사람이 알아야 할 방송계 현황, 기본적인 제작 마인드와 실제적 방법을 최신 경향을 반영한 통계, 여러 학자들의 미디어이론, 기획안, 콘티 등의 자료로 만날 수 있다. 특히 피디 출신의 저자가 말하는 실제적 조언과 현장에서 각광받는 유명 피디들의 인터뷰는 이 책이 가진 큰 장점이다.

디지털시대에 방송을 꿈꾸는 자는 변화하는 디지털 기술과 시장의 변화를 예측할 수 없어 “창공의 별빛을 잃어버린 시대의 여행자”다. 책의 제목 ‘디지털시대, 프로듀서와 프로그램을 묻다’는 프로그램을 제작하는 것에 정도는 없으며, 프로듀서로서 끊임없이 질문하고 변신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격동하는 방송 생태계에서 프로듀서는 누구이고, 프로그램을 어떻게 만들어야 하는지 정답을 말하기란 어렵지만, 이 책은 이전과 다른 제작환경과 시청패턴에서 새로운 이야기를 고민해야 하는 피디 지망생과 현업자에게 어떻게 살아남을지 하나의 방향성을 제시해준다.


편집 : 유선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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