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
산업통상자원부는 지난해 5월 제31차 에너지위원회를 열고 ‘지역별 전기요금 차등제’ 도입을 결정했다고 발표했다. 우선 2025년 상반기부터 한국전력이 발전사들로부터 사들이는 전력거래소의 도매요금에 차이를 두고, 2026년부터는 기업이나 일반 가정이 한전에 내는 전기요금도 차등화한다는 구상이었다. 이 제도는 발전시설이 밀집돼 전력자급률이 높은 지역은 전기요금을 낮추고 자급률이 낮은 지역의 요금은 높이는 것으로, 2023년 국회를 통과한 ‘분산에너지특별법’에 근거를 두고 있다. 원자력발전소나 화력발전소에서 안전 위협과 환경 부담을 감내하며 생산한 전기를 수도권으로 보내온 부산, 충남, 전남, 경북 등의 지역민은 이 제도가 지역 경제를 살리는 마중물이 될 것으로 기대했다. 하지만 1년이 훨씬 지난 지금, 이 논의는 답보 상태다.
산자부와 한전은 본격적인 제도 시행을 예고한 2026년이 다섯 달도 채 남지 않은 14일 현재까지도 구체적인 실행 방안을 내놓지 않고 있다. 2025년 상반기로 예고됐던 도매요금 차등제도 아직 시행되지 않았다. 그 사이 대다수 지역 경제는 경쟁력을 잃은 채 침체 일로로 빠져들고, 수도권 산업체는 값싼 전력 요금에 안주하며 몸집을 불리는 구조가 굳어지고 있다. 비수도권 14개 시도의 주력 산업인 광공업의 올해 2분기 생산지수는 부산 –4%, 대구 –2.2%, 충남 –6.4% 등 9곳에서 감소세를 보였고, 11곳이 전국 평균 증가치인 2.1%를 밑돌았다.
한전의 2022년 통계를 보면 부산, 충남, 인천, 경북, 강원, 전남 등 6개 시도는 전국 발전량의 65.9%를 생산한다. 그러나 이들 지역에서 소비하는 전력 비중은 35.4%에 그친다. 반면 서울과 경기는 발전량 비중이 15.2%에 불과하지만, 소비는 34.6%다. 비수도권은 생산지이자 송전지로, 수도권은 소비지로 고착된 구조다. 인구가 밀집된 수도권의 전력 자급률은 서울 8.9%, 경기 61.0%로 매우 낮은 수준이다. 이 격차를 메우기 위해 전국적으로 송전망을 세우고 유지하는 데 막대한 비용이 투입된다. 그리고 그 부담은 수도권과 비수도권 모두 동일하게 나누고 있다.
기업 규모 따라 연간 조 단위 전기료 절감도 가능
대한민국이 인구 감소의 길에 접어든 현시점에서 비수도권은 더욱 빠른 속도로 인구 절벽, 즉 15~64세 생산가능인구가 급격히 감소하는 현상을 보이며 소멸 위험에 빠져들고 있다. 지방소멸의 핵심 요인은 지역 경제 침체이며, 좋은 일자리 감소가 청년층 이탈로 연결되는 악순환이 이어지고 있다. 그래서 발전시설이 밀집한 지역의 상공계는 전기요금 차등제 도입이 지역 경제 활성화에 마중물이 될 것이라고 크게 기대했다. 부산상공회의소가 지난해 6월 지역 기업인 150명을 대상으로 시행한 설문조사에서는 응답자 86%가 ‘차등 전기요금제 도입이 필요하다’고 답했다. 기업 생산성 향상과 지역산업 경쟁력 강화, 기업 유치 기반 강화가 핵심적인 이유였다. 기업인들이 차등요금제를 통한 유치 효과가 가장 클 것으로 예상한 업종은 인공지능(AI)과 데이터 산업, 반도체 산업이었다.
특히 지역의 영세 제조업체들은 중국과 벌이는 치열한 원가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전기요금 인하가 꼭 필요하다는 의견을 밝혔다. 또 수도권에 몰려 있는 AI와 반도체, 데이터센터 등 첨단 업종의 비수도권 유치에도 차등요금제가 매력적인 요소로 작용하리라고 판단했다. 전력 자급률이 높은 지역에 전기요금을 낮게 적용하면 전기 소비가 많은 기업일수록 수도권을 벗어날 유인이 높아진다. 2023년 기준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의 연간 전기요금은 3조 5천여억 원이다. 전기요금이 싼 지역으로 이전해 5%만 감면된다고 가정해도 연간 1750억 원을 절감할 수 있다. 전기료가 절반이 된다면 연간 1조 7500억 원을 버는 셈이다.
