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맛있는 집 재밌는 곳] 대구광역시 중구 교동 ‘음악마을카페’
2020년대를 살아가는 대구의 젊은이들은 교동에 모인다. 지금의 교동은 생활가전부터 다양한 전자 부품에 이르기까지 전자제품 상점이 밀집했던 ‘전자상가’로서의 8, 90년대 전성기를 뒤로하고 낮에는 유행을 좇는 카페와 식당, 해가 지면 화려한 네온사인의 술집이 즐비하다. 빠르게 변하는 교동 한복판에 시간의 흐름에 흔들리지 않는 클래식 음악 카페가 있다.
‘음악마을카페’ 앞에 도착하면 통나무집 모양의 배경에 ‘음악 마을’이라는 노란 글씨가 새겨진 나무 간판이 눈에 담긴다. 간판에 새겨진 부드러운 글씨체는 아기자기한 동물 캐릭터들이 등장해 최근 젊은 층에 인기를 끌었던 ‘모여봐요 동물의 숲’ 게임의 글씨체를 연상케 한다. ‘음악마을’ 간판이 달린 이 건물 전체가 음악 관련 시설로 사용되고 있지만 건물 앞 음악마을카페의 안내판과 메뉴판이 가장 먼저 시선을 사로잡는다. 카페가 있는 지하 1층을 내려가는 계단은 모두 피아노 건반이다. 입구가 두 곳인데 한쪽 입구에는 고풍스러운 느낌의 커다란 벽시계가 걸려 있다. 시계를 바라보며 피아노 계단을 걸어 내려가면 마치 진짜 음악 마을로 들어온 듯하다.
카페 안으로 들어서면 지하인데도 쾌적한 분위기, 찬찬히 흘러나오는 클래식 선율과 함께 카페 주인인 김태식(74) 씨와 정순례(73) 씨 부부가 손님들을 따뜻하게 맞이한다.
하얀빛 벽면과 천장, 나무로 된 바닥과 탁자, 피아노, 콘트라베이스 모형, 자리마다 있는 불투명한 하얀색 칸막이, 음표가 새겨진 쿠션은 어린 시절 다닌 피아노 학원을 떠올리게 한다. 카페 곳곳에 놓인, 노부부의 감각이 더해진 소품들과 방마다 조금씩 다른 인테리어, 방의 창틀 앞에 세워진 음악가 동상들도 눈여겨볼 만하다.
따뜻한 시선, 섬세한 손길로 빚어낸 공간
카페 곳곳에 부부의 따뜻한 시선과 손길이 닿아있다. 자녀들의 어린 시절에 손수 이층침대와 책상을 만들어 주기도 했다는 남편 김태식 씨의 손재주로 소방시설 등을 제외한 인테리어부터 바닥, 전등, 냉난방 시설까지 카페의 거의 모든 공간이 완성됐다. 메뉴판에는 아메리카노, 라떼 등 일반 커피류도 있지만 아로니에 에이드, 인삼 에이드, 각종 허브차 등 다른 카페에서 찾기 어려운 건강 음료들이 눈에 띈다. 부부가 함께 머리를 맞대어 개발한 메뉴들이다.
정성이 담뿍 담긴 데 비해 가격은 저렴한 편이다. 빙수 8종류와 죽 3종류도 판매하는데 죽은 모두 국산 재료로 끓이고 팥빙수와 단팥죽에 들어가는 국산 팥은 직접 삶아서 사용한다. 인삼이 들어간 메뉴는 수삼을 직접 갈아 설탕에 재워서 사용한다. 빙수와 죽은 모두 5천 원으로 더 저렴한 곳을 찾기 어렵다. 카페 한가운데 있는 테이블에서는 식빵과 버터, 잼을 무료로 제공한다. 카페를 연 초반에는 잠시 직원을 두었지만 인건비가 나오기 어려운 상황에 지금은 부부가 단둘이서 정성으로 운영하고 있다.
카페를 방문하는 손님들은 10대부터 70대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기자가 방문한 월요일 오후에도 교복을 입은 학생들부터 나이가 지긋한 어르신들까지 다양한 연배의 사람들이 들고 났다. 정순례 씨는 “어르신들은 조용한 분위기와 건강한 메뉴에, 학생들은 저렴한 가격대의 메뉴들, 자식처럼 맞이하는 듯한 편하고 포근한 느낌에 모이는 것 같다. 원하면 피아노를 칠 수 있고, 생일 초를 불 수 있는 자유로운 분위기도 한몫하는 듯하다”라고 말했다.
누구나 두루 클래식을 접할 ‘음악 마을’을 꿈꾸다
부부는 1973년 봄, 서울의 한 교회에서 처음 만났다. 같은 대학에 다니는 캠퍼스 커플이 되어 사랑을 키웠다. 아내 정순례 씨는 사범대를 졸업하고 중학교 수학 교사가 됐다. 음악을 전공하진 않았지만, 클래식 음악을 줄곧 사랑해 왔다. 그는 유년기를 떠올리며 “음악을 전공한 친척들이 있어 영향을 받기도 했고, 가족이 함께 모여 밥을 먹을 때 라디오에서 클래식이 흘러나오면 한 사람씩 화음을 붙여서 자연스럽게 노래할 정도로 음악을 사랑하는 분위기였다”고 말했다. 클래식을 잘 알지 못하는 공학도였던 남편 김태식 씨도 대학생 시절 순례 씨 덕분에 클래식의 매력을 알게 되었다. 클래식 음악을 좋아하는 부부는 결혼 후 교회 합창단원으로 오래 활동하기도 했다.
