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비현장] 노인복지 빈틈 채우는 미용사들

“(아내는) 밖에 다니질 못해서 답답하니까 자기가 가위로 직접 잘라. (미용 봉사장에) 같이 못 다녀. 휠체어를 가지고 다녀야 하는데 내가 또 힘이 없고.”

지난달 27일 충북 제천시 실버복지관에서 만난 이율(94) 씨는 작년 4월부터 미용 서비스를 받기 위해 매달 실버복지관을 찾는다. 신체장애가 있는 아내는 복지관에 오는 대신 직접 머리를 자른다. 이 씨는 “(아내가 머리를) 삐뚤삐뚤 잘라도 며칠만 지나면 똑같다”고 말했다. 이 씨는 아내가 최근 집으로 찾아온 간호학과 학생들로부터 혈압 측정 등 방문 간호 서비스를 받은 적은 있지만, 미용 서비스를 받은 적은 없다고도 덧붙였다.

취약계층에 대한 미용 서비스는 주로 복지시설에서 자원봉사자를 모집해 미용 봉사장을 여는 형태로 제공된다. 동네 미용실이 인력을, 복지시설이 공간을 제공한다. 그런데 미용 봉사가 주로 복지시설에서 진행되면서 거동이 불편한 독거노인들은 소외되고 있다. 신체장애로 시설 방문이 어려운 노인들은 스스로 머리를 자른다. 미용 서비스가 봉사자의 자발성에 의존하면서 프로그램이 쉽게 사라지기도 한다.

복지시설에서 열리는 어르신 미용 봉사장

지난 6월 27일 제천시 실버복지관에서 어르신들을 위한 미용 봉사가 진행되고 있다. 조벼리 기자

지난 6월 27일 제천시 실버복지관 1층 로비는 미용 순서를 기다리는 노인들로 북적였다. 저소득 노인을 위한 공공임대주택 단지에 있는 제천시 실버복지관은 작년 4월부터 시내의 한 미용실과 함께 매달 미용 봉사장을 열고 있다. 김지연 사회복지사는 “보통 15~20명 정도 미용 서비스를 받으러 온다. 기초생활수급자, 국가유공자, 차상위계층에게 우선적으로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고 말했다.

미용 봉사가 진행되는 한 시간 동안 미용사 1인당 4~5명의 머리를 손질한다. 머리를 손질하는 동안 봉사자와 이용자 간에 안부를 묻는 다정한 말들이 오간다. 이날 미용 봉사는 살롱A제천점 미용사 3명이 참여했다. 미용 서비스를 받으러 오는 사람은 복지관 주변의 공공임대주택에 사는 노인이 대부분이다. 김서영(42) 미용사는 “같은 커트를 해도 어르신마다 선호하는 스타일이 있고, 원하는 선생님이 있다”고 말했다.

지난 6월 27일 제천시 실버복지관에서 열린 어르신 미용 봉사장에서 서소금(85) 씨가 미용 시술을 받고 있다. 조벼리 기자

장애 등급 3급에 해당하는 서소금(85) 씨는 미용 봉사장이 생기기 전까지 가족이나 요양보호사를 통해 미용 서비스를 받았다. 미용 봉사장에 함께 온 아들 이운학(62) 씨는 “이전에는 인천에 사는 딸이 가끔 찾아와 머리를 잘랐다. 매일 3시간씩 집에 방문하는 요양보호사가 잘라주기도 했다”고 말했다. 김현진(27) 미용사는 “누구나 더 예뻐지려고 미용을 하는 건 아니다. 전문 기술이 있는 미용사가 머리를 자르면 위험 요소도 줄고, 위생관리, 심리적 만족감 측면에서도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봉사자의 자발성에 의존하는 취약계층 미용 서비스

지난달 3일 충북 제천시에서 노인 차량 이동을 지원하는 ‘찾아가는 미용 봉사장’이 열렸다. 조벼리 기자

일부 지역에서는 거동이 불편한 신체장애 노인이나 복지시설 바깥에 있는 독거노인을 위한 미용 봉사도 이뤄진다. 이른바 ‘찾아가는 미용 봉사’다. 시설에서 진행되는 미용 봉사와 달리 방문 미용 봉사를 하려면 자원봉사자가 공간과 교통편을 스스로 마련해야 한다. 봉사자가 이용자를 차량으로 미용실까지 데려오거나, 직접 이용자의 집으로 찾아가는 방식이다.