현재 각 발전소 인근 지역은 하나같이 안전과 건강, 환경오염 위협에 직면해 있다. 원전은 안전사고 위험과 방사성 폐기물 관리 부담이 크며, 석탄화력발전소 밀집 지역에선 석탄 분진과 미세먼지, 소음 등으로 주민들이 고통받고 있다. 나아가 농토, 수자원 등 생업 터전의 오염과 부동산 가치 하락 등 경제적 손실도 겪는다. 그러나 현행 전기요금 체계는 발전소 지역 주민과 기업 등의 피해에 어떠한 보상도 제공하지 않는다. 위험과 불편을 감수하는 지역 주민과 기업이 수도권 소비자와 같은 요금을 낸다. 또 냉각수 확보를 위해 해안지대에 지은 원전에서 수도권으로 전기를 보내기 위해 국토 곳곳에 세운 송전탑 역시 통과 지역 주민에게 전자파와 소음, 경관 훼손과 자산가치 하락 등의 피해를 초래하지만, 전기료는 동등하게 부과된다. 모두 ‘에너지 정의’에 부합하지 않는 일이다.
지역별 전기요금 차등제가 본격 도입되면 우선 수도권 과밀 해소와 지역 균형발전을 기대할 수 있다. 전기요금 절감 효과는 기업 입지를 고려할 때 핵심 변수의 하나가 된다. 수도권에 몰린 제조·데이터·첨단 산업이 싼 전기를 찾아 전력 자급률이 높은 지방으로 이전하면, 고용과 세수가 분산돼 지역 발전에 도움이 될 수 있다. 지난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등 전력 사용 상위 20개 기업은 13조 4000여억 원의 전기요금을 낸 것으로 나타났다. 전년 대비 1조 4000억 원가량 늘어난 금액이다. 전기 소비가 많은 대기업이 전력자급률이 높은 지방으로 이전하면 해당 지역 경제는 획기적인 발전의 기회를 맞이할 수 있다.
둘째, 송전망 투자와 운영의 효율성이 높아진다. 기업들의 지역 이전으로 동·남해안 등에서 수도권까지 장거리 송전의 수요가 줄면, 막대한 설비 투자와 유지비 절감이 가능하다. 이는 한전의 재무 구조 개선에도 도움을 줄 것이다.
셋째, 환경 부담의 ‘내재화’가 가능하다. 발전소 인근에서 소비되는 전기 가격을 낮추면, 위험과 피해를 감수한 지역민에게 직접적인 보상이 돌아간다. 전력 자급률이 낮은 지역에서는 발전시설에 투자를 늘릴 필요성이 커진다. 현재의 사회 분위기에서 인구가 밀집한 수도권에 화력이나 원자력발전소를 건설할 가능성은 작다. 결국 도심 속 태양광 등의 설비 투자가 활발해지면서, 국내 재생에너지 비중이 더욱 높아질 것이다. 이는 온실가스 감축을 위한 국제적 표준을 지킬 수 있도록 유도해, 국내 산업의 경쟁력도 높이는 결과로 이어질 수 있다.
지역별 3~4배 차이 나는 스웨덴 요금제 참고 필요
스웨덴은 지역별 차등요금제가 잘 정착하고 있는 대표적인 나라다. 이 나라는 전국 단일 요금 체계를 유지하다가 2011년부터 지역별로 3~4배 차이가 나는 전기요금 차등제(Zonal Pricing System)를 도입했다. 제도 도입 후 전력 생산량이 많고 요금이 싼 북부지역으로 기업이 이동하고, 전력 소비가 많은 남부 지역에는 재생에너지 등의 투자가 늘어나는 선순환이 나타나고 있다.
스웨덴 에너지청 전력시장부의 송전 및 도매시장 담당자인 프레드릭 란하드는 이메일 인터뷰에서 “대부분의 대형 수력발전소가 루레오 등 SE1지구, 순드스발 등 SE2지구와 같이 인구가 적은 북부에 몰려 있지만, 전력 소비는 스톡홀름 등 SE3지구, 말뫼 등 SE4지구와 같은 인구가 밀집된 남부에 집중되어 있다”고 소개했다. 그는 “북부에서 남부로 향하는 송전 용량이 부족하면 SE3와 SE4의 전기 가격이 올라가고, SE1과 SE2 지역은 가격이 낮은 상태로 유지된다”며 “이 구조가 남부 지역에는 새로운 전력 생산 설비를 설치하도록 장려하고, 북부에는 전력 집약형 산업 투자가 증가하는 결과를 낳고 있다”고 설명했다. 스웨덴 외에도 노르웨이와 호주 등에서 지역별 차등요금제가 시행되고 있다.
