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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밭이 생겼어요!"
[단비농부의 농사일기] ④ 경자유전
2021년 06월 05일 (토) 14:17:18 박성준 기자 creation619@naver.com

‘농사짓는 사람이 밭을 소유한다’는 ‘경자유전’(耕者有田) 원칙을 진리처럼 여겨서인지 행운이 찾아왔다. 내 밭이 생긴 것이다. 강원도 원주에서 귀농을 준비하는 고모부가 내가 ‘단비농부’라는 사실을 알고 밭 한쪽 100평 남짓 공간을 공짜로 빌려주었다. 지난달 23일 오전 설레는 마음으로 찾은 고모부 댁은 평화로웠다. 조용한 산골짜기에 있는 집은 나무와 황토로 지어져 그야말로 ‘자연’스러웠다.

“뭐해, 빨리 장화 안 갈아 신고.”

감탄할 새도 없이 호통이 내리쳤다. 농사지을 때 입으려고 장만한 군복 무늬 바지와 체크남방셔츠로 재빨리 갈아입었다. 챙 넓은 모자를 쓰고 장화까지 신으니 제법 농부 같았다. 텃밭의 잡초를 뽑고 있는 고모부 옆으로 가 묵묵히 따라 뽑았다. 너무 세게 풀을 뽑으면 ‘뚝’ 끊겨버려서 힘 조절이 필요하다. 풀 전체를 한꺼번에 움켜쥐고 살짝 흔들면서 들어올리자 ‘드드득’하면서 뿌리까지 뽑혔다. 뽑은 잡초는 차곡차곡 쌓았다.

   
▲ 지난달 23일 강원도 원주 고모부 댁 텃밭에서 기자가 고추를 심고 있다. ⓒ 박성준

얼마나 지났을까? 한참을 쪼그려 앉아 있으니 허리가 아팠다. 번쩍 일어나 양팔을 쭉 폈다. 허리를 뒤로 젖히자 이미 굳어버린 느낌이다. 밭에서는 대부분 이런 자세로 일해야 하는데, ‘노인들이 이래서 허리가 굽는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잡초 정리를 끝내고 고모부에게 고추 심는 법을 배웠다. 모종삽으로 이랑에 씌워진 비닐을 쑥 찔러 깊게 공간을 만든 뒤 모종을 넣고 흙을 덮었다. 이랑은 흙을 모아 불룩하고 길게 솟아 있는 부분이고 고랑은 흙을 긁어내 우묵하고 길게 패인 부분을 말한다. 고모부는 “처음인데 잘 한다”고 칭찬해줬다. 사실 처음은 아니지만 경력자라고 하기엔 부끄러워 그냥 조용히 있었다. 텃밭에는 이미 다른 작물들이 자라고 있어 고추 네 그루 밖에 못 심었다. 그래도 좋았다.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뿌듯함이 느껴졌다.

   
▲ 푸짐히 차려진 점심상. 대부분 반찬을 직접 키운 채소로 만들었다. ⓒ 박성준

점심 식사 메뉴는 삼겹살. 밭에서 상추와 미나리를 뜯어 왔다. 밑반찬으로 내놓은 마늘과 부추무침, 고추장아찌도 다 직접 키운 것들이다. 정말 ‘꿀맛’이다. 유명한 고깃집깨나 다녀봤지만 이런 맛은 처음이다. 영화 <리틀 포레스트> 한 장면 같다. 막걸리까지 걸치니 신선놀음이 따로 없다. ‘힐링이 이런 거구나’란 생각을 하고 있는데 마침 고모부 친구분들이 찾아오셨다. “맛있는 냄새가 나서 올라왔다”며 직접 키운 딸기를 한 바구니를 주셨다. 시중에 파는 것과 달리 딸기는 작고 쭈글쭈글했다. 농약 쓰지 않고 키워서 그렇다고 한다. 자연의 맛이라고 생각하니 더 달게 느껴졌다.

점심을 먹고 본격적인 농사가 시작됐다. 집에서 10분 정도 걸으니 밭이 나왔다. 내게 허락된 공간은 100평 남짓. 옥수수 모종 한 판 심을 수 있는 크기다. 먼저 가축 분뇨로 만든 거름을 땅에 뿌렸다. 차 타고 고속도로를 달리면 종종 나던 냄새가 이거였다. 가까이서 맡으니 어질어질했다. 고모부는 아랑곳하지 않고 “긴 줄을 펴 방향이 흐트러지지 않게 기준을 만들어야 한다”고 귀띔했다. 줄을 따라 긴 괭이로 흙을 모아 이랑을 만들었다. 한번은 줄을 대지 않고 만들어봤는데, 지렁이처럼 구불구불했다. 어른 말씀 들어야 한다는 말이 맞았다. 공부하라는 부모 말씀 들었으면 지금 내 모습은 더 반듯했겠지.

   
▲ 무농약으로 키운 딸기. 모양은 시장에서 파는 것처럼 일정하지 않지만 맛은 최고였다. ⓒ 박성준

이랑을 완성했으니 이제 심을 차례다. 약 40cm 간격으로 차례차례 심어 나갔다. 흙을 덮은 뒤 꾹꾹 누르는 게 재미있다. 초등학교 저학년, 씨앗을 심어본 기억이 어렴풋이 난다. 그때 이후로 군대에서 삽질하던 것을 빼고, 한번도 흙을 만져본 적이 없는 것 같다. 이런 생각을 하니 뭔가 이상했다. 흙은 어디에나 있는데 한 번도 만져보지 못했다니!

온몸이 땀에 젖기 시작했다. 햇볕은 뜨거운데 그늘이 없어 죽을 맛이었다. 몸은 고단했지만 내 땅이고, 내 작물이라는 생각에 마음은 기뻤다. 한 시간 지나자 제법 속도가 붙었다. 빠르고 튼튼하게 심으려면 요령이 필요했다. 호미로 땅을 열어준 뒤 잽싸게 뿌리를 심고 흙을 덮어 눌렀다. 그렇게 준비한 모종을 다 심었다. 비료포대를 들고 계곡으로 가 물을 떠왔다. 포대 밑에 구멍을 뚫어 물이 졸졸 흘러나오도록 만든 뒤 뿌려주었다.

   
▲ 준비한 모종을 모두 심은 뒤 물까지 준 옥수수 밭. ⓒ 박성준

오후 5시쯤 일을 마쳤다. 고모부는 “공부해야 하는데 힘들어서 어떡하냐”고 걱정했다. 나는 “몸은 힘들지만 기분이 너무 좋다”고 했다. 약간 삐뚤게 심어진 옥수수가 너무 귀여워 웃음이 나온다. 이 새싹들이 ‘내 새끼’라는 생각에 터질 듯이 기쁘다. 노동 피로를 이기게 하는 건 작물에 관한 사랑이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고모부는 “사람은 흙을 만지면서 살아야 건강하다”며 “콘크리트 문화에서 사니까 병이 나는 것”이라고 말했다. 산에 들어와 귀농을 준비하는 이유도 건강하게 살고 싶어서란다. 그러면서 “시골 생활 즐기는 것도 도시에서 먹고살 만한 사람들이 할 수 있는 거…”라며 말끝을 흐렸다. 무슨 말인지 이해된다. 농사만으로 먹고사는 사람들은 밭일을 즐길 수 없다는 얘기다. 쉬지 않고 일해도 남는 게 없으니까. 그런 얘기를 듣자 씁쓸해진다. 자연 속에서 자연을 누리고 사는 게 그리 큰 욕심인지…


편집 : 신현우 PD

[박성준 기자]
단비뉴스 지역농촌부, 시사현안팀 박성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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