음악마을카페가 있는 건물은 남편 김태식 씨의 어머니가 소유한 건물이었다. 집세를 내지 않아도 되기에 상대적으로 저렴한 메뉴를 선보일 수 있는 이유이기도 하다. 80년대 중반, 단층이던 건물을 헐고 지하 1층에 지상 4층짜리 건물을 지을 무렵 대구로 내려오라는 어머니의 부름에 부부는 서울을 떠나 대구에 터를 잡았다. 새로 지은 건물은 다방, 점포, 보험회사 사무실 등 여러 공간으로 활용되다 몇 년 전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잠시 빈공간이 되었다. 부부는 무엇으로 이 건물을 채워나가야 할지 고민을 거듭했다.
그러다, 활기를 잃어가는 교동의 상권이 시야에 들어왔다. 클래식 음악인들이 자유로운 연주 활동을 할 수 있는 공간이 그리 많지 않다는 사실도 떠올랐다. 클래식을 감상하는 문화의 저변을 넓히고 싶은 마음도 있었다.
“건물 주변의 교동시장이 점점 쇠퇴해 가고 있는 현실에 랜드마크 역할을 할 수 있는 건물을 만들고 싶었어요. 또, 자녀들이 음악을 전공하려고 레슨을 받으러 다녔는데 방음 시설같이 환경적으로 불편한 점을 많이 느끼기도 했고요. 무엇보다 클래식 음악은 맑고 차분한, 기본적인 매력이 있어요. 학교에서도 클래식 음악을 접할 기회가 점점 줄어들고 있고 빠른 리듬의 노래가 유행하다 보니 카페라는 공간을 이용해서 클래식 감상 문화의 저변을 넓히고 싶었어요.”
부부의 고민은 많은 사람이 클래식 음악의 매력을 느낄 수 있는 공간, 편하고 자연스럽게 음악과 함께할 공간을 만들 결심에 가닿았다. 남편 김태식 씨가 카페를 비롯한 다른 층들의 여러 시설 작업과 인테리어 작업을 오롯이 하다 보니 2020년부터 공사를 시작해 조금 늦은 2023년 4월, 음악마을카페가 문을 열었다. 4층짜리 건물은 ‘음악마을’이라는 이름으로 탈바꿈했다. 지하에는 카페, 3층은 선교 사무실과 강당, 2층과 4층은 음악 연습을 하려는 사람들이 레슨실과 연습실로 사용할 수 있는 공간으로 거듭났다.
카페를 방문하는 손님이 가진 분위기에 어울리는 클래식 음악을 틀어주는 것도 음악마을카페에서 찾을 수 있는 묘미다. 기자가 카페를 방문했을 때 20대 여성들이 고구마 빙수를 나눠 먹으며 도란도란 담소를 나누고 있었는데 오스트리아의 작곡가 프리츠 크라이슬러의 바이올린 소곡 ‘사랑의 기쁨’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클래식 사랑이 홀씨처럼 퍼지길
클래식 분야를 접할 기회를 넓히기 위해, 성악을 전공한 부부의 아들 김민(44) 씨가 음악마을 건물의 3층 강당에서 일일 무료 성악 발성 수업을 진행하기도 한다. 수업은 1시간 단위로 이뤄지고 미리 신청을 받아 선착순으로 5명이 수업을 받는다. 김민 씨가 수업이 가능한 날짜를 정하면 가게 입구와 네이버 포털의 카페 소식란에 홍보 글을 게시하는데 공지를 올리면 보통 하루 안에 마감된다.
김민 씨는 1750년 이전의 서양 음악 사조이자 클래식 음악의 뿌리 격인 ‘고(古)음악’ 성악을 영국 런던의 왕립음악대학에서 전공하고 현재 서울에서 성악가와 지휘자로 활동하고 있다. 국내에서 생소한 고음악 분야를 알리고 명맥을 이어가고자 서울 앵글리칸 싱어즈에서 리더로, 바흐솔리스텐서울콰이어에서 단원으로 활동한다. 한두 달에 한 번 정도 연주 일정이 없는 날을 잡아 대구에 내려와 수업을 진행하는 것이다.
지난달 27일 열린 8회차 성악 발성 수업에서는 평소보다 한 명을 추가로 받아 여성 2명과 남성 4명이 참여했는데 대학생, 약사, 목사 등 직업과 연령대도 다양했다. 목에 피로가 덜한 발성법부터 소리를 잘 뻗어 내는 법, 개별 코칭까지 이어졌다. 이날 수업이 끝난 후, 두 번째로 수업에 참여했다는 목사 오민수(51) 씨는 “노래의 기초를 쌓고 싶어 찾아왔는데 첫 수업부터 노래하는 것이 한결 가벼워졌고 즐거워졌다”고 말했다. 김민 씨는 “성악 유경험자부터 악보 읽는 것에 익숙하지 않으신 분들까지 다양하게 오시는데 수업을 듣고 지금껏 전혀 경험하지 못한 것을 경험해 봤다는 반응이 가장 뿌듯했다”고 말했다.
부부는 음악마을카페가 그 누구나 음악과 함께하며 편안하게 쉬어갈 수 있는 공간이길 바란다. 작디작은 민들레 홀씨가 바람 따라 너른 세상으로 멀리 퍼져나가는 것처럼, 클래식 음악을 감상하고 즐기는 문화가 확산하길 바라는 마음도 함께.
“음악마을카페를 방문하신 분들이 훗날 어디선가 클래식 음악을 듣고서 이건 음악마을카페에서 들어본 곡인데, 하고 잠시라도 문득 떠올려 준다면 저희에게는 그것만으로도 성공이고 기쁨이에요.”
단비뉴스 지역사회부, 시사현안팀 이예진입니다.
드러나지 않고 밀려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꾸준히 관찰하고 추적해서 밀려난 사람들 곁으로 가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