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 서울대 시흥캠퍼스 반대 농성사태

서울대학교 자유전공학부 3학년 황운중(22) 씨는 지난 17일 평소 친하게 지내던 학부 교수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내가 왜 전화했는지 알지?” 뜬금없는 질문이었지만, 감이 잡혔다. 시흥캠퍼스 이전에 반대하는 점거농성 가담 학생들에게 학교 측이 징계를 검토한다는 소문이 돌던 때였다. “징계자 명단에 네가 있더라. 너는 사건 주동자가 아니니 면담을 통해 풀어보자”는 제안이었다.

이후로도 황 씨에게 학교로부터 세 차례 더 연락이 왔다. 지도교수는 물론 과 전문위원들로부터 카톡, 문자를 통한 개별 연락이었다. “징계 대상 학생들과 공동으로 대응할 예정”이라고 일관된 입장을 밝혔으나 학교 측은 집요했다. “면담으로 피해갈 수 있는 일인데, 괜히 징계받게 되는 것 아니냐”, “너에게 최대한 유리하게 하려면 면담이 필요하다”, “다른 애들은 다 면담하는데 너만 안 하게 되면 어떡하냐”, “주요인물도 아닌데 억울하지 않느냐. 소명을 하면 학부에서 조서를 써서 본부에 올려주겠다”...

징계를 피해가자는 명목이지만, 본부 점거 활동을 접고 일부 학생들에게 책임을 떠넘기라는 약빠른 회유책에 가까웠다.

▲ 서울대 본부건물 외벽에 시흥캠퍼스 실시 협약 철회를 주장하는 플래카드가 걸려있다. ⓒ 신혜연

“유리하게 해줄 테니 면담하자” 징계 대상자 회유하는 학교 

황 씨와 함께 시흥캠퍼스 반대 투쟁 건으로 징계 대상에 오른 학생은 무려 29명이다. 지난해 10월부터 시작된 대학본부 점거 농성이 100일을 넘기면서 학교 측이 사태 수습을 위해 초강경 대응에 나선 것으로 보인다. 학교 측은 점거 농성에 대한 학내여론이 나빠 징계조처가 부득이하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징계 대상자 선정 기준이 모호해 사실상 ‘미운털’이 박힌 학생들에 대한 보복 조치가 아니냐는 비판이 나온다.

학교 본부에서 만난 황 씨의 경우 점거 농성과 관련해 주도적인 활동을 펼친 적이 없다. 시흥캠퍼스 반대를 위한 록페스티벌을 추진한 게 그나마 ‘주요인물’에 가까운 활동이라면 이랄까. 당시 황 씨가 추진하던 공연은 ‘본부스탁 시즌2’. 1969년 미국에서 최초로 열린 록페스티벌 ‘우드스탁’에서 따온 이름이다. 70년대 반전운동의 상징이던 록페스티벌을 2016년 학내 민주주의 회복 동력으로 되살려 보자는 취지였다. 하지만 공연 이틀 전 박근혜-최순실 게이트가 터지면서 무산됐다.

열리지도 않은 행사를 이유로 징계를 내릴 수는 없으므로 황씨가 생각하는 징계 사유는 따로 있다. 점거투쟁 옹호 글을 공유하는 등 온라인상에서 벌인 활발한 활동을 문제 삼은 것으로 본다.

▲ 점거 중인 본관 건물 앞에 선 황운중 씨. ⓒ 신혜연

원칙 없는 징계 기준

황 씨는 학교에서 징계 기준으로 삼은 사건에 가담한 적이 없다. 학과 교수가 황 씨에게 밝힌 징계 사유는 △작년 10월 10일 점거를 시작할 당시 본부 문을 연 학생 △본부 4층 문을 연 인물 △작년 서울대 70주년 행사에서 시흥캠퍼스 반대 시위를 벌인 학생 △학교 기를 내리고 학생회기를 올리는 게양식 퍼포먼스에 참여한 학생 △지난 10일 본부점거본부 학생총회에 참가한 학생 △본부점거투쟁 주요 학생 등 7가지다. 황 씨는 이 중 어디에도 해당하지 않는다.

황 씨는 “그만큼 학교 측 징계 결정이 임의적”이라고 꼬집는다. 이어 “이전에 학내에서 벌어진 성추행 사건에 대해서는 징계는커녕 공론화마저 꺼리던 학교 측이 유독 이번 사안에 대해서만 날을 세우는 것도 형평성에 맞지 않는다”고 덧붙인다.

시흥 캠퍼스 사태가 장기화하는 주요 이유 가운데 하나가 학교 측의 불통 행보라는 지적이 많다. 학생들은 시흥캠퍼스 건설비용 1조 5천억 원을 등록금 인상 없이 해결할 수 있는지, 글로벌 캠퍼스 운영은 어떤 방식으로 이뤄지는지에 대한 구체적인 답변을 듣고 싶어 한다. 하지만 학교 측은 묵묵부답이다.

의무형 기숙사(RC) 운영에 대해서도 학생 반발이 거세지자 ‘절대 하지 않겠다’고 밝혔지만, 총장실 점거 도중 발견된 문건에 “전임 총장 때 RC는 안 한다고 합의, 문서화되어 있다 -> 일단 파기되어야 한다 -> 전인교육형 기숙대학으로 명칭 변경”이라 적힌 메모가 발견돼 논란을 키웠다.