하지만 수도권에 기반한 국내 산업계와 일부 언론은 ‘전기요금을 낮춰준다고 해서 기업들이 인재가 많은 서울·경기를 버리고 지방으로 가지 않을 것’이라며 제도 도입에 반대하고 있다. 물론 단순히 전기요금 차등제만으로 기업의 지방 이전이 봇물 터지듯 이뤄지길 기대할 순 없다. 학교, 병원, 문화시설 등 정주 여건이 함께 개선되어야 한다. 그러면 기업 이전이 지역 대학 발전과 청년층 유입의 선순환 구조로 연결되며 지역 경제와 사회가 회생하는 구조가 구축될 수 있다.
차등요금제를 반대하는 쪽은 또 전국 동일 요금제를 ‘형평성’의 원칙으로 설명하기도 한다. 하지만 형평성은 동일한 조건에 동일한 대우를 하는 것이지, 다른 조건을 가진 집단을 똑같이 대우하는 것을 말하지 않는다. 전력 자급률, 환경 부담, 송전 거리와 비용, 전력망 투자 규모 등이 지역마다 현저히 다른데, 이를 무시한 채 단일 요금제를 유지하는 것은 오히려 불평등을 고착시키는 일이다. 차등요금제 반대론자들은 또 ‘지역 간 위화감 조성’을 지적하지만, 현재의 동일 요금제야말로 보이지 않는 위화감을 키운다. 발전소 지역 주민들의 상대적 박탈감은 이미 누적돼 있다.
‘전력 시장 왜곡’을 지적하는 반대 의견도 있지만, 해외 사례에서 보듯 합리적 권역 설정과 단계적 요금 조정으로 시장 효율성과 공공성을 동시에 달성할 수 있다. 오히려 동일 요금제가 가격 신호를 왜곡해 전력 수요와 공급의 지리적 균형을 해친다. 수도권 영세기업과 에너지 빈곤 가구의 피해에 대한 우려도 나오는데, 이들에게는 에너지 바우처와 세금 감면 혜택 등을 통해 선별적 지원이 충분히 가능하다.
권역 세분화 등 보완 거쳐 조속한 시행 필요
국토 균형발전과 에너지 정의의 마중물이 될 수 있는 지역별 전기요금 차등제가 성공하려면 우선 2026년 시행 계획이 조속히 확정돼 촘촘한 시행 준비에 들어가야 한다. 이를 위해 현재의 ‘3개 권역 차등요금제’ 등 논란이 있는 설계를 공개적으로 재검토하고 합리적으로 보완할 필요가 있다. 일부 전문가들은 수도권 내에서도 인천은 매우 높은 자급률을 보이고 있고, 비수도권 시도 사이에도 자급률 격차가 상당한 만큼 전국을 단순히 수도권, 비수도권, 제주권으로만 나눠 각각 획일적인 요금제를 적용하는 것은 불합리하다고 지적한다.
부산과 충남, 전남, 강원, 인천 등 5개 시도는 지난 4월 산자부에 ‘획일적인 권역별 기준이 아니라 전력 자립률을 최우선으로 고려한 지역별 차등요금제를 시행하라’며 건의안을 전달했다. 예를 들어 원전 밀집 지역인 동남권에서 전력 자급률이 200%가 넘는 지역과 5%도 되지 않는 지역이 비수도권이라는 이유로 같은 요금을 적용받는 건 제대로 된 차등제가 아니라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그래서 5개 권역 이상 세분화가 대안으로 제시되기도 한다.
지역별 전기요금 차등제는 단순한 ‘요금 조정’이 아니다. 에너지 정의, 환경 정의, 산업 경쟁력, 국가 균형발전이라는 네 축을 동시에 강화할 수 있는 구조 개혁이다. 한국이 계속해서 전국 동일요금제를 고수한다면, 전력 인프라 부담은 늘고, 지역 불균형은 심화하며, 산업 경쟁력은 떨어질 것이다. 스웨덴처럼 전력 생산과 소비의 지리적 현실을 반영한 체계로 전환할 때가 바로 지금이다. 정부와 한전은 명확한 이유 없이 더 이상의 시간을 허비해선 안 된다. 이재명 대통령이 대선 과정에서도 약속한 만큼, 서둘러 2026년 추진 시행안을 발표해야 한다. 지방소멸을 막고 에너지 정의를 얻는 첫걸음이 바로 지역별 전기요금 차등제다.
*민성빈 기자는 세명대 저널리즘대학원의 현직언론인 석사과정인 저널리즘혁신학과 재학생이며, 부산MBC 소속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