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수찬 칼럼]
영국 옥스퍼드대 부설 로이터저널리즘연구소가 주관하는 <디지털뉴스리포트>(이하 ‘보고서’)가 발행된 지 올해로 10년이 됐다. 세계적인 이 조사에 한국이 참여한 것도 이번이 일곱 번째다. 지난 7년에 걸친 보고서를 종합할 때, 한국 언론 환경의 가장 큰 특징은 ‘강력한 정파 뉴스 시장의 진화(?)’에 있다. 정파성 문제는 오래전부터 세계적 이슈였지만, 특히 한국에서는 급변하는 디지털 환경에 적응하는 방식으로 정파 뉴스 시장이 더욱 고도화하고 있다. 새로운 미디어 플랫폼의 등장에도 불구하고, 정파적 뉴스 시장의 특성이 오히려 강화된 것이다.
한국 뉴스 시장의 정파성은 네 차원 또는 네 단계에 걸쳐 발생했다. 각 차원의 등장 시기는 다르지만, 이들 모두 현존하면서 서로 영향을 주고 있다.
첫 번째 차원은 전통 언론이 형성한 정파적 뉴스 시장이다. 2017년 보고서는 뉴스 이용자의 정치 성향과 주 이용 뉴스 사이트를 교차 분석하여 세계 각 나라를 ‘중앙 집중형’, ‘중앙 분산형’, ‘순수 분산형’으로 구분했다. 중앙 집중형 국가에서는 정치 성향과 상관없이 누구나 읽는 언론의 점유율이 높다. 예를 들어, 영국에서는 어떤 성향의 이용자건 BBC 뉴스를 주로 시청한다. 반면, 스페인, 이탈리아 등 순수 분산형 국가에서는 정치 성향에 따라 서로 다른 언론을 열독한다.
한국은 매우 독특하다. 한국에도 ‘누구나 읽는’ 언론이 있다. 네이버, 다음과 같은 포털이다. 대다수가 포털에서 뉴스를 읽는 나라는 한국 이외에는 없다. 그렇다면 한국은 영국과 같은 ‘중앙 집중형’에 해당할까? 실제 양상은 그렇지 않다. 포털을 제외하면, 한국에서는 정치 성향에 따라 서로 다른 언론을 열독하는 정도가 매우 심하다. 제 정치 성향에 맞는 정파적 언론만 읽는 것이다. 그 정도가 스페인, 이탈리아보다 더 심하다는 점에서 한국은 ‘극단적 순수 분산형’ 국가라 할 수 있다.
정파적 뉴스 이용의 첫 번째 차원이라 할 만한 이 시장을 만든 것은 전통 언론이다. 언론 환경이 급변하던 1992년부터 2012년 사이, 단일 취재원의 입장만을 전달하는 기사가 <조선일보>는 3배, <한겨레>는 2배 정도 늘었다. 뉴스 환경의 변화에도 불구하고 어느 한쪽의 입장만 보도하는 기사를 더 늘리면서 정파성을 강화해온 것이다.
정파적 뉴스 환경의 두 번째 차원은 포털 뉴스 시장이다. 한국의 포털은 정치 성향과 상관없이 가장 많은 사람이 뉴스를 이용하는 통로다. 올해 조사에서도 한국 응답자의 36%가 포털로 뉴스를 이용했다고 답했는데, 세계 평균(16%)과 큰 차이가 있다.
대다수가 포털로 뉴스를 이용한다면, 이를 통해 한국인의 정파적 뉴스 노출이 ‘중화’될 것이라고 가정해볼 수 있다. 여러 언론의 뉴스를 두루 진열한 포털을 자주 찾으면 자신의 정치 성향과 다른 기사를 읽는 일이 늘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국의 포털은 이러한 기대와는 전혀 다른 역할을 하면서, 정파적 뉴스 이용의 온존에 기여하고 있다.