지난달 3일 제천시에서 찾아가는 미용 봉사장이 열렸다. 유선수(96) 씨를 포함한 4명의 노인이 충북북부보훈지청 복지팀 이동 차량에서 내렸다. 제천에서 1인 미용실을 운영하는 신윤경(53) 원장과 충북북부보훈지청 복지팀은 7년 전부터 매달 미용 봉사장을 열고 있다. 7년 동안 미용 봉사장의 형태는 조금씩 바뀌었지만, 미용 봉사는 꾸준히 이어졌다. 지금은 신윤경 원장이 공간을 제공하고 보훈청이 차량과 이동 인력을 지원하고 있다.

이렇게 미용실을 찾는 이용자들은 교통이 불편한 산간 지역에 살거나 거동이 불편한 노인들이다. 신 미용사는 “10년 전부터 미용 봉사를 했는데, 건강이 약해져 못 오시는 분들도 생겼다”고 말했다. 허리 보호대를 찬 유 씨는 7년 전부터 신 미용사를 찾아오고 있다. 유 씨는 “미용 봉사장 방문이 최근 한 달 중에 유일한 외출”이라고 말했다.

지난달 3일 충북 제천시에서 ‘찾아가는 미용 봉사’를 마친 후 왼쪽 팔에 보호대를 찬 신윤경(53) 원장과 김태현(55) 충북북부보훈지청 사회복지사가 이용자들의 차량 탑승을 돕고 있다. 조벼리 기자

이날 신 원장의 왼쪽 팔에는 치료용 보호대가 걸려 있었다. 보훈청 복지팀 차량이 도착하자 그는 보호대를 벗고 가위를 들었다. 신 원장은 “6주 전에 인대 수술을 해서 의사가 되도록 팔을 사용하지 말라고 했다. 그래도 미용 봉사는 마음이 나서 하는 거다. 어르신들을 가게로 모시고 와서 미용하는 게 큰 기쁨”이라고 말했다.

취약계층을 위한 미용 서비스를 온전히 봉사자 개인이 책임지는 구조에서는 봉사자가 업무에 부담을 느끼거나 개인적인 문제가 생길 경우 무리가 올 수 있다. 봉사 활동을 시작한 이유인 ‘자발성’이 위협받는 것이다. 실제로 미용 봉사자들은 봉사 활동에 자부심을 느끼면서도 대체할 인력이 없다는 부담감을 느끼며 수년 동안 봉사 활동을 이어오고 있었다.

봉사자나 담당 사회복지사의 마음이 바뀌면 언제든지 취약계층에게 제공되던 서비스가 사라질 수도 있다. 제천시의 ‘찾아가는 미용 봉사장’도 2년마다 전담 사회복지사가 바뀌면서 차량 지원이 중단된 적이 있다. 신 미용사는 보훈지청의 차량 지원이 중단됐던 해에는 유 씨를 비롯한 이용자들이 개인적인 방법으로 미용실에 찾아왔다고 말했다.

충북북부보훈지청 복지팀이 관할하는 충북 6개 시군 중에 미용실에서 봉사장을 여는 곳은 제천시가 유일하다. 개인적으로 미용실을 운영하는 미용사가 일정 시간 동안 미용실 문을 닫거나 직접 차량을 몰고 이용자의 집을 찾아가는 것은 적잖은 부담이다. 제천시에 사는 유수현(42) 깔삼헤어 원장은 “하루 가게 문을 닫으면 금전적으로 손해가 크기 때문에 1인 헤어샵 원장님들이 찾아가는 미용 봉사를 하는 건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고 말했다.

