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정임 칼럼]
아티프 미안 미국 프린스턴대 교수는 공저 ‘빚으로 지은 집’에서 여러 나라 사례를 들어 “부동산 거품에는 항상 가계대출 팽창이 선행한다”고 말했다. 부동산 가격이 실제 가치 이상으로 치솟았던 예를 살펴보면, 언제나 저금리 환경에서 모기지(주택저당대출) 등 가계대출이 급격히 늘었더라는 분석이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로 이어진 미국의 서브프라임모기지(비우량주택담보대출) 사태 뒤에도 ‘집값이 계속 오를 테니 일단 빚 얻어 사라’며 꼬드긴 대출기관이 있었고, 갚을 능력이 없으면서 큰 빚을 낸 사람들이 있었다.
한국에서도 ‘집값은 계속 오를 테니 빚을 내서, 영혼까지 끌어모아서라도 사라’는 압박 혹은 꼬드김이 만연함을, ‘영끌’ ‘빚투’와 같은 신조어가 보여준다. 현금으로 값비싼 아파트를 살 수 있는 부자는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빚투족’ ‘영끌족’까지 우르르 가세하면 10억 원짜리 아파트가 20억 원, 30억 원이 되는 마술이 종종 벌어진다. 그러면 가만히 있다가 ‘벼락거지’가 된 이들은 박탈감에 빠지고, ‘집 사긴 글렀다’고 좌절한 청년들은 결혼과 출산을 포기하기도 한다.
최근 서울 지역 아파트 가격 급등에 대응해 이재명 정부가 ‘대출 조이기’에 나선 것은 부동산 거품과 금융의 이런 관계를 고려한 고육지책이라고 볼 수 있다. 주택담보대출은 실수요자에게 6억 원까지만 허용하고, 다주택자의 ‘갭투자’(전세 끼고 집 사기) 등 투기 수요는 차단하겠다는 것이 대책의 골자다. 주택 가격을 안정시키려면 보유세 강화 등 세제와 공공임대주택 확충 등 공급을 포함한 종합적 접근이 필요하다. 하지만 무서운 기세로 부풀어 오르는 ‘거품’을 빼기 위해 대출을 규제하는 것 역시 불가피한 요소다.
그런데 아니나 다를까, 국민의힘 등 정치권과 일부 언론 등에서 낯익은 반발이 터져 나오고 있다. ‘알짜 부동산을 현금 부자에게 넘기는 특권 패스’ ‘반서민적 부동산 폭정’ ‘서민과 신혼부부, 청년의 내 집 마련 꿈과 주거 사다리 걷어차기’ ‘극소수 투기꾼을 잡겠다고 실수요자들이 모인 곳에 수류탄을 던진 꼴’ 등의 수사가 난무한다. 금융당국의 설명을 들어보면 기존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을 기준으로 이번 대출 규제의 영향을 받는 이들은 대개 연 소득 1억 원 이상, 대출액 상위 10%라고 한다. 서민, 신혼부부, 청년 가운데 여기 해당하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그런데도 정치권이 흔들고 언론이 떠들면 부동산 정책은 흔들리기 쉽다. 노무현, 문재인 정부 때도 종합부동산세 강화 정책에 ‘세금폭탄’ 등의 비난이 쏟아졌고, 대출이나 거래 규제가 나올 때마다 거센 공격이 추진력에 영향을 미쳤다. 특히 일부 언론은 보유세 강화와 대출 규제 등을 반대하며 국공유지 개발, 재건축·재개발 규제 완화 등 서울 민간 아파트 공급 확대를 줄기차게 요구했다. 이들 언론사의 광고 매출 가운데 건설사나 부동산 개발 회사 등의 비중이 크고, 아예 건설사나 대기업집단이 언론사 소유주인 곳도 있다는 점이 이런 논조와 무관해 보이지 않는다.
한국은행 분석을 보면 지난해 서울에서 중간소득 수준 가구가 중간값의 주택을 사려면 한 푼도 쓰지 않고 25년을 모아야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프랑스 파리(17.8년), 이탈리아 로마(15.1년), 영국 런던(14.8년), 미국 뉴욕(14.0년)보다 심한 것으로, 세계 최고 수준이다. 이렇게 비싼 집을 사려고 ‘영끌’ 대출을 받다 보니, 한국의 가처분소득 대비 가계부채 역시 세계 최고 수준이다. 집마다 대출 원리금 갚느라 허리가 휘니, 다른 데 쓸 여력이 없어 내수경기도 가라앉는다.
아티프 미안 교수는 과도한 가계부채가 소비 둔화와 경기침체를 부르고, 경제위기로 이어질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부동산 투기를 잡고 국민의 주거 안정을 이루는 일, 가계부채를 줄이고 내수경기를 살리는 일은 연결되어 있다. 실수요자 외의 주택대출을 억제하고, 고품질 공공임대주택 등을 확대하며, 보유세를 강화해 다주택 투기 수요를 잡는 종합적 대책이 필요하다. 지방 살리기 정책으로 수도권 인구를 분산하는 노력도 필수다. 이런 정책을 국민이 이해하고 밀어줄 수 있도록, 양식 있는 언론이 공론장을 올바르게 이끌어야 한다. 정파적·상업적 이해에 쏠린 주장은 그 공론장 안에서 논박되고 퇴장해야 한다.
*이 글은 <한겨레> 7월 1일 자 [시민편집인의 눈]을 신문사 허락 아래 전재한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