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 같으면 엄두도 못 냈죠. 외국에서 직접 취재하려면 비용이 수천만 원 이상 소요되는 경우가 많고 절차도 까다롭습니다. 그런데 디지털화로 인해 취재의 장벽이 확실히 낮아졌습니다. ‘직접 취재’의 가치를 지킬 수 있는 거죠. 글로벌 플랫폼으로 취재원이 자신의 뉴스에 관한 피드백을 확인할 수 있는 장점도 있습니다.”코로나19 팬데믹과 트럼프 지지자들의 의사당 점거, 우크라이나 전쟁 등 희대의 사건들을 미국 워싱턴에서 취재한 김수형(45) SBS 정치부 국제팀 기자가 지난달 29일 충북 제천시 세명대 문화관에서 열린 저널리즘특강에서
지난달 11일 오전, 강원도 양양군 강현면 강선리 마을에서 산길로 차를 조금 달리자 나무로 지은 3미터(m) 높이 10평 남짓한 갈색 농막 앞에 ‘친환경 농장 양양로뎀농원’이라는 팻말이 보였다. 토끼풀이 수북한 농장 안쪽에서 검은 고무호스를 들고 밭에 물을 주던 농부가 방문객을 반갑게 맞아주었다. 28년간 서울 중앙대에서 교수로 일하다 정년을 3년 앞둔 2016년 명예퇴직하고 농장 주인이 된 윤석원(68) 대표다. 그는 중앙대를 졸업하고 미국 미시시피주립대에서 농업경제학 박사학위를 받은 뒤 ‘농농농(농업·농촌·농민)’을 외치는 교수
‘농사짓는 사람이 밭을 소유한다’는 ‘경자유전’(耕者有田) 원칙을 진리처럼 여겨서인지 행운이 찾아왔다. 내 밭이 생긴 것이다. 강원도 원주에서 귀농을 준비하는 고모부가 내가 ‘단비농부’라는 사실을 알고 밭 한쪽 100평 남짓 공간을 공짜로 빌려주었다. 지난달 23일 오전 설레는 마음으로 찾은 고모부 댁은 평화로웠다. 조용한 산골짜기에 있는 집은 나무와 황토로 지어져 그야말로 ‘자연’스러웠다.“뭐해, 빨리 장화 안 갈아 신고.”감탄할 새도 없이 호통이 내리쳤다. 농사지을 때 입으려고 장만한 군복 무늬 바지와 체크남방셔츠로 재빨리 갈아
도시에서 나고 자란 내가 시골에서 농사를 짓다 보니 하나부터 열까지 모르는 것투성이다. 처음 농장에 발을 들인 지 한 달이 넘었는데 여전히 작물을 잘 구별하지 못한다. 도시에서도 흔히 먹는 나물이라는데 나에겐 처음 보는 풀이다. 한번은 내가 심은 옥수수가 싹을 틔워 기쁜 마음으로 말했다. “벌써 싹이 올라왔네요. 밭에는 언제 심죠?” 웬걸, 옥수수가 아니라 고추란다. 농장에서는 이런 무능감을 자주 겪는다. 한 시간을 낑낑대야 끝낼 수 있는 일을 십분만에 해치워버리는 베테랑 농부를 보면 자괴감마저 느껴진다. ‘나도 어디 가서 똑똑하다
억눌렸던 일상에 봄볕이 내리쬔다. 신종 코로나19는 세계를 얼어붙게 했지만 오는 봄을 막지는 못했다. 전국에서 꽃망울이 터지며 봄의 시작을 알린다. 내가 공부하는 학교 곳곳에도 연초록 새싹이 터져 나온다. 긴 겨울이 지나고 봄기운을 맞는 이 느낌을 무어라 표현할 수 있을까? 활기와 희망과 행복감. 추웠던 겨울은 어느새 잊고 마음도 봄눈처럼 녹아 내린다. 봄은 늘 이렇게 희망과 함께 온다. 농촌에서는 봄이 오면 씨를 뿌린다. 주말인 지난 10일 다시 충북 제천시 청전동에 있는 솔휘농장을 찾아가 옥
오래전부터 농사를 동경했다. 가난한 소작농의 손자였지만 할아버지를 도우며 흙을 만지던 경험은, 자연이야말로 자유로움 그 자체라는 사실을 내 무의식에 심어주었다. ‘자유로운 삶’은 내 인생의 목표다. 자유롭다는 것은 다른 사람에게 억압받지 않는다는 말이다. 자유는 행복을 느끼게 하지만 억압은 무기력하게 만든다. 생명과 소통하지 못하게 하는 아스팔트 길이 억압이라면 하늘과 땅을 함께 만나는 흙길은 자유다. 회사에서 상사의 지시를 따르는 것이 억압이라면 오롯이 자신의 의지에서 비롯된 노동은 자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