예측할 수 없는 환경에서 진행되는 방문 미용 봉사

지난 6월 30일 충북 음성군에서 김인숙(55) 충북북부보훈지청 재가복지실무관이 독거노인 가정의 집 마당에서 미용 봉사를 하고 있다. 충북북부보훈지청 제공

드물지만 봉사자가 직접 거동이 불편한 이용자의 집으로 찾아가는 경우도 있다. 충북 음성군에서는 미용기술자격증을 보유한 김인숙(55) 보훈청 재가복지실무관이 방문 미용 봉사를 하고 있다. 김 실무관은 주중 하루 3명의 재가노인 집을 찾아가 복지서비스를 제공한다. 환경정리, 세탁 등 가사 지원이나 식사 수발 등 건강관리 지원이 담당 업무다.

김 실무관은 미용 봉사를 한 지난 6월 30일에도 오전에 가사 지원 업무를 마치고 오후부터 미용 봉사를 하기 위해 독거노인 가정 세 곳을 찾았다. 김 실무관은 “부담이 있지만 한 달에 한 번이니 감수하자는 마음으로 하고 있다. 만약 못하게 되면 그 서비스는 중단되고 그분들은 원래 상태로 돌아가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방문 미용 봉사의 가장 큰 어려움은 예측할 수 없는 환경이다. 미용 봉사자들은 대상자의 집에 청소기나 거울 등 미용을 위한 기본적인 도구가 갖춰지지 않은 경우가 흔하다고 말했다. 청소기가 없는 경우 마당에서 봉사 활동을 진행하기도 한다. 김 실무관은 “어르신 한 분은 한겨울에 마당에서 머리를 잘라 드렸다”고 말했다.

노인맞춤돌봄서비스는 병원·시장 이동지원

노인복지법 제27조의2는 독거노인에 대한 정부와 지방자치단체의 보호 의무를 명시하고 있다. 보건복지부는 이 법을 근거로 일상생활 영위가 어려운 노인을 대상으로 노인맞춤돌봄서비스를 시행하고 있다. 노인맞춤돌봄서비스를 담당하는 수행인력인 생활지원사는 가사 지원 등 생활 지원뿐 아니라 병원, 시장 등 일상생활에 필수적인 이동을 돕는다.

거동이 불편한 독거노인이 맞춤돌봄서비스의 이동지원을 통해 미용실에 방문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다. 서비스 제공 시간이 한정적이고, 담당 업무만을 수행하기에도 인력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노인맞춤돌봄서비스 수행기관을 지원·관리하는 중앙돌봄지원기관인 독거노인종합지원센터 맞춤돌봄과 관계자는 “미용실 동행을 원하면 가능할 수는 있지만, 일상생활 영위에 필수적인 부분은 아니라서 수행기관마다 유연하게 판단하고 있다”고 말했다.

미용 봉사자들은 미용실 접근성이 낮은 취약계층과 봉사자 간의 연결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미용사단체나 봉사 단체를 통해 미용 서비스를 제공하는 상황에서는 많은 이용자가 한자리에 모일 수 있는 복지시설 위주로 봉사를 진행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유수현 원장은 “미용단체를 통해 요양 시설에서 봉사하면 미용실 접근이 어려우신 분들보다는 충분히 고객이 될 수 있는 분들께 서비스를 제공하게 되는 게 아쉽다”고 말했다.

방문목욕서비스 등 현행 복지서비스와 미용 봉사를 결합하자는 의견도 있다. 방문 미용 봉사의 걸림돌인 대상자 발굴 문제와 봉사자의 안전 문제를 동시에 해결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제천시에 사는 장정분(60) 주노헤어 원장은 “방문 미용 봉사를 하고 싶어도 대상자를 찾을 수가 없다. 또 방문 봉사를 하려고 혼자 사는 남성의 집에 가는 것이 부담스러운 것도 있다. 방문목욕서비스를 제공하는 요양보호사와 미용 봉사자를 연결해주면 좋겠다”고 말했다.