대학서 불통과 불신을 배우다

학생들은 본부 점거 사태를 겪으며 학교의 비민주성을 새삼 깨닫는다. 평생교육 단과대학 사업 졸속 추진으로 촉발된 이화여대 사태가 경찰 투입을 거치며 학내 민주화운동으로 이어진 것과 비슷하다. 본부 점거 이틀 만에 발견한 문건 중에는 학생운동에 가담 중인 학생들 인적사항을 상세히 기술한 문건이 발견돼 충격을 줬다. 사찰로 의심되는 문건이지만, 학교 측의 사과나 반성은 없었다.

오히려 문건이 발견된 당일, 성낙인 총장은 학생들과의 간담회에서 “학생이 왜 학교의 주인이냐” “나는 시흥에 가본 적도 없다” 등의 발언으로 학생들을 실망시켰다. 최근에는 성낙인 총장이 친박계 낙하산이라는 언론 보도가 나왔다. 학생들은 ‘성낙인 총장 불신임선언 3,000명 서명운동’에 들어간 상태다.

학교 측 불통 행보는 수그러들기는커녕 거세지는 추세다. “학생 징계는 없을 것”이라던 성낙인 총장의 말과 달리 징계 조치에 나선 것은 물론 지난 17일 본부 건물 단전, 단수 조치를 한 게 그 예다. 학교 측은 “학생들이 쓰지 않는 층에 경고성으로 단전 조치를 취한 것”이라고 밝힌다. 하지만 점거본부 학생들은 “모든 층에 부분적인 단전, 단수 및 난방 차단이 이뤄졌으며, 추운 겨울에 학생들의 건강권과 생명권을 위협하는 명백한 인권침해”라고 항의한다.

▲ 단수, 단전 조치에 대해 해명하는 ‘마이스누’ 공지글. ⓒ 신혜연

서울대생들의 본부점거투쟁은 겨울방학을 맞아 기세가 많이 꺾였다. 지금은 30명 정도 학생들만 돌아가며 본부를 지킨다. “3월 신학기가 시작될 때까지 버티려고 하는데, 최근 본부가 징계를 단행하는 등 강경하게 나오는 걸 보니 신입생들이 입학하기 전에 끝낼 모양인 것 같다.” 황 씨의 불안 섞인 예측이다. 학교는 이미 예비 신입생들에게 보내는 가정통신문을 통해 본관점거를 ‘학칙 위반’ ‘불법 점거’라고 못 박았다.

학내 의견 개진했다고 ‘출교 조치’ 위협

최근 학교 측이 출교조치를 검토하고 있다는 내용이 언론을 통해 흘러나왔다. 출교조치를 받으면 학적 기록이 사라지고 재입학도 불가능하다. 5년 전 법인화 반대 투쟁 당시에는 총학생회장단 2명만 1~2개월 정학 처분을 받았다. 정학 기간이 4분의 1 이상 이면 등록금을 내고도 한 학기 휴학한 것과 같다. 물리천문학부 4학년 진선호(23) 씨는 출교조치를 두고 “어떤 시대에도 없던 걸 2017년에 내놓는다는 게 기가 막힌다”고 답답함을 토로한다.

일주일 내내 징계 관련 사안으로 시달린 황 씨는 기자와 만나는 날 아침까지 자퇴를 진지하게 고민했다고 털어놨다. “저는 학내정치조직에 가입돼 있지도 않고, 학생회활동 경험도 없는 정말 ‘일반학생’이었거든요. 갑자기 징계 조치라니 황당하죠. 이번 사안에 대해서는 나름대로 열심히 투쟁했기 때문에 29명 안에 포함된 게 억울하진 않아요. 하지만 징계 대상자가 된 다른 모든 학생들처럼, 저 역시 정학을 당할 만큼 잘못한 건 없다고 생각해요.”

▲ 본부건물 유리에 학생들이 쓴 대자보들이 붙어있다. ⓒ 신혜연

학생들은 학교 측이 유례없는 대규모 징계 대응으로 공포심을 조장하고 표현의 자유를 억누른다며 반발한다. 윤민정(21) 본부점거본부장은 “징계를 예상했지만, 대상자가 이렇게 광범위하고, 수위가 높을 줄은 몰랐다”며 “학생들에게 일일이 연락해 주동 여부와 가담 정도를 따져 묻는 일은 악질적”이라고 날을 세운다.

시민사회 호응 여부가 분수령

학생들은 지난 10일 본부 대회의실에 모여 점거 향방 및 향후 투쟁계획 채택을 위한 본부점거본부 총회의를 여는 등 대응책 마련에 애쓰고 있다. 오는 23일에는 "우리 모두가 '주요인물'이다"란 이름으로 학생징계 시도를 규탄하는 집회를 열 계획이다.

벌써 100일을 훌쩍 넘긴 이 사안의 해결책은 어디 있을까? 윤 본부장은 시민사회의 역할에 기대를 건다. “대학이 최소한의 '민주적 외피' 마저 던져버린 꼴이다. 학내 사안에 대해 의사표현을 했다는 이유로 학생들을 학교에서 내쫓겠다는 건 사회적 비판을 불러오기 충분하다. 시민들이 얼마나 호응해주느냐에 따라 상황이 달라질 거로 본다.”

‘정의’는 숨고 ‘효율 만능주의’만 판치는 한국 사회. 대학도 예외는 아니다. 2016년 촛불 시민사회의 힘을 경험한 학생들은 2017년, 대학과 학문의 진정한 의미를 다시 묻는다.


편집 : 박진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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