포털 이용자들이 주로 읽는 기사 분야는 정치나 사회가 아니라 연예인이나 유명인에 관한 가십성 기사다. 국내 언론사들이 포털에 대표 기사라고 걸어놓은 보도 자체가 이미 선정적이다. 한국의 포털은 정치 성향에 따른 뉴스 편식을 걸러내는 다양성 또는 다원성을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 정치 성향과 상관없이 모든 이의 눈길을 끄는 싸구려 기사를 확산시킨다. 이런 기사를 열독해도 정파적 뉴스 이용의 효과는 중화되지 않는다.
정파적 뉴스 시장의 세 번째 차원은 유튜브다. 유튜브는 자신의 성향에 따라 구독 채널을 설정하고, 그 선호에 따라 추천 채널을 보게 되어 기존 정치 성향을 더욱 강화한다. 한국의 뉴스 이용자들이 ‘나와 같은 관점의 뉴스’ 이용에 더욱 편리한 유튜브로 옮겨 가는 추세가 곳곳에서 발견되고 있다.
2018년 보고서를 보면, 한국 이용자들이 유튜브를 통해 뉴스를 이용하는 비율은 37%로 조사 대상 37개국 가운데 세 번째로 높다. 올해 보고서를 보면, ‘뉴스를 보기 위해 가장 먼저 찾는 경로’를 묻는 질문에 한국인 응답자의 19%가 ‘유튜브’라고 답했다. 포털을 최우선 뉴스 이용 경로라고 답한 비율(49%)보다는 낮지만, 뉴스레터, 팟캐스트, 페이스북, 트위터(각 1~3%)는 물론 언론사의 웹 또는 앱(9%)보다 훨씬 높다.
또한, 유튜브는 정파성을 내건 전통 언론의 영역까지 빼앗고 있다. 한국언론진흥재단이 발행한 <2021 소셜미디어 이용자 조사>를 보면, ‘개인이나 단체가 운영하는 유튜브 시사 채널을 시청한다’고 답한 이가 59.6%였고, ‘신문·방송의 유튜브 채널을 시청한다’고 답한 이는 60.0%였다. 복수 응답한 이 조사 결과가 알려주는 바는 명쾌하다. 한국의 뉴스 이용자는 전통 언론의 유튜브 채널과 개인·단체의 유튜브 채널을 똑같은 비중으로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이상을 종합하여, 한국의 뉴스 시장을 설명하면 다음과 같다. 오랫동안 전통 언론이 주조해 온 정파 뉴스 시장에 익숙해진 한국인은 자신의 관점과 일치하는 뉴스를 찾아보는 성향이 세계 최고 수준인데, 최근 들어 이를 충족할 통로를 전통 언론이나 포털이 아니라 유튜브에서 찾아냈고, 그 결과 유튜브 중심의 정파적 뉴스 시장이 빠른 속도로 형성되고 있으며, 이는 정파적 뉴스 생산에서 차지했던 전통 언론의 지위와 비중을 개인이나 단체의 사적 채널이 대체하는 것으로 귀결되고 있다.
이 상황을 마케팅의 일반 이론으로 설명할 수 있다. 여러 제품이 경쟁하는 상황에서는 시장을 쪼개어 소비자를 공략하는 제품 차별화가 불가피하다. 탐사보도 등으로 기사를 차별화할 수도 있지만, 여기에는 시간과 비용이 많이 든다. 이에 따라 대다수 언론은 ‘저비용 차별화’ 전략을 펼치게 되는데, 그 결과는 선정성과 정파성에 기대는 것이다. 정파적 전통 언론, 선정적 포털 뉴스, 그리고 선정성에 정파성을 결합한 유튜브 채널에 이르기까지 한국 정파 뉴스 시장의 여러 차원은 저마다의 시장적 합리성을 추구한 결과라고 볼 수도 있다.