간호·요양과 미용 접목한 일본 후생노동성

지난달 27일 제천시 실버복지관에서 열린 어르신 미용 봉사장에서 한 노인이 미용 시술을 받고 있다. 조벼리 기자

한국의 미용 봉사는 미용을 시작한 지 얼마 안 된 실습생들이 주로 참여한다. 짧은 시간 안에 많은 사람을 만나면서 미용 기술을 익히기 위해서다. 그러다 보니 현장에서 미용사의 능력이 이용자의 욕구를 충족시키지 못하거나 봉사의 지속성이 떨어지는 문제가 생긴다. 유은희 한국미용복지사협회 대표는 “현재의 미용 봉사는 초보 미용사의 실습 위주로 진행되다 보니 수요자의 욕구보다는 ‘짧게, 빠르게, 편하게’ 중심”이라고 말했다.

고령화를 우리보다 일찍 경험한 일본은 1987년 ‘사회복지사 및 개호복지사법’을 제정해 국가 자격을 지닌 복지 전문 인력을 양성해왔다. 일본 후생노동성의 개호복지서비스 영역에는 미용복지사가 포함된다. 미용복지사는 질병이나 장애 등으로 미용실에 갈 수 없는 사람, 요양 중이거나 간호가 필요한 노인 등을 대상으로 방문미용서비스를 제공하는 복지 전문 인력이다.

일본은 요양과 미용을 결합해 윤리관과 의료지식을 갖춘 전문 인력을 양성하고 있다. 일본의 미용복지사는 취약계층의 신체·심리적 상태를 고려해 안전하게 미용 시술을 할 수 있도록 체계적인 교육을 받는다. 지난해 2월 한국미용학회지에 실린 논문을 보면 일본은 미용복지사가 의료·간호 관련 사회보장제도, 질병 방지와 공중위생, 미용 관련 법률 등 이론과 휠체어의 기능과 조작, 침대와 휠체어의 부축 기능 등 의료·복지의 기초 지식을 습득하도록 교육하고 있다.

일상생활 지원과 더불어 적극적 복지 필요

한국의 복지시스템은 간호와 가사 지원 등 일상생활에 필수적인 영역에 초점을 맞춘다. 늘어나는 노인 인구에 비해 복지 전문 인력도 턱없이 부족하다. 유 대표는 공적 복지의 인프라를 확충해 복지서비스가 단순 일상생활 지원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노인의 삶을 개선하는 적극적 복지로 나아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지난달 12일 충남 천안시 백석문화대에서 만난 유은희 한국미용복지사협회 대표는 삶의 질 향상을 위한 적극적 복지를 강조했다. 조벼리 기자

“치료하는 복지와 관리하는 복지는 달라요. 아파서 주사를 맞는다고 기분이 좋아지지는 않죠. 미용서비스를 받으면 심리적인 만족감이 생겨요. 요양이나 간호와 같은 필수적인 복지 영역 외에도 노인의 자아실현과 삶의 질 향상을 돕는 적극적 복지서비스가 확대되어야 합니다.”

유 대표는 특히 한국의 복지시스템에 미용 서비스를 접목하기 위한 구체적인 실행 방안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유 대표는 “미용 봉사자와 도움이 필요한 독거노인, 지체장애인 가정을 연결해주는 센터가 필요하다. 또 어르신들이 요양 시설 내에서 정기적으로 미용 관리를 받을 수 있도록 기본적인 미용 시설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통계청은 작년 9월 한국의 고령자 수가 900만 명을 넘어섰다고 발표했다. 2025년에는 고령자 비중이 전체 인구의 20%를 넘는 초고령 사회에 진입할 것으로 내다봤다. 특히 65세 이상 고령자 가구 3가구 중 1가구는 혼자 살고 있다. 혼자 사는 노인 등 각종 위험에 노출된 취약계층을 위해 단순 일상생활 지원을 넘어 삶의 질 향상을 위한 적극적 복지정책이 시급하다.

관련기사
저작권자 © 단비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