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비현장] ‘낙태죄’ 사라진 뒤 2년 넘게 관련 법률 정비 안 돼

“임신기간 전체를 통틀어 모든 낙태를 전면적·일률적으로 금지하는 것은 임신한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침해해 헌법에 합치되지 않는다”

2019년 4월 11일, 헌법재판소는 형법 제269조 1항(자기낙태죄)과 형법 제270조 1항(의사낙태죄)에 대해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다. 2020년 12월 31일을 개정 시한으로 정해 국회에 입법을 주문했다. 하지만 기한을 3년이나 넘긴 지금까지도 입법 관련 논의는 멈춰 있다. 

2021년 1월 1일 0시부로 형법상 낙태죄는 사라졌지만, 낙태를 하려면 여전히 두 가지가 필요하다. 

먼저 돈이다. 임신중지 수술에는 건강보험이 적용되지 않고, 수술 비용도 병원마다 제각각이다. 단비뉴스가 직접 산부인과 30곳에 문의해본 결과, “임신중지 수술을 하지 않는다”고 대답한 병원은 10곳이었다. 임신중지 수술을 해주는 병원 중 비용을 명확히 제시한 병원은 11곳이었다. 이들 병원에서 제시한 비용은 임신 7주차를 기준으로 최소 35만 원에서 최대 140만 원이었다. 다른 병원은 상담 후 정확한 비용을 안내할 수 있다거나 임신주수별로 비용이 다르다고 답했다.

서울 소재 산부인과 30곳 임신중지 수술 여부 문의 결과. 그래픽 지수현
서울 소재 산부인과 30곳 임신중지 수술 여부 문의 결과. 그래픽 지수현

다음은 정보다. 현재 보건복지부에서 ‘러브플랜’이라는 사이트를 통해 임신중지 관련 정보를 제공하고 있지만 실용성이 낮다. 이곳에서 제공하는 정보는 수술방법이나 후유증 등 이론적인 내용들이다. ‘법과 정책이 논의 중’이라는 이유로 수술이 가능한 병원 정보는 알려주지 않는다.

4월 17일 기자가 직접 이용해본 보건복지부 ‘러브플랜’ 카카오톡 상담 서비스. 수술이 가능한 병원 정보는 안내해주지 않는다. 러브플랜 채팅방 갈무리
4월 17일 기자가 직접 이용해본 보건복지부 ‘러브플랜’ 카카오톡 상담 서비스. 수술이 가능한 병원 정보는 안내해주지 않는다. 러브플랜 채팅방 갈무리

 신중지 당사자들이 주로 의존하는 곳은 인터넷 커뮤니티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에서 발표한 “2021년 인공임신중절 실태조사”를 보면 수술 당사자들이 인공임신중절 관련 정보를 습득하는 경로는 ‘인터넷 게시물 또는 온라인(인터넷)을 통한 불특정 대상’이 46.9%로 가장 많았다. 임신중지 정보를 공유하는 커뮤니티 ‘토닥톡’ 앱에서는 비밀 게시판을 이용하기 때문에 공신력 있는 정보를 얻기 어렵다. 수많은 정보 가운데 어떤 정보를 믿을지는 결국 수술 당사자 스스로 판단해야 한다.

돈과 정보에 접근하는 것이 더욱 어려운 이들이 있다. 청소년과 장애인이다. 청소년은 성인에 비해 정신적으로, 경험적으로  미성숙해 정보를 취득하고 판단을 내리는 데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 장애인은 전용 시설이 갖추어진 병원 정보를 탐색하는 데 더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이들은 공통적으로 경제적 여건이 넉넉하지 못할 가능성도 높다.