마지막 네 번째 차원은 이상 세 차원의 외부에 있다. 간접적 수치 외에는 실증되지 못한 영역이기도 하다. 2020년 보고서를 보면, 한국의 ‘뉴스 애호가’ 가운데 ‘특정 관점이 없는 뉴스’를 선호하는 비율은 41%였다. 이 비율은 독일(80%), 일본(78%), 핀란드(77%), 영국·스웨덴(76%)에 비해 상당히 낮지만, 멕시코·필리핀(28%), 튀르키예(35%)보다 높다. 또한, 2021년 보고서에서 ‘언론은 모든 이슈에 대해 중립을 지키는 노력을 해야 한다’고 답한 한국 응답자는 74%로 세계 평균 66%보다 높았다. 정파적이지 않은 뉴스를 기대하는 이용자가 한국에 상당한 규모로 존재하는 것이다.
바로 이들이 한국 뉴스 시장의 네 번째 차원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이 차원은 정파적 뉴스 시장의 외부에 있는 ‘비정파적 뉴스 시장’이라 부를만하다. 이 영역에서 뉴스를 이용하는 이들이 누구인지, 얼마나 되는지, 어떤 뉴스를 어떻게 이용하는지 등을 규명할 필요가 있다.
뉴스 이용량이 많으면서 정파적 뉴스를 강하게 선호하는 경향을 보인 집단이 뉴스 이용자의 15% 정도라는 점을 밝힌 해외 연구가 있다. 비슷한 문제의식에서 수행한 국내 연구에서도 뉴스를 많이 이용하는 동시에 정파성 높은 집단이 표본의 12.4%를 차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흥미롭게도 올해 조사에서 ‘하루 10번 이상, 사실상 하루종일 뉴스를 접한다’고 답한 한국 응답자의 비율은 14%였고, 세계적으로는 13%였다.
서로 다른 조건에서 시행된 조사를 단순 비교할 수는 없지만, 인구의 10~15% 정도가 정파적 뉴스 시장의 주요 소비자라고 추정해보자. 한국의 수많은 전통 언론과 뉴미디어, 그리고 사적 채널은 이 시장 안에서 경쟁하고 있다.
그렇다면 그 시장의 바깥 또는 경계에 있는 80% 정도 인구는 한국의 뉴스 환경에서 어떤 의미일까. 규범적 가치를 잠시 논외로 하더라도, 그만한 인구 규모의 시장적 가치는 정파 뉴스 시장보다 더 높지 않을까. 이들을 끌어들일 수 있는 뉴스를 생산·유통한다면 어떨까. 모든 언론이 정파성을 통해 차별화 경쟁을 펼치는 상황이라면, ‘비정파성’이야말로 다른 모든 언론과 차별화하는 가장 효과적인 전략이지 않을까.
물론 정파적 뉴스는 이용자에게 강력한 효능감을 부여하고, 생산자에겐 저렴한 비용으로 수익을 올리는 경제적 이득을 제공한다. 정파적 뉴스 시장에 참여한 생산자, 유통자, 소비자 가운데 누구도 이를 쉽게 포기할 리가 없다. 다시 말해, 한국의 정파적 뉴스 시장은 나름의 ‘시장적 선택’에 의해 작동하고 있다. 그렇다면 그 해법 또는 대안도 시장의 메커니즘을 따라 모색해야 할 것이다.
그 실마리는 정파적 뉴스 시장의 외부에 새로운 뉴스 시장이 형성될 가능성에 달려 있다고 나는 생각한다. 수시로 유튜브를 들여다보며 제 관점과 일치하는 뉴스를 찾는 소수 이용자에 기대어 이익을 창출하는 언론 시장이 아니라, 하루 한 번 뉴스를 살펴볼 짬도 없이 바쁘지만 기왕이면 정확하고 다양한 뉴스를 접하려는 대다수 이용자에게 매력과 능력을 발휘하는 언론 시장을 상상해 보자. 한국의 정파적 뉴스 시장이 고도화될수록 ‘비정파적 뉴스 시장’의 가능성을 탐색하는 학자, 기자, 독자가 절실하다.
* 이 글은 한국언론진흥재단이 지난 10월31일에 발간한 <디지털뉴스리포트 2022 한국>에 실린 ‘논평 – 정파적 뉴스 시장의 진화’를 발췌·요약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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