낙태죄 폐지 2주년을 맞아 지난 9일 서울시 용산구에서 열린 집회에서 이들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청소년 페미니스트 네트워크 ‘위티’ 활동가인 양지혜 씨는 부모의 경제력에 의존하는 청소년이 임신중지를 결정했을 때 맞닥뜨릴 문제를 지적했다. 그는 “질염 같은 흔한 질환으로 산부인과를 가고 싶어도 비용 걱정부터 하는 게 청소년”이라며 임신중지가 합법화되더라도 경제력이 부족한 청소년은 소외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9일 열린 낙태죄 폐지 2주년 집회에서 청소년 페미니스트 네트워크 ‘위티’ 활동가 양지혜 씨가 발언하고 있다. 지수현 기자
9일 열린 낙태죄 폐지 2주년 집회에서 청소년 페미니스트 네트워크 ‘위티’ 활동가 양지혜 씨가 발언하고 있다. 지수현 기자

비용 부담에 더해 ‘보호자 동의’ 요건도 청소년 임신중지의 걸림돌이 된다. 기본소득당 용혜원 의원실이 지난해 10월 한국건강가정진흥원에 요청한 ‘임신출산갈등상담 가이드라인’ 자료에는 청소년이 임신 중지를 하고자 할 경우 보호자의 동의가 필요하다는 내용을 안내하도록 하고 있다.

임신중지를 고민하는 당사자 가운데 청소년은 높은 비율을 차지한다. 진흥원에서 제공한 ‘임신중지 상담’ 통계에 따르면, 2020~2021년 사이 진흥원이 진행한 임신중단 상담 사례 총 597건 중 절반 이상이 청소년 사례였다. 

이날 휠체어 위에서 발언한 ‘장애여성공감’의 활동가 고나영 씨는 장애인을 대변해 임신중지 과정에서 장애인이 받는 차별을 지적했다. 그는 “장애인이 임신중지 수술을 원하면 휠체어를 타고 갈 수 있는 산부인과를 찾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발언했다. 단비뉴스 문의 결과 “임신중지 수술을 한다”고 답변한 산부인과 16곳 가운데, 아예 휠체어가 들어갈 수 없거나 하반신을 움직일 수 없는 사람의 수술이 불가능하다고 답변한 병원은 8곳이었다. 나머지 8곳 또한 장애 정도에 따라 수술이 어려울 수 있다는 답변을 내놓았다.

9일 열린 낙태죄 폐지 2주년 집회에서 ‘장애여성공감’ 활동가 고나영 씨가 발언하고 있다. 지수현 기자
9일 열린 낙태죄 폐지 2주년 집회에서 ‘장애여성공감’ 활동가 고나영 씨가 발언하고 있다. 지수현 기자

장애인을 위한 의료시설도 입법공백 상태에서는 무용지물이다. 보건복지부는 장애인의 의료 접근성을 높이고자 ‘장애친화 산부인과’ 사업을 시행하고 있다. 장애친화 산부인과에서는 장애친화적인 시설과 장비, 담당 인력을 갖춰 여성 장애인의 안전한 임신과 출산 환경을 지원한다. 그러나 해당 병원에서 임신중지 수술을 받을 수 있는지는 미지수다. 국립재활원 장애인건강과 오성남 사무관은 “장애친화 산부인과에서 이뤄지는 수술은 법에서 허용하는 범위 안에서만 가능하다”며 “낙태죄 후속 입법이 이뤄지면 임신중지 수술을 원하는 장애인도 해당 시설을 이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임신중지에 관한 결정을 온전히 스스로 할 수 없는 것은 장애인의 문제이기도 하다. 고 씨는 “물리적, 정보적 접근이 어려워 주변인과 함께 병원에 방문하고, 중요한 결정도 보호자에게 확인한다”고 했다.

이날 집회를 주최한 ‘모두의 안전한 임신중지를 위한 권리보장네트워크’는 성명서에서 ▲안전한 임신중지를 위한 보건의료체계 공식화 ▲임신중지 관련 의료서비스에 국민건강보험 적용 ▲유산유도제 합법화 등을 요구했다.

낙태죄 전면 폐지? 부분 폐지?

21대 국회에 계류 중인 낙태죄 관련 법안은 14건이다. 낙태죄와 관련된 형법 개정안이 6건, 임신중지 수술의 허용주수나 사유에 따라 낙태에 제한을 두는 모자보건법 개정안이 8건이다. 그러나 입법 논의는 지지부진하다. 입법 시한이 만료될 때까지 소관 상임위원회인 법제사법위원회 주최로 열린 전문가 공청회 한 건이 실질적인 관련 논의의 전부다. 당시 낙태죄 전면 폐지를 주장하는 여성계와 낙태죄 폐지에 반대하는 종교계의 극심한 대립 속에 논의가 흐지부지됐다. 

쟁점은 ‘낙태죄 전면 폐지’ 여부다. 더불어민주당 권인숙안, 정의당 이은주안은 낙태죄 전면 폐지와 처벌조항 삭제를 담고 있다. 박주민안은 낙태죄를 전면 폐지하고, 24주 이내 임신 중단을 허용했다. 24주를 넘겨 임신 중단할 경우 의사만 처벌받는다. 반면 국민의힘 조해진안과 정부안은 낙태죄 전면 폐지를 반대한다. 형법에 낙태죄를 남겨놓고, 모자보건법을 개정해 낙태 허용 범위를 늘리자는 것이다. 정부안은 임신 14주 이내 낙태를 허용하고, 강간 등 범죄행위로 인한 임신 등 예외적인 경우에만 허용 기간을 24주로 연장하도록 했다. 국민의힘 조해진안은 6주 이내로 낙태 허용 기간을 보다 엄격하게 제한하고, 예외적인 상황도 20주까지만 낙태를 허용하는 내용이다.

21대 국회에 계류 중인 낙태죄 관련 법안 비교. 그래픽 지수현
21대 국회에 계류 중인 낙태죄 관련 법안 비교. 그래픽 지수현

어떤 법안이 채택되느냐에 따라 임신중지 당사자의 선택폭이 달라진다. 임신주수에 따라 수술이 제한될 수도 있고, 주수에 상관없이 자유롭게 수술을 할 수도 있다. 2020년 12월 8일 법사위가 개최한 공청회에 참석한 전문가들의 의견은 둘로 나뉘었다. 

2020년 12월 8일 법제사법위원회 회의실에서 열린 낙태죄 개정 관련 공청회. 국회방송 갈무리
2020년 12월 8일 법제사법위원회 회의실에서 열린 낙태죄 개정 관련 공청회. 국회방송 갈무리

임신주수에 따른 수술 제한에 찬성하는 전문가들은 그 이유로 산모의 건강과 태아의 생명권을 들었다. 이필량 대한산부인과학회 이사장은 “임신 9주가 넘어가면 기구를 이용한 자궁소파술을 주로 시행하는데, 임신 초기에 비해 합병증 위험이 증가하고 수술 시간이 길어져 자궁 내 감염과 유착 등이 생길 수 있다”고 했다. 연취현 변호사도 “길어도 10주 이내에 낙태를 허용하는 것이 태아의 생명으로서의 존엄을 해하지 않는 범위”라고 봤다.

주수 제한에 반대하는 쪽에서는 임신주수 기준의 모호성과 불법적 수술 문제를 지적했다. 김정혜 한국여성정책연구원 부연구위원은 “임신주수는 형사처벌 기준으로 삼기에 명확성이 떨어진다”며 “캐나다에서는 주수 제한이 없어도 대부분 초기에 수술한다”고 주장했다. 김혜령 이화여대 호크마교양대학 교수(기독교윤리)는 “낙태죄를 완전 폐지해 불법적인 임신중지 수술을 막는 것이 오히려 더 많은 여성과 태아를 살릴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라고 했다.

2020년 12월 8일 법사위에서 개최한 공청회에 참석한 전문가들의 의견. 그래픽 지수현
2020년 12월 8일 법사위에서 개최한 공청회에 참석한 전문가들의 의견. 그래픽 지수현

임신중지 수술에 건강보험 적용?

낙태죄 전면 폐지를 주장하는 의원 중 일부는 임신중지 수술에 건강보험도 적용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지금은 모자보건법에서 허용하는 임신중지 수술에 한해서만 건강보험이 적용된다. 임신 24주 이내이면서 ▲본인이나 배우자의 유전학적 질환이 있는 경우, ▲강간·준강간에 의한 임신인 경우, ▲법률상 혼인할 수 없는 혈족·인척 간 임신인 경우, ▲보건의학적 이유로 모체의 건강을 심각하게 해치고 있는 경우다.

민주당 권인숙 의원은 2021년 1월 14일 임신중지 수술에 건강보험을 적용하는 국민건강보험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여성의 안전한 임신중단을 지원하고 의료 서비스 접근성을 확대해야 한다는 취지였다. 

그러나 임신중단 수술의 건강보험 확대 적용에 반대하는 목소리도 있다. 같은 해 1월 26일 대한산부인과의사회는 임신중지 수술은 법률에 규정된 건강보험의 목적에 부합하지 않아 보험 급여 적용에 반대한다는 내용의 의견서를 대한의사협회에 제출했다. 의협은 "사회·경제적 사유로 인한 낙태는 건강보험법의 목적인 ‘국민의 질병·부상에 대한 예방·진단·치료·재활과 출산·사망 및 건강증진’에 포함되지 않는다"며 합법적 의료 서비스인 미용성형 수술과 마찬가지로 건강보험을 적용하지 않는 게 맞는다고 주장했다.

낙태죄 폐지됐다고 끝이 아니다

낙태죄를 둘러싼 입법공백은 단순히 여성계와 종교계의 가치관 차이 때문일까. ‘성적권리와 재생산정의를 위한 센터 셰어’의 나영 대표는 정치인들이 해당 문제에 무관심한 게 문제라고 말한다. 나 대표는 “입법이 갖는 의미나 그로 인해 보장되는 권리에 대한 국회의 인식이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여야 모두 찬성이냐 반대냐 정도의 입장만 있을 뿐, 법안에 대한 당론을 회의장에서 논의할 정도의 준비가 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어 그는 “다른 법안이었으면 달랐을 것”이라며 “가령 국가보안법은 당내 논의가 활발하고 당론이 확실하지 않느냐”고 했다.

‘성적권리와 재생산정의를 위한 센터 셰어’의 나영 대표. 지수현 기자
‘성적권리와 재생산정의를 위한 센터 셰어’의 나영 대표. 지수현 기자

낙태죄 후속 입법에 대한 일반 시민의 관심도 저조하다. 9일 집회에 모인 인원은 200명 정도에 불과했다. 2018년 7월, ‘모두를 위한 낙태죄 폐지 공동행동’이 주최한 낙태죄 폐지 집회에 약 1500명이 모였던 것과는 대조적이다. 낙태죄 폐지는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보장한다는 상징성이 높다. 하지만 정작 낙태를 하는 당사자는 소수여서 후속 입법에 대한 관심을 환기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조사에 따르면 2019년과 2020년 인공임신중절 건수는 각각 2만 6985건, 3만 2000건으로 파악됐다.

셰어를 비롯한 시민단체들은 후속 입법 촉구를 위해 다양한 활동을 벌이고 있다. 셰어에서는 상담자와 의료인을 위한 임신중지 가이드북을 제작하고, 안전한 임신중지에 관한 다양한 정보 자료를 배포한다. 임신중지 관련 상담이 필요한 경우 적절한 의료 기관에 연계해준다. 셰어의 기획운영위원으로 활동하는 최예훈 산부인과 전문의는 임신중지에 관한 전문적인 의료 정보를 제공하는 ‘색다른의원’을 개원했다. 이 병원은 민간 병원 차원에서 임신중지 관련 입법 활동에 앞장서고 있다.

셰어에서 제작한 임신중지 가이드북 ‘곁에, 함께’. 지수현 기자
셰어에서 제작한 임신중지 가이드북 ‘곁에, 함께’. 지수현 기자

나 대표는 당장 정책적인 변화가 없더라도 사회의 관심이 이어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는 낙태가 불법의 영역에 있는 동안 감춰졌던 여러 문제들을 드러내는 것이 현재로서 더 중요하다고 했다. 수면 아래에 있는 정보들을 공개적으로 꺼내다 보면 더 많은 사람이 문제의식을 갖게 될 것이라 기대했다. 또 의료인들이 먼저 나서 임신중지를 지원하는 것이 하나의 방법이 될 수도 있다고도 제안했다. 그는 “낙태죄가 폐지됐다고 끝이 아니고 더 많이 얘기해야 할 때”라며 관